이정재 배우는 1995년 전국을 강타했던 '모래시계' 고현정의 보디가드 '백재희'역으로 첫선을 보였고 대사 없는 눈빛 연기로 전국 여성의 맘을 훔친 사실은 40-50 연령대 분들은 익히 잘 알고 계시리라.
1995년, 나는 방콕에 거주하면서 한국으로 비행을 하던 시절이다.
한국 친구들을 만나면 '모래시계' 얘기를 하느라 여념이 없었고, 한국 TV를 볼 수 없었던 나는 속이 상했다.
9시 뉴스가 끝나고 '모래시계'를 시작하는 '9시 50분'이 되면 거리에는 차가 없을 정도로 온 국민이 열광한 드라마였다. 가끔 운 좋게 한국 비행을 와서, 드라마를 보고 나면, 다음 얘기가 궁금해 안달이 났고, 한국 TV 조차 제대로 볼 수 없는 나의 상황에 우울함이 몰려오며 향수병이 더해지는 거 같았다.
'모래시계'가 종영되고 나서, 방콕 시내 한인타운에서 드라마 비디오 테이프를 빌려볼 수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와우!! 이렇게 기쁠 수가..." 나는 한걸음에 달려가 비디오테이프 20여 개를 빌려다 이틀 밤낮으로 돌려봤던 기억이 있다. 남은 비디오 테이프 개수가 줄어들수록 왜 그리 아쉽던지.... 그렇게까지 드라마에 열광했던 적은 없었던 까닭에 아직도 그때의 기억이 생생하다.. (아!! 갑자기 '여명의 눈동자'도 생각나는데 그 당시는 비디오 테이프를 구할 수 없어서 나중에 한국에서 봤던 거 같다.)
그리고, 이정재 배우를 다시 만난 건, 2008-9 년 즈음인 거 같다. 인천공항 항공사 카운터 앞에 그가 우뚝 서 있었다. 당시, 승객 수속이 거의 끝난 즈음이어서 텅 빈 상황이라 그가 더 또렷하게 보였다. 보통 연예인들처럼 선글라스를 끼거나 마스크도 하지 않은 채, '제발 나 아는 척 좀 해주세요. 사인도 얼마든지 해드릴게요!'라는 느낌으로...(제가 보기엔 그랬답니다.)
주변에 오가는 사람들도 그를 보았지만, 그누구도 아는척 하지 않았다.
괜히 측은지심이 발동하여, 제 옆에서 일하던 20대 여직원에게 물었다.
"혹시 너 저 배우 아니? "
"아뇨! 모르는데요!"
"아.. 너네 연령대는 모를 수도 있겠구나! 옛날 나 20 대때 날리던 배우인데...."
"아 그렇군요..."
"근데 왜 저렇게 마냥 서있는 걸까? 네가 가서 사진을 찍든, 사인을 받든, 아는 척 한번 해봐라. 정말 좋아할 거 같은데.."
"싫어요!! 별로 제 스타일 아닌데요!"
"그래도, 저 배우가 나중에 엄청 유명해지면, 소장 가치 있는 사진 혹은 사인 이 되는 거잖아."
"그럼 차장님이 하세요!"
"에이. 난 아줌마인데, 이 나이에 좀 주책이잖아!"
그렇게 더할 나위 없는 기회를 놓쳐버렸다.(엉엉엉)
왜 그 당시, 그는 그렇게 본인을 가리지도 않고 그렇게 서있었던 걸까?
갑자기 샘솟는 궁금증에 검색질을 해보니, 2000년대는 그의 암흑기였고, 2010년 영화 '하녀'를 기폭제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