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건은 막내 남동생이 군대 제대후,(1994-5 년정도), 당시 방콕에 살던, 누나(나)를 방문하여 여행하던 시절의 에피소드이다.
군대에 있는 동안, 남동생의 최대 소원은 빨리 제대하여, 누나가 사는 태국에 방문하여 여행을 즐기는 것이었다. 당연한 소원이었다 ㅎㅎㅎ. 기다리고 기다리던, 제대를 하였고, 동생은 단숨에 방콕으로 날아왔다.
나는 정상적인 비행근무를 하며, 쉬는 날은 동생과 함께 이곳저곳을 같이 돌아다녔다. 남동생과는 어려서부터 코드도 잘 맞았고 소위 말하는 '자매 같은 남동생'이었다. 그래서인지 같이 있는 시간들이 즐거웠다.
어느 날, 동생이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 '팟퐁 야시장'을 가고 싶다고..
'팟퐁'야시장은 누구나 한 번쯤은 방콕에서 필수 코스로 다녀왔을, 먹거리 볼거리 그리고 별별 물건이 다 있는 핫쇼 핑 장소이다. 좋게 말해서 이 정도이고 좀 더 깊숙이 들어가자면, 각종 성인쇼가 펼쳐지는 '매춘과 환락의 장소'이다. 호기심에 나도 몇 번 동료들과 가보았지만, 먹고, 보고, 쇼핑 정도 하고 오는 게 전부였다.
괜히 깊숙이 잘못 들어섰다가는, 빨간 조명 아래, 실오라기 하나만 걸치고 남자들을 유혹하는 매춘부들을 만나게 된다. 물론, 그들의 사냥 목표는 '남자'이지 우리 '여자'는 아니지만.
동생이 단순히 '야시장'만을 가고 싶은 게 아님을 직감했다. 소위 '성인쇼'관람을 하고 싶었던 것이다.
하지만 당시, AIDS 관련 기사가 판을 치고(태국 가서 환락가 주변만 지나가도 AIDS에 걸려온다는 둥) 지금처럼 제대로 된 정보가 없을 때니, 혼자 가기는 왠지 무섭고, 그래도 방콕에 좀 살아본, 누나를 의지해 가고 싶었던 것 같다. 순간, 오만가지 생각이 들었다. 방콕에 3-4년 살았지만, 그런 쇼를 직관한 적은 없었고, 그래서 조금은 궁금하기도 했었다. 한편으로는 남동생과 과연 그런 걸 볼 수 있으려나?라는 생각.. 태국 물가가 싸긴 하지만, 그런 쇼는 도대체 얼마일까? 등등..
그래도 우리 남매는 이제 '성인'이고... 동생도 언제 이곳에 다시 올지도 모르는데.. 그리고 남들도 다 본다는데.. 굳이 못 갈 이유가 뭐야? 라며 나는 어느새 찬성을 하고 있었다. 계획한 그날이 찾아왔고, 우리는 늦은 밤 '팟퐁'을 향했다. 역시 '불야성'을 이루며 온갖 장삿군 관광객 등으로 들끓고 있었다. 그 틈을 비집고 으슥한 골목을 찾아 들어갔다. 소위 '남성 고객'을 기다리던 그들은 우리 남매를 보고 잠시 망설이더니, 이내 어서 오라고 손짓한다. 일단, 들어가기 전에 'HOW MUCH?'라고 물었다. 왜냐하면, 당시 나는 비행기에서 만난 남자 승객들에게서 '팟퐁'갔다가 다 털리고 왔다는 얘기를 자주 들었기 때문이다. 구경차 갔다가 지갑을 통째 뺏겼다는 둥 의 얘기를 들으며 속으로 "야유 한심해! 바보처럼 왜 당하냐?"라는 생각을 했었기에 이곳에서는 정말 조심하고 끝까지 정신 차려야 한다는 생각을 강하게 했던 것 같다.
그들은 메뉴를 보여주었고, 쇼 값 포함하여 음료값만 내면 된다고 했다. 음료값은 종류에 따라 100밧/150밧/200밧 정도였다. (당시 한국돈 3000원/4500원/6000원) 말도 안 되는 가격이라 생각되었지만, "역시 태국은 물가가 정말 저렴해.. 나중에 팁이나 좀 더 주지 뭐!!"라는 생각으로 겁 없이 '쇼장'으로 들어섰다.
무대를 감 싸도는 컬러풀한 드라이아이스 연기와 손님들의 연거푸 피워대는 담배연기로 '쇼장' 안은 어둡고 눈이 따가웠다. 뽕 맞은 듯한 눈빛으로 술을 들이키는 몇몇 외국인들을 보며, 슬슬 기분이 이상해졌다. 그래도 소위 '남자'인 남동생과 왔으니 괜찮을 거야!라고 위안하며, 본 '쇼'를 기다렸다. 곧이어 벌거벗은 남녀가 나왔고... 춤을 추었고... 등등등...(이상은 상상에 맡길게요 ㅎㅎ)
10 여분 정도 지나며, "내가 왜 이곳에 무슨 정신으로 온 거야?라는 후회가 몰려오기 시작했다. 동생도 민망한지, "우리 그냥 나가자"라는 사인을 보내왔다. 이에, 나는 웨이터를 불러, 영수증을 갖다 달라고 하였다. 우리가 200밧짜리 칵테일을 마셨으니, 두 명이 400밧에 100밧 정도 팁을 주면 될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500밧 지폐를 웨이터에게 건네는데, 순간 웨이터의 눈빛이 변하는 걸 확인했다. 그는 말했다."400 바트가 아니고, 400 달러라고......" 헐..........!!! 돈의 단위를 달러로 교묘하게 바꾸고 "너 몰랐니?"라는 눈빛으로 나를 노려보았다. 400달러면 당시 환율 1달러 800원 정도.. 한국돈 32만 원 정도였다. 30여 년 전 32만 원은 결코 적은 돈이 아니었다. 내가 그토록 기내에서 한심하다고 생각했던 승객들과 똑같은 일을 당하고 있는 것이었다. "이건 아니잖아... 이건 아니잖아..."
순간 나는 피가 거꾸로 솟는 느낌이 들었다. 아예 이곳에 처음 온 여행초보라면 모를까? 그래도 3-4년 살았는데 이런 사기를 당한다는 건, 자존심이 상했다. 그래서 외쳤다. " YOU ARE LIAR!! CALL THE POLICE!!라고... 고래고래 ..소리소리!! 질렀다. 너무 순식간이라 동생은 뭔 일인지 모르고 "누나 왜 그래? 왜 그러냐고? 만 외쳤다.
물론, 그들이 20대 여린 '처자' 따위 무서워 할리가 없었다. 갑자기 온몸에 문신이 가득한 찢어질듯한 근육질의 남자 서너 명이 우리를 에워쌌고 뒷문 쪽으로 데려갔다.(아무래도 손님들이 보고 있었으므로)...
너무 무서웠다. 영문을 모르는 동생은 크게 놀라며, 나를 감쌌고, "모두 덤벼!"라는 포즈를 취했다. (감히 4대 1로 싸우지도 못할 거면서 ㅎㅎㅎ)
머릿속으로 오만가지 생각이 들었다. 그냥 조용히 400달러 계산하고 나갈 건지, 소리 지르며 기절하는 시늉이라도 해야 는 건지 머릿속 컴퓨터가 심하게 요동치며 호흡도 가빠짐을 느꼈다. 일단 주저앉아, 계속 영어로 질러댔다. 이젠 "CALL THE MANAGER!!"...라고. 나는 평소에 태국인의 선한 미소와 행동을 깊게 믿은 탓이었는지,웬지, 그 조폭들도 덩치만 큰 위협용이라고 느껴지며 무섭지가 않기까지 했다. (참 겁도 없다 ㅎㅎㅎ) 게다가 바닥에 누워 온몸으로 바닥을 헤엄치며, 게거품 무는 시늉까지 하고 있었다. 이러다 죽겠다 싶었는지, 그들은 매니저를 불러줬다. 의외로 말쑥한 양복의 매니저는 영어까지 능숙하게 써가며 바닥에서 헤엄치는 나를 일으켰다. 그리고 묻는다. "WHERE ARE YOU FROM? "이라고.... 아마도 참 겁 없고 당찬 여자라고 생각하는 눈빛이었다. 그의 말을 듣자마자 나는 쏘아붙였다. "나는 한국인이다. 너네 나라 항공사 "타이항공"에 근무한다." "동생이 놀러 와서 여기 왔는데, 너네가 사기를 치고 있다""부끄러운 줄 알아라!!"나는 이 문제를 세계에 알리겠다!"등등... 아는 태국어 ,영어 다 섞어가며 눈알을 뒤집었고,고래고래 다시 ,소리 질렀다. 순식간에 내목은 다 쉬어버렸고 천식환자 같은 거친호흡만 하고 있었다. 나를 어이없다는 듯쳐다보며 잠시 생각하던 그 매니저는 부하들에게 눈짓했다. 그냥 보내라고.... 그렇게 나는 풀려났다...
집으로 돌아오며, 동생이 묻는다. "누나 제발 설명 좀 해봐! 도대체 지금 무슨 일을 우리가 겪은 거야? 난 뭐가 뭔지 하나도 모르겠어..."라며 울음이 터질 듯하는 것이었다. 하긴, 동생에게 설명할 겨를도 없이 소리지르기, 울기, 고함 쓰기 등등 어설픈 영어와 태국어로 스펙터클 하게 이루어졌으니, 옆에 있어도 이해 못 할게 당연했다.
자초지종 설명을 들은 후, 동생이 말했다. "누나. 나 너무너무 놀랬어. 난 누나의 그런 눈빛, 행동, 등을 지금까지 본 적이 없어. 난 누나가 죽는 줄 알았어. 누나 너무 무서웠어.."라고.
실은, 어제 그 남동생의 아들이 군대에서 휴가를 나왔고, 우리 집에 놀러 왔다. 군복 입은 조카를 보니, 불현듯 옛 생각이 났다. 그래서 오늘 요렇게 브런치 한 조각을 또 채워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