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요한 사진을 찾으려 휴대폰 갤러리를 들추다 보니, 지난 6월 제주 친정집 텃밭에서 탄생한 무가 보인다.
이젠, 쉬셔도 좋으련만, 평생 농사를 하셨던, 팔순이 넘는 부모님은 쉬는걸 더 힘들어하신다. 어찌 보면, 건강하다는 증거일 수도 있고, 무력하게 TV 만 보며 집안에 갇혀 계신 거보다는 다행이다. 그래도 만날 때마다, '성큼성큼' 변해가는 모습에 가슴이 또 '철렁철렁' 내려앉는다.
원래 계획대로라면, 나는 60살까지 정년을 마치고, 제주 친정으로 내려가 부모님 곁에서 '제주살이'를 할까?라고 막연히 생각한 적이 있었다. 갑작스러운 '코로나 명퇴'로 그 시기가 빨라졌고, 올해는 한 달씩 제주와 서울을 오가며 '두 집살이'를 하였다. '딸'의 명퇴를 처음엔 아쉬워했던 부모님 이건만, 내가 내려가서 집안 살림해드리고, 말벗해주고, 병원 동행해드리고 하니, 얼마나 좋아하셨는지 모른다. 대놓고 "서울 가지 말고 우리랑 살자! 네 남편이나, 딸들이나 엄마 없이 살면서 살림도 스스로 해봐야 성장하는 거지, 네가 있으면 아무것도 못해!"라며 꽤 강하게 부담을 주셨다.ㅎ ㅎ ㅎ
물론, 서울의 내 가족들은 아쉬운 대로 견뎌나갔다. 남편 말에 의하면, "주부가 없으니, 불편한 건 많지만, 한편 잔소리가 없는 건 살만하다!"라고 했다. "헐, 내가 그리 잔소리가 많은 사람이었나? 그들은 모른다. 주부의 잔소리로 집안이 유지되고 발전되고 평화가 찾아오는 것을.."
이라고 생각했는데, 부모님과 살면서, 어느새 나는 '친정엄마'의 잔소리에 고통스러워하고 있었다.
요새 말로 '츤데레'라고 한단다. 속으로는 무척 아끼고 사랑하며 챙겨주면서도, 겉으로는 '욕쟁이 할머니'처럼
끊임없는 잔소리,, 잔소리,,, (이것도 건강하시다는 뜻으로 감사히 생각도 하지만). 80대의 엄마가 50대의 딸에게 무제한 발사하는 잔소리폭탄!!!우리 엄마는 진정한 '츤데레'이고 나도 의도치 않게 그 DNA를 갖고 있는 거 같기도 하다.(에효효 ㅠㅠ)
부지런한 엄마는 집 앞 텃밭에 여러 종류의 채소 과일 등등의 씨앗이나 모종을 오일장에서 사 와 심으셨다.
"두 분이 사는데, 이렇게 많이 수확하면 다 어떻게 처분하려 하시냐? "고 하니, 동네 이웃이랑 나눠 드신다고 한다. 이렇게 땅이 있는데 활용하지 않고 야채를 사 먹는다는 게 말이 되냐? 며 (사실, 사 먹는 가격이 더 저렴하다고 난 생각하지만).
하루는 엄마가 무심히 위 사진의 무를 파서 버리는 장면이 목격되었다.
생전 처음 보는, 신데렐라 "호박마차"아니고 "무우마차'라도 만들 크기이다.
엄마도 처음 보는 크기이다!라고 하시면서도 "뭐 그럴 수도 있지 뭐!"라는 너무 초연한 모습으로, "아까운 무가 다 기형이 돼버려서 아까워만 하셨다. 실제 속을 까 보니 바람도 들고 좀 곯아 있기도 하여 먹을 수는 없는 상태였다.
너무 신기한 나는, 사진을 찍어 여기저기 단톡방에 공유했다. 친구들이 놀라워하고 재밌어했다. '유전자 변이' '기후변화의 산물''TV에 제보해라''군대 보내서 무말랭이 만들게 해라'등등 난리가 났다.
그중에 재미있었던 건, 아래 사진을 보내온 친구의 말이었다.
"너 대부업체 광고에 왜 무 사진을 쓰는지 아니? 안 갚으면 땅에 묻어버리겠다!"라는 뜻 이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