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객들은 그들(특히 신부)의' 웨딩드레스룩''한복룩''신혼여행룩'을 바라보며 대리만족도 하고 부러워하기도 했다.
내가 항공사 근무를 시작하던 때는 1990년, 그야말로 '해외여행 자유화'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국내 제주도로만 신혼여행 가던 커플들이 일제히 해외.. 그중에서도 태국으로 많이 눈을 돌렸다. 당연히봄가을 결혼시즌..특별히 주말저녁만 되면 공항은 이들로 늘 북새통이었다.
당시 신혼여행객 신부중, 약 20-30% 정도는 한복을 입고 비행기에 탔던 거 같다.
형형색색의 화려한 한복을 입은 그녀들은 비행기 안에서 '외국인 승객'의 타깃이 되어 사진요청을 받았고, 마치 연예인이 된 거처럼 우아하게 비행기를 누볐다.
물론, 방콕 도착 후에도 그녀들은 공항 내 외국인들의 '주목'을 받으며 사진찍기를 계속한다.(신랑은 자연히계속 '찍사'신세가 되었다.)
한복의 인기는 실로 대단했다!
나머지 70% 정도의 신부들은 소위 '인형룩' 좀 다른 말로 '경성제국룩''개화기 여성룩'
이런 종류의 의상을 많이 입었던 거 같다.
더 쉽게 말하면 '앙드레김' 작품에 비교될정도로 풍성하고 화려했다.
몇 겹이나 두껍게 바른 파운데이션, 과도하다싶게길게 붙인 속눈썹, 새빨간 입술등..
그들은 화장이 아닌 '변장'을 했다.
우아하게 수십여 개의 핀으로 틀어 올린 신부머리에는 꽃이 달리기도 하고,미니 티아라도 올라갔다.
영국 황실에서나 볼만한 우아한 망사모자를 쓰기도 했다.
신부정장은 온통 과도한 리본과 레이스의 풍성함 또는 스팽글의 반짝임으로 무대의상 수준이며 ,평상시에는 죽어도 다시 입지 못할 패션들이었다.
게다가 핸드백이나 신발도 화려함이 지나쳐 결국은 몇번 사용못하고..세월이 흐른후
주인에게 외면당한후, 신발장에서 수명을 마칠 모양새였다.
그토록 화려했다는 얘기!!
그러니.. 보는 즐거움은 분명!!있었다.
카운터 앞에 가득히 줄서있는 그녀들의 '신혼여행룩'을 하나하나감상하는
눈호강에행복했다.
'인형옷 전시장'처럼 온갖 예쁜옷은 다 봤던거 같다.
아쉬움이라면..얼굴이 다 똑같은 인형 같다는거...그만큼 '신부화장'이라는게 거의 천편일률적이었다.
나는 1997년 결혼을 했는데,
잠시 당시를 회상해 본다.
그때 나는 고심끝에 검은색 정장 재킷과 바지를 신혼여행룩으로 선택했다.
그래도 신부인데 너무 밋밋하면..서운하니
허리가 잘록하게 라인이 들어가고 살짝
펄감이 들어간 shiny 한 재질로 구입했다.
물론 그때도 딴 커플들은 여전히 '인형룩'이었지만, 난 실용성을 선택한거다.
한 번만 입을 거 같은 화려한 정장에 백여만 원(30년 전 가격임에도 불구하고) 이상을 소비하는 건 아니라고 생각했다. 대신 화려한 블라우스를 안에 입고 펜던트등으로 멋을 내어, 적어도 '상갓집 룩'이 되지 않게 조심하였다. 현명한 선택으로 난 그 후로도 오랫동안, 그 검정정장을 꽤나 잘 활용했으니 뽕을 제대로 잘 뽑았던 거 같다.
'공주님 의상'은 눈에 담는거로 만족하기로 했다.
2000년대를 넘어서면서 '신혼커플룩'은 실용성을 강조한 '캐주얼룩'으로 변해갔다.
그들은 똑같은 모양과 색깔의 셔츠 혹은 남방.. 그리고 반바지 운동화를 신었다.
커플들 수백명 섞어놓고 짝지 찾으려면 같은옷 찾으면 될정도로 그야말로 '똑같이 입기'
전성시대였다.
머리는 올림머리, 얼굴은 신부화장인데 옷은 운동복/캐쥬얼복 느낌이니 이런 슬픈 언발란스가 없었다.
동료 태국 승무원들이 왜 커플들이 똑같이 입냐고 자꾸자꾸 물어봤다. (궁금한 것도 많으시구려..ㅎ)
그 와중에 신부들 대부분은 와인과 과일 등이 들어있는 '과일바구니'를 바리바리 들고 있었다.
공항에서는 비행기수속, X레이 검색등 넘어야 할 절차가 태산인데 그 무거운 '과일바구니'를 다들 들고 있으니, 그야말로 검색대도 '혼돈의 카오스'고 비행기 안에도 놓을 자리가 없어 곤란한 상황이 자주 생겼다.
동료 승무원들이 또 물었다.
도대체 '과일바구니'는 왜 번거롭게 갖고 가냐고?ㅎㅎ
문화가 다른 한국의 독특한 결혼풍습이 다 신기한가 보다.
그녀들은 무겁고 덩치 큰 과일바구니를 매우 부담스러워했다.
비행기에서 와인이나 과일 1-2개 정도만 빼고, 승무원들에게 선물했다
심지어 그냥 두고 가는 사람도 있었다.
당시, 나도 꽤 자주 과일바구니를 선물 받아, 맛난 과일도 먹고, 집에 바구니가 쌓였던 기억이 있다.
또 신부들은 비행기 화장실에서 올림머리를 풀어내리느라 사투를 버렸다.
아무래도 신부머리는 좌석에 기대기도 힘들었고, 하루종일 우아함을 지탱하느라 견뎌낸
그 수많은 실핀들의 공격이 더 이상 '저항불가'상태가 된 것이다.
크고 깊은 신부의 호수같은 눈을 만들어준 인조속눈썹은 어느새 안구 '충혈'을 초래했고 신부들은 강하게 접착된 속눈썹을 한올한올 떼느라 화장실에서 나올줄을 몰랐다.
때로는 혼자 하기 벅차므로, 신랑이 힘을 합쳐 머리를 풀고 속눈썹을 뽑아냈다.
화장실 안에 버려졌던 그 수많은 실핀과 속눈썹의 잔해들이 떠오른다.
2000 년대 후반을 넘어서면서부터 '커플룩'은 더 자유롭게 더 세련되게 진화한 거 같다.
굳이 똑같지 않더라도 비슷한 계열의 색상이나 패턴을 상하로 절묘하게 어우러지는 'look' 혹은 바지와 치마색만 통일한다던지 모자나 신발만 깔맞춤 한다던지 등의 형식으로 근사하게 나타나는커플들을 보는 게 정말 즐거웠다.
예쁜 커플들 보면서 진짜 힐링이 많이 되었다.
게다가 인천공항 미용실에서는 '신부 머리 감기 및 손질과 화장'이라는 명목으로 신부들을 유혹했다.
틀어 올린 머리를 감겨주며 자연스럽게 드라이해 주고, 부담스러운 속눈썹도 아프지 않게 제거해 주었다.
신부화장도 캐주얼복에 어울리게 'natural version'으로....
이 또한 주말마다의 미용실 풍경이었고, 넘쳐나는 신부들로 미용실은 몸살을 앓을 정도였다.
한 가지 더!!
신혼여행객이 넘쳐나던 오래된 과거 어느 주말 저녁,
나는 동료 승무원들과 crew bus를 타고 비행을 위해 공항을 향하여 올림픽 대로를 달리고 있었다.
그 당시 우리 'crew bus' 주변으로
온통 화려한 치장을 한 '웨딩카' 수십-수백 대가 양쪽으로
공항을 향하여 힘차게 달리고 있었다.
모두들 형형색색 나름의 개성을 살려, 꾸민 '웨딩카'의 수많은 그림같은 행렬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
(한국인이지만, 나도 그런 장면을 쉽게 접할 기회는 없었으므로..)
그때도 동료 태국 승무원들이 도대체 이 화려한 차들의 정체가 뭐냐?"차는 왜 굳이 꾸미냐?" 등등...놀란 눈으로 물어보던 게 생각난다.
ㅎㅎ
'퇴직'을 했으니 다시 보기 어려운 '풍경'이기도 하고..요새 '결혼'도 많이 줄었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