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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밍줌마 Apr 23. 2023

1시간 반 줄서서 사온 '베이글'

이렇게 먹는거에 진심이라고??(2편)

앞글 1편을 읽고 오셨나요^^?




요사이, 이상하게 수면패턴이 변해버려, 새벽 2시는 넘어야 잠이 온다.(갱년기 증상인가?)

밤 12시면 자려고 아무리 아무리 노력해도 잠이 안 오고, 대신 새벽잠은 어찌 그리도 달콤함의 극치인지..


 어제 애들에게 약속한 맛있는 베이글 구입을 위해, 사전 계획을 짜보았다.

아침 8시 반 오픈인데, 시그니처 베이글을 구입하려면, 아침 7시 정도부터, 줄을 서야 겨우 살 수 있단다.

일요일의 구입전쟁은 더 치열하며, 그날그날 상황에 따라 변하니.. 구입가능여부는 guarantee 불가!!


 이런저런 잡생각으로 잠이 들었고, 겨우 눈을 떠보니, 7시다.

그리 이른 시각은 아니지만, 요새 새벽잠을 즐기던 나에게는 꽤 이른 시각이었다.

 

"갈까? 말까?.. 곰곰 생각해 보니 그 정도 환상적인 맛은 아닌 거 같은데...굳이 갈 필요가 있을까?

(속마음: 옴청 가기 싫다! 결국 대충 다 아는 맛 아닐까?)

 그냥 집에 있는 음식이나 먹을까?" 등등


 아냐! 그래도 애들이 기대하고 있을 텐데.. 물론, 평일은 구입하기 쉽다지만.. 그래도 식구 모두

둘러앉아 따뜻하게 먹기엔 일요일이 '딱'이지!  아! 그런데 너무너무 졸리다... 진정 더더 자고 싶다..

설마 일요일 이 아침에 줄이 엄청 길기야 하겠어? " 라며..

오만가지 생각으로 저울질하다 보니,, 어느새 8시 10분 이다.

불현듯 어제 두 딸의 행복해하던 얼굴이 떠올라, 이불을 박차고 일어나, 그곳으로 향했다.


오 마이 갓!!!

네네.. 가게는 오픈전인데도, 이미 50여 명의 긴 줄이 형성되어 있었다.

자다가 비몽사몽 끌려 나온듯한, 젊은 청춘남녀,, 아주 가끔 중년커플도 있었다. 생각보다 긴줄에 다시 집으로 돌아가고 싶은 열망이 샘솟았다. 대충 시금치 된장국에 냉장고에 있는 살집 두툼한 고등어조림만 먹어도 충분히 맛있는 breakfast 가 될 것만 같았다.


그러나, 어느새 나는 묘한 경쟁심이 이글거리며, 끝내 51번째정도 줄을 서고 있었다.

"그래, 너 시그니처 베이글!! 어디 맛 좀 보자. 도대체 네가 뭐길래 이 아줌마 쌩고생 시키는 건지.. 내가 제대로 맛 좀 봐줄게!!"라며..


이후로도, 사람들은 계속 모여들었고, 내 뒤로 다시 50여 명의 긴줄이 다시 형성되었다.

기다리는 동안, 검색을 통해 '플레인 메이글''버터솔트 베이글''갈릭 퐁당 베이글'이 시그니처임을 알아냈고

부디 살 수 있기만을 간절히 간절히 빌었다.


30-40여분 정도 지나, 직원 한 명이 나오더니 지금부터 사시는 분은 원하는 메뉴를 못 살 수 있다며.. 이해바란 다고 외친다. (헐... 이 무슨 개소리인가?)

아줌마 파워를 이용하여 내가 물었다. "이렇게 손님이 많으면 미리 많이 만들어야지, 이렇게 기다리게 하고   

너무 하시네요!"라고 하니, 조용히 안내 표지판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그곳에는 "이곳 베이글은  '통나무 화덕'에 수작업으로 일일이 구워내므로, 대량생산이 어렵습니다.

부디 이해 바랍니다."라고 적혀 있었다.

(오 마이갓... AGAIN!!)


당시 내 앞에는 30대 젊은 커플이 서있었다. 둘이 나란히 서있으니, 당연히 일행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갑자기 여인이 남자를 다소 노려보며 말했다.

"저기 줄 좀 제대로 서주세요. 왜 계속 내 옆에 서시나요? 제뒤에 잘 서주세요!"란다.

이에 당황한 나는 뒤로 물러서며, 공간을 급히 만들어 주었다.

내가 너무 바짝 서버려서, 그 남자가 옆에 삐져나온 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그 남자는 여전히 애매하게 그 자리를 고수하고 있었다.

뭐 틀린 말은 아니지만, 남자의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으니 그 여인의 말을 따르고 싶진 않은 듯했다.


뭐.. 그렇게 줄은 조금씩 빠지는 듯했으나, 아침 차가운 바람도 계속 불어오고, 도로를 빠르게 달리는 자동차 소음 /매연등으로 얼굴도 따갑고, 슬슬 짜증이 올라왔다.

아직도 20여 명이 앞에 있고, 원하는 메뉴를 구입할 확률도 없어 보여, 그냥 집으로 가려고 맘먹었다.

그런데 내 뒤에 있던 커플이 "와 이제 얼마 안 남았다! 라며  예쁜 긍정의 언어를 내뱉는 게 아닌가? "

"아! 똑같은 상황에서도 나는 부정적인 생각만 하고 있었구나!

그래! 여태 기다리고 지금 돌아가는 건 좀 억울하다!"며, 다시 자리를 보존하고 섰다.

그런데 어떤 노년의 커플이 눈을 동그랗게 뜨시고 매우 놀란 표정으로  "도대체 아침부터 이 무슨 난리냐?"라고 중얼거리며 지나가신다.

그리고는 듣지 말아야 할 소리를 듣고 말았다.


"뭐 배급받는 줄인가 봐!!" 앜................



그리고, 다시 내 앞에 줄 삐딱하게 섰던 남자가 말한다.

"저랑 자리 바꾸셔요! 제 앞에 서셔도 돼요! "라고..

그리고 앞의 여자가 이어폰을 끼고 있음을 확인하곤, 내게 속삭인다.

"아니, 제가 새치기한 것도 아니고, 옆으로 서도 되지.. 뭘 이런 거 가지고 아침부터 재수없게 말하는지 모르겠어요! 또라이 같으니라고..". 라며 손가락을 빙빙 돌리고 야유의 제스처를 했다.

"이런 여자랑 엮이고 싶지 않으니, 그냥 제 앞에 서세요!"라며 양보를 한다.

(참 다양한 경험을 해보는 줄 서기 현장 이로세!! ㅎㅎ)


정확히 1시간 10분이 흐른 후, 내 주문 차례가 되었다.

BUT!!!


오매불망.. 시그니처 메뉴 3가지는 품절이었고, 그냥저냥 맛이 예상되는 그러저러한 메뉴들만 있었다.

그저 갓 화덕에 구운 탓에.. 따뜻한 맛에, 배고픈김에 먹을 수 있을 것만 같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오랜 기다림이 억울하기라도 한 듯, 마구마구 보복소비처럼 베이글을 주문해대고 있었다.


 아쉬움을 뒤로하고, 대충 '시금치 베이글''크렌베리 베이글''아이스 라테"를 시키니 또 20여분을 밖에서 기다리란다. 뜨거운 화가 다시 올라오며, "아뇨 됐어요! 그냥 갈게요!"라고 하고 싶었으나, 조용히 그냥 밖으로 나왔다. "죽어도 이런 짓은 다시 안 한다!"라고 속으로 외치며, 그 주변을 20여분 뱅뱅  돌고 돌다가...

베이글을 들고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어느새 10시를 넘었다.

"얘들아 일어나! 베이글 사 왔어! "라는 말에 두 딸이 용수철처럼 튀어나온다.

헐.. 평소 그리 안 일어나더니,, '베이글'의 파워가 이리 큰 것이었던가? ㅎㅎㅎ


"시그니처 베이글은 결국 못 샀다!  근데 나 도대체 새벽 댓바람부터 뭔 짓을 한 건지 모르겠다!

기분이 굉장히 별로다! 너네도 엄마를 위해 이렇게까지 할 수 있니?"라며 계속 투정질을 했다.


큰딸은..

"엄마! 이거 시그니처 아니래도 따뜻하니 맛있다. 난 솔직히 엄마가 진짜 아침부터 갈 줄 몰랐어!

엄마 진짜 고맙고 감동이야!"라고 했고..

둘째 딸은

"엄마 다음 주에는 내가 새벽에 가서 꼭 사 올게!" 라며 위로를 해주니 조금 누그러지긴 했다.


배불리 먹여놨더니,

두 딸은 모두 미팅이 있다/ 약속이 있다며 '꽃단장'하고 '룰루랄라' 나갈 준비를 하고 있다.

젊음으로도 이쁠나이지만, 꾸며놓이니, 샤랄라 복사꽃처럼  싱그럽다.


"얘들아! 평소에도 좀 일찍일어나서 이뿌게 좀 꾸미고다녀!

그래야, 생기도 돋고,외출할 맛도 나고 삶의질도 올라가는거야!" 라고 하니

"이응이응" "오키오키" 건성건성 답한다.

 


그리고는

"차밍작가님! 오늘 하실 말씀 많으신 거 같은데.. 저희들은 사라져 드리겠사오니..

브런치에 마음껏 풀어내셔요!" 라며 '멜롱' 사라져 버린다.ㅎㅎ


"뭐야! 어제까지만 해도 인생 재미없다! 퇴직한  시간부자 엄마가 제일 부럽다! 요즘 젊은이는 힘들다며

위로해 달라고 아우성치더니만,, 지극정성 '카페라테'와 베이글에 기분 좋아진 거야?"


"그럼요!! 엄마 사랑해!"라며 엘리베이터 문을 냉큼 닫고 있었다.


"그려 그려.. 그럼 된 거지 뭐... 그렇게 이렇게..업다운하며 사는 거지 뭐!... "


그리고 맘속으로 조용히 외쳤다.


"굳이 이렇게까지 고생하며, 먹는건 아니였다!"

"단, 딸이 차후 사온다면, 굳이 마다하진 않겠다!"


......먹부림 이제 끄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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