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앞은 서귀포 유명한 삼메봉 외돌괴를 필두로 드넓은 태평양이요.. 학교 뒤로는 드높은 한라산이었다.
풍광만큼은죽여주는 곳에 도도히 서있는 알흠다운 여고였다!
교장선생님도, 결혼한 적 한 번도 없으신, 처녀교장 여선생님!
"나는 아이들과 결혼한 거다"라고 주장하시며 오로지 학생들의 성적을 높여, 제주도에서 가장 대학 잘 보내는학교'를 만들겠다는 의지로 활활 타오르시는 분이셨다.
여고생들의 로망 '교생 선생님'마저 오로지 '여자'만 허락하셨다.
남자 선생님도 '총각'은 웬만하면 사양한다고 교육청에 부탁하신 탓에, 우리 학교에는 젊은 남자 보기가매우 매우 어려웠다.
주변에 남자학교/남학생도 없고, 학교엔 나이 든 칙칙한 남자선생님만 있고, 오로지 할게 공부밖에 없는 상황 속에서, 소녀들의 한숨은 늘어갔다.
여적여(여자의 적은 여자요!)
노처녀 교장 할머니의 질투요 모략이라며
날마다 욕하고 미워하기 바빴다.
그러던 중, 고2 때 전근오신 남자 영어선생님은 꽤나 매력적이었다.
총각선생님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물론, 그런 거 따윈 그리 중요하지 않았다)
열정 가득한 눈빛, 유명 인강강사 못지않은 강의실력, 패션감각, 세련된 유머... 등등
특별히 분필을 들고 있는 하얀 손에 나란 소녀는 금세 사랑에 빠져버렸다.
하.. 그런데, 보는 눈은 비슷하다고,, 여기저기서 경쟁자들이 꽤 보이는 것이었다.
대놓고, 지나가는 선생님 성함을 불러 멈춰 세운뒤.. "선생님 너무 사랑해요! 진짜 좋아해요!"라고 외치는 막가파 학생도 있었고, 속으로만 끙끙 앓으며, 사랑의 고통을 날마다 호소하는 소심형 학생도 있었다.
혹은 나처럼 아무 말도 안 하고, 겉으로는 전혀 관심 없는척하며, 애간장 태우는 찌질이도 있었다.
교무실 영어 선생님 책상 위에는 날마다 바뀌는 꽃다발과 각종 초콜릿, 빵, 캔디, 사랑의 엽서등으로 가득했다.
경쟁이 과열되다 보니, 방금 어떤 여학생이 꽂은 꽃을 꺼내 휴지통에 버리고 새로 사 온 본인의 꽃으로 바꿔놓는 무례한 학생마저 있었다. 날마다 화병의 몰래 꽃 바꾸기 경쟁을 벌이다가, 두학생이 마주쳤고, 머리끄덩이 잡고 싸웠다는 흉흉한 소문마저 들려왔다.
그 마저도 부러웠다.
"난 벙어리 냉가슴으로 '사랑'이 용솟음쳐도 표현도 못하고 고통스러운데, 너희는 그렇게라도 표현하고 있으니, 적어도 선생님이 알아주실 테고, 얼마나 좋아?"라고 속앓이만 해댔다.
오히려, 자존심만 가득해서.
"도대체 애들 왜 난리야? 저 정도 남자 너무 흔한 스타일 아니니? 얼마나 남자가 없으면 유부남 선생님한테 가지가지한다!" 라며 관심 없는 척하기에만 바쁘고 바빴다.
그러던, 어느 날, 선생님의 '숙직'날짜를 친구들이 비밀스럽게 속닥대는 것을 듣게 되었다.
보통, 야간자율학습이 밤 9시까지인데, 혹시 막차가 끊기는 밤 11시까지 공부하기를 원하는 학생들은 계속해서 할 수가 있었다. 이때는 숙직 담당 선생님이 교실을 돌며, 지도도 하고 학생들의 안전 귀가를 도와주는 게 임무였다. 그러니 선생님을 좀 더 가까이 은밀하게(?) 영접할 수 있는 좋은 기회인 거였다.
인기 많은 선생님의 '숙직'날은 입소문을 통해 계속 번지더니, 그날따라 평소보다 꽤 많은 학생이 남아있었다. 시험기간도 아닌지라 한반에 3-4명 정도 남을 거라 예상했는데,
우리 반도 10명 가까이 남아있었다.
진정 경쟁자가 너무 많았다.
게다가 같은 동네 살아서 같은 막차를 타는, 평소에는 9시 되자마자 책가방 싸고 뛰쳐나가던 동네친구마저 남아있는 거였다. (하! 얘는 또 어떻게 따돌리지?)
"아! 진정 선생님과 단둘이 대화 좀 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라며 고민은 시작되었고, 기발한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그렇다! 막차를 일부러 놓치는 거다!"
10시 50분 정도 되니 친구들이 서서히 가방을 챙기고 11시 막차를 타기 위해 이동하기 시작했다.
일단 나도 동네친구와 버스정거장으로 향하는 척하다가, 두고 온 게 있다며 냅다 교실을 향하여 달리기 시작했다.
"얏호!! 드디어 선생님과 둘이 있을 수 있겠다! 선생님은 우리 집까지 날 데려다주셔야만 할 거고, 자연스럽게 난 많은 대화를 할수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