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차밍줌마 Dec 14. 2022

제주 예식장엔 '부조함'이 없다.

제주 겹부조 이야기

제주에서 거리를 지나다보면,  ' 지나친 허례허식 '겹부조'를 근절하자' 라는 현수막을 종종 본다.


'겹부조'란, 결혼과 장례등 큰일을 마주했을때 본인과 친분이 있는 다른 가족들 모두에게 동시에 축의금을 내는 제주 지역 제도이다.


예를들어, 이모 딸 (즉 나의 외사촌)이 결혼을 한다고 하면, 나는 이모와 외사촌  즉, 두명에게 '부조'를 해야 하는 것이다.  


만약 이모부가 돌아가신경우, 그 자녀가 3명이라 하면, 나는 이모와  외사촌 3명 모두 4명에게 부조를 해야하니, 큰일을 치룰때마다, 꽤 부담이 되는게 사실이다.

   


원래 '겹부조'란  과거 '섬'이라는 제주의 특수한 상황 때문에 이웃 주민등 공동체의 도움으로 '혼례' '장례식'등 큰일을 치루던 것에서 유래한 것인데, 해를 거듭할수록, 그 액수가 커지면서 모두의 고민거리로 등장하였다. 한편으로는, 집안에 큰일 한번 치루고 나니, 오히려 거금이 생겼다! 라는 우스개 같지만, 사실인 경우가 꽤 있다.


일을 치루는 입장에서는 부담없지만, 평소에 끊임없이 '부조의 늪'에서 허우적 대야 하는것이다.

친척이 아닌, 이웃 주민일지라도, 우리 부모님은 '아버지 몫'으로 그집 남편에게 '어머니 몫'으로 그집 아내에게 부조를 쥐어준다. 즉 두사람이 각각 그집에 부조를 해야한다.


집집마다, 자식숫자에 따른 불공정이 예상될때는, 액수를 2-3배정도로 올려 되갚는다.

(예를 들어 우리집은 내가 무남독녀인데, 상대방은 3남매라면  똑같은 액수의 부조는 적절하지 않으니, 부조를 2-3배 정도 올려 갚는 무언의 규율 같은거다).

 


 이렇듯 각각 구성원의 부조 몫이 다르므로, 예식장에 있는 부조함에 봉투가 섞이면 절대  절대 안된다.


그래서 제주 예식장에는 '부조함'이 무용지물이며, 하객들은 각자 원하는 대상을 만나, 직접 봉투를 손에 쥐어준다. 아버님은 주머니가 많은 양복을 입고 그안에 수시로 비워가며 넣으시고, 어머님은 예쁜 핸드백을 들고 그안에 넣으신다. 상황상 봉투받기가 불편한, 신랑 신부는 '부신랑''부신부'가 대신하여 '부조'를 받는다.


(여기서 잠깐...!!!

'부신랑''부신부' 제도 또한 제주의 특별한 '결혼양식'인데, '혼사'를 일주일정도 거창하게 치루던 과거 풍습때문에 생겨났다. 바쁜 신랑 신부를 대신하여, 온갖 잡다한 심부름등을 해야 하고 '부조금' 관리도 해야 하므로 진짜 믿을수 있는 사람을 선택해야 하는게 매우 중요하다. 가끔씩 '부신랑' 이나 '부신부'가 부조금 들고 도망갔다! 라는 소문을 들은적이  나도 꽤 있었다.)


이렇게 제주식 부조문화만 알고 지냈던 내가 '육지남자'와 결혼을 했고, 10 여년전, 시어머니 장례를 서울에서 치루게 되었다.  제주 풍습에 따라, 열심히 부조를 하였던 내게, 당연히 많은 분들의 부조가 들어왔다. 몇몇제주 분들은 , 눈치껏 봉투를 직접 내게 주시기도 했지만, 많은 내몫의 봉투가 공통 부조함에도 들어갔다.


장례를 치루고 '부조함' 정리를 하는데, 이돈으로 장례식 비용을 제외하고 나머지는 자식들이 공평히 분배한다고 했다.  이게 육지식 '부조정리법'이라 하였다.

하지만, 내 생각은 ,부조라는게 평소 본인의 '인사치레''혹은 '성의 표현' 한 양에 따라 돌아오는건데, 시댁 4남매 숫자로 똑같이 나누는건 합리적이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의 경우,  배우자 포함 각 8명의 부조 액수는 그만큼 '천차만별'이었다.


모두 모인자리에서, 조심스레 나의 의견을 제시했고, 살짝 당황해하던 가족들도 모두 흔쾌히 각각의 몫으로 분리하는것에 동의하였다. 우리는 부조함의 봉투를 꺼내, 이름별로 분리작업을 마쳤다. 당연히 나도 내몫의 봉투마다 받은 액수를 적어 잘 보관하였다. 차후, 또다시 되갚아야할 하나의 작은 빚이므로..


제 아무리 현수막을 걸고,TV 홍보를 한다해도, 제주의 '겹부조'가 사라지긴 어려울 것이다.

오랜기간, 품앗이로 이어져온 오랜 전통이 어떻게 하루 아침에 끊어질수 있겠는가?

그동안, 투자한게 얼마인데.. 꼭 돌려 받아야 하는데...  말이다. ㅎㅎ

 



작가의 이전글 '옛날 스튜어디스'에서 '차밍줌마'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