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거인의 그림자 끝에서 내 노래가 완성되었지요-브람스.1

위대한 예술은 언제나 결핍에서 태어난다.

by 지나김


" 이 글은 <<위대한 열등감>> 을 주제로 진행 중인 작가의 인문 교양 시리즈 일부입니다."


<<위대한 열등감>> - 지나 김 예술감독

요하네스 브람스-"거인의 그림자 끝에서, 내 노래가 완성되었다"

비교의 무게를 품은 채 자신만의 길을 노래하다




in His grace


카스파르 다비드 프리드리히의 안개 바다 위의 방랑자


절벽 끝에 한 남자가 서 있다. 안개를 향해 선 그의 뒷모습만 보인다.
발아래로는 산등성이들이 흐릿하게 펼쳐지고, 그 너머는 온통 뿌연 안개로 가득하다.
정상에 올랐지만, 앞으로 어디로 가야 할지 알 수 없는 순간.

나아갈 수도, 돌아갈 수도 없는 그곳에서 그는 멈춰 서 있다.


브람스도, 한때 그 안개 앞에 서서—더는 나아가지 못했을 것이다.
그 앞에는 ‘베토벤’이라는 이름이 늘 놓여 있었다.

가장 존경하는 사람이자 목표였고, 동시에 넘을 수 없는 산이었다.

그 이름 아래에서, 그는 잠시 멈춰 섰다. 그러나 멈춤은 그에게 포기의 다른 말이 아니었다.



거장의 이름 아래 멈춰 있던 한 사람

무려 20년. 천재적인 재능을 지닌 한 남자가 교향곡 한 곡을 완성하기까지 걸린 시간입니다.
요하네스 브람스, 베토벤의 뒤를 잇는 작곡가로 불리던 남자.

그가 마침내 교향곡 1번을 세상에 내놓았을 때, 그것은 단순한 데뷔작이 아니었습니다. 무언가를 ‘완성했다’기

보다는, 겨우 시작할 수 있었다는 쪽에 가까웠지요. 브람스에게 음악은 언제나 경쟁이 아닌 고백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고백조차도, 거인의 그림자 아래에서는 쉽지 않았습니다.


1824년, 베토벤 교향곡 9번이 완성된 뒤 음악계는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거대한 유산은 시대를 넘어 여전히 음악계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었기에, 그토록 위대한 선배의 그림자는 후배들의 어깨를 무겁게 했습니다.

그리고 그 한가운데, 청년 브람스가 있었습니다. 베토벤을 향한 존경심을 넘어 때로 두려웠던 그.

그래서 더욱 베토벤의 모든 것을 배우고자 애썼던 음악가였지요. 하지만, 스승의 위대함을 흠모하면 할수록 자신은 더욱 작아져만 갑니다.


그래서였을까요. 초기의 걸작들 — 독일 레퀴엠, 피아노 소나타, 현악 사중주 — 어디서든 베토벤의 그림자가 스민 진지함이 감돕니다. 형식, 구도, 깊이까지. 그의 음악에는 베토벤의 진지함이 자연스럽게 배어 있었습니다.


진지함 속의 미소 – 완벽주의자의 숨 고르기


그는 언제나 베토벤을 의식했습니다. 한 음을 쓸 때마다, 그 이름이 그림자처럼 따라다니곤 했으니까요.


“언제나 거대한 존재가 뒤에서 행진하는 소리를 들으며
살아가는 저의 기분이 어떨지 모르실 겁니다.”

— 브람스, 친구 헤르만 레비에게 보낸 편지 중


브람스가 레비에게 이 편지를 썼던 때는 마흔셋 즈음이었습니다. 언뜻 이제 막 활동을 시작한 청년 음악가의 고백처럼 들리지만, 이때는 브람스가 교향곡을 쓰겠다고 결심한 지 20년, 음악을 시작한 지는 이미 30년이 넘은 때였지요. 그때는 이미 시대의 거장 슈만이 인정한 후계자이자, 당대 유력한 피아니스트였고 또 저명한 작곡가였습니다. 모든 것을 이룬 사람처럼 보였지만, 그의 마음속에는 여전히 끝나지 않은 싸움이 있었습니다.

자신의 서재에 있는 브람스, 작가 미상. 베토벤으로 보이는 흉상이 그의 어깨 위를 보고 바라보고 있다.


완벽의 벽 앞에서


그를 둘러싼 수식어는 화려했지만, 브람스의 마음속은 여전히 시작 선 앞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선배 작곡가들은 베이스 라인의 테마를 철저히 유지했지요. 작품의 진정한 테마 말입니다.
베토벤의 작품은 멜로디, 화음, 리듬이 너무나도 아름답게 변주된단 말입니다. 그런데 우리 같은 후대 작곡가들은 뭔가 테마에 근거하는 듯하지만, 아주 소심하고 자유롭지도 않고, 그렇다고 새로운 것을 창작하는 것도 아니지요. 오히려 거추장스러운 변주만 만들어내고, 결국엔 테마를 알아볼 수 없게 되니까요.”


친구 요아힘에게 쓴 편지에 담긴, 베토벤을 향한 브람스의 속내입니다.
이 편지를 쓴 해는 1856년. 브람스가 처음으로 교향곡을 써보겠다고 마음먹은 후, 약 2년쯤 지난 시점이었습니다. 그는 베토벤의 악보를 뜯어보며, 한 음 한 음에 숨은 원리를 파고들었습니다. 감탄하고, 또 감탄하며, 그는 주저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누구보다 깊이 이해했기에, 누구보다 두려웠던 이름. 브람스는 그 완벽함의 벽 앞에서 한동안 숨을 고르며 서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브람스를 베토벤의 ‘후계자’라 불렀지만, 사실 그는 거장의 유산을 계승하려 했던 사람이 아니라, 그 유산 앞에서 때때로 한 없이 작아졌던 예술가였지요. 하지만 그는, 음악이 무거움만으로 채워지는 것은 아니란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였을까요. 그는 한 걸음 물러서, 웃음이 깃든 또 다른 길을 택합니다.



브람스의 자필 악보 일부, 《춤을 위한 교창가》(Op.31, No.1).

춤을 위한 교대노래(Wechsellied zum Tanze)》Op. 31, No. 1의 자필 악보 일부. 브람스의 후원자이자 음악학자였던 테오도어 아베-라를르망의 유품 속에서 발견되었으며, 2010년부터 독일 함부르크 주립 및 대학 도서관(Staats- und Universitätsbibliothek Hamburg)에 소장되어 있다.



그런 시기에도 브람스는 《춤을 위한 교창곡》(Wechsellied zum Tanze, Op. 31)을 작곡합니다.

밝고 경쾌한 리듬, 민요풍의 가사, 반복되는 구조 속에서 느껴지는 익살과 따뜻함. 거장의 무게에 짓눌리던 청년은, 그 곡 안에서 만큼은 사람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웃을 수 있었습니다. 교향곡의 깊은 숲을 걷기 전, 그는 잠시 그렇게 숨을 돌리고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 미소는 오래 머물지 않았습니다. 완벽의 그림자와 마주할 시간, 이제 곧 다가오고 있었으니까요.



“스무 해의 망설임 끝에, 드디어 교향곡을 완성하다.” -

완벽주의자의 그림자 아래에서 피어난 첫 교향곡의 이야기

다음 편에서 이어집니다.


" 이 글은 <<위대한 열등감>>을 주제로 진행 중인 작가의 인문 교양 시리즈 일부입니다."


to His glory





지나 김 | 코리안팝스오케스트라 예술감독

예술을 읽고 지식으로 풀어냅니다.
클래식과 인문, 감성과 이성을 잇는 언어로 오늘의 삶을 해석합니다.

도서 <<K-POP에서 만난 클래식 예술 살롱>>저자

주간경향-<<일상 속 심포니>> 칼럼니스트


#브람스 #비교 #열등감 #완벽주의 #위대한열등감 #인문교양 #클래식 #음악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