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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나김 Sep 05. 2022

불혹에 겪은 사춘기의 불균형

 20220905고린도전서 지혜 있는 줄로 생각하거든 어리석은 자가 되자

20220905 고린도전서 3:16-4:5


우리에겐 여러 종류의 연령이 있다.

세월이 지나면 절로 주어지는 나이가 있다.

어른이든 아이든 정신적인 성숙도에 따라 정신연령이 주어지기도 한다.  

그리고 간혹 건강검진 혹은 간단한 신체검사를 통해 개인별 건강 수준에 따라 주어지는 ‘신체나이’를 보여주기도 한다.

영양상태, 운동 등에 의해 측청 되는 신체나이는 흔히 어릴수록 훌륭하다 여겨지니 그렇다 하더라도,

정신연령이 실제 나이보다 어릴 때 그는 미성숙한 사람이라 여겨진다.


어릴 적부터 ‘정신’이란 것에 양식이 되는 책 읽기나 지식 쌓기를 좋아하는 편이라,

(이 또한 나만의 착각인지는 모르겠으나) 스스로 여기기에 정신 연령은 차곡차곡 제 나이보다는 비교적 잘 쌓아간 듯하다.


크리스천인 내게는 영적 성숙도를 측정하는 '영적 나이'란 것도 있는 듯하다.

영적 나이의 양식은 정신 연령이 요구하는 것과는 다르다.

지식과 사고를 넘는 더욱 고차원적인 것을 요구하는데;

즉, 성경 말씀이 단순한 지혜의 언어 혹은 철학서가 아닌

그야말로 읽고 삼켜야 하는 마음의 양식이 되어야 한다.

나의 영과 성령이 기도로 소통하며 소통한 바를 삶에 전적으로 적용해야

비로소 '나이'라는 것이 조금씩 주어진다.


최근 나는 마치 영적 사춘기에 빠진 듯 방황했다.

나름 꽤 오랜 시간 크리스천으로서 살아오며 축척된 성경적 지식이 많은 것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적지는 않게 느꼈나 보다.

매일 기도하며 축적한 기도의 양도 부족하지 않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막상 글로 쓰며 보니 이 역시 오만방자한 생각이었음에 다소 아니 엄청 민망하고 부끄럽기는 하다.


그럼에도 하나님의 뜻을 여전히 알 수 없다는 생각,

심지어는 ‘하나님은 언제나 선하심’이 믿어지지 않는 지경까지 가버렸다.


그저 참고 견디는 것을 미덕처럼 배우고 익혀온 것 또한 더 이상 합리적으로 보이지 않았다.

금방 효과가 나타날 것 같은 각종 세상 지식과 방법론이 보다 합리적이고 스마트한 방법으로 여겨지며,

나의 가치관이 통째로 흔들리는 듯했다.

마치 아이도 아니고 어른도 아닌 사춘기 청년이 혼돈의 시간을 지나는 것처럼 그러했다.


그런데 오늘 내게 주신 말씀은 마치 이런 나의 방황을 아시는 듯 어설픈 지식은 스스로 하여금 자신의 꾀에 빠지게 하는 ‘헛것’에 불과하다 말씀하신다.   


아무도 자신을 속이지 말라. 너희 중에 누구든지 이 세상에서 지혜 있는 줄로 생각하거든 어리석은 자가 돼라. 그리하여야 지혜로운 자가 되리라. 이 세상 지혜는 하나님께 어리석은 것이니 기록된 바 하나님은 지혜 있는 자들로 하여금 자기 꾀에 빠지게 하시는 이라 하였고, 또 주께서 지혜 있는 자들의 생각을 헛것으로 아신다 하셨느니라 (고린도전서 3:18-20)


잠시 방황한 시간에서 헤어 나와 나의 우스꽝스러운 교만한 모습을 보게 되어 참 다행이다.

짧고도 짧은 지식수준으로 인생을 통으로 재해석하며 고뇌했던 시간이야말로

자기 꾀에 빠졌던 헛된 시간이 아니고 뭐였나 싶다.


나의 기도 그리고 예수님 말씀 따라 살며 발버둥 치고 애썼던 그 시간들이 빚어낸 지금의 결과가

세상적 기준으로 모두 훌륭하다고 얘기할 수는 없다. 그게 현실이다.


그러나 “다만 나를 심판하실 이는 주이시므로 때가 이르기 전 곧 주께서 오시기까지 아무것도 판단하지 말자. 하나님께서 어둠에 감추인 것들을 드러내고 마음의 뜻을 나타내시리니 그때에 나에게 하나님으로부터 칭찬이 있으리라” (고린도전서 4:4-5)


다시 심플해지자. 얕은 수준의 복잡한 생각과 사상 모두 다 걷어버리고

다시 지혜의 근원이자 선하신 하나님이 내게 주시는 약속을 바라보며 다시 가벼운 마음으로 걸어 나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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