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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나김 Sep 26. 2022

그저 예절이 아닌 창조질서, 행복한 삶의 조건이 된다.

20220926 고린도전서 14:26-40


하나님이 만드신 세계와 말씀 안에는 창조질서가 있다.

창조질서가 깨어진다는 것은 삶에 반드시 혼란이 야기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부모는 자녀가 노엽지 않게 사랑해야 하고(에베소서 6:3)

자녀는 조건 없이 부모를 공경해야 한다.(신명기 5:16)


그런데 자녀가 노엽지 않도록 완벽하게 자녀를 사랑할 수 있는 부모도

조건 없이 부모를 공경할 수 있는 자녀도 없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불가능한 것을 요구하는 짓궂고 못된 하나님이실까?




그렇지 않다.

에덴동산에서 하나님처럼 될 수 있다는 뱀의 속삭임에

인간에게는 높아지려는 죄성이 들어왔고

새로이 형성된 이 교만한 자아는

우리가 마주하는 모든 인간관계에서 나를 먼저 내세우기를 지극히 자연스럽게 만들어버렸다.


아이를 훈육할 때의 나를 곰곰이 생각해보면

"덕을 위해 행하는 것"보다는 내 말을 듣지 않는 아이에 대한 분풀이를 하거나

중요한 나 자신을 위한 시간에 아이가 침범하는 것이 짜증남을 훈육으로 포장해서 할 때가 더 많음을 안다.

그래서 육아의 신이라 불리는 오은영 박사도 훈육은 덕을 위해 하는 것이라 늘 강조하나 보다.


부모 공경에 대한 문제도 동일하다.

부모님 앞에서 내 생각을 당차게 힘 있게 말할 수 있는 능력은 정말 중요하다.

그리고 하나님은 내게 그렇게 말할 수 있는 지성과 자유의지를 허락하셨다.


그러나 그런 지성과 자유의지를 발휘함에 있어서 창조질서 따위는 내던져버리고

자유의지만 강조한 발언을 해대곤 한다.  

공경은 사라지고 오직 나, 내 생각, 내 자유만 주장하곤 한다.

그렇게 되는 순간 질서도 깨지고 관계도 깨져버린다.

내가 나를 주장했던 이유는 덕을 세우기 위함이 아닌

내가 옳다는 것을 입증하는 것에 점점 초점이 맞춰진다. 그럴수록 자가당착에 빠질 확률도 높아진다.


마치 어떠한 목표를 세워놓고 절대적으로 목표 달성 자체에만 혈안이 되어있으면

상황에 따라 융통성 있게 목표를 변경해야 할 시점에도 잘못된 목표지점만을 달려가는 미련한 자처럼


사람다운 삶을 살기 위해 나는 기억해야 한다.

"모든 것을 덕을 세우기 위하여" 하라는 말씀을(고린도전서 14:26)

"모든 것을 품위 있고 질서 있게" 하라는 말씀을 (고린도전서 14: 40)

덕을 세운답시고 혈기 품고 침 튀겨가며 발악하는 추하고 모순적인 삶을 살지 말자고 기도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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