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지나김 Sep 18. 2024

악마가 되어줄게 -파가니니

위대한 열등감


악마로 내몰린 질병의 소유자 – 파가니니

악마에게 영혼을 팔았다고?



                      그래. 나를 악마로 몰 테면 몰아봐, 악마와 계약한 예술가의 실력을 보여줄 테니!


니콜로 파가니니의 초상화 속 그의 부드러운 미소와 온화한 표정. 그림 속 그의 편안한 이미지와는 달리 그에게는 악마의 바이올리니스트라는 오명이 늘 함께합니다. 바이올린을 마치 마법의 지팡이처럼 다루며 관객들을 매혹시킨 그의 기교 덕분에 그는 악마에게 영혼을 판 예술가가 되어버렸습니다. 그저 그의 놀라운 실력 때문이었을까? 무엇이 그를 그토록 악마로 내몰았을까요?







"그들은 나를 악마라 불렀다. 내 손가락을 보며, 내 연주를 들으며. 하지만 내가 싸운 것은 악마가 아니라, 내 몸이 견디지 못한 고통이었다."
 — 니콜로 파가니니




"그들은 나를 악마라 불렀다. 내 손가락을 보며, 내 연주를 들으며. 하지만 내가 싸운 것은 악마가 아니라, 내 몸이 견디지 못한 고통이었다."
 — 니콜로 파가니니-



니콜로 파가니니. 그의 이름을 들을 때면 먼저 떠오르는 이미지는 ‘악마의 바이올리니스트’라는 타이틀입니다. 그가 무대에 오르면 사람들은 숨을 죽였고, 그의 손가락이 현을 누를 때마다 전설이 만들어졌습니다. 사람들은 파가니니를 인간의 범주를 넘어선 존재로 여겼습니다. 그는 그저 악기를 연주하는 것이 아니라, 마치 초자연적 존재와 계약을 맺은 듯한 기이한 소리를 만들어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 모든 전설과 오해 뒤에는 숨겨진 진실이 있었습니다. 파가니니가 싸워온 것은 악마가 아니라 그의 신체적 고통이었습니다.


유흥과 방탕에 물든 10대 파가니니

1782년 10월 이탈리아 제노바 태생의 파가니니는 당시 상당수의 음악가처럼 그의 아버지에게 처음 바이올린을 배웁니다. 이는 일찍부터 그의 타고난 재능을 발견하게 된 계기가 되어 그의 아버지는 하루에 10시간씩 혹독한 훈련을 시키기에 이릅니다. 10대에 이미 스승을 능가하는 실력을 갖추게 된 그는 17세가 되었을 때 북 이탈리아 지방에서는 이미 명성을 쌓고 돈도 꽤나 벌게 됩니다.

그러나 너무 어린 나이에 경험한 성공은 그에게 독이 되어 방탕과 도박의 길을 걷게 됩니다. 건강을 해치고 거액의 빚을 지게 되어 결국 연주에 필요한 바이올린마저 잃게 되는 파국에 이르고 맙니다.


은둔 생활이 낳은 괴소문

바이올린까지 팔아버려야 했던 형편 때문이었을까요? 1801여 년 즈음부터 약 3여 년에 기간 동안 그는 자취를 감춰버렸고, 고작 그의 나이 19세던 그는 그의 후원자이기도 했던 어느 귀부인과 토스카나에 있는 그녀의 성에서 함께 지낸다는 소문이 자자했습니다. 이런 그의 은둔 시간은 애인 살해죄로 투옥되었다는 소문을 불러일으키기도 합니다. 하지만 사실은 이 기간에 건강 회복을 기도하면서 하모니서나 중음주법, 스타카토 등의 새로운 주법을 개척하고 있었을 때입니다.

 

고통 속에서 피어난 천재성

실제 파가니니의 손가락은 비정상적으로 길었고, 그의 관절은 유연했습니다. 이 특징은 그에게 놀라운 연주 능력을 부여했지만, 동시에 끊임없는 고통을 안겨주었습니다.

파가니니와 친분이 있던 재판관 게탈디는 다음과 같은 기록을 남기기도 합니다.


“저녁에 그는 전날 트리에스테에서 도착한 마르테치니 박사에게 자신의 왼손을 보여주었습니다. 그의 손으로 할 수 있는 일은 정말로 놀랍습니다. 그는 손가락을 말 그대로 구부리고... 엄지를 왼쪽으로 최대한 펼쳐서 새끼손가락을 감쌀 수 있습니다... 그는 관절 주위에 근육이나 뼈가 없는 것처럼 손을 움직입니다. 마르테치니 박사가 그의 움직임이 무분별한 연습의 결과라고 말했을 때, 파가니니는 격렬히 반박하더군요. 마르테치니 박사는 자신의 의견을 철회하지 않았고, 그 순간 파가니니는 분노하며 소리치기 시작했습니다.

-1824년 베니스에서 파가니니를 만난 라구사노의 재판관 마테오 니콜로 드 게탈디가 쓴 편지의 내용 (수신인 미상)


실제 그의 주치의였던 프란체스코 베나티는 다음과 같은 글을 남깁니다.

"양쪽 어깨의 캡슐 인대의 신장성과 손목에서 전완까지, 손목에서 중수골까지, 그리고 지골 사이를 연결하는 인대의 느슨함: 이런 특징을 가진 사람만이 그와 같은 연주가 가능하다. 그의 손은 평범한 크기지만, 손 구조의 탄력성 덕분에 그 폭을 두 배로 늘릴 수 있다. 파가니니가 되려면 음악적 천재성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좁은 가슴과 인대를 움직일 때 늘릴 수 있는 신체 구조를 가져야만 가능한 일이다."

1831년에 파가니니의 담당의사였던 프란체스코 베나티가 쓴 편지 중


이탈리아 파르마 대학교 정형외과에서 발표한 연구에 따르면, 파가니니는 마르판 증후군이나 엘러스-단로스 증후군과 같은 질병을 앓았을 가능성이 있다고 밝힙니다. 이는 그에게 탁월한 바이올린 연주를 가능하게 한 신체적 특성을 부여했지만, 동시에 그의 삶을 지배한 고통이기도 했습니다.


이 질병은 그의 관절을 유연하게 만들어 그가 바이올린을 더욱 자유롭게 다룰 수 있도록 했지만, 파가니니는 그에 상응하는 질병의 고통 속에서 살았습니다. 그가 손을 움직일 때마다 느꼈을 고통은 그의 연주에 깊이 배어 있었고, 그 고통이 그를 인간의 영역을 넘어선 존재로 보이게 만듭니다.

 

파가니니가 가진 신비로운 외모와 기이한 연주 능력은 그를 단순한 예술가로 남기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은 그를 ‘악마의 바이올리니스트’라 불렀고, 실제로 그가 악마와 계약을 맺었다고 믿었습니다.

"악마가 그의 팔꿈치를 잡고 활을 조종했다고. 악마를 닮은 그 모습을 보면 파가니니는 악마의 후손이 확실해!”

파가니니의 연주가 끝난 뒤, 그의 기이한 외모와 엄청난 기교에 압도되어 이런 이야기를 주고받곤 했습니다. 초자연적 힘이 그의 손을 이끄는 것이 아니었다면 불가능 해 보일만큼 그의 연주는 관객을 압도하곤 했습니다.

하지만, 영리한 파가니니는 이러한 괴소문을 활용해 아주 똑똑한 마케팅 수단으로 활용해 버립니다.  


악마의 등장에 열광했던 유럽의 관객들

사실 파가니니의 악마적 이미지는 당시의 문화적 흐름과 연결되기 때문입니다.

19세기 초 유럽 예술계에서 발표한 흥행 작 중 괴테의 파우스트"와 마이어베어의 "로베르 르 디아블" 같은 작품들은 파가니니를 매우 신비한 악마로 만드는데 아주 큰 역할을 합니다. 당시 유럽 사회에서는 악마와의 계약, 초자연적 능력과 관련된 주제가 큰 관심을 받았고, 이는 문학과 음악, 연극을 통해 널리 퍼지게 됩니다. 1808년에 출판된 괴테의 파우스트는 1819년 무대에 오르며, 인간이 자신의 영혼을 악마 메피스토펠레스와 거래한다는 주제로 대중에게 큰 충격을 줍니다. 초자연적 힘을 빌어 인간의 한계를 넘어서는 무언가를 갈망하는 모습이 당시 대중에게 큰 흥미를 일으켰습니다.

특히, "로베르 르 디아블"은 **오페라 대본가 외젠 스크리브(Eugène Scribe)**와 **제르맹 델라비(Germain Delavigne)**가 대본을 썼으며, 파리 오페라에서 큰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이 오페라의 인기는 당시 프랑스에서 "악마적" 요소가 음악과 문학에서 큰 관심을 끌던 시기와 맞물렸고, 파가니니 같은 예술가들이 악마와 연관된 이미지로 묘사되는 문화적 흐름에도 영향을 미쳤습니다.

오페라의 줄거리는 악마의 아들인 로베르가 선과 악의 사이에서 갈등하며 자신의 운명과 싸우는 이야기입니다.

오페라 로베르 르 디아블은 마녀들과 악마가 등장하는 장면으로 유명했는데, 당시 공연을 위해 파가니니가 파리에 도착했을 때 이러한 대중의 관심과 맞물려 그의 악마적 이미지가 더욱 부각되기도 했습니다



1831년 11월 21일 자코모 마이어베어의 오페라 '로베르 르 디아블'                               아카데미 로열 드 무지크 초연 당시 포스터




괴테의 희곡 파우스트의 초판 이미지




파가니니가 이들과 비슷한 시기에 활동했기에, 그의 기이한 연주 스타일과 신체적 특징은 대중에게 초자연적이고 악마적인 이미지를 가져다 주기에 충분했습니다. 그의 비정상적으로 유연한 손가락과 초자연적인 기교는 그가 악마와 계약을 맺은 것이라는 루머가 자연스럽게 확산됩니다.

이러한 문화적 배경 속에서 파가니니의 음악적 천재성은 파우스트나 로베르 르 디아블의 악마적 이미지와 자연스럽게 연결됩니다. 그러니 영리한 천재 파가니니는 그의 악마적인 이미지를 의도적으로 활용하기로 합니다. 악마와 계약한 예술가라는 소문만큼 대중의 이목을 단숨에 끌 만한 요소는 없을 테니까요.

결국, 19세기 유럽 문화에서 악마와 관련된 이야기는 대중에게 큰 영향을 미쳤고, 파가니니는 그 흐름 속에서 자신의 이미지를 더욱 신비롭고 매력적으로 만들어갔습니다.

이러한 문화적 코드 안에서 파가니니는 때로는 악인(maleficus)으로, 때로는 악마 그 자체로 여겨졌습니다. 괴테의 파우스트 관점에서 보자면, 대중에게 그는 파우스트적이면서도 메피스토펠레스적인 인물로 해석될 수 있다는 의미였습니다.


희곡 파우스트의 속 메피스토펠레스의 실존 인물이 된 파가니니

실제로, 파우스트 1부 (1805)의 인기는 파가니니의 평가에 큰 영향을 미치는데, 이는 당시에 활발히 활동했던 예술가들이 남긴 글에서도 찾아볼 수 있습니다.

하인리히 하이네는 파가니니가 무대에 등장할 때 '사탄이 검은 푸들로 변장해 그를 동반했다'라고 묘사했는데,

이는 괴테의 이야기에서 악마가 개의 모습으로 처음 등장하는 장면을 참조한 것입니다.


1827년 석판화-부활절 휴일 산책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파우스트와 그의 조수 바그너 뒤에 검은 개로 변신한 악마가 따라오고 있다.


다른 평론가들은 파우스트를 언급하면서도 파가니니를 주인공인 파우스트가 아닌 메피스토펠레스에 비유했습니다. 조셉 도르티그는 '그래, 그가 바로 메피스토펠레스다... 나는 그를 보고 그가 바이올린을 연주하는 것을 들었다'라고 썼습니다(도르티그, 1833:247). 루드비히 렐스타브는 '내 평생 동안 이렇게 슬프게 우는 악기를 들어본 적이 없다... 나는 음악에서 그런 소리가 있다는 것을 몰랐다! 그는 말했고, 울었으며, 노래했다!... 그에게는 무언가 악마적인 것이 있다. 괴테의 메피스토가 바이올린을 연주했다면 바로 이런 소리였을 것이다'라고 평합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신체적 고통을 안고 살아가는 한 사람일 뿐이었습니다. 그는 스스로도 편지에서 이렇게 썼습니다.

"사람들은 나를 보고 살인자라고 했지. 내가 다른 음악가를 죽였다고 믿었어. 그들의 상상 속에서 나는 이미 악마와 같은 존재가 되어 있었다."

그의 병약한 몸은 그에게 축복과 저주가 동시에 되었으며, 그는 그로 인해 더욱 고립된 삶을 살 수밖에 없었습니다.


극심한 통증과 극도의 외로움의 선율

파가니니에게 그의 신체적 고통은 삶을 제한하는 족쇄였을지 모르지만, 그는 그 고통을 넘어섰습니다. 그의 연주는 단순한 기교가 아니라, 삶의 고뇌와 절망, 그리고 그 모든 것을 견뎌낸 의지가 담겨 있었습니다. 악마를 넘어 범죄자로 내몰리며 비참한 손가락질을 견뎌야 했지만, 오히려 그는 이러한 대중의 조롱을 이용하며 악마적 예술가로 스스로를 연출합니다.

그의 바이올린 연주는 그의 고통을 그리는 소리가 되어, 사람들은 그의 연주를 들으며 경이로움을 느낄 정도로 매료되었습니다. 그의 진정한 능력은 지극히 고통스러운 신체의 통증과 극도의 외로움을 예술로 그려내는 능력이었습니다.

고통에 갇히기보다 오히려 그 고통을 초월하며, 대중의 오해를 예술적 열정으로 바꾸어 낸 장본입니다.

니콜로 파가니니. 그의 전설은 단순한 '악마적 연주자'라는 타이틀을 넘어 고통 속에서 피어난 한 예술가의 위대한 성취이자, 영원히 기억될 인간 파가니니의 이야기입니다.


https://youtu.be/sgEs8czrktc?si=CfxWHKdvPqCtS6F7

24 Caprices, Op. 1: No. 2 in B Minor · Itzhak Perlman

Paganini: 24 Caprices

 A Warner Classics release,  1972

Violin: Itzhak Perlman

Composer: Niccolò Paganini



<악마가 되기로 결정한 질병의 소유자- 파가니니>에 대한 더 많은 이야기는

<K-POP에서 만난 클래식 예술 살롱>-

최초의 아이돌 리스트와 파가니니의 넘사벽 에픽 콜라보(이상살롱 편)에서도 만나실 수 있습니다.


K-POP에서 만난 클래식 예술 살롱 - 지나김 저


아픈 현실 속 소년의 꿈을 닮은 드뷔시 달빛의 아름다운 멜로디를 만나다 (brunch.co.kr)

#클래식음악책 #클래식음악이야기 #파가니니 #열등감 #지나김 #질병 #인문교양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