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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순간의 풍요, 그리고 몰락

전국 1위 매장의 주인, 그녀의 성공과 파산 3

by 고프로

경찰 공무원 퇴직 후 1년, 그의 인생엔 많은 변화가 찾아왔다.

울산의 최고 중심가에서 매달 억대의 돈이 흘러들어왔다.

그것은 공무원으로서는 결코 경험할 수 없던 금액이었다.

20년 동안 타던 소나타 2는 어느새 볼보로 바뀌었다.

성실했던 아내도 매장은 직원에게 맡기고,

그동안 가보지 못했던 하와이, 괌, 싱가포르 등 해외로 떠났다.

그곳에서 명품을 사들이며 그동안의 억눌린 욕망을 풀어냈다.

오픈 후 2년간 매장 매출은 매달 평균 2억 원 이상 꾸준히 유지되었다.

그들은 돈이 열심히 해서 버는 게 아니라며,

더욱 큰 돈을 벌기 위해 부동산 투자를 시작했다. 땅과 분양권을 닥치는 대로 대출받아 구매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며 골프 트렌드는 저물어갔고,

매달 2억 원 하던 매출이 1억으로 떨어졌다.

그리고 곧 5천만 원 이하로 내려가면서 상황은 급속도로 악화되었다.

월세 2천만 원, 직원 5명의 인건비, 전기세 등 각종 고정 비용이 그들을 짓눌렀다.

매달 적자 규모는 2천만 원이 넘었고,

그들이 벌어들인 돈은 이미 외제차와 부동산 분양권 등 사치에 쓰여 적자를 메꿀 여력조차 없었다.

그들은 아내가 원래 운영하던 의류 매장의 수익을 골프 매장의 적자를 메꾸는 데 동원했다.

하지만 매출은 계속해서 줄어들었다. 결국 매출이 3천만 원까지 떨어졌고,

월세 2천만 원이라는 부메랑이 부부의 삶을 뿌리째 흔들었다.

둘은 의류 판매 대금을 입금하지 못해 미수금이 쌓이기 시작했다.

의류 매장은 위탁 판매 방식으로 운영되어, 매주 판매 대금을 정산해야 했다.

미수금이 쌓이면 출고가 중단되고, 철수로 이어지는 구조였다.

본사에 미수금이 2억 원을 넘어서자, 본사에서도 의류 출고를 정지시켰다.

결국 오픈한 지 3년 만에 그들은 골프 매장을 철수할 수밖에 없었다.

들어갈 때 냈던 권리금 3억 원은 돌려받지도 못했다.

보증금 3억 원 또한 미납된 월세로 공중에 사라졌다.

그들에게 남은 것은 매달 볼보 할부금 200만 원,

부동산 투자 대출 이자 400만 원, 비금융권 대출 이자 500만 원이었다.

과도한 투자와 사치로 인해 매달 내야 할 돈이 천만 원을 넘었다.

그 와중에 아내가 운영하던 의류 매장의 월세마저 200만 원에서 400만 원으로 인상되었다.

장사가 잘된다는 소문을 듣고, 인근에 의류 매장이 많아지며 경쟁이 치열해졌다.

여전히 장사는 잘되었지만, 매달 내야 할 대출이자와 남편의 무모한 선택들이 그들을 짓누르고 있었다.

남편은 아내와 상의 없이 공사 중장비 동업을 시작했지만, 그마저도 부도 처리되었다.

부부는 더 이상 버틸 수 없었다. 결국 그들은 파산했다.

이곳은 그녀가 옷 가게를 열어 전국 1등 매장이 되었던 장소였다.

만약 그녀가 통장에 5억 원을 가지고 있을 때 그 건물을 4억 원에 샀더라면 어땠을까?

현재 그 건물의 시세는 6억 원을 넘었고,

임대 시세는 보증금 1억 원에 월세 450만 원으로 형성되어 있다.

그때 나는 복권에 당첨된 사람들이 더 가난해진다는 이야기를 떠올렸다.

그때는 "설마 그럴 리가, 사고 싶은 것만 사고 아끼면 되지."라고 생각했었다.

과장된 이야기라 여겼다.

하지만 그 부부의 몰락을 지켜보며, 나는 깨달았다.

소박했던 두 부부가 큰돈에 휘말려 몰락해가는 과정을 처음부터 끝까지 목격했다.

그들이 파산하게 된 가장 큰 원인은 바로 비교 의식이었다.

그들은 돈을 벌면서 끊임없이 남들과 비교했다.
남들보다 더 큰 매장, 남들보다 더 좋은 휴가지,

남들보다 더 수익성 좋은 투자. 그들의 대화 속에는 항상 '남들보다'라는 말이 빠지지 않았다.

물론, 남들보다 더 잘 살고 싶은 욕망은 어느 정도 부를 형성하는 데 도움을 준다.

하지만, 몇 억대의 큰돈이 흘러들어왔을 때, 여전히 남들보다 나은 삶을 살고자

그 돈을 사용하면 돈은 결국 화를 낸다.

그리고 그 화는 재앙이 되어 돌아온다는 것을 나는 이 부부를 통해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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