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은 순수를 혐오한다.’ 생물학자임에도 문학적 표현을 즐겨 사용하곤 했던 진화 생물학자 윌리엄 해밀턴의 말이다. 이 문장에서 ‘순수’ 라는 단어는 우리가 알고 있는 긍정적 의미보다도 부정적 뉘앙스가 강하다. 다윈의 진화론에서 알 수 있듯이 자연의 한 생물체가 순수한 상태, 말 그대로 다른 것의 섞임 없이 다양성이 결여된 특성을 지닌다면 자연에 존재하는 수많은 위협으로부터 개체를 보존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즉 지구 위에 존재하는 생물에게 있어 순수란 위협과 동의어이며 변이가 다양해야만 자연 상태에서 생존하여 진화할 확률이 높아진다는 이야기다.
우리 사회에서는 대다수가 누군가의 순수함을 칭송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세상의 타락에 물들지 않고 악의가 없으며 자신의 약한 모습도 가감 없이 드러낼 줄 아는 순진무구한 이들에게 보내는 찬사. 그러나 자연에 속한 인간 역시 순수하다는 특성이 긍정적 요소로 작용하지만은 않는다. 한 개체가 순수함을 드러낸 순간 그 성향을 포착한 포식자들은 그 약한 부분을 집요하게 파고든다. 영악함, 시기심, 위선을 비롯한 필요악의 인간적 성향이 다른 인간들과 달리 결여된 그들은 무리 안에서 쉽사리 이용당하고 표적이 되기도 한다. 반면 순수함은 물론 앞서 열거한 영악함을 비롯한 거부감을 자아내는 인간적 특성들을 모두 장착한 경쟁자들은 사회의 다양한 필요의 요구에 맞춰 적응하고 진화해 나간다.
순수의 사전적 의미는 ‘더러운 것이 섞이지 않고 깨끗함.’ 이다. 숭고한 의미이지만 지나친 순수성은 오히려 사회적 면역력을 약화시킨다. 순수함을 갖추되 사회적 환경에 걸맞는 다양한 특성을 함께 갖춰야 할 것이다. 자연이 인간에게 요구하는 주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