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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패커 에지 Feb 12. 2023

[일상에세이][기타독학] 나이 들어서 갑자기 웬 낭만

중학교 때 친구가 있었다. 긴 색머리에 잘생긴 얼굴로 여자애들에게 인기 있는 친구였다. 날라리라는 이미지가 많이 강했지만 나름의 카리스마와 자신만의 신념이 있는 친구였는데 우연히 그 친구의 집에서 처음으로 형들이 아닌 또래의 기타 치는 모습에 번개를 맞은 것 같았다. “이거구나 기타를 배워야 하는구나. 이것이야말로 여자들에게 인기를 얻을 수 있는 강한 무기다. ”싶었다.

고등학교시절 늘 함께했던, 지금까지도 가장 친한 친구가 진로를 음악을 선택하고 기타를 치고 드럼을 치고 그것도 멋있었다. 여자애들에게 인기도 당연히 많았다. 하루는 그 친구의 집에 놀러 갔을 때 공부 안 하고 기타만 잡고 있다고 아버지가 화가 나서 기타를 부셔서 집 밖에 버렸었는데 다 부서진 그 기타를 보고 내가 가슴이 다 아팠으니. 그 와중에 이놈은 비싼 전자기 타는 안 건드리고 어쿠스틱 기타가 부서져서 그나마 다행이라고 쿡쿡 대는데 뭐가 그리 기타가 좋을까 싶긴 했다.

암튼 그런 강한 매력과 떨림에도 내가 기타를 치는 생각은 감히 하지 않았다. 어려울 것 같았다는 게 제일 큰 이유였지만 배워도 내가 누군가를 위해 불러줄 일도 없을 것 같았고 여러 사람이 있는데서 내가 기타 연주를 한다? 에이 내 성격에 그런 게 가능할 리 없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가족에 업무에 혹은 또 다른 취미에 빠져 시간을 보내다가 중국주재원으로 근무를 하면서 주말의 한가함을 느끼며 가끔씩 보는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흥분을 하곤 하는데 , 사춘기가 스쳐 지나가고 있는 딸이 웬일로 슬쩍 다가오더니만


아빠 예전에 기타 산다고 하지 않았어??

엥? 언제?

아니 그때 TV 보면서 기타 치고 싶다며.

어 머 그런 말을 하긴 했지?? 했겠지?? 근데?

음 그러니까 기타를 살 거면 빨리 사라고. 내가 좀 치게.


영악한 것. 자기가 사달라 하면 안 그래도 집에 짐도 많은데 엄마한테 왠지 혼날 것도 같고 아빠가 산다 했으니 그걸로 친구랑 밴드를 한다나 유튜브를 한다나. 그러면서도 또 자기 걸로 샀는데 안치면 안친다고 왜 샀냐고 할까 같아서 머리를 쓴 것이리라. 그냥 속아 넘어가줬다. 울 공주님이 머리 쓴 건데 이 정도는 웃으며 넘어가 줘야지. 


요즘 우리 나이에 간혹 다시 낭만을 위해. 코로나로 격리가 지겨워서 머리도 하려고. 아니면 이젠 함께 노는 사람이 없어서. 친구랑 술 먹는 것도 지겨워서. 또 누군가는 치매를 미리 예방하기 위해서 배운다던데 난 우리 딸의 감언이설에 넘어가 비자발적 자발스러운 시작을 하게 되었다. 머 일단은 기타를 시작했다 보다는 주문을 했다 정도로 애써 의미를 축소해 본다.


그래도 기다려지기는 하네 당분간 나와 딸과의 대화 채널을 만들어줄 새 기타가.


요즘은 방송에서 통기타를 치는 멋진 모습을 자주 볼수 있다. 사진출처:네이버검색, JTBC
Soldier of fortune 같은 명곡을 내가 칠수도 있을까?
즐겨본 싱어게인2의 서기 가수의 감성을 보며 우리딸도? 라는 생각을 하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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