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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패커 에지 Dec 12. 2023

[중국기행] 태산이 높다 하되..

산동성 태안시 태산 (泰安市 泰山)

태산이 높다 하되 하늘아래 뫼이로다.

오르고 또 오르면 못 오를리 없건마는

사람이 제 아니 오르고 뫼만 높다 하더라.


우리에게는 너무나 친숙한 조선시대 양사언의 시조로 대략 어려운 일은 부닥쳤을 때 노력도 안 하고 핑계만 대며 포기하는 사람에게 그러지 말라는 교훈을 주는 내용이다. 이곳에 등장하는 태산은 산동성의 성도인 제남 근처에 위치한 태안시(泰安,taian), 오악 중에 제일이라는 바로 그곳 태산이다. 높이는 1532m로 그리 높지 않지만 5A급 풍경구로 관리받고 있으면서, 중국인들에게는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봉선) 영험한 산이자 민간신앙을 아우르는 문화적인 상징이라고 할 수 있다.

태산을 한번 오를 때마다 10년은 젊어지고 소원을 성취할 수 있다고 믿고, 그래서일까 젊은 친구들이 방학이나 주요 명절에 야간 산행을 통해 고생해서 정상에서의 일출을 보고 소원을 비는 것으로 더욱 유명하다.


등산로는 셔틀버스와 케이블카를 이용해서 여러 가지 구성으로 계획할 수 있는데


1. 가장 빠르고 쉽지만 비용이 높은, 출장자 혹은 단기 여행자들이 가장 선호하는

중천문(中天门)까지 셔틀버스, 중천문-남천문(南天门)까지 케이블카, 남천문-玉皇峰(옥황정)까지 걷기


2. 어느 정도 산행도 즐기면서 뷰가 없는 구간은 빨리 지나갈 수 있는 가성비 구간

중천문까지 셔틀버스, 나머지 걷기 (가장 유명한 구간인 올라가려면 18번 넘어져야 한다는 의미지만, 한국 사람들은 비슷한 음의 욕을 하면서 올라간다는 십팔반(十八盘) 등산가능)


3. 몸하나 튼튼하고 돈은 없어도 시간은 있다. 7800여 개 계단을 처음부터 끝까지 걸어 올라가기

주로 대학생들이 야간등산을 통해서 올라가는 방법으로 많이 활용되는 방법


요새 유행은 야간 등산을 통해서 정상을 올라가고 밤새 기다려서 일출을 본다길래 이것저것 신경 써야 할 것들이 있어 장비도 제대로 늘어놓고 정리를 해 본다. 이 중에서 태산 등산에 있어 잊으면 안 될 건 정상 부근의 오악 중의 으뜸이라는 ‘오악독존’이라는 표지와 그 주위 풍경을 그려 사용하고 있는 5 RMB짜리 지폐.  


그리고 지폐와 함께 잊으면 안 되는 건 외국인이라면 반드시 여권을 지참해야 한다. 입장권 구매 시 외국인은 핸드폰 앱을 통해서 구매가 안되고 현장 구매를 해야만 하며, 이때 여권이 없으면 구매를 할 수가 없으니 꼭 잊지 않아야겠다. 참고로 중국 현지, 특히 5A급 관광구 같은 곳은 주변 호텔도 외국인이 머무를 수 있는 곳이 있고 없는 곳이 있다. 소위 민박은 합법적으로는 거의 어렵다고 보면 되고, 허가가 난 일정 급이 되는 곳만 머무를 수 있기에 호텔 예약도 외국인 가능 여부도 반드시 확인을 해야 한다.

외국인은 현장 발급만 되고 여권을 반드시 지참해야 한다. 발권하여 매표소를 지나면 본격 등산 시작.

각오는 했지만 중국대학생들이 이렇게 많을 줄이야..... 연휴기간도 아니고 휴일도 아니고 한데 이렇게 많을 수가 있을까 했지만 알고 보니 개학이 얼마 남지 않은 상황이라 다들 좋은 기억과 소원을 빌기 위해서 태산으로 온 것.

대학생으로 보이는 수많은 등산객들이 그룹별, 개별로 등산을 시작한다.
우리로서는 낯선 풍경이지만, 오성홍기를 들고 등산하는 이들을 어렵지 않게 볼수 있다.

밤이라 먹을거리도 준비해갔는데, 군데군데 먹거리를 파는 곳이 많아서 먹을 건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평소라면 먹지 않을 테지만 사람을 보아하니 속도 내기도 힘들고 오히려 사람들의 속도에 밀려서 올라갈 때 탈진하지 않기 위해서 컨디션 조절이 더 필요하다고 생각되어, 아메리카노 한잔 사서 빨대 물고 본격적으로 시작한다.

밤이기도 하고 중각 지점은 계단밖에 없고 사람들 사이에서 밀려서 천천히 올라가다 보면 중간중간 나오는 사원에서는 사람이 많아 그냥 지나칠 만도 한데 잠깐의 시간에도 다들 들어가 소원을 빈다고 열심이다.

인파에 밀려서 걷다 보니 다다른 중천문. 중천문은 제1관문 같은 느낌이어서 관광지 같은 넓은 산책로와 상점들이 늘어서 있어서 그래도 이날 구간 중에서는 그나마 여유를 느낄 수 있는 곳이었다. 정상대비는 아직 갈길이 멀어서 포기하려면 여기서 포기를 해야 ^^. 독특한 건 KFC가 있다는 사실. 중국 컵라면이나 음식이 혹 입에 맞지 않으면 (그래도 중국 향신료 맛은 있지만 글로벌 입맛인) KFC를 이용해도 좋겠다.

어둠에 돌계단을 돌계단 한번 앞사람 머리 한번 보면서 걷다 보니 슬슬 정상이 다가오는데 용문을 지나고 나니, 본격적으로 우모복을 대여해 주는 상점이 나오는데 오늘의 태산 일출은 05:15 예정.

옷은 100 RMB 보증금에 30 RMB로 빌리게 되는데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인데 사람이 많을 때는 빌리는 건 문제가 없는데 반납자체가 너무 어려워서 보증금을 받지 못할 수밖에 없는 경우가 생길 수도 있다. 농담이겠지 생각할 수도 있는데 움직이기도 어려워서 몇 발 움직이는데도 한참 걸리는데, 빌린 곳에 가서 정신없이 큰소리로 이야기하며 보증금을 받는 게 외국인으로서는 더욱 어려우니 혹시 야간 산행을 생각한다면 계절을 고려하여 적당한 수준의 우모복을 미리 가져가는 게 제일 맘 편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우모복의 청결은 기대하기는 힘들다.

정상에 다가설수록 모이는 사람들이 많아져 정상으로 가는 가장 큰 광장인 남천문(南天门)과 천가(天街)는 다음날 일출을 보기 위해서 좀 더 올라가는 사람과 이곳에 머물렀다가 올라가려는 사람들로 북새통을 이루고 있다.

대여한 우모복은 추위 속에서 입고 덥고 깔고 밤을 보내게 된다. 매트도 없고 돌바닥에 서로 몸을 붙여서 추위를 이겨내거나 바닥에 몇 개의 우모복에 웅크리고 밤을 보내는데 짠하기도 하고 약간은 무모해 보이긴 하는데 그 열정 하나만큼은 최고다.

22:00 정도에 출발해서 인파에 밀려서 정상에 도착한 시간은 03:00 정도. 정확하게 말하면 정상 가까이에서 인파 속에서 시간을 버티다 자리 잡은 시간이다.

정상에 오르려는 사람과 내려가려는 사람과 뒤섞여서 좁은 돌계단에서 움직일 수가 없다. 오도 가도 못하는 상황이라서 돌계단의 펜스 옆으로 넘어가서 옆길 바위에 몸을 고정하고 밤이 지나가기를 기다려 본다. 방송에는 잃어버린 애들이나 친구 가족을 찾는다는 내용과 전화번호가 계속 안내되고 있는데, 안내방송을 듣더라도 방송에서 말하는 장소까지 이동은 이미 무리인 상황에 전화도 잘 안 터져서 듣는 내가 다 답답했다.  


그래도 시간은 지나고 일출 때까지 인파들은 절정에 달하면서 구름사이로 기다리는 해가 솟는 순간. 다들 자신만의 소원을 빌면서 사진을 찍는데 여념이 없다.

등산을 할 때도 그랬지만 정상의 일출이 나타날 때 흔드는 오성홍기에 남녀노소에 상관없이 다들 열광하면서 사진을 찍는다. 중국인에게 있어서 이곳은 이런 의미구나 라는 생각이 미치니 조금은 무섭기도 하고. 애국이라는 의미를 표출하는 방법이 다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많이 들게 된다.

최근에 이곳에서 미국 국기를 흔든 중국인이 중국 내에서 큰 이슈가 된 적이 있다고 한다. 사실 우리도 해외산에 가면 태극기를 들고 기념 삼아 사진을 찍기 때문에 그게 머 대수일까 싶기도 한데 이곳에서만큼은 불필요한 오해로 서로의 감정을 상하지 않도록 하늘과 가장 가깝다고 느껴지는 곳에서 멋진 일출을 보면서 소원을 잘 빌고 오면 좋겠다.


발디딜틈이 없이 많은 인파가 일출을 즐기고 있다.

06:15부터 내려가기 시작하는데 역시 사람들의 파도에 밀려서 가지고 오지도 못하고, 사진을 찍을 여유도 없고 정신을 잃지 않도록 , 밀려서 사고가 나지 않도록 긴장 바짝 하면서 하산을 해 본다.

그래도 중요한 오악독존 비석 앞에서 사진 프레임 안에 어떻게든 사람이 나오지 않게 5위안 지폐와 함께 찍어서 다행이다.

오악독존. 5RMB의 지폐의 도안이 된 바로 그 풍경.
우모복들은 이렇게 버려(?)진다. 위생에 민감하다면 일출을 위한 우모복을 준비 하면 되겠다.
돌에 글을 써서 기념품으로 판매하고 있다.

하늘길이라는 이름의 천가(天街tianjie)는 푸른 하늘빛과 잘 어울리게 솟아 있지만 그 밑으로 하산을 하려는 사람들의 머리수를 보면 기가 질려버린다. 지금의 상황을 영상으로 찍어 중국 친구한테 보내면서 오늘이 혹시 중국의 특별한 날인 건가?라는 질문에 전혀 특별한 날이 아닌 태산은 원래 사람이 많다는 말로 답변이 대신 왔다. 대학생 개학이 다음 주라서 그런가? 하는 내용과 함께.

천가 표지, 저곳까지 닿기가 너무 먼거리가 되어버렸다.

내려오면서 부채에 글귀 새겨주는 것 하나 기념품으로 사 오고 싶었는데 사람들에게 질려버려서인지 뭔가를 더 하겠다는 의지는 이미 꺾여버린 지 오래.

위에서 케이블카를 타는 줄은 찾을 수도 없고 있더라도 줄이 엄청날 거라는 생각에 맘 편하게 걸어가 보기로 했다. 수많은 내려가는 사람들 사이 올라오는 사람들도 조금씩 늘어나고 있어서 내려갈 때는 더욱 긴장감이 올라간다. 계단자체가 충분히 넓지 않고 좁고 어느 구간은 한 계단이 높은 경우도 있어 내려갈 때 잘못짚으면 넘어질 수 있고 그렇게 되면 죽 밀려 넘어지는 생각 하기도 싫은 일이 일어날 수 있다. 인상적인 것은 이런 일이 흔해서인지 답답함을 못 참을 것 같은 대학생들도 육체적으로도 힘들 텐데 한 계단 한 계단 걸어 내려가는 걸 보니 어떤 면에서는 참 대단하다 싶다.  

1회용 음료쓰레기와 수많은 쓰레기들이 뒹굴어 다니고 있지만 청소하시는 분들이 나름 한 곳으로 잘 치우고 계시고는 있지만 그 양은 정말 엄청난 양이었다.

국가에서 관리하는 명산이니 누군가의 노동으로 치워지겠지만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가다 서다를 반복하게 되면서 잠시 여유 내어 주위를 둘러보니 만장비도 보이고 그 둘레로 우리의 그것과 닮아 있는 풍광들이 보이니 이제야 마음이 좀 놓이면서 편안하게 걸어가 본다.   

날도 덥고 사람도 많고 몸도 힘들었을 텐데 두 손 꼭 잡은 썸 타는 친구들을 보니 기분 좋고, 짐을 메고 다니는 분들을 보니 저런 분들 덕에 중간중간 어렵지 않게 휴식을 취할 수 있겠거니 감사하는 마음도 들고.

중천문과 남천문 구간은 여전히 인력으로 짐을 운반한다.

중국인들이 이곳 태산이 제1의 천하명산이라는 자부심을 눈으로는 바로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 실제로 더 높거나 멋진 풍경을 가진 산들이 많이 있다.


그렇지만 어디 명산이라 붙여지는 곳들이 그런 정량적인 수치나 단순한 풍경만으로 정해지랴. 역사적인 혹은 신화적인 존재로서 지역민들과 공감하고 긴 시간 일종의 종교처럼 여겨지는 부분이 크다고 하겠다. 그런 면에서 역사서인 ‘사기’에서도 진시황 이전에도 72명의 왕이 태산에서 봉선의식을 거행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봉선이라는 게 태산에 올라 천하가 평정되었음을 하늘에 알리고 천하의 태평함에 감사하며 이런 의식을 해야 진정한 제왕이 된다는 믿음이 있어 시황제 이후에도 한나라 무제, 청의 건륭제 등이 태산에 올라 봉선을 하였다고 한다.


이뿐이 아니라 불교에서는 영산이라 칭하고, 도교에서는 선산, 유교에서는 성산으로 이름은 다르지만 그렇게 여기고 있으니 일반 백성들 또한 이곳은 신성한 산으로 여길수 밖에 없는 그런 산이다. 그러니 1987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이 되고 매년 4000만 명 이 다녀간다고 하니…. 중국에서는 두말할 필요 없는 신성한 명산인 것이다.


개인적으로 아쉬운 건 봉선의식 등을 위해 방문한 수많은 임금과 귀족들이 세운 사당과 불상이야 눈으로 보면 되는데, 길 곳곳에 기암괴석과 절벽에 새겨진 한자유적을 중국어에 대한 이해가 떨어져서 제대로 의미를 알지 못한 채 글이 쓰여 있구나 정도만 생각하고 내려온 게 많이 아쉽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게 이런 게 아닌가 싶다.

중천문에서 셔틀버스를 탈 수 있어서 하산길은 단돈 35 RMB에 편안하게 내려올 수 있었다. 나만 힘든 건 아닌지 다들 앉자마자 바로 기절 수준으로 실신….

이렇게 사람 속에서 고생했지만 중국 내 인지도로는 탑티어급인 태산 등산이 정리되었다.


태산은 중국 내에서도 명산으로 인정받고 있고 특히 고대로부터 봉선의식이 있었던 만큼 그 영험함으로 소원을 빈다던가 하는 중국인들의 정신적인, 일종의 종교와도 같은 의미를 지닌다.

그런 면에서 한 번쯤 다녀오는 게 좋겠지만, 순수한 등산의 입장에서는 처음부터 끝까지 계단을 통해서 계속 오르는 루트이다 보니 고행의 기분이 들만큼 힘이 드는 산이다. 중간중간 뷰에 고생을 보상받으면서 오르는 산이 아닌지라 이용할 수 있다면 케이블카와 셔틀버스를 통해서 올라 정상에서의 아름다움을 느끼거나 아니면 정상부근의 산장에서 일박을 묵으면서 일출을 즐기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그리고 공부를 하고 가면 아는 만큼 보인다는 점. 마지막으로 중국의 춘절, 노동절, 국경절 같은 연휴기간, 학생들 방학기간은 가급적 피하는 게 좋겠다. 풍경보다 사람 구경만 실컷 하고 돌아오기 싫으면 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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