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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패커 에지 Jul 14. 2022

[백패킹 단상]또렷한 기억보다 희미한 연필 자국 낫다.

머리가 나쁘면 손발이 고생해야지. 집 나간 기억력 찾습니다.

간혹 인용되는 속담 중에 한 번쯤은 들어본 적이 있을듯한 원문으로 好记性不如烂笔头[hăo jìxìng bùrú làn bĭtóu]라는 말이 있습니다.


아무리 좋은 기억력도 낡은 펜촉만 못하다는 뜻으로 아무리 기억력이 좋더라도 못난 글씨일망정 그때그때 적어 두는 것만 못하다 정도의 의미입니다.

기록의 방식에 있어 아직은 아날로그적인 것에 더 끌리는 세대다 보니 간혹 필름카메라로 기록하기도 합니다.

한국어로 번역은 또렷한 기억보다 희미한 연필 자국이 낫다는 중국 속담으로 알려져 있고 많이 활용되는 문구입니다.


'기록은 기억을 지배한다.'라는 예전의 캐논 카메라 광고 카피도 잊을 수 없네요. 처음 구매했던 디지털카메라가 그 카피로 광고했던 IXUS 제품이기도 했지만

 후로도 자주자주 술자리에서 인용을 할 만큼 제게는 크게 다가왔던 문구였습니다.

지금 광고를 보니 촌스럽긴하지만 문구만큼은 아직도 귀에 쏙 들어옵니다. 출처 : 네이버 검색, 캐논


80년-90년도 시절, 중학교 때쯤으로 기억되는 때 여자 사람 친구들 사이에 다이어리 꾸미는 게 유행이었던 적이 있습니다.


저는 남자이기도 하고 그리 꼼꼼한 편은 아니어서 그렇게 남들에게 보일만큼의 다이어리에 신경을 쓰지는 못했지만,

억지로 쓰는 방학 숙제 같은 일기장 쓰기에서 이걸 왜 쓰고 있는 거지?라고 생각하면서 한두 달 정도의 일기는 몇 시간 만에 쓸 수 있는 그 당시 중고등학생에게는 일반적인 일기 신공을 발휘하면서 일기란 그냥 하기 싫은 숙제구나라고 회의를 느낄 즈음


자발적으로 꾸미기도 하고 고민도 쓰고 , 선생님에게 누군가에게 보여주는 게 아닌 자신만의 생각을 쓰는 어찌 보면 진짜 일기(?) 같은


다이어리라는 것을 처음 접하고는 간단한 메모를 한다거나 시험공부 계획은 쓴다거나 하는 자주 긁적이는 습관이 생겼습니다.


일기처럼 쓰는 게 아니다 보니 단어 나열을 한적도 있고 졸라맨 수준이지만 그림도 그리면서 그냥 나의 기억이나 생각을 표현하는 정도였습니다.


고등학교 때 첫 미팅을 한 기록도 있고, 선생님한테 혼나거나, 부모님 한테 거짓말하고 나서 죄송해한 것도 있고, 이래저래 나름 기뻤던, 잊고 싶지 않은 사실들을 기록 하는 게 버릇이 되었습니다.


그런 습관은 직장생활을 하면서도 유지되었고 지금도 업무를 위해서 할 일을 적는 다던지 그리고 간혹 생각을 긁적이고 싶을 때는 일기 형식으로 쓰곤 합니다.


아침에 자리에 앉으면 할 일 체크하고, 회의하면 주요 항목들 메모하다가 보고 거리가 있으면 내용 전개하는 업무상 기록도 있지만 형식도 없고 감정에 충실해서 무슨 소리인지 나중에 알아보기 힘든 스토리 라인도 있고,

몽상에 가까운 스토리나 제품들 아이디어도 있고, 그야말로 말이 좋아 기록이지 약간 낙서 같은 느낌이랄까요.


조금 번거롭더라도 기록은 자신의 기억을 풍성하게 해주고 자신만의 생각의 정리를 도와줘서 자신만의 철학을 차분히 쌓을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백패킹 계획을 세울 때 미리 어떻게 갈 건지, 누구랑 갈 건지, 머 먹을지, 거기서 이런 거 저런 거를 할 수 있을까? 하면서 뇌로 상상하며 손은 연필을 가지고 단어로 나열하기도 하고 글로 쓰기도 하고 동그라미 세모 네모 수준의 그림을 그려가며 계획을 넣었다 뺐다.

처음가는 루트를 지도등을 통해 확인하고 계획하는 과정을 통해서 자신만의 노하우를 가질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백패킹 중에는 특히 혼자인 밤 시간, 잠을 너무 일찍 깨어 버린 순간에 낮과 다른 정신상태를 표현하는 내용들을

시간이 흘러서 보게 되면 그게 정말 그 당시 자신의 꾸밈없는 상태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분노에 휩싸여서 스트레스를 있는 데로 다 받는 상태였는지, 당시에는 몰랐지만 마음이 평온하고 주변의 많은 친구들이 도움을 주던 때인지.


이런 기록하는 습관에 대한 이야기를 백패킹 동료들과 해 보면, 저를 조금 이상하게 보는 분들도 있으셨고, 본인들과는 거리가 먼 상황인 것으로 생각을 많이 합니다.


아무래도 한국 교육에 있어서 일기장에 대한 습관을 알려주고 키워주려고 한 조기교육이 오히려 일기장에 대한 거리감을 두게 한 게 아닐까?라는


다들 기록이라 함은 일기장이라는 생각을 쉽게 떠올리고 숙제 검사할 때 밀려서 한 번에 쓰던 기억들,


그리고 그 전제가 선생님이 읽는다는 것 때문에 나에 대한 기록이 아니라 보여주기 위한 기록이었던 경험이 있다 보니


간단한 메모를 제외하고는 쓰는 것에 대한 막연한 거부감이 있는 경우가 있습니다.



생각부터 조금 바꿔 보시죠.


어차피 내가 쓴 건 나말고는 볼 사람 없으니 마음 편하게 내용도 쓰고, 글씨를 이쁘게 할 필요도 없이 대충 휘갈기면서 써 보는 겁니다.


우연히 들린 지역색 넘치는 식당에서 먹은 메뉴를 메모한다던지, 앞에 보이는 바위가 내 눈엔 원숭이 같아 보인다던지,


시간이 되면 잘 알아보기 힘든 추상화가 될지언정 그림도 그려보고 텐트 피칭하고 나니 잊어 먹고 집에 두고 온 숟가락 세트가 있었다거나 갑자기 밤에 동물소리에 잠을 깨서 보니 유난히 별이 많아 첫사랑이 생각났다거나.

옆 사이트 백패커와 인사를 했는데 인상이 좋았다던지 아이디가 멀 쓴다고 하던데 하는,

오늘 아침에 유난히 늦잠을 못 자도록 깨운 새소리의 새 이름은 멀까? 뭐길래 저리 시끄러워? 정도의 간략한 메모.

부끄러운 그림이지만 어느 바닷가에서의 1박의 기분을 알수 있는 기록. 이때는 1인용 테라노바사의 텐트를 주력으로 쓰던 때네요. 어느해 8.2 아침


혹은 쓰는 것에 익숙한 문과적인 성향을 지니셨다면 백패킹을 준비하는 과정을 상세하게 메모해 둔다거나 시간에 따른 기행문이라면 두말할 필요가 없지요.

패드를 이용해서 기록을 남기는 시도도 해보았지만 역시 아날로그적인  수기에 마음이 가는편입니다.

중요한 건 그때의 느낌, 떠오르는 단어, 자신의 생각, 지금 눈에 보이는 현상 등 간단한 나중의 자신을 위한 기록. 한두 줄의 문장 혹은 긁적임.


이 정도로도 충분히 미래의 자신을 감탄하게 혹은 미소 짓게 할 수 있습니다.

메모지가 없으면 주변 소품에다 쓰는 것도 방법입니다. 종이가 없어 핫팩에 정보를 기록했던 2014. 일본 야츠가다케




펜으로 하는 메모에서 근래에는 SNS로 대체해서 많이 활용하는 시대이지만,


저의 경우 SNS의 순기능과 역기능을 함께 보고 겪고 해서 조심스럽게 최소한으로 간단한 느낌을 기록하는 용도로 활용하고 있습니다.


그래도 한 번씩 순기능에 고개를 끄덕이는 건 요즘 SNS마다 새로운 기능 중에 몇 년 전 있었던 일이라고 알려주는 기능이 있는데


어느 날 갑자기 시스템이 알려주는 내용을 보면 사진 한 장이 주는 추억의 맛도 있지만,


그때는 큰 고민 없이 무심하게 쓴 한 줄의 문장이 사진 한 장의 추억의 맛에 양념과 은은한 향을 더해서 엄마가 해준 그리운 집밥 같은 느낌이 되게 합니다.

멋진 사진 한장이 그날의 분위기를 표현해준다면, 간단한 글은 그날의 마음을 기억나게 해서 한번의 경험을 잊지않게 더욱 풍부하게 합니다. 2014. 일본 대마도


백패킹 가셔서 의외로 많이 가질 수 있는 혼자만의 시간에


연필로 수첩이나 노트에 쓰시건 SNS에 기록을 남기시건 형식은 관계없이


자신의 생각 하나 적어 볼 수 있는 여유와 습관을 가져 보시기를 추천드립니다.

백패킹 장비를 늘어놓고 사진으로 기록하는 것도 꾸준히 하면 본인의 변화를 알수있습니다. 중요한건 사진이든 메모든 간에 정리해서 자기의 역사를 만들어 보시는건 어떨까요.

그러면 분명히 백패킹이 단순히 잠시 지나쳐 가는 유행을 타는 과거의 취미가 아니라


잠시 멈춰 서서 자신을 바라볼 수 있고 바쁜 현실 속에서 잠시 자연 속으로 탈출하여 릴랙스 할 수 있는 라이프스타일로의 취미생활이 될 수 있을 겁니다.




고민하지 말고 지금 시작하시고, 시간이 지날수록 그 기억의 층이 천천히 숙성되어 맛과 향이 잘 익었을 즈음 꺼내어 멋스럽게 드셔 보세요.


아 이맛이 그 맛이네 하는 생각이 들 겁니다.


사진한장의 추억에 그날의 재미났던 일화가 간략히 기록된 내용만으로 혼술을 마시면서도 웃으며 재미있을 수 있는 마법을 다들 느껴보셨으면합니다. 2014.소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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