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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패커 에지 Jan 30. 2024

[중국기행] 안중근 의사의 발자취, 뤼순감옥

랴오닝성 다롄 (요녕성 대련) 뤼순(여순) 감옥

한국과 중국 그리고 일본은 고대사뿐 아니라 현대사 역시 여러 가지 역사로 얽혀 있다.

그중 독립운동의 역사는 우리에게는 잊을 수 없는 기억이자 조국을 위해 후손을 위해 희생하여 사라져 간 그들의 정신을 이어받아야 하는 중요한 기록이다.


뤼순 감옥(여순 감옥)은 그런 곳이다.

러시아가 중국인을 제압하기 위해 건축된 곳이나 러일 전쟁 이후 일본이 뤼순을 점령하면서 중국인, 한국인, 러시아인을 더 수감하기 위해 증축한 곳인데, 외양은 한국의 서대문 형무소와 느낌이 비슷하다.

뤼순 감옥 전시관은 매시간 30분 간격으로 입장을 시키고 월요일은 휴관일이다.

입구에서는 외곽의 사무소에서 여권번호, 연락처, 동행인 수를 작성하고 들어가서 오른쪽의 건물로 QR스캔을 통해서 등록하고 들어가면 된다. 입장료는 무료이나 차량을 이용하는 사람은 옆에 주차장 비용은 지불해야 한다.

감옥만 아니었으면, 그것도 아픈 역사의 기록이 아니었으면 푸른 하늘에 녹색의 잔디, 적당하게 시간의 흐름을 입은 풍경은 한적하니 한없이 평화로워 보이는데 이래저래 감정이 복잡해진다.


안중근 의사 특별관.

하얼빈에서의 거사로 인해서 이곳으로 이송되어 온 안중근 의사는 수감된 2/14 사형선고를 받고 3/26 오전 10:04에 형이 집행되었다고 알려져 있다.

애초 뤼순 일본 관동 법원에서의 말도 안 되는 재판에서도 당당하게 맞서서 이토히로부미의 15가지 죄명을 밝히고, 옥중에서는 동양평화론을 집필하는 기개는 범인들은 쉽게 따라 하기 어려운 일이라 일본인 간수들도 크게 감화했다고 하니 독립운동이 아니었더라도 이름을 알릴 분이지 않으셨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특별관이 수리를 이유로 개방을 하지 않았지만, 창살 사이로 어렴풋이 보이는 것만으로도 대한민국인이라면 분노와 슬픔과 여러 가지 감정을 느끼기에는 충분했다.


서대문 형무소처럼 수감 감옥을 한눈에 볼 수 있도록 복도가 설계되어 있다.

그리고 35호 36호 감옥

신채호 선생과 이회영 선생이 수감된 곳이다.

신채호 선생은 10년형을 선고받고 1930년부터 복역하다가 1932년 35호 방에서 순국하셨고

이회영 선생은 1932년에 체포되어 36호 방에 수감되었다가 고문으로 순국하셨다.

건물 전체를 보면 흰색 부분이 러시아에서 1902년에 지은 사무실과 총 85칸의 감방 건물이고 양쪽의 붉은 건물이 1907년까지 267칸을 증축한 건물이다.

감옥 외에도 교수형이 집행된 공간도 있었는데 애들에게 설명을 해 줘야 했지만, 쉽게 입이 떨어지지 않아서 그냥 설명을 읽을 수 있는 시간을 충분히 주었다.

고문실에 이어서, 사형장에 약 700여 명 정도의 항일지사가 사형당했다고 하니, 야만적이고 비인간적인 일들에 대한 뭐라 설명하기 힘든 감정이 든다.

역사란 것이 누군가에게는 아픈 진실을 마주하는 것이겠지만 받아들이고 사과하고 나아가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아야 되는데 지금의 상황은 그러지 않음에 안타까울 뿐이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라던가? (이 말도 누가 했는지 의견이 분분하긴 하던데) 워딩 자체가 가지는 느낌이 다소 극단적일 수 있겠지만, 역사는 지금의 현재를 만들게 된 기반이고 앞으로의 미래를 만들어 내는 힘임에는 틀림없다.

그런 면에서 뤼순감옥은 중국의 랴오닝성을 고려한다면, 안중근 의사를 기억한다면 그리고 신채호 선생, 이회영 선생 같은 많은 독립운동가를 생각한다면 반드시 다녀가야 하는 곳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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