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하러 온 거니까 일은 펑크 없이
아무래도 중국에 놀러 온 게 아니다 보니 업무가 가장 큰 스트레스일 것은 예상했던 상황이었다.
전임자와 함께 차분히 업무 인수인계를 진행해야 하는데 전임자는 전임자대로 업무 정리 방식에 있어서 성격적인 차이도 있었고, 또 말년이라 그간 알았던 지인들과의 시간을 보내느라 차분한 업무 인수인계는 기대하기 힘들었고 업무 폴더 하나 공유 해 주는 거 받은 다음에 혼자서 하나씩 열어 보는 것으로 업무를 시작했다.
항상 이런 차분하게 봐야 하는 업무는 시간이 부족한 법. 전임자의 성대한 환송회와 함께 정말 혼자 남아 업무를 진행해야 되는 상황에 처하고 나니 막막했다.
특히 언어적인 면에 있어서 중국어를 몇 달 공부하고 준비했다고 해서 직원들과 소통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 어리석은 일이다. 그러다 보니 의견을 묻거나 간단한 업무지시를 듣기 위해서 혹은 업무에 대해서 의사결정을 물으러 오는 친구들에 대해서 하고 싶은 말은 산더미인데 정작 입 밖으로 나가는 말은 ‘请用邮件加以说明。‘ (qǐng yòng yóujiàn jiāyǐ shuōmíng 이메일로 설명해 주세요.) 혹은 간단한 내용이라서 이해는 하는데 크게 문제가 없는 경우는 ‘我同意’(wǒtóngyì 동의합니다.) ‘你自己决定吧。’ (nǐ zìjǐ juédìng ba 당신이 결정하세요) , ‘你看着办吧。’ ( nǐ kàn zhe bàn ba 당신이 알아서 하세요) 같이 간단한 대화로 정리하는 경우가 많았다. 영어를 사용하기도 했지만 영어는 영어대로 중국 현지인들이 잘 이해하지를 못했다. 영어도 한국의 콩글리쉬처럼 중국 특유의 발음과 함께 아직 익숙하지 않은 그들과 나는 소통에 있어서는 깊은 강이 있는 느낌이었다.
그래서 이야기하다가 글로 쓰면서 한국어, 영어, 중국어 섞어 가면서 하다 보면 인내심이 떨어지는 게 내가 아니고 그들인 경우에는 알아서 통역을 할 친구를 데려오게 된다. 간혹 대화에 있어서 언어의 내용은 알아듣겠는데 왜 그런 일을 하는지 왜 그런 생각을 한 건지에 대한 이해가 안 될 때는 속이 터지는 일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래서 통역인원을 데려오면 중국어를 못하는 나를 무시하나 라는 피해의식때문인지 간혹 기분이 나쁠 때도 있었다.
‘아니. 중국어를 이해하지 못하는 게 아니라 너의 의견이 너의 말이 이해가 안 된다니까?’
다행히 우리 팀에는 한국어를 잘하는 인원이 몇 명 있고 또 그 친구들이 팀 내에서 어느 정도 위치에 있어서 업무에 대해 확인이 필요한 일들은 물어가면서, 통역을 활용해 가면서 업무를 처리하기 시작했다.
첫 주간회의가 있는 날이었다.
예전처럼 회의가 많이 열리지는 않지만 그래도 한 주간 어떤 업무를 했는지 어떤 도움이 필요한지 혹은 회사에 일어나고 있는 일들을 공유해 주는 자리 정도로 진행이 된다.
내가 직접 주관하고 팀원들과 함께 하는 첫 주간 회의다 보니 이것저것 많이 준비를 하고 들어갔다. 사전에 보고 받은 내용들도 읽어보고 질문거리, 확인할 내용도 중국어로 적어서 커닝이라도 할 생각으로 준비하고 중간중간 농담이나 사자성어도 (예전 수업시간에 배운 대로) 중국인들이 좋아한다 해서 열심히 준비했다.
시작은 나쁘지 않았다. 약간은 긴장됐지만 자연스러운 표정으로 시작을 알렸고 한 명씩 보고를 하는데 이미 보고 자료를 읽고 들어 왔던 터라 중간중간 단어들만 캐치하다 보니 보고서 내용대로 흘러가고 있구나 정도로 이해하고 중간중간 잘 알아듣는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면서 때로는 약간의 흐뭇해 보이는 미소까지 띄어 주면서 회의가 진행되었다.
한두 명이 지나고 나니 이슈가 되는 안건이 있는 친구가 뭐라고 이야기했다.
“!@#$#%$#$%^#$%^$&*&#*^%”
당연히 알아들을 수는 없었고 다시 한번 말해 달라고 해도 알아들을 수는 없을 것 같아서 지긋이 한국어가 되는 친구를 바라보고 있는데 …
이 눈치도 없는 친구는 아직은 어려운지 멀뚱멀뚱 쳐다만 보고 있고 다른 인원들은 해당 이슈에 대해서 자신들의 의견을 나누고 (아마도?) 있는지 웅성 거리기 시작했다.
멋지게 보이고 싶었던 콘셉트는 포기해야 했고 정중히 통역을 요청해서 내용은 이제 이해를 했는데 아직은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아 어떻게든 대답을 해 보려 했는데 역시나 단어만 겨우 나열하는데 제대로 된 중국어 대답이 나올 리 없었다. 거기에다가 성조까지 이상하니 다들 멍하니 바라만 보고 있길래 역시나 통역을 부탁해서 이야기를 했다.
준비했던 것들은 다 무용지물이 되다 보니 그다음부터는 그냥 통역을 써서 이야기하는 것을 다 알아들으려고 했고, 또 하고 싶은 말을 그냥 다 해버렸다.
이렇게 되니까 이제는 통역하는 친구가 내 말을 전달하려니 그게 또 막히는 상황이 발생하게 되었다. 한국어를 한다고 해서 한국인처럼 할 수는 없었는데, 내가 이전 상황들로 인해서 당황도 했었고 또 처음 회의다 보니 (지금 생각하면 꼰대스러운 행동이었지만) 나름대로 리더로서의 권위를 생각을 해서 업무적으로나 일처리 방식 같은 것을 많이 이야기하다 보니까 어려운 단어나 특유의 뉘앙스는 통역으로 전달하기가 힘들었을 것이다. 말 그대로 뒤죽박죽이었다.
중국에서 진행해야 하는 업무를 완전히 다 파악도 하기 전에 회의를 하는데 소통도 안되고 나 스스로도 무슨 말을 하는 건지 논리가 애매하게 표현되니 한번 더 거쳐서 통역을 통해 전달되는 것도 당연히 내용이 엉망일 수밖에.. 그래도 중간에 멈추거나 할 수는 없어서 끝까지 진행했다.
통상적으로 주간보고는 큰 이슈가 없는 한 30분 이내? 혹은 좀 길어도 1시간 이내는 마치는 편인데 이 날은 무려 2시간을 넘어서 마칠 수 있었다.
팀원들도 힘들었을 시간이지만 나로서도 상당히 당황스러운 시간이었다. 회의를 주관한 경험이야 셀 수도 없었고 그런 경험 중에는 영어 회의도 수많이 진행했었는데 이건 또 달랐다.
일단 중국어에 대한 이해도가 몇 달 집중 교육을 통한 지식습득과 실제 업무 적용에 대한 중국어의 갭이 너무 컸다. (그리고 그 갭은 4년 차인 지금도 충분히 만족할 만큼 채워졌다고는 장담하기 힘들다. )
다음으로는 중국 직원들의 업무에 대한 생각이나 스타일을 충분히 알지 못했다. 국적에 따른 문화적인 이유도 존재하고 거기에 경험도나 연령대가 비교적 차이가 나다 보니 사고방식에 대한 이해가 없이 결국 나 혼자 떠들어 대는 회의가 진행될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마지막으로는 너무 욕심을 부렸던 것 같다. 처음에는 서툴더라도 부딧치고 깨지고 그래서 극복하는 이런 성장 드라마를 한국인들은 특히 좋아한다. 그런데 분명하게 고려하고 구분해야 하는 건 중국어를 습득하는 과정은 그럴 수 있지만 업무는 업무대로 펑크가 나면 안 되는 상황에서 무작정 진행하다 보면 결국에는 못 보고 지나치는 일들이 생기게 된다.
그래서 임시로 공식회의는 통역이 가능한 친구에게 양해를 구하고 통역을 활용하기로 하였다. 그리고 의견을 전달할 때에는 가급적이면 간결하게 이야기하면서 전달하는 방식으로 진행했다.
그리고 원래도 회의는 그리 좋아하지 않았던 터라 요즘은 뚝딱 하면 활용할 수 있는 업무 공유를 위한 웹기반 시스템이 잘되어 있어서 회의는 점점 축소하고 웹상에서 의견을 주고받으며 피드백하는 구조로 변경하였다. 아무래도 중국어로 말하고 듣는 건 갈길이 멀어도 글로는 번역도 되고 이력도 남길 수 있다 보니 업무진행에 있어서는 누락 없이 할 수 있었고, 결과적으로는 중국 직원들도 회의도 줄고 빠른 피드백이 되면서 만족스럽다는 의견을 들을 수 있었다.
본의 아니게 첫 회의에서 생각과는 다르게 흘러가서 당황하는 바람에 MZ세대의 소위 스마트한 업무로의 전환이 이루어졌으니 오히려 전화위복이 된 셈인가?
중국에 주재원 혹은 사업등으로 업무를 병행해서 오는 분들이라면 업무 성과를 내기 위해서 결국 중국인들과 소통을 전제로 진행해야 할 텐데 중국어 실력 그리고 통역인원 활용 등을 적절하게 활용을 해야 업무도 그리고 본인의 중국어 능력, 두 마리의 토끼를 잡을 수 있을 수 있겠다. 너무 본인을 과대 평가 하지도 과소 평가 하지도 말고 적당하게 균형감 있게 적응해 보는 게 좋겠다. 우리는 일하러 중국에 온 거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