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폭주와 자유의 경계에서
내가 오토바이를 처음 탔던 건 초등학교 6학년 때였다.
남들보다 오토바이를 빨리 배우게 되었다. 스스로 오토바이에 이끌려 오토바이에 이때부터
푹 빠져 살았다.
그땐 오토바이가 너무도 최고로 멋져 보였다. 그리고 언제든 내가 원하는 곳으로 나를 데려다주고
언제든 지금의 상황에서 도망치고 싶어서였다.
집, 가난, 폭력, 현실… 어린 나에게 세상은 너무 좁고 숨 막혔다.
오토바이는 그런 나에게
처음이자 유일한 탈출구였다. 엔진 돌아가는 소리가 커질수록
내 가슴도 함께 뛰었다.
그 후로도, 중학교 때도, 고등학교 때도 나는 늘 오토바이를 타고 다녔다.
학생복을 입고 등교하면서도 나의 교통편은 오토바이였다.
길을 다니다 멋진 수입 오토바이가 보이면 넋이 나가서 구경하기도 했고 엔진소리와
배기음을 들으면 심장이 터질 것만 같았다.
방과 후에는 아르바이트를 하고 아르바이트도 끝난 밤늦은 시간에는 폭주를 뛰었다.
어둠이 깔린 도로 위, 수십 명이 떼를 지어 달릴 때면
그곳은 내 무대였고, 나는 그 안에서 유일하게 나 자신일 수 있었다.
죽는 게 무섭지 않았다.
오히려 그렇게 달리다 사고라도 나면,
"그게 내 운명이었겠지" 하고 끝낼 생각이었다.
그 시절, 나는 세상에 대한 분노와 억울함을 오로지 오토바이 속도로 풀어냈다.
밤이 되면 도로 위에 내 그림자가 길게 드리워졌고, 엔진 소리가 내 심장 박동을 대변했다.
스로틀을 당겨 속도를 올릴수록 나 자신을 증명하는 느낌이었다.
“오토바이를 탄 길 위에선 누구도 날 무시 못 해.”
“여기선, 내가 주인공이야.”
그렇게 어둠 속을 질주하다. 어느 날은 사고로 바닥에 나뒹굴기도 했고,
어느 날은 경찰의 추격을 피해 숨죽이며 골목에 숨어 있기도 했다.
하지만 그 모든 순간이, 오히려 살고 싶게 만들었다.
20살.
나는 용기를 내어 처음으로 오토바이 대회에 나갔다. 혼자 준비했고, 제대로 된 장비도
없었지만 나는 그 전국 경기대회에서 4위를 했다.
누구도 나를 응원하지 않았고 누구도 내가 그렇게 할 줄 몰랐지만
그날만큼은 내 자신이 내 손으로 만든 결과 앞에 작게나마 고개를 들 수 있었다.
“이렇게도 살아지는구나.”
나는 오토바이를 정비하기도 했지만 오토바이 종류와 기술에 대해서도 계속 파고 들었다.
엔진소리와 배기음만 들어도 어느브랜드의 어떤 기종인지 얼추 맞추는 단계까지 되었다.
그리고 나에겐 오토바이는 단순한 탈것이 아니었다.
내겐 인생 그 자체였고 자유의 상징이었으며 나 자신을 증명할 수 있었던 유일한 수단이었다.
하지만 동시에 그 자유에는 늘 죽음이 그림자처럼 따라붙었다. 주변의 지인이나 친했던 친구도
오토바이 사고로 운명을 달리하는 일이 가끔 생겼고 그리고 나는 점점 깨닫기 시작했다.
‘이대로만 달릴 수는 없다.’
‘언젠가는 멈춰야 한다.’
그러나 나는 오토바이를 절대 떠날 수 없었고 항상 곁에 두고 바이크 라이프를 살 수 밖에 없었다.
오토바이는 내 삶이자 인생이자 나의 유일한 동반자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