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처음 벌어본 돈의 무게
초등학교 6학년 무렵 우리 가족은 나라에서 지원해주어 국민임대주택 아파트
아주 작은 곳으로 이주하게 되었다.
처음으로 아파트라는 곳에서 살아보게 되어서 기분은 좋았다.
그러나 여긴 우리같이 못살거나 장애인들만 모아서 살 수 있게 해주는 곳
가난한 사람들만 모여있는 집단이 살고 있는 곳이나 다름없었다.
여기서 사귄 친구들도 가정환경이 좋지 않아 나와 비슷하거나 질이 아주 안좋은 친구들이 많았다.
어느날 주말 오전에 느즈막히 일어나 아파트 복도 밖 1층 화단을 보는데 하얀색 천으로
무언가가 싸여있는 것이 보였다.
“뭐지” 순간 아.. 저건 위에서 누군가가 투신한 시신이었다.
오전 이른 시간에 발견되어 급하게 흰색천으로 싸놓은 것이었다.
얼마후 구급대와 경찰이 와서 시신을 거두어 갔고 이런 시신을 본 것은 내인생에 두번째 였다.
사람이 죽은 모습을 본건 처음에는 초등학교 4학년 정도되던 시절, 전에 살던 집에 옆집 아저씨가 연탄가스를 마시고 누워있는 모습을 수습하는 과정에서 지나가다가 보고 충격을 먹었던 적이 있었다.
가끔 나를 보면 인사하고 미소를 지어주던 옆집 아저씨였다. 그랬던 그 사람이 저렇게 죽어있다니..
나는 이러한 것들을 경험하며 나는 세상에 맞서 나가고 있었고
남들보다도 아주 빠르게 어린아이지만 어른스럽게 살아갈 수 밖에 없는 환경이었다.
초등학교 6학년 즈음, 문득 나는 돈을 벌어야겠다는 생각을 스스로 하기 시작했다.
돈에 대해 자꾸 생각하게 되는 것은 환경 때문에 어쩔 수 없는 것도 있었지만, 어느 날은 이발소
갈 돈을 아낀다고 아버지란 사람은 내머리를 바리깡으로 잘라주겠다며 싫다는 나를 윽박질러
이윽고 바리깡으로 밀기 시작했고 그날 나는 순간 나의 소중한 머리카락이 다 잘려 나간 채 스님처럼 머리가 되고 말았다.
"내 머리카락..." 나는 눈물이 하염없이 흘렀다..
한 참 사춘기 시절이라 나는 정말 죽고 싶었고 이런 내 모습이 너무도 초라하고 없어 보여 미칠 것 만 같았다. 몇 일 동안 계속 눈물 흘리며 다녔다.
학교를 가서도 땡중이라고 놀림을 받았고 수많은 시선과 놀림에 내 마음은 더욱 외롭고 지쳐갔다.
또 어떤 날은 아버지가 술을 사오라고 심부름을 시켰는데 술을 사고 받은 잔돈 오백원짜리 하나를
오는 길에 잃어버렸다.
잔돈 어쨌냐는 물음에 나는 오다가 어딘가에 떨어뜨린 것 같다고 말했더니
거짓말을 한다며 갑자기 날라온 주먹과 폭행.. 한바탕 집에 또 난리가 났었다.
그 사건으로 나는 더욱더 아버지란 사람을 증오하고 있었다. “언젠간 가만두지 않을 테다.”
그래서 나는 더욱 돈을 벌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빨리 여길 벗어나고 싶어서 그리고 우리집에 어머니와 동생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이 커졌다.
그래서 무엇을 하며 돈을 벌 수 있을 까 생각하다가 주변에 이미 신문배달을 하는 친구가 있어
소개로 신문배달을 시작하기로 결심하게 되었다.
사람들이 아직 꿈을 꾸고 있을 시간.
새벽 4시.
나는 눈을 떴다.
아직 어린 나이였지만, 그 시간은 내 하루의 시작이었다.
어두운 방 안,
어머니는 나를 깨우는 대신 조용히 바라보셨다. 처음엔 몰래 몇번 새벽에 나갔었는데
눈치채신 어머니가 물었다 “혹시 너 새벽신문 배달하러 다니니?"
"네, 괜찮아요 하고 싶어서 가는거에요.”
그 뒤로는 아무말씀 없으셨다. 이른 아침부터 아이를 밖으로 내보내야 하는
그 심정을 나는 나중에서야 이해했다.
나는 입술을 깨물고 고개를 끄덕였다.
“괜찮아요, 엄마. 다녀올게.”
목도리를 두르고, 어깨에는 낡은 신문 가방을 둘렀다.
밖은 숨이 얼어붙을 만큼 차가웠다.
골목을 따라 안개가 자욱했고,
내 발걸음 소리만이 조용한 새벽을 깨웠다.
자전거는 삐걱거렸고,
손은 얼어붙은 핸들에 딱 달라붙은 것처럼 움직이지 않았다.
하지만 멈출 수 없었다.
신문은 매일 아침 정해진 시간에
정확히 문 앞에 놓여야 했고,
그게 바로 내가 지켜야 할 약속이었다.
어린 내가 책임졌던 ‘작은 세상’.
그건 단순한 배달 일이 아니었다. 새벽에는 약 2시간반 정도를 달렸고,
학교가 끝나고 오후에는 석간 신문도 3~4시간 정도씩 돌리기 시작했다.
우리 집, 우리 가족이 하루를 버티기 위한 전부였다.
그렇게 하루, 이틀,
한 달이 지났다.
첫 월급을 받던 날,
손에 쥐인 건 만원짜리 몇 장의 지폐뿐이었다.
하지만 그건 나에게 세상의 전부였다.
손이 덜덜 떨렸다.
이 돈은 ‘어린 아이’였던 나에게
어쩌면 ‘가장의 책임’을 처음 안겨준 증표였다.
집에 돌아와 어머니 손에 그 돈을 건넸다.
“엄마… 이거…”
어머니는 아무 말 없이 그 돈을 바라보다가
손끝으로 천천히 받으셨다.
그리고는 고개를 돌려 창 밖을 보셨다.
그때 나는 봤다.
어머니는 아무 말도 없이, 조용히 눈물을 흘리고 계셨다.
그 눈물을 본 순간,
내 안에서 뭔가가 철컥 하고 박혔다.
‘이제 나는 어른이 되어야 하는구나.’
‘이제부터 내가 이 집을 지켜야 하겠구나.’
그날 이후, 나는 단 한 번도 내 삶을 ‘아이처럼’ 대하지 않았다.
몸은 작았지만, 책임은 누구보다 컸다.
내가 벌어들이는 돈은 크지 않았지만,
그걸로 지켜내는 가족은 세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