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장. 영도출신의 콩가루 인생

– 바닷바람 속 유년기

by 콩가루두스푼

부산 영도.
그곳은 바다의 냄새가 늘 곁에 머무는 동네였다.
비가 오면 하수구 냄새가 골목을 따라 올라왔고,
비가 그치면 짠내와 습기, 그리고 오래된 벽돌집의 곰팡이 냄새가 뒤섞여 퍼졌다.

내가 태어난 곳은 그 동네에서도 가장 아래쪽에 있는 낡은 단칸방이었다.
방 한 칸, 부엌 하나.
화장실은 밖에 있었고, 샤워는 대야에 물을 받아 겨우 했다.

나는 그 작은 집에서 부모님, 그리고 여동생과 함께 살았다.
하지만 우리 가족은 ‘정상적인’ 가족이 아니었다.


부모님 모두 중증 장애를 앓고 계셨다.
어머니는 하반신 불수 지체 장애가 있었고,
아버지는 한쪽 다리를 심하게 절었다.
하지만, 그것보다 더 힘든 건, 아버지의 가정폭력이었다.

아버지는 술과 도박을 자주 했다.
그리고 술을 마신 날엔 늘 폭력을 휘둘렀다.
어머니에게, 그리고 나에게.


“야!, 너 지금 어디 가려고!”
“엄마… 괜찮아…?”


나는 늘 벽 한 켠에 숨어서,어머니가 맞는 소리를 들으며
두 손으로 귀를 틀어막곤 했다. 온몸이 얼어붙었다.
아버지에게 달려들고 싶었지만, 나는 너무 어렸고 너무 약했다.

한번은 어머니가 맞으며 안되겠다 싶었는지 도와달라고 내 이름을 울부짖으며

부르는데 나가지 못했다.

그 공포는 단순한 무서움을 넘어,
내가 살고 있는 이 집이 감옥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머니는 내게 따뜻한 분이셨다.
항상 웃으며 말씀하셨다.


“괜찮다, 괜찮다. 우리 아들 고생 많지.”


그 말을 들을 때마다, 더 미안했다.
내가 어머니를 구하지 못한다는 죄책감. 그게 내 유년기의 대부분이었다.

학교에 가도 친구들과 어울리지 못했다.
돈이 없어서 도시락 반찬이 부실했고, 가끔은 수돗가에 가서 물로 배를 채우는 일도 있었다.

남들처럼 학용품을 사지 못했으며, 운동화를 몇 년이고 신었다.


나는 항상 학창시절은 결식아동에 공부도 못하는 답안 나오는 학생이었다.

내가 초등학교 때는 급식이나 지원 이런게 잘 없던 시절이었는데,

선생님들이 십시일반 돈을 모아서 나와 같은 힘든 학생 몇 명을 불러 모아

점심을 제공해주셨던 것도 기억이 난다.


당시에는 구내식당도 없어서 선생님들도 도시락이나 나가서 식당에서 식사를 주로 하셨는데

우리에게 밥을 따로 챙겨주기 어려웠기에 중국집에서 매일 자장면이나 볶음밥을 배달시켜서

교무실 한켠 테이블에서 삼삼오오 모여 점심을 먹을 수 있었다.

그렇게 처음에는 먹기 힘든 자장면을 공짜로 먹을 수 있어서 너무 좋았지만,

계속 점심시간에 자장면을 먹으니 질리기 시작했다.


볶음밥으로도 먹기도 했지만 기름진 음식에 어린 소년의 위장이 받아주지 못했던 것이다.

결국 우리들은 한명, 두명씩 탈이 나기 시작했고 지켜보시던 선생님들도 안되겠다 싶었는지

학교앞에 백반집을 어떻게 구해서 거기서 식사를 할 수 있게 바꾸어주시기도 하셨다.

이후로는 탈은 나지 않았다. 가끔 김치찌개에서 조그만 벌레가 나오거나 했던 것 말고는 말이다.

하지만, 우린 아무렇지 않게 걷어내고 정말 맛나게 점심을 해결했었다.

그렇게 어떤 지원도 없던 시절 너무 감사하게도 선생님들의 도움으로 밥을 굶지 않고

초등학교 생활을 이어갔다.


어느 날은 학교 교실 맨뒤에 담임 선생님 책상이 있었는데, 다른 친구들은 자습과 수업준비 등을

시켜놓은 상태였는데 갑자기 선생님이 나를 잠시 뒷자리로 부르시더니 손 좀 보자고 하셨다.

나는 영문도 모른채 나는 선생님께 손을 내밀었고 선생님은 내 손톱이 새까맣게 길어있는

나의 손을 보시고는 아무 말씀없이 길게 자라있는 내 손톱을 깍아 주셨다.

손톱을 다깍고 나서는 나에게 살짝 500원을 쥐어주셨다.

나는 얼떨떨해서 인사만 드리고 다시 내 자리로 갔다.

그 선생님이 참 따듯하고 감사한 분이셨다.

그 때의 나는 어려서 아무 말도 드릴 수 없었지만 감사하기도 하고 부끄러운 마음이 교차했던 날이었다.

나는 수업 시간보다 쉬는 시간이 더 두려웠다.


왜냐하면 그땐 내가 ‘가난한 아이’라는 걸 감출 수 없었기 때문이다.

나는 어린 나이에 철이 들어버렸다.
누군가는 인생을 기대하며 살기 시작할 나이에,
나는 이 삶에서 어떻게든 탈출하는 법을 고민했다.


‘이 동네를 나가야 돼.’
‘이 집을 나가야 돼.’

‘나는 이렇게 살 사람이 아닌데 난 왜 이렇게 살고 있을까.’


그게 내가 꿈을 꾸게 된 최초의 이유였다.
무언가 되고 싶어서가 아니라,
무언가가 되지 않으면 여기서 죽을 것 같아서...

나는 어린 나이에도 이유 없이 살기 위해 생각을 하고 살기 위해서만 애를 썼다.

그것이 내 유년기에 생각하고 할 수 있었던 것 중 유일한 것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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