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임원이 된다는 것의 진짜 의미
어느 신문기사에서 본 내용인데, 직장인이 임원까지 될 확률이 1~2% 정도 밖에 안된다고 한다.
나는 임원이 되고 싶었다. 지방공기업에서는 평생 있어봐야 일반 직원일 수 밖에 없었고 나의 개인적인
발전은 기대하기 어려웠다.
공기업에서의 생활이 안정적이고 성과도 좋았지만, 나는 마음속 어딘가에 늘 갈증 같은 게 있었다.
정해진 틀 안에서, 정해진 답을 반복하는 삶이 나에겐 맞지 않았다. 늘 새로운 도전 그리고 좀더
인정받는 자리와 더 큰일을 해보고 싶었다.
바로 내 안의 도전본능과는 공기업의 업무와 일은 어딘가 맞지 않았다.
그리고 낮은 연봉으로 가족을 부양해야하는 부담감에 투잡이라도 해야 하나 고민하던 시기였다.
그러던 어느 날, 스카우트 제안이 들어왔다.
그곳은 바로 중견기업의 상장사였다.
전에 일하던 회사의 임원분께서 M&A를 통해 새로운 회사를 하나 인수하게 되어 함께 관리할 직원을 생각하시다 내가 생각나서 연락을 주신 것이었다.
그 회사는 인천 앞바다에서 바다골재를 생산하고, 여러 척의 선박을 운영하는 해양 산업 중심 기업이었다.
나는 바다가 있는 부산에서 태어나긴 했지만 한 번도 바다에서 일해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늘 보던 바다에서 일한다는 것은 너무도 매력적이었다. 그렇기에 더 끌렸다.
부산은 아니었지만 마치 부산에서 일하고 있는 듯한 느낌을 가지고 일을 할 수 있겠다 싶었다.
“육지에서 다져온 실력, 이제 바다 위에서 증명해보자.”
그렇게 나는 다시 한 번 낯선 땅을 선택했다.
새로운 직장에서의 나의 역할은 단순한 운영 관리자가 아니었다.
임원, 그것도 핵심 전략 실무를 총괄하는 위치.
바다 위에서 선박을 움직이는 회사였고 늘 해상사고, 인사사고 등 수많은 리스크가 있어
부담이 항상 따르는 책임감이 큰 업무들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것이 크게 어렵고 부담으로 느껴지지 않았다. 항상 나는 사원 과장급일때도 나의 회사처럼
책임감과 부담감을 갖고 일하는 것을 스스로 지키며 해왔기에 크게 차이를 느끼지 못했다.
이제 30대 중반정도 밖에 안된 사람이 중역을 맡아 일을 하는 것이 오히려 주변사람들이 신기해하고
낙하산 또는 친족아닌가 하는 생각들을 나를 본 사람들이 각자 하고 있을 뿐이었다.
처음엔 이렇게 젊은 사람이 여기를 총괄하는 사람이라고? 놀라는 모습과 소리도 많이 들었다. 하지만,
그런 논란이나 신기함은 오래가지 않았고 3개월 정도가 지나서 그자리에 맞는 사람이 일하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나는 자리잡았다.
이후로는 누구도 신기하게 생각하거나 어색해 하지않았다.
한번은 정박지에 정박하고 있는 우리 선박(바지선)을 한 어선이 새벽에 최고 속도로 추돌하는 사고가
있었는데, 이건으로 어선의 선원들이 많이 다치고 실명까지된 선원이 나와 보험처리와 구상권 청구
그리고 해난심판원에서 심판까지 받고 내용 증명을 보내는 등 모두 내가 책임지고 처리하고 대응을
하기도 했다.
이외에 관공서에서 바다골재 사업과 관련한 허가가 나오지 않아 수많은 업계사람들의 생존의 기로에
직면하기도 했고, 나는 빨간띠를 머리에 두르고 국회의사당 앞 그리고 청사 앞에서 시위를 하기도 했다.
그렇게 30대 중반의 젊은 나이에 임원으로서 책임과 역할을 위해 크나큰 노력을 하였고
자리가 사람도 만들지만 사람도 자기자리를 만든다는 것을 몸소 증명하기 위해 끊임없는 노력과 솔선수범
그리고 공부를 해왔다.
이후 사업부는 안정을 되찾고 또 다시 M&A가 시작되었으며, 나는 다시 몇년만에 새로운 회사를 관리하게
되었다.
새로운 사업을 관리하면서 사실상 더 복잡한 건 사람과 숫자, 구조와 미래를 움직이는 일이었다.
그리고 곧이어 추가 M&A 업무가 주어졌다.
기업의 외형을 키우고, 사업 영역을 넓히기 위한 정밀한 실사와 판단,
계약과 리스크 조정, 그리고 ‘사후 통합 관리’까지.
나는 그 안에서 하나씩, 새로운 회사를 맡게 되었다. 처음에 신규로 맡게 된 회사는 마케팅/프로모션 회사
관련 분야를 공부도 해봤고 업무도 조금 해본 경험이 있었지만 책임자로서는 처음 맡아서 일을 해보는
것이 었다. 브랜드 기획과 프로모션 전략이 어떻게 매출로 연결되는지를 수치로 분석했고,
감성의 사업을 이성으로 운영하는 법을 익혔다.
이후 식음료 회사 제조라인, 품질관리, 유통경로, 브랜딩까지
하나하나 살펴보고 ‘맛’이 아니라 ‘시장과 고객경험’을 파는 구조로 전환시켰다.
제품을 파는 게 아니라 이야기와 문화를 파는 구조,
그걸 실무로 만들어냈다.
그리고 투자금융사 및 감사 역할
자금 흐름, 펀딩 구조, 내부 리스크를 살펴야 했고
내부 통제와 감사 업무까지 겸하며
돈의 흐름과 조직의 투명성이라는
가장 복잡한 수학문제 같은 일들을 풀어야 했다.
감사위원으로서의 역할은 단순한 관리가 아닌 윤리적 균형감각의 시험대였다.
처음 접해보는 바이오 회사도 있었다.
과학과 사업이 만나는 가장 민감한 지점. R&D 중심 조직의 특성을 이해하고,
그들의 전문성을 존중하면서도 경영적 효율성과 성과 지표를 세워주는 것,
그건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었다.
정책이 아니라, 신뢰와 자료로 설득해야 하는 일이었다.
나는 어느덧, 여러 산업군을 넘나드는 ‘멀티 플레이어 경영자’가 되어 있었다.
하루는 선박 엔진을 둘러보다가, 다음 날은 바이오 회의실에서 신약 전략을 검토하고,
또 어떤 날은 마케팅 회사에서 브랜드 캠페인 회의를 주재했다.
혼란스러울 수 있는 이 복잡한 업무들 속에서도
나는 늘 같은 생각을 했다.
“본질은 같다.
결국 모든 조직은 사람과 숫자로 구성되고 그것을 정확하게 보고, 이해하고,
‘움직이게 만들 수 있느냐’가 핵심이다.”
그리고 최근, 나는 또 한 번 방향을 틀었다.
이번엔 소재·부품·장비, 소부장 분야의 전문 기업이었다.
기술력이 중요한 만큼 조직의 정밀함과 장기 전략이 절대적인 영역.
이곳에서 ESG 경영, 조직 혁신, 운영 효율화를 총괄하고 관련 자격증도 2개를 추가로 취득 하였다.
과거의 기술력과 현장의 감각, 중간의 전략 설계와 인사관리,그리고 임원으로서의 통합 운영 능력을 모두 모아서, 나는 지금 '가장 깊은 자리'에서 가장 정확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그리고 문득, 하루를 마치고 사무실 불을 끌 때, 나는 잠시 멈춰 혼잣말한다.
“가스통을 실은 오토바이에서, 여기까지 정말 잘 왔다.”
어릴적 평범하게 살고 싶다는 것이 꿈이었는데 그것을 이루었구나..
라고 말이다.
하지만 꿈은 이루었지만 그꿈이 언제까지 이어질지는 아무도 모르고 인생도 어떻게 될지 모르는 것이
사람의 운명이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인생을 만들어 갈수도 있지만, 가끔은 알 수 없는 것이 그 것이 바로 인생이라고 다시한번 느끼게 되는
계기가 생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