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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진석 Sep 20. 2024

나만의 잠재력을 실현하는 삶

내재적 동기의 중요성과 잠재력을 통찰하다.


 

'잘잘법'유튜브


심리학에서 유명한 실험 중에 원숭이 실험이 있는데, 실험에서 원숭이는 처음에 퍼즐을 맞추는 데에 순수한 기쁨을 느낀다. 그런데, 다음번에는 퍼즐을 맞추면 바나나를 보상으로써 준다.


 그러자, 원숭이는 그 뒤로 바나나를 안 주면 퍼즐을 안 푼다!


이 실험으로 인간을 미루어 봤을 때, 우리 인간도 내재적 동기와 외재적 동기로써

행동을 한다.


내재적 동기는 보상과 외부의 칭찬에 상관없이 마음속에서 우러나오는 즐거움으로 인해 생긴 동기이다.

외재적 동기는 외부의 칭찬, 보상으로 인해서 생긴 동기이다.




원숭이 실험을 통해서, 퍼즐을 맞추는 기쁨의 내재적 동기가 바나나라는 외재적 동기를 만나면 외재적 동기한테 지는 모습을 알 수 있다. 이 실험이 알려주는 깨달음은 우리가 처음에는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즐거워 하는 일도 보상과 칭찬 앞에서 무너질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가 태어날 때 호기심이 가득한 채로, 배움의 즐거움으로 공부를 하다가 중학교 고등학교에서 대학교 입시에 의한 외재적 동기로 바뀌어서 외부에 이유가 없으면 공부를 안 하는 것도 똑같은 이유에서이다. 율법에 매여서 종교행위를 하는 바리새인 같은 사람들도 마찬가지이다.




위 심리학 실험에서 밝혀진 사실이 우리의 삶 속에서도 이루어지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그렇기에, 우리는 어느 순간 외부에 의한 외재적 동기로만 살아가고 있진 않은가 생각해 보자.


 순수한 본연의 기쁨으로 내재적 동기를 통한 행동을 하며 살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해 보자. 우리가 이렇게 외부에 의한 삶을 살 때, 이미 수천 년 전에 예수님은 이 상황에 대해 말씀하셨다.


사람들이 정한 외재적 동기인 계명, 기준, 명령대로 살길 원하지 않으신다고. 그렇게 살면, 우리가 굉장히 힘들 것을 아시기 때문에 예수님의 가볍고 쉬운 멍에를 지고 마음의 쉼을 얻으라고 권유하신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

 이 구절이 독일어 성경에서는 “나한테 와서 배워라, 그리하면 너희들의 삶이 실현될 것이다.”라고 되어있다고 한다.


쭉 이어서 다시 풀어보면, “남이 만들어놓은 기준을 따르느라고 수고하고 짐 진 자 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들에게는 그런 걸 강요 안 하기 때문에 너희들이 쉬게 될 것이다. 나한테 와서 배워라. 그리하면 너희들의 삶이 충실히 실현될 것이다.” 


그니까 예수님이 원하시는 우리의 삶은 우리의 잠재력이 실현되는 삶이다. 근데, 그 잠재력을 누가 주는지는 학문이 설명할 수 없다. 우리는 잠재력을 주신 이가 하나님이고, 이 잠재력을 이 땅에서 충분히 실현해 나가시길 원하시는 것이다.




이 잠재력을 실현하지 못하는 건 두려움 때문인데, 이 두려움을 이길 수 있는 것은 믿음이다. 하나님을 믿는 것이다. 하나님이 우리가 힘들 때 잠재력을 실현하는 힘을 주신다는 것을 믿는 것이다. 그래서, 결론적으로 심리학이 밝힌 이 원리가 이미 2000년 전에 예수님이 다 알려주신 것이라는 것이다. 너무 놀랍다. 모든 학문의 본질은 말씀에서 온다는 것이 믿어진다.


그리고, 나의 잠재력이 뭔지 모르겠으면, 혼자 있는 시간에서 외부적인 보상이 없을 때 내가 진정으로 뭘 원하는지 알아가는 시간을 가지면 알게 되어있다. 성령님께서 네가 이 땅에서 이런 걸 해내기 위해서 온 거란다.라고 알려주실 것이다. 마음에 샘솟듯이 알게 될 것이다.


 내가 외부에 보상이 안 주어진다고 하더라도 그 행동을 하는 것만으로도 즐거운가?

심리학에서는 이것을 통찰이라고 말한다.



Behind Story


 위 내용을 바탕으로 나의 느낀 점을 정리해보자면, 일단 나는 아토피로 인해서 글쓰기를 즐겨하기 시작했는데 이 글 쓰는 행위가 혹시 나의 잠재력이 아닐까 생각이 든다. 글쓰기를 통해서 나의 생각이 정리되고, 그 내용을 바탕으로 신앙이 성숙히 자라나고, 주변인들에게 나눔까지 이어갔으며, 이웃들의 마음을 공감하고 이해하는 자세를 얻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토피 치료 때부터 쭉 이어 쓴 이유도 글 쓰기가 나에게는 자연스럽고 즐거운 행동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영상의 원숭이 실험처럼 외부의 환경에서의 동기가 생겨서 내재적 동기가 사라진 것처럼, 이것을 주의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만약, 그래서 내가 좋아요 수와 댓글 때문에 글을 올린 것이라면 나 스스로 경계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내재적 동기가 희미해져 갈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이 글쓰기로 인해서 직업에 대한 비전도 최근에 고민하고 있는데, 작가라는 직업과 기독교 심리 상담 전문가라는 직업을 하면서 살아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고 있다. 주변에 심리상담사분이 잘할 것 같다고 추천해 주시기도 했고, 내가 이 직업의 길을 걷고 싶다고 했을 때 다들 잘 어울리고 잘 해낼 것 같다고 해주셨기 때문이다. 나 또한 그렇게 생각했기에 자세히 알아보고 있던 중 이 영상을 본 것이다.


 그래서, 나온 결론이 직업 또한 세상의 기준이니 여기에 매여서 살지 말자는 것이다. 그러니까 직업 자체에 소망과 목적을 가지고 공부하고 노력할 것이 아니라, 먼저,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글 쓰는 흥미와 공감 능력으로 ‘사람’과 어떻게 소통하며 일을 할 것인가가 목적이 되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즉, 내가 이 땅에 부르심을 받은 이유는 아직 확실치 않지만 [믿음과 동행한 글쓰기를 사용하여, 힘들어하는 사람들, 도움이 필요한 이들과 글과 대화로 소통하는 상처 입은 치유자]로 사용되기 위해 이 땅에 온 것 같다.


 이렇게 나의 창조목적을 정의해 보니, 내가 어떠한 직업에도 매일 필요가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내가 정의한 문구대로라면, 전공을 살려 취직하든, 정말 무슨 직업을 갖든 간에 그 직장 공동체에서 삶의 예배를 드리는 사람이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럼, 충분히 잠재력을 실현하며 사는 것이고, 직업으로서 잠재력을 실현하는 것은 아니어도, 일상가운데서 주님의 일을 도맡아 할 수 있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그래서, 직업, 공부에서도 자유함이 뭔지 알 수 있었고 깨달을 수 있었다.


내가 글을 쓰는 이유도 어떻게 보면 보는 이들이 내 글을 통해 신앙이 성숙해지고 도움을 받길 원하는 마음, 도움이 되어 뿌듯한 마음에서 이지, 나의 필력을 드러내기 위한 수단으로써 쓴다면 하나님이 주신 잠재력을 실현하는데 방해가 될뿐더러, 그러한 행위에 매이게 되는 원인이 될 것이다. 그래서, '수고하고 짐진자 들아 다 내게로 오라' 하시는 주님을 믿음으로써 두려움을 이기며 나아가기로 결단했다.


 이제는 더 이상 나에게 직업, 돈, 세상의 기준은 중요치 않다!



다음 편 예고: 대차고 후련하게 실패하자!




https://youtu.be/J61_9 BuBdog? si=SanihJMpA-Q7 rqA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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