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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끄적쟁이 Oct 24. 2024

조금만 더 슈퍼맨이고 싶다.

위급할 때, 제일 먼저 찾는 사람.

 일을 하고 있는데 전화가 온다. 내가 일 하는 곳은 철강회사다. 위험한 직종이기 때문에 작업 중에는 전화를 바로 받을 수가 없다. 아차! 하는 순간 병원행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작업 중 오는 전화가 반갑게 느껴지지 않을 때가 많다.

 한참 진동이 울리던 폰이 멈췄다가 다시 울리기 시작한다. 급한 전화인가 하는 생각에, 같이 일하는 동료에게 전화를 받는다고 손동작으로 알려주고는 조용한 곳으로 이동했다.


 전화를 보니 딸의 전화였다. 보나 마나 또 용돈 떨어져서 전화한 것 같았다. 이 녀석이 오늘은 어떤 핑계를 대면서 아양을 떨지 생각하면서 무뚝뚝한 말투로 받았다.

"머여."

"으아앙~아빠. 손에서 피가..  컥.. 컥. 안 멈춰.. 흐앙~"

거의 숨이 넘어갈듯한 목소리였다. 우는 소리 때문에 머라고 떠드는지 들리지도 않았다. 무슨 주문을 외우듯 이상한 울음과 웅얼거리는 소리뿐. 일단은 침착하라고 몇 번이고 이야기를 했다.

"뚝! 침착하게. 어떻게 얼마나 다친 거야? 그만 울고 머라는지 모르겠으니까."

울음을 참는지 꺽꺽 거리는 소리가 들려왔고, 천천히 이야기를 시작했다.

"수박을.. 컥.. 자르다가 손가락을 베었어.. 훌쩍.."

아주 콧물을 들이마시면서 이야기를 하는 딸. 그리고 그 대답은 어이가 없었다. 수박을 자르는데 왜 손가락을 같이 자르려고 한 건지.

"많이 베였어? 일단 마른 수건으로 꽁꽁 싸매고 있어. 그래야 멈추니까."

"응.. 근데.. 피가 안 멈춰.. 으앙~"

다시 울기 시작하는 딸 목소리에 혹시 너무 깊게 베여서 그런 건지 걱정이 되었다. 상처를 직접 볼 수 있으면 좋을 텐데. 전화할 정도면 괜찮은 정도라는 것인데. 불안해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머릿속이 복잡했다. 일단은 딸에게 안심이 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최우선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빠, 금방 갈게."

 

 현장으로 복귀해서 사정을 이야기하고 집으로 향했다. 다행히 한적한 도로. 총알을 타고 갔다는 표현이 맞을 것이다. 다행히 회사와 멀지 않기에 20분 만에 도착했다. 집에 도착하고 보니 여기저기 피 묻은 수건, 휴지 뭉치들이 널브러져 있었다. 딸은 주방 식탁에서 쭈그리고 앉아서 울고 있다가 나를 보고는 대성통곡을 했다.

"아빠~~ 어떡해~~"

달려오는 딸을 달래며 식탁에 앉아 조심히 손을 감싸고 있는 피 때문에 검게 물든 수건을 걷었다. 피가 잔뜩 묻은 수건을 천천히 치우니 손가락이 보였다. 검지손가락이 베었는지 그곳에서 베인 상처모양대로 피가 흘렀다. 딸은 소리를 지르며 기겁하고 고개를 돌렸다. 나는 조심히 피를 닦아가며 베인 깊이와 넓이를 확인했다. 깊이는 뼈가 보이지 않지만 깊었고, 1.5Cm 정도의 길이만큼 찢어져 있었다. 다행히 손가락이 잘리진 않았다. 뼈도 안 보이고, 신경만 다치지 않았으면 하는 생각을 했다. 다시 수건으로 손을 감싸고 딸에게 꽉 잡도록 했다. 그리고 어쩌냐는 듯한 얼굴로 쳐다보는 딸에게 대답을 해주었다.

"손가락 잘렸어."


 장난치지 말라고 발길질하는 딸을 차에 태워 병원으로 향했다. 이제야 마음이 조금 안심이 되는지 울연서도 미소를 지으면서 병원 가면 어떤 치료를 받느냐고 이것저것 물어보았다. 그런 딸을 보면서 이제는 살만 한가보다는 듯 비아냥 거리면 대답을 해주었다.

"의사 선생님이 진단하고 꿰매던지, 아니면 잘라내던지 하시겠지~ 속살도 찢어졌으면 안에도 꿰매고 밖에도 또 꿰매겠지~ 아빠가 의사냐!?"

주둥이가 잔뜩 나와서 조용해진 딸에게 계속해서 잔소리를 했다.

"응? 왜? 아주 싹둑 자르지 그랬어? 또 휴대폰 보면서 칼 사용했지? 그리고 무서울 정도로 위급하면 119에 전화를 먼저 해야지. 그래야 빨리 치료받고 병원 가지. 아빠 보다 100배 빠르다고 이야기했지! 으잉? 아빠가 슈퍼맨이냐? 모든 걸 다 해결할 수 없어."

계속되는 잔소리에 딸은 주눅이 들었는지 대꾸가 없었다. 창밖만 쳐다보는 딸에게 대답 안 하냐고 뒤통수를 툭툭 치며 장난을 걸었다. 그런데 딸의 대답은 장난을 그만두고 조용히 운전을 하게 만들었다.


"몰라! 아빠밖에 생각 안 났단 말이야."



 중학생이면 자신의 부모가 어렸을 적의 모든 것을 알고 모든 것을 해내는, 마치 슈퍼맨과 같은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는 나이이다. 그런데도 나는 딸 에게 제일 먼저 생각나는 사람. 의지하고 믿을 수 있는 사람. 이런 것이 아빠 구나. 그러면서도 아이러니하게, 나는 딸에게만큼은 조금 더 슈퍼맨이고 싶기도 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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