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안 성환읍 외딴 과수원의 고요는 요란한 사이렌 소리에 갈기갈기 찢겨나갔다. 민성이 지원 요청을 하고 채 30분도 지나지 않아, 여러 대의 순찰차와 강력계 형사들, 그리고 국과수 팀까지 순식간에 현장을 에워쌌다. 민성이 지하 주차장에서 제압한 조직원 다섯 명과 면허 취소 의사, 그리고 주택 내부로 침입했다가 제압된 추가 조직원 세 명은 꼼짝없이 묶인 채 끌려 나왔다.
강력계 2팀 팀장인 최 팀장이 민성에게 달려왔다.
"강 형사! 아니, 대체 여기서 무슨… 자네 혼자 이걸 다 해치웠다고?"
최 팀장의 눈은 믿기지 않는다는 듯 크게 뜨였다. 집 안과 지하 주차장의 난장판, 그리고 초죽음이 되어 묶여 있는 여덟 명의 건장한 남자들 광경은 베테랑 형사인 최 팀장에게도 충격적이었다. 민성의 얼굴은 흙먼지와 땀범벅이었지만, 그의 눈빛은 여전히 이글거렸다.
"지하에 수술실이 있습니다. 불법 장기 적출 현장입니다. 시신은 없습니다. 장기만 발견되었습니다."
민성의 보고에 최 팀장의 얼굴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국과수 팀이 급히 지하 수술실로 향했고, 플래시 불빛이 어둠을 가르고 차가운 수술대 위를 비췄다. 비릿한 피 냄새와 함께, 얼음 채반 위에 놓인 인간의 장기들이 그 추악한 민낯을 드러냈다. 현장을 지켜보던 형사들의 얼굴에는 구역질이 치밀어 오르는 듯한 표정이 역력했다.
민성은 김 씨의 흰색 SUV 차량 번호를 최 팀장에게 보고하고 즉시 추적을 요청했다. 동시에 제압된 조직원들의 얼굴을 하나하나 살폈다. 그들의 영적 지문은 한결같이 냉담하고 무감각했다. 일반적인 범죄 조직원에게서 느껴지는 탐욕이나 공포 대신, 마치 오랜 시간 훈련받은 듯한 기계적인 공허함이 지배적이었다. 이들의 눈빛 속에는 인간적인 고뇌나 망설임 따위는 존재하지 않았다. 그저 지시에 따라 움직이는 도구 같았다.
날이 완전히 밝아올 무렵, 현장 조사는 한창이었다. 최 팀장은 민성을 따로 불러세웠다.
"강 형사, 자네 정말… 대단하군. 자네의 육감 덕분에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범죄 조직을 잡았어. 하지만… 이놈들, 입이 너무 굳어." 민성은 최 팀장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예상했던 바였다.
경찰서로 이송된 조직원들과 의사에 대한 심문이 시작되었다. 민성은 김 씨에게서 정보를 얻지 못했으므로, 이들로부터 김 씨의 정체와 배후에 대한 정보를 캐내야 했다. 하지만 그들의 입은 철옹성 같았다.
첫 번째 심문 대상은 면허 취소 의사였다. 그는 수술용 가운 대신 환자복을 입고 취조실에 앉아 있었다. "이봐요, 이정식 씨. 당신은 의사 면허가 정지된 사람입니다. 그런 당신이 이런 불법적인 장기 적출 수술을 왜 한 겁니까? 돈 때문입니까?" 민성의 질문에 의사는 고개를 들지 않았다. 그의 영적 지문은 공포에 질려 있었지만, 그 바닥에는 알 수 없는 맹목적인 복종심 같은 것이 느껴졌다. "…저는… 그저 시키는 대로 했을 뿐입니다. 김 씨가… 김 씨가 시켰습니다." "김 씨? 김 씨가 누굽니까? 어디 사는 사람입니까? 여기 피해자들은 어떻게 된 겁니까?" 민성이 추궁하자 의사는 갑자기 온몸을 부르르 떨기 시작했다. "모릅니다… 전… 정말 모릅니다… 그저… 시키는 대로… 하지 않으면…!" 그는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하고 입술을 앙다물었다. 고문에 가까운 협박을 당한 흔적이라도 있는 듯, 공포에 질려 있었다. 그 뒤로는 오직 "모른다"는 말만 반복하거나 묵비권을 행사할 뿐이었다.
다음은 조직원들의 차례였다. 신분 조회를 해보니 의외의 결과가 나왔다. 이들 중 두 명은 과거 폭력 전과가 있는 용역 깡패 출신으로 파악되었으나, 나머지 여섯 명은 아예 신분 등록조차 되어 있지 않았다. 마치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유령과도 같았다. DNA 정보도, 지문 정보도, 그 어떤 기록도 남아 있지 않았다. 최첨단 과학 수사 시스템조차 이들의 존재를 입증하지 못했다.
"이봐요, 당신들. 신분증도 없어? 대체 정체가 뭐야?" 민성의 질문에 조직원들은 그저 텅 빈 눈으로 허공을 응시할 뿐이었다. "김 씨가… 저희를 고용했습니다. 돈을 주고요." "어떤 돈? 통장? 신분증은? 어디서 왔어? 부모님은?" "모릅니다… 김 씨가 시켰습니다. 돈은 현금으로 받았습니다." 이들의 대답은 마치 사전에 정해진 듯 일률적이었다. 그들의 영적 지문은 마치 흙먼지가 쌓인 낡은 창고처럼 아무것도 읽을 수 없는 불명확한 상태였다. 깊이를 알 수 없는 공허함이 느껴졌다. 선우메디컬에 대해서는 자신들은 아무것도 모른다는 말뿐이었다. 김 씨의 정체나 그의 지시에 대한 더 이상의 정보는 얻을 수 없었다. 모두가 일관되게 '김 씨가 시키는 대로 했다'는 말만 되풀이하며 묵비권을 행사했다. 그들의 입은 마치 자물쇠로 잠긴 듯 단단히 닫혀 있었다.
2. 그림자 속 기업, 선우메디컬
수사팀은 수사망을 좁혀가기 시작했다. 민성이 성환읍 현장에서 찾아낸 의사의 휴대전화에서 발견된 '선우메디컬'이라는 이름이 모든 의심의 중심에 섰다. 경찰 상층부에서는 처음에는 난색을 표했지만, 불법 장기 적출 현장의 충격적인 증거들과 검거된 조직원들의 미스터리한 신분은 더 이상 이 사건을 덮을 수 없게 만들었다. 민성에게는 비공식적인 수사팀을 꾸릴 권한이 주어졌다. 그는 즉시 선우메디컬에 대한 조사를 시작했다.
선우메디컬. 처음 접하는 이름이었지만, 검색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이 회사는 놀랍게도 불과 5년 전에 설립된 신생 의료 제약 회사였다. 하지만 그 성장 속도는 경이로울 정도였다. 설립 3년 만에 코스닥 상장에 성공했고, 주가는 연일 고공행진을 거듭하며 재계의 주목을 한 몸에 받고 있었다. 제약뿐만 아니라, 첨단 의료 기구 개발, 그리고 병원 인수 및 운영에까지 사업 영역을 공격적으로 확장하고 있었다. 대기업의 계열사라고 해도 믿을 만큼 거대한 규모와 자본력을 자랑했다. 각종 언론에서는 선우메디컬을 '미래 의료의 혁신을 이끌 차세대 유니콘 기업'이라며 칭송하고 있었다. '생명 공학의 선두 주자', '인류의 건강한 삶을 위한 투자' 등의 화려한 수식어가 따라붙었다.
"이런 회사가… 어떠한 이유로 장기 밀매 같은 위험한 범죄를 저지르는 것인가?" 민성은 의문에 휩싸였다.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았다. 막대한 돈과 명예를 거머쥔 거대 기업이 굳이 목숨 걸고 이런 지하 범죄에 연루될 필요가 있을까? 설마 단순한 '돈' 때문일 리 없었다. 이들에게는 돈보다 더 중요하거나, 더 큰 목적이 있을 터였다. 아니면 이 모든 것이 선우메디컬의 일부 직원의 일탈이거나, 회사가 알지 못하는 은밀한 그림자 조직의 활동인 걸까? 민성의 촉은 그렇게 단순한 문제가 아님을 속삭였다. 의사의 휴대전화에서 발견된 메시지, '선우메디컬'이라는 이름, 그리고 '붉은 점'의 의미가 민성의 뇌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민성은 선우메디컬이 내세우는 화려한 홍보 문구 뒤편에서 '차가운 이질감'을 느꼈다. 영적 지문을 통해 회사 관계자들의 표면적인 성공 뒤에 가려진 '메마른 욕망'과 '인간성의 부재' 같은 것을 읽어내려 애썼지만, 거대한 기업이라는 시스템 속에서는 개개인의 영적 지문이 너무나 희미하게 흩어져 제대로 읽어낼 수 없었다. 마치 뿌연 안개 속을 걷는 기분이었다.
한편, 경찰은 성환읍 지하 현장에서 압수한 증거물을 토대로 실종된 김정수, 이수진, 윤지혜 외에도 여러 명의 신원 불명 피해자가 더 있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지하 수술실에서는 약물과 마취제, 그리고 수술 기구 등이 대량으로 발견되었지만, 인체 조직의 흔적은 매우 제한적이었다. 마치 완벽하게 모든 증거를 인멸한 듯이.
민성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실종자들의 시체는 아직도 발견되지 않고 있었다. 지하 현장에서는 장기들만 발견되었을 뿐, 몸뚱이는 어디로 사라진 것일까? 이 조직이 단순히 장기를 적출하는 것을 넘어, 시체까지도 완벽하게 처리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뜻인가? 아니면 장기를 적출당한 희생자들의 시신이 또 다른 형태로 활용되는 것일까? 민성의 뇌리에는 김정수의 마지막 영적 잔상, 즉 차가운 메스 아래 비명을 지르며 모든 의지와 존재 자체가 흔적도 없이 지워지는 처절한 몸부림이 다시 한번 생생하게 떠올랐다.
김 씨의 도주와 제압된 조직원들의 미스터리한 침묵, 그리고 베일에 싸인 선우메디컬의 존재는 민성을 더욱 깊은 혼란 속으로 밀어 넣었다. 그는 이 거대한 그림자 조직이 단순한 범죄 단체가 아님을 직감했다.
3. 검은 유리탑의 아침, 그리고 베일 속의 대표
민성이 성환읍의 처절한 현장에서 지원 병력과 함께 밤샘 조사를 이어가고 있을 무렵, 아산시 도심의 가장 높은 빌딩, ‘선우메디컬’의 검은 유리탑에는 고요하고 차가운 아침이 찾아오고 있었다. 눈부신 햇살이 반사되는 건물의 외벽은 첨단 기술과 미래 지향적인 이미지를 한껏 뽐냈지만, 그 안에는 깊은 어둠이 숨겨져 있었다.
오전 7시, 선우메디컬의 대표 '송민우'의 차량이 지하 주차장에 미끄러져 들어왔다. 최고급 세단이었다. 운전기사가 뒷좌석 문을 열자, 그가 모습을 드러냈다. 서른 후반에서 마흔 초반으로 보이는 그는 완벽하게 재단된 다크 그레이 쓰리피스 슈트를 입고 있었다. 걸음걸이 하나, 몸짓 하나에도 흐트러짐 없는 완벽주의가 묻어났다. 하지만 그의 얼굴에는 흔한 미소나 일말의 감정조차 읽을 수 없었다. 마치 살아있는 인형처럼 완벽하게 통제된 표정. 냉소적인 눈빛과 살짝 치켜 올라간 입꼬리는 그를 본능적으로 불편하게 만들었다. 세상의 모든 감정이 필터링된 듯한 차가운 인상. 종종 사이코패스를 연상케 하는 그런 얼굴이었다.
로비를 가로질러 전용 엘리베이터에 오르자, 엘리베이터는 멈춤 없이 펜트하우스 층으로 그를 데려다주었다. 고요한 복도를 지나 그의 집무실 문이 열렸다. 집무실 안은 첨단 디자인과 예술 작품으로 가득했지만, 그 어떤 온기도 느껴지지 않는 차가운 공간이었다.
책상에 놓인 커피조차 식을 새 없는 이른 시간. 송민우는 자신의 방에 김 씨가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다는 듯, 아무런 동요 없이 방으로 들어섰다. 창문 너머로 아산 시내가 발아래 펼쳐졌다. 도시의 모든 것이 그의 지배 아래 놓인 듯한 착각마저 불러일으키는 풍경이었다. 그는 자신의 전용 의자에 앉아 손짓 하나로 김 씨에게 앉으라는 시늉을 했다.
김 씨는 어젯밤 민성에게서 필사적으로 도망쳐 겨우 몸을 숨긴 상태였다. 그의 얼굴에는 불안감이 역력했지만, 애써 넉살 좋은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마치 자신의 실수를 능청스럽게 넘어가고 싶어 하는 듯한 태도였다.
"회장님, 회장님께서 일찍 나오실 줄 알았으면, 커피라도 한잔 타 놓을 걸 그랬습니다. 이놈의 제가… 하하." 그는 웃음기 없는 송민우의 얼굴을 보고도 억지로 웃음을 지어 보였다. 목울대가 바싹 타들어 가는 느낌이었다. 어젯밤의 지옥 같은 상황이 그의 뇌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김 씨는 분명 민성이 제압한 조직원들과 의사가 묶여 있는 광경, 그리고 민성과 침입한 조직원들이 뒤엉켜 격렬하게 싸우는 난장판을 멀리서 목격했다. 민성의 비인간적인 싸움 실력에 그는 극도의 공포를 느꼈고, 곧바로 그곳을 벗어났다. 그가 끌고 갔던 두 대의 차량 중 하나는 그가 운전했고, 다른 한 대는 나머지 조직원이 운전하여 무사히 도망쳤다.
송민우는 아무 말 없이 김 씨의 눈을 응시했다. 그의 시선은 김 씨의 불안한 눈빛과 마주쳤지만, 송민우의 눈에는 아무런 감정의 동요도 없었다. 마치 짐승을 바라보는 듯한 무감각한 시선이었다. "어젯밤… 일이 있었습니다." 김 씨는 더듬더듬 말을 이었다. "현장이… 발각되었습니다. 어떤 형사가… 혼자서… 저희 애들을 전부 제압했습니다. 그놈들이 제압되어 묶여 있는 것을 보고는… 납품을 진행하기가 어려울 것 같아… 제가 직접 차를 돌렸습니다." 김 씨는 필사적으로 자신의 대처가 '현명했다'고 주장하려는 듯했다. 그가 땀을 삐질삐질 흘리며 간신히 보고를 마쳤다. 송민우는 여전히 아무런 표정 변화 없이 앉아 있었다. 김 씨는 회장의 얼굴에서 어떤 분노나 실망감을 찾아보려 애썼지만, 그저 텅 빈 시선만이 그를 짓눌렀다.
송민우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 창가로 다가갔다. 아산 시내의 전경이 그의 눈동자에 비쳤지만, 그 시선은 아무것도 담고 있지 않은 듯했다. "혼자서 여덟 명의 조직원과 의사를 제압하고 현장을 확보했다고요." 송민우의 목소리에는 드물게 미세한 흥미가 서려 있었다. 평소 감정 변화를 찾기 힘들던 그에게서 나타난 이 이질적인 호기심은, 오히려 김 씨의 등골을 더욱 서늘하게 만들었다.
< 송민우, 강민성 형사를 고민하다. >
송민우는 창밖을 응시하며 손가락으로 유리창을 가볍게 두드렸다. '강민성.' 그는 자료실에서 추출한 강민성의 프로필을 떠올렸다. 탁월한 범인 검거율과 뛰어난 직감, 그리고 예상을 뛰어넘는 육체적 능력. 그의 보고서 곳곳에 불가능해 보이는 추론과 행동들이 기록되어 있었다. 평범한 형사의 범주를 넘어선 이 인물이 과연 우연히 우리의 꼬리를 밟은 것일까, 아니면… 그의 능력은 우리가 미처 파악하지 못한 영역일까. 어떤 방해물도 용납될 수 없는 그의 계획에, 이 예측 불가능한 변수, 강민성 형사는 분명 성가신 존재였다. 송민우는 강민성이 더 깊이 파고들어 오지 못하도록, 어떻게 그의 수사망을 끊어내고, 우리 조직의 그림자를 완벽하게 가릴 수 있을지 냉철하게 계산하기 시작했다. 그의 차가운 눈빛 속에는 번개 같은 섬광이 스쳤다.
"꼬리가 밟힐 것 같으면… 없애는 게 제일 좋은 방법 아닌가요?" 그의 목소리는 지극히 차분했지만, 김 씨의 뇌리에 번개처럼 섬뜩한 감각을 선사했다. '없앤다'는 말에 그의 얼굴에서 핏기가 가셨다. 송민우의 시선이 느리게 김 씨를 향했다. 그의 눈동자는 깊이를 알 수 없는 차가운 심연 같았다. 김 씨의 등줄기에 식은땀이 흘렀다.
"허억… 회장님… 죄… 죄송합니다… 하지만… 제가 아니면… 회장님의… 그… 비밀스러운 일들을 처리할 만한… 그런 인물은…" 김 씨는 거의 울부짖듯이 자신의 존재 가치를 어필하려 애썼다. 그의 영혼 깊은 곳에서 죽음에 대한 원초적인 공포가 민성에게서 느껴진 '붉은 실'처럼 타올랐다.
송민우는 잠시 김 씨를 응시하다가, 다시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김 씨의 두려움에 떠는 표정과 얼굴에 식은 땀이 흐르는 것을 본 것이지만, 그에게는 아무런 감정적인 동요도 없는 듯했다. 길고 섬세한 손가락으로 창가의 먼지를 스치는 그의 움직임은 마치 조각상처럼 완벽했지만, 어딘가 차갑고 비인간적이었다. 잠시 생각에 잠긴 듯 고요한 시간이 흘렀다. 김 씨의 심장이 발뒤꿈치까지 내려앉는 듯했다.
"그래도… 김 씨는 재주가 많으니까요." 송민우는 불현듯 뒤돌아보며 나지막이 말했다. 그의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걸렸지만, 그것은 따뜻함과는 거리가 먼, 계산적이고 싸늘한 미소였다. 마치 상대방을 꿰뚫어 보는 듯한 날카로움이 그 미소 뒤에 숨겨져 있었다. "들키지 말고… 잠시 숨어 있으세요." 그의 마지막 한마디는 구원처럼 들렸지만, 동시에 더 큰 덫처럼 김 씨의 영혼을 짓눌렀다. 김 씨는 고개를 숙여 자신의 처분을 받아들였다. 송민우의 냉혹한 시선은 김 씨의 뒤를 쫓듯 따라붙었고, 그의 머릿속에서는 이미 새로운 '수확'과 '처리' 계획이 완벽하게 정리되고 있었다.
4. 일상의 가면, 혹은 또 다른 혼돈
민성이 성환읍의 처절한 현장에서 지원 병력과 함께 밤샘 조사를 이어가고, 송민우 대표의 유리 궁전에서는 차가운 아침 공기 속 섬뜩한 대화가 오고 가던 그 시각. 민성 가족의 또 다른 축인 호연과 미나는 아산 시내의 한 고등학교에서 다시 일상이라는 이름의 전쟁을 치르고 있었다. 무학산에서의 특별한 수련과 영적인 경험은 잠시 접어둔 채, 여느 평범한 학생들처럼 교복을 입고 책상에 앉았다. 물론 '평범하다'는 말이 이들에게 통할 리는 없었지만.
호연은 무학산에서의 경험이 더해진 탓인지 전보다 한층 차분하고 깊어진 모습을 보였다. 친구들과 어울리는 데 큰 어려움은 없었다. 오히려 특유의 명랑함과 알 수 없는 신비로운 분위기 덕분에 조용히 따르는 친구들도 생겼다. 쉬는 시간마다 조용히 책을 읽거나, 때로는 칠판 앞에서 염동력의 감각을 떠올리며 몰래 작은 물건들을 움직이는 연습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의 속에는 언제나 평범한 척 연기하는 것에 대한 피로감이 쌓여 있었다.
그러나 미나는 달랐다. 무학산에서 내려온 이후, 그녀의 중2병은 마치 만개한 꽃처럼 활짝 피어났다. 이제 겨우 고작 열일곱 살의 소녀인 그녀는 세상을 향한 반항심과 자신만의 세계에 대한 고집으로 똘똘 뭉쳐 있었다. 말투는 툭하면 삐딱했고, 친구들의 사소한 장난에도 짜증 섞인 반응을 보이기 일쑤였다. 학교 앞 편의점에서 담배를 피우다 순찰 중이던 선생님에게 적발된 적도 여러 번이었다.
사실 미나의 이런 '싸가지 없는' 행동에는 이유가 있었다. 바로 몇 달 전 학교 전체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소문 때문이었다. 학교 앞 으슥한 골목길에서 담배를 피우다 정체불명의 괴한들에게 납치될 뻔했던 사건이 있었다. 그때, 미나의 내면에 잠재되어 있던 장군신의 신명이 예상치 못하게 폭주했다. 그녀의 눈은 번뜩였고, 평소와는 전혀 다른 섬뜩한 목소리로 괴한들을 물리쳤다. 그 모습은 학생들의 휴대폰 카메라에 고스란히 찍혔고, 학교 전체에는 "미나에게 귀신이 빙의되었다", 혹은 **"미나가 무당이 되었다"**는 소문이 삽시간에 퍼져나갔다. 미나는 이런 시선에 강한 거부감을 느꼈고, 자신을 이상하게 보는 친구들을 비웃으며 더욱 자신만의 벽을 쌓아 올렸다. "어차피 너희 따위는 이해 못 할 세상이다." 그녀의 입버릇이었다.
선생님들도 미나의 이런 행동에 골머리를 앓았다. 그녀를 지도하려 들면, 미나는 항상 비웃는 듯한 표정으로 툭툭 내뱉었다. "선생님은… 제 영혼의 깊이를 이해할 수 없으세요. 당신들의 얕은 지식으로는 저를 판단할 수 없습니다." 혹은 "이런 곳에 앉아 헛소리 지껄일 시간에, 세상의 진정한 고통에 눈을 돌리는 게 더 생산적일걸요." 이런 미나의 태도는 결국 학교의 인내심을 한계치로 만들었다. 교장 선생님은 여러 번의 경고 끝에 미나에게 최종 통보를 내렸다. "강미나 학생, 더 이상은 용납할 수 없습니다. 징계 위원회를 열기 전에 마지막 기회를 주겠습니다. 다음 달부터 한 달간, 선우 정신병원에서 정기적인 봉사활동을 하고 봉사활동 보고서를 제출하도록 하세요. 그렇지 않으면 학업 중단 조치까지 고려할 수밖에 없습니다."
'선우 정신병원'이라는 이름이 미나의 귀에 박혔다. 아산 시내에서 가장 규모가 크고 최신 시설을 자랑하는 곳이었다. 사실은 선우메디컬 그룹 산하의 계열 병원이었지만, 미나는 그 사실까지는 알지 못했다. 그저 따분한 교실에서 벗어나 새로운 곳에 가는 것이 나쁘지 않다는 듯, "쳇, 까짓것 하죠 뭐." 라며 시큰둥하게 대답할 뿐이었다.
그렇게 미나의 매주 토요일은 선우 정신병원에서 시작되었다. 처음에는 의사들이 시키는 대로 환자들의 병실을 청소하거나 식사를 나르는 등의 단순한 업무를 했다. 정신병원 특유의 음침한 분위기와 묘한 약 냄새는 그녀의 신경을 자극했지만, 의외로 그녀는 묵묵히 자신의 일을 해냈다.
하지만 며칠 지나지 않아, 미나는 병원 지하의 격리 병동으로 봉사활동을 가게 되었다. 그곳은 일반 병동과는 완전히 다른 분위기였다. 복도에는 어두컴컴한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었고, 스산한 냉기가 흘렀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마자 미나의 예민한 영적 감각이 비명을 질렀다. 희미하지만 끈적이는 '이질감'이 온몸을 휘감았다. 마치 살아있는 존재에게서 떨어져 나온 영혼의 조각들이 벽에 달라붙어 있는 듯한 느낌.
그곳에서 미나는 심상치 않은 사람들을 만나게 되었다. 병실 안, 창백한 얼굴의 환자들이 침대에 누워 있거나, 멍하니 허공을 응시한 채 앉아 있었다. 그들의 눈은 빛을 잃었고, 초점 없이 흔들렸다. 그 어떤 감정이나 의지도 느껴지지 않는 텅 빈 눈동자. 누군가는 허공에 손짓하며 알 수 없는 소리를 중얼거렸고, 또 다른 누군가는 그저 반복적으로 고개를 끄덕이거나 작은 인형을 끌어안은 채 몸을 흔들고 있었다. 미나는 그들의 영적 지문을 읽어내려 했지만, 마치 뿌리가 뽑혀 이리저리 떠다니는 영혼의 조각들처럼, 그 어떤 통일된 의지도 찾을 수 없었다. 자아가 없는 상태. 그들은 마치 살아있는 시체처럼 보였다.
"이 분들은 왜 이렇게 된 건가요?" 미나가 함께 봉사활동을 하던 사회복지사에게 조심스럽게 물었다. "아, 이 분들은… 오래된 신경계 질환이나 정신 질환으로 자아가 많이 손상되신 분들이에요. 간병인들이 24시간 돌보고 있어요. 특별한 치료는… 사실상 의미가 없다고 보시면 돼요. 그저 편안하게 지낼 수 있도록 관리해드리는 거죠." 사회복지사는 사무적인 어조로 대답했다. 하지만 미나의 눈에는 그들의 모습이 결코 '편안하게 지내는 것'으로 보이지 않았다. 그들의 육신은 살아 숨 쉬고 있었지만, 영혼은 마치 강제로 뜯겨 나간 듯한 공허함을 품고 있었다. 마치 껍데기만 남은 빈 그릇 같았다. 그들의 몸에는 어딘지 모르게 희미한 봉합 자국이나, 피부색이 다른 묘한 흔적들이 보였다. 하지만 미나는 그것이 무엇인지 알 수 없었다. 그저 '알 수 없는 이질감'이 온몸을 휘감고 있을 뿐이었다.
"진정시켜 드릴게요." 간호사들이 수시로 주사기를 들고 병실로 들어섰고, 약물을 주입하자 환자들은 더욱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그들의 텅 빈 눈은 마치 자신들의 비극을 세상에 알릴 기회조차 박탈당한 듯한 절망을 품고 있었다. 그들을 보며 미나의 마음속에서는 알 수 없는 연민과 함께, 섬뜩한 의문이 피어올랐다. 이들은 단순한 정신 질환자들이 아니었다. 그들의 영혼은 강제로 찢겨 나갔고, 그 빈자리는 무언가 억지로 채워진 듯한 이질적인 기운으로 가득했다. 이들은 마치, 장기 적출을 당한 후에 끌려와 자아가 없는 상태를 유지시키는 것이 아닐까? 그녀의 내면에 잠재된 통찰력이 고통스러운 진실을 향해 촉수를 뻗기 시작했다.
미나는 자신도 모르게 손을 들어 가슴팍을 움켜쥐었다. 가슴 속에서 느껴지는 답답함과 함께, 끓어오르는 분노. 마치 누군가의 고통이 자신의 심장으로 직접 전달되는 듯한 감각이었다. 그녀는 평소라면 비웃었을, '싸가지 없다'는 말을 들었을 자신의 반응이 어딘가 달라지고 있음을 느꼈다. 이들을 보며 연민과 함께 치솟는 분노.
선우 정신병원. 선우 메디컬. 미나는 이 두 이름 사이의 연관성을 직감했다. 아직은 희미한 실마리였지만, 그녀의 직감은 이 병원 깊숙한 곳에 끔찍한 진실이 숨겨져 있음을 속삭였다. 그녀는 무학산에서 내려온 뒤 처음으로, '이 싸가지 없는 세상'이 자신에게 던지는 진정한 의미를 찾아야 할 때가 왔음을 예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