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미나의 날카로운 촉, 선우 정신병원의 이면
미나의 매주 토요일 봉사활동은 선우 정신병원에서 계속되었다. 처음에는 의사들이 시키는 대로 환자들의 병실을 청소하거나 식사를 나르는 등의 단순한 업무를 했다. 정신병원 특유의 음침한 분위기와 묘한 약 냄새는 그녀의 신경을 자극했지만, 의외로 그녀는 묵묵히 자신의 일을 해냈다.
그날도 미나는 여느 때처럼 환자들의 식사를 나르고 있었다. 멜랑꼴리한 표정으로 멍하니 앉아 있는 환자들 사이에서, 그녀의 시선은 본관 현관으로 향했다. 새로운 환자들이 들어오고 있었다. 흰색 봉고차 한 대가 정문 앞에 멈춰 섰고, 건장한 남성 간호사들이 뒷좌석 문을 열자, 흐느적거리는 사람 두 명이 부축을 받으며 내렸다. 그들은 다른 환자들과 다를 바 없이 멍한 표정과 삶의 의욕이 없는 듯 보였다. 이미 강한 진정제에 취한 듯 눈은 풀려 있었고,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했다. 그들의 영적 지문은 이제 막 뿌리가 뽑힌 나무처럼 흔들리며 미나의 예민한 감각에 불안한 파동을 전했다.
며칠 후, 미나는 병실 청소를 하러 복도를 지나던 중 우연히 새로 들어온 환자 중 한 명의 병실 문이 살짝 열려 있는 것을 보았다. 문틈 사이로 보이는 간호사의 분주한 움직임. 고개를 살짝 돌려 안을 엿보자, 젊은 남자 간호사가 환자의 복부를 조심스럽게 드레싱하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정신병원에서 드레싱이라니?' 미나는 의아한 생각에 잠겼다. 보통 정신과 환자들이 심하게 자해를 하거나 다른 환자와의 충돌로 인해 다치는 경우는 있었지만, 복부 부위에 대수술이라도 받은 듯 드레싱을 하고 있다는 것은 이질적인 광경이었다.
미나는 고개를 갸웃하며 지나쳤다. 잠시 화장실을 다녀와 돌아오는 길, 그녀는 다음 병실을 지나가다 또다시 묘한 장면을 목격했다. 이번에는 다른 간호사가 다음 병실의 환자를 드레싱하고 있었다. 그리고 미나는 간호사의 손이 가리키는 곳이 복부의 똑같은 자리라는 것을 어렴풋이 보았다. 순간, 미나의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똑같은 곳에 상처라….' 미나의 직감은 이 상황이 단순한 우연이 아님을 강하게 경고했다. 어딘지 모르게 희미한 봉합 자국이나, 피부색이 다른 묘한 흔적들이 다른 환자들에게도 있었지만, 이렇게 노골적으로 복부를 드레싱하는 모습은 처음이었다.
다음 봉사활동 날. 미나는 망설임 없이 그 두 명의 새로운 환자 중 한 명의 병실 봉사를 자원했다. 그녀의 내면에는 뜨거운 호기심과 함께 차가운 불안감이 뒤섞여 있었다. 환자는 깊은 잠에 빠져 있었다. 병실 안에는 그녀와 환자 단둘뿐이었다. 사회복지사는 다른 병동으로 봉사활동을 하러 갔고, 간호사들은 잠시 자리를 비운 상태였다.
'지금이야.' 미나는 조심스럽게 환자에게 다가갔다. 창백하고 메마른 얼굴, 텅 빈 눈동자. 그의 영혼은 마치 폭풍에 휩쓸린 난파선처럼 부유하고 있었다. 미나는 조심스럽게 환자복을 들추었다. 그리고 그 순간, 미나의 눈은 경악으로 크게 뜨였다. 복부 한가운데를 가로지르는, 세로로 길게 뻗은 끔찍한 흉터가 선명하게 드러나 있었다. 아직 완전히 아물지 않은 듯한 붉은 흔적은 마치 생살을 갈라내고 꿰맨 것처럼 섬뜩했다. 그것은 분명 단순한 외상이 아니었다. 칼로 절개하고 봉합한 수술 자국이었다.
"이건…!" 미나는 손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그 흉터를 보는 순간, 그녀의 머릿속에는 김정수 영적 잔상에서 느껴졌던 '비워진 몸'이라는 감각이 섬광처럼 스쳐 지나갔다. 마치 퍼즐 조각이 맞춰지는 듯한 섬뜩한 깨달음. 이것은 장기 적출 수술의 흔적이었다. 이 병원은 단순히 정신 질환자를 치료하는 곳이 아니었다. 이곳은, 지하 도살장에서 장기를 적출당한 사람들이 버려지는, 살아있는 시체들의 수용소였다.
바로 그때였다.
"강미나! 너 지금 여기서 뭐 하는 거야!"
갑자기 등 뒤에서 들려오는 거친 목소리. 남자 간호사였다. 그는 잔뜩 화가 난 얼굴로 미나에게 성큼성큼 다가왔다.
"당장 손 떼! 너 같은 건방진 애가 뭘 한다고 여기 들어와서 말이야!"
남자 간호사는 미나의 팔을 거칠게 잡아끌었다. 15살 소녀의 몸은 건장한 남성의 힘에 속수무책이었다. 발버둥 쳐도 소용없었다. 그녀의 여린 팔은 그의 단단한 손아귀에 붙잡혀 병실 밖으로 끌려 나갔다.
"놔요! 이거 놓으란 말이야!"
미나는 필사적으로 저항했지만, 그녀의 작은 몸은 깃털처럼 가볍게 끌려갔다. 하지만 그녀의 입은 멈추지 않았다.
"이 환자, 이 환자 이렇게 놔둬도 되는 거냐고요! 배 한가운데에 커다란 흉터가 있는데, 이런 정신병원에서 그걸 치료할 수 있냐고요! 당신들 도대체 뭐 숨기는 거야! 이 병원은 대체 뭐하는 곳이야!"
미나는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그들의 속내가 어떤지, 반응이 어떤지 알고 싶었다. 하지만 남자 간호사는 그녀의 말을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그의 얼굴에는 당혹감과 함께 싸늘한 경고가 서려 있었다.
"닥쳐! 이 버릇없는 계집애가! 너 오늘부로 봉사활동 끝이야! 당장 여기서 꺼져!"
그는 미나를 거친 손길로 병원 현관 밖으로 밀쳐냈다. 미나는 비틀거리며 병원 계단을 내려왔다. 아무런 제대로 된 설명도 듣지 못하고, 마치 더러운 쓰레기처럼 내팽개쳐졌다. 그녀의 볼에는 뜨거운 눈물이 흘러내렸다. 억울함과 분노, 그리고 무엇보다 그 환자들에게 대한 안타까움이 뒤섞인 눈물이었다.
병원 문이 닫히자, 미나는 한참 동안 그 자리에 서 있었다. 병원 유리문 너머로 보이는 간호사와 직원들의 싸늘한 시선. 미나는 무언가 끔찍한 진실이 이곳에 감춰져 있음을 확신했다. 그녀는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내 아빠에게 전화를 걸었다. 손가락이 떨렸다. 하지만 아빠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여러 번 시도했지만, 신호음만 갈 뿐 연결되지 않았다. '젠장, 대체 어디 있는 거야…!' 미나는 울분을 터뜨렸다.
2. 호연의 수련, 누나의 긴급 호출
같은 시각, 아산 시내에서 몇 킬로미터 떨어진 초등학교 뒷산. 울창한 숲이 시작되는 등산로 입구의 작은 공터에서 호연은 땀으로 뒤범벅된 채 수련에 매진하고 있었다. 나뭇가지 사이로 쏟아지는 햇볕이 그의 얼굴에 드리워졌지만, 그의 눈빛은 흔들림 없는 집중으로 빛나고 있었다.
호연은 저번에 환영술로도 해결이 안 되었을 때, 자신도 아빠처럼 무력으로 해결할 수 있는 힘이 필요하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다. 물론 아빠를 따라 주짓수와 삼보 같은 격투기를 배우긴 했지만, 아직은 어린아이였다. 덩치 큰 어른들을 상대하기에는 역부족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염동술'을 택했다. 직접 몸을 부딪치지 않고도 상대를 제압할 수 있는 강력한 힘.
그는 지금 땅바닥에 널려 있는 작은 돌멩이들과 씨름 중이었다. 손가락 끝에 모든 집중력을 모아 돌멩이를 응시했다. 처음에는 작은 모래 알갱이 하나 움직이는 것도 버거웠지만, 이제는 제법 대추만 한 돌멩이 정도는 허공에 띄워 움직일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그의 목표는 단순히 물건을 움직이는 것이 아니었다. 물건을 빠르게 가속시키고, 즉시 멈추고, 원하는 방향으로 정확하게 전환하는 것. 가속 속도와 정지, 방향 전환의 완벽한 제어.
"이얍! 요리! 저리!"
호연은 숨을 고르며 돌멩이를 날렸다. 돌멩이는 그의 의지대로 빠르게 날아갔지만, 원하는 지점에서 맥없이 떨어지거나, 목표물 옆으로 아슬아슬하게 지나칠 뿐이었다. 호연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속에서 짜증과 부아가 치밀었지만, 그는 이내 숨을 가다듬었다. '여기서 집중력이 흐트러지면 더 안 돼.' 그는 아빠가 늘 강조하던 '마음의 평정'을 되새겼다. 다시 마음을 다잡고 돌멩이를 바라보는 순간이었다.
주머니 속 휴대폰이 진동하기 시작했다. 누나, 미나에게서 오는 전화였다. 호연은 수련에 방해된다는 생각에 무시했다. 하지만 전화는 한 번 더 울렸다. 심상치 않은 예감에 호연은 마지못해 통화 버튼을 눌렀다.
"야! 너 왜 전화를 안 받아! 나 죽을 뻔했어!"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미나의 다급하고 격앙된 목소리. 호연은 미간을 찌푸렸다.
"뭐야, 또? 너 요즘 나이가 몇인데 맨날 죽을 뻔했대. 또 길 가다 불량배라도 만났냐? 아님 또 선생님한테 걸려서 징계라도 먹었냐? 나 지금 바쁘거든. 나중에 전화해."
호연은 퉁명스럽게 대꾸했다. 영락없는 현실 남매의 대화였다.
"야, 강호연! 내가 장난하는 줄 알아?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고! 내가 뭘 봤는 줄 알아? 여기 선우 정신병원, 이 병원 진짜 이상해! 새로 온 환자들이 전부 배에 커다란 수술 흉터가 있어! 장기 적출이야! 분명하다고!" 미나의 목소리는 다급함을 넘어선 절박함으로 가득했다. 호연의 얼굴에서 장난기가 사라졌다.
"뭐? 장기 적출? 그게 무슨 개소리야! 누나 또 이상한 소리 한다."
"개소리가 아니라 진짜라니까! 내가 눈으로 직접 봤다고! 그리고 내가 그거 확인하려다가 어떤 남자 간호사한테 끌려 나와서 봉사활동 잘렸어! 지금 나 아무도 안 믿어줄 거야! 아빠는 전화도 안 받고! 너라도 빨리 와서 나 좀 도와줘! 여기 분명 뭔가 엄청난 게 숨겨져 있어! 내가 지금 당장 그걸 밝혀내야겠다고!"
미나의 말이 빨라지며 그녀의 영혼에서 '거대한 정의감'과 '어린 소녀의 힘으로 감당하기 힘든 진실'이 느껴졌다. 미나의 비명이 호연의 영적 감각에 그대로 전해졌다. 호연은 심장이 철렁 내려앉는 것을 느꼈다. '장기 적출이라니….'
"…그래서 뭘 어떻게 하라는 거야? 내가 가서 그 남자 간호사들을 혼내줘?"
호연은 믿기지 않는 상황에 잠시 혼란스러웠지만, 누나의 절박한 목소리에서 진심이 느껴졌다.
"몰라! 아무튼 너 빨리 와서 나 좀 도와줘! 내가 알아낸 거, 아빠한테 얘기해야 하는데, 아빠도 지금 연락이 안 된단 말이야! 너 염동술인가 뭔가 그것 좀 써서 그 병원에 잠입해서 뭘 좀 알아봐야 해!"
미나는 거의 명령조로 말했다. 호연은 어이없다는 듯 한숨을 내쉬었다.
"아, 진짜. 맨날 나보고만 시키려고 하고. 그거 아직 제대로 안 된다니까! 게다가 그 큰 병원을 어떻게 내가 혼자…"
"시끄러워! 너잖아! 네가 제일 똑똑하고 힘도 세잖아! 아님 아빠한테 일러바칠 거야!"
"알았어, 알았어! 알았으니까 진정 좀 해봐! 누나 있는 데 어디야?"
결국 호연은 누나의 고집에 두 손 두 발 다 들었다. 누나의 말은 늘 엉뚱한 듯했지만, 그 속에는 항상 날카로운 직감이 숨어 있었다.
통화를 마친 호연은 "젠장!" 하고 낮게 읊조리며 산을 내려오기 시작했다. 초등학교 운동장을 가로질러 벤치에 놓아둔 가방을 향해 달려갔다. 가방을 메고 교문을 나서는 찰나, 학교 앞 문방구에서 커다란 막대 사탕을 물고 있던 아이 하나가 휘청거리며 왕 구슬 사탕을 입 밖으로 떨어뜨리는 모습을 보았다.
"딱!" 사탕은 시멘트 바닥에 부딪혔지만 깨지지 않고 튕겨 올라왔다. 단단한 겉면에 스크래치 하나 나지 않은 채 쨍한 소리를 내는 모습. 그 순간, 호연의 머릿속에 섬광처럼 아이디어가 스쳤다.
"아하! 저거다!"
호연의 눈빛이 번뜩였다. 저 구슬 사탕처럼, 작고 단단한 물체를 극한의 속도로 가속시켜 단단하게 만드는 것. 눈에 보이지 않는 무기가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 작고 가벼워서 가속시키기 쉬우면서도, 충분한 운동량을 주면 어떤 장애물이든 뚫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의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걸렸다. 이 염동술 수련은 어쩌면 누나를 돕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할지도 모른다는 예감. 호연의 발걸음이 빨라졌다.
3. 왕구슬 사탕, 소년 도사의 첫 발자국
초등학교 뒷산에서 황급히 내려온 호연은 학교 벤치에 놓아둔 가방을 메고 누나가 있는 선우 정신병원으로 향했다. 발걸음은 빠르고 단호했지만, 그의 머릿속은 복잡했다. '누나 말처럼 이 병원, 뭔가 끔찍한 걸 숨기고 있을지도 몰라.' 평소 누나의 '싸가지 없음'과 '중2병스러운' 행동을 못마땅해했지만, 영적 잔상에서 느껴진 누나의 절박함과 '정의감'은 진심이었다. 더구나 아빠인 민성이 전화를 받지 않는 상황. 결국 자신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와중에 학교 앞 문방구에서 보았던 왕 구슬 사탕의 '딱!' 하는 소리는 그의 뇌리에 깊숙이 박혀 새로운 깨달음을 주었다. 저 작은 구슬 사탕이 어떤 강력한 무기가 될 수 있을지, 호연의 입가에 묘한 미소가 번졌다.
선우 정신병원은 아산 시내 외곽, 으슥한 언덕배기에 자리하고 있었다. 언뜻 보기엔 세월의 흔적이 켜켜이 쌓인 낡고 허름한 건물이었지만, 오히려 그 낡음이 주변 풍경과 동떨어져 음침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차가운 겨울 햇살조차 비껴가는 듯한 어둑한 벽돌 외벽은 마치 끔찍한 비밀을 감추기 위해 스스로 초라함을 위장한 듯했다. 호연은 그 거대한 그림자를 올려다보며 잠시 망설였다. 겨우 초등학생인 자신과 중학생 누나가 이 거대한 그림자를 상대할 수 있을까? 불안감이 파고들었지만, 누나의 걱정스러운 얼굴이 떠오르자 고개를 젓고 결심을 굳혔다.
정오를 알리는 시계 종소리와 함께, 호연과 미나는 정신병원의 거대한 정문을 밀고 안으로 들어섰다. 점심시간이었다. 로비는 여느 때보다 분주했다. 여러 간호사들과 간병인들이 식사를 나르고 환자들을 이동시키며 오고 가고 있었다. 평소 같으면 이 혼란스러운 틈을 타 몰래 이동할 수도 있었겠지만, 그들은 병원 문턱을 넘는 순간부터 이미 병원의 시스템에 감지될 운명이었다. 호연은 이미 누나에게 병원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위험할 수 있다는 충분한 설명을 들었기에 마음을 단단히 먹기로 했다. 그는 누나의 어깨를 톡톡 두드려 주었다.
"왔으면 됐어. 나머지는 내가 할게."
호연의 말에 미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 또한 중학생인 자신과 어린 동생 호연이 무언가를 해결할 수 있다는 확신을 하고 온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이 미친 중2병의 호기심과 알 수 없는 정의감은 멈출 수가 없었고, 그녀는 병원 문을 열고 들어서는 수밖에 없었다. 어제 자신이 겪었던 끔찍한 경험, 그리고 억압받던 환자들의 텅 빈 눈동자가 그녀의 뇌리에 선명하게 박혀 있었다.
병원 정문을 열고 들어서니, 로비 중앙 데스크에서 서류를 정리하던 젊은 여성 직원이 미나를 알아보았다. 그녀의 눈이 의아하다는 듯 커지더니, 이내 차가운 표정으로 바뀌었다. 그리고 곧바로 전화기를 들었다. 짧은 통화 후, 그녀의 시선은 정문에 서 있는 미나와 호연을 힐끗 보며 뭔가 경고하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로비 한쪽에서 건장한 남자 간호사 세 명이 성큼성큼 다가왔다. 그들 중에는 어제 미나를 강제로 쫓아냈던 덩치 큰 간호사도 끼어 있었다. 그의 얼굴에는 어제와 다름없는 짜증과 불쾌감이 가득했다. "어쭈, 이 버릇없는 계집애가 또 나타났어? 봉사활동에서 잘렸으면 그냥 집에서 방구석이나 지키고 있을 것이지, 여기는 왜 또 기어들어와?"
남자 간호사는 미나의 면전에서 거침없이 윽박을 질렀다. 그의 목소리에는 권위적인 협박이 섞여 있었다. 미나는 순간 움찔하며 놀랐다. 그의 거대한 체구와 살벌한 목소리에 어린 소녀의 몸이 본능적으로 위축되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미나는 비록 영적으로 장군신을 모시며 강한 내면을 가지고 있었지만, 이런 인간적인 무력이 앞세워진 폭력 앞에서는 여린 중학생 소녀일 뿐이었다. 아무리 마음 수련, 정신 수련을 했어도 이론과 실전이 같을 수는 없는 법 아닌가.
그때였다. 호연이는 누나의 겁먹은 모습을 보고는 눈에서 불똥이 튀는 것을 느꼈다. 피가 거꾸로 솟는 듯한 분노가 그의 심장을 강하게 때렸다. 아무리 싸우는 남매라 해도, 자신의 누나가 저렇게 다 큰 남자 어른에게 겁박당하고 윽박질러지는 모습은 용납할 수 없었다. 그의 내면에 잠자고 있던 또 다른 힘이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호연은 망설임 없이 누나 앞을 가로막고 섰다. 덩치 큰 남자 간호사의 허벅지에도 미치지 못하는 작은 키였지만, 그의 눈빛은 맹렬하게 타올랐다.
"이런 식으로 누나를 겁주고, 또 힘으로 아프게 했어요? 혼나야겠는데?"
호연은 마치 심술궂은 어린 개구쟁이처럼 얄미운 말투로 말했다. 그의 목소리에는 누나를 향한 다정한 염려와 함께, 어른을 향한 도발이 뒤섞여 있었다.
"누나 아팠지?"
그는 싸움하는 남매의 습관처럼 미나에게 툭 던지듯 물었다. 미나의 대답은 필요 없었다. 호연은 이미 남자 간호사에게서 강한 영적 기운, 즉 '누나를 해치고 싶어 하는 악의'를 감지했기 때문이다. 미나가 대답하기도 전에 호연은 이미 다음 행동에 돌입했다.
그는 주머니에서 아까 문방구에서 사 놓은 왕 구슬 사탕 여섯 개를 양손으로 세 개씩 나누어 꺼냈다. 알록달록한 구슬 사탕은 손바닥 안에서 반짝이며 동그랗게 빛났다. 그 순간, 로비에 있던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그에게로 향했다. 다 큰 남자와 싸우는 어린아이의 어딘가 엉뚱하고도 비장한 모습. 호연은 그들의 시선에 아랑곳하지 않고 지그시 눈을 감았다. 그리고 잠시, 그의 모든 정신력을 구슬 사탕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숨을 들이쉬고 내쉬는 짧은 순간, 호연의 주위에 흐르던 공기의 흐름이 미세하게 변화했다. 그의 몸을 중심으로 기묘한 에너지가 맴돌기 시작했다. 눈을 감은 그의 얼굴에는 미세한 떨림이 있었지만, 이내 평온함을 되찾았다. 그의 내면에서 강력한 영적 에너지가 분출되어, 손안의 구슬 사탕으로 흘러들어 가는 것을 느꼈다. 마치 뜨거운 전류가 흐르듯, 손끝이 짜릿하게 저려왔다.
천천히 눈을 떴을 때, 그의 눈은 황금빛으로 번쩍였다. 쑤욱-! 놀랍게도, 그의 손에 들려 있던 왕 구슬 사탕 여섯 개가 공중으로 떠올랐다. 중력의 법칙을 거스른 채, 그의 주변을 느리고 우아하게 맴돌기 시작했다. 로비에 있던 모든 시선이 구슬 사탕에 고정되었다. 웅성거리던 소리는 순간 잦아들고, 놀라움과 함께 알 수 없는 공포가 로비 전체를 지배했다.
"저… 저게 뭐야…!" 간병인 중 한 명이 비명을 지르듯이 중얼거렸다.
호연은 눈을 부릅뜨고 앞에 서 있는 덩치 큰 남자 간호사를 응시했다. 그의 시선과 함께 구슬 사탕의 움직임이 점차 빨라졌다. 한 바퀴, 두 바퀴… 호연을 중심으로 원을 그리며 회전하는 구슬 사탕들은 점차 속도를 올리더니, 급기야 시야에서 잔상으로 보일 정도로 빠르게 돌기 시작했다.
쉬이이잉-! 쉭- 쉭-! 점차 회전 속도가 절정에 달하자, 구슬 사탕들은 공기를 가르는 섬뜩한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로비의 유리창이 미세하게 흔들리는 듯했다. 마치 수십 개의 날카로운 칼날이 한꺼번에 휘두르는 듯한 날카로운 소리. 그 작은 사탕 조각들은 이제 더 이상 달콤한 간식이 아니었다. 호연의 의지에 의해 완벽하게 제어되는, 눈에 보이지 않는 강력한 무기가 되어 있었다.
"저런… 저런 미친…!"
맨 앞에 서 있던 남자 간호사의 얼굴에서 핏기가 가셨다. 그의 눈은 구슬 사탕이 만들어내는 살벌한 소리와 맹렬한 기운에 완전히 압도되어 얼어붙었다. 그는 고슴도치처럼 온몸의 털을 세운 채, 마치 옴짝달싹 못하는 사냥감처럼 그 자리에 굳어버렸다.
"끼야아아악-!"
그의 뒤에 있던 다른 남자 간호사 두 명은 더 이상 견디지 못하고 비명을 지르며 뒤도 돌아보지 않고 로비 밖으로 도망치기 시작했다. 구슬 사탕이 만들어내는 맹렬한 소리와 호연의 섬뜩한 눈빛에 압도되어 공포에 질린 그들의 발걸음은 마치 육상선수처럼 빨랐다. 물론, 로비의 모든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간호사들, 간병인들, 그리고 병원 직원들까지, 모두가 혼비백산하여 비명을 지르며 건물 밖으로 뛰쳐나갔다. 넓고 분주했던 로비는 순식간에 텅 비어 버렸다.
호연의 금빛 눈빛 속에서, 구슬 사탕은 여전히 맹렬하게 회전하고 있었다. 마치 그를 감싸는 신성한 방어막처럼, 혹은 파괴적인 공격을 기다리는 작은 행성들처럼. 그는 작은 어깨를 으쓱하며 누나를 돌아보았다. "누나, 이런 애들은 염동술 좀 써야 말을 듣지? 맞지?" 호연의 얼굴에는 여전히 개구쟁이 같은 미소가 걸려 있었지만, 그 미소 뒤에는 알 수 없는 맹렬한 힘이 느껴졌다. 그의 손짓 한 번에 로비의 혼란을 잠재운 소년. 왕 구슬 사탕이 공기를 가르는 섬뜩한 소리 속에서, 호연은 마침내 염동술 도사로서의 첫 발걸음을 내디딘 것이었다. 그의 앞에 펼쳐질 새로운 여정의 서막이 활짝 열리는 순간이었다.
4. 염동력, 구슬의 춤
호연의 눈이 황금빛으로 번쩍이자, 그가 집중하며 로비에 흩뿌려져 있던 왕 구슬 사탕들이 그의 몸을 중심으로 맹렬하게 회전하기 시작했다. 단순한 회전이 아니었다. 강력한 염동력으로 사탕들이 서로의 궤적을 뚫고 지나가는 듯하면서도 완벽한 조화를 이루며, 호연의 몸을 감싸는 빛나는 구체를 만들어냈다. 마치 누구도 뚫을 수 없는 투명한 방어막처럼, 혹은 고요하지만 거대한 에너지를 응축한 별처럼 보이는 그 구체는 웅장하면서도 섬뜩한 존재감을 뿜어냈다. 공기를 가르는
"쉬이이잉-! 쉭- 쉭-!"
하는 소리는 마치 태풍의 눈이 작열하는 듯한 긴장감을 로비 가득 채웠다. 그 빛나는 구체를 앞세우고, 호연은 한 걸음씩 누나에게 겁을 주었던 덩치 큰 남자 간호사에게로 다가갔다. 그의 작은 발걸음에서조차, 이제 로비 바닥을 울리는 듯한 묵직한 기운이 느껴졌다. 더 이상 어리고 왜소한 초등학생이 아니었다. 압도적인 힘과 그 힘을 통제하는 명확한 의지가 느껴지는 존재였다.
처음에는 두려움과 놀라움에 잔뜩 주춤거리며 뒷걸음질 치던 남자 간호사의 눈동자는 흔들렸다. 그의 머릿속은
'이게 대체 무슨 일인가, 환상인가?' 하는 착각과 '아니다, 분명 저 꼬마가 마법 같은 것을 부리는 중이다!'
하는 공포 사이에서 이리저리 오락가락했다. 하지만 이내 이성을 잃은 듯, 그는 필사적으로 현실을 부정하려는 듯 소리를 질렀다.
"어린놈이! 이게 무슨 눈속임이야!? 네까짓 게 뭘 할 수 있다고!"
남자는 자기 암시에 걸린 듯한 맹목적인 분노로 가득 차, 한 팔을 길게 뻗어 호연의 어깨를 잡으려 맹렬히 달려들었다.
호연은 상대의 공격에 동요하는 대신, 놀랍도록 침착하고 여유롭게 반응했다. 그의 눈빛은 여전히 금빛으로 빛나며 다가오는 남자의 움직임을 완벽하게 파악하고 있었다. 잡으려는 그의 손이 닿기 직전, 호연은 자신의 왼쪽 어깨를 뒤로 빼는 동시에 왼발도 함께 뒤로 빼며 공격을 가볍게 피했다. 그 움직임은 마치 잘 훈련된 격투가처럼 유연하고 빨랐으며, 덩치 큰 남자의 둔탁한 공격과는 극명한 대비를 이뤘다.
피하는 그 순간,
딱!
하는 경쾌하면서도 섬뜩한 소리와 함께, 맹렬하게 회전하던 왕 구슬 사탕 중 하나가 정확히 그 남자의 관자놀이에 와서 부딪혔다. 강철처럼 단단해진 구슬 사탕은 그의 두꺼운 피부를 뚫어버릴 기세였고, 짧지만 강력한 충격파가 그의 뇌를 뒤흔들었다. 고통스러운 신음소리가 터져 나오기도 전에, 다른 방향에서 날아온 또 다른 왕 구슬 사탕이 그의 턱을 정확히 가격했다.
퍽!
하는 소리와 함께 그의 머리가 뒤로 젖혀졌다. 마치 프로 복서가 혼신의 힘을 다해 상대의 턱을 때려 고개를 꺾어버린 듯한, 단 한 방에 상대를 전투 불능으로 만드는 치명적인 충격이었다. 그대로 남자의 두 눈은 힘없이 풀리며, 거대한 몸뚱이는 그 자리에서 맥없이 쓰러졌다. 바닥에 '쿵' 하고 부딪히는 둔탁한 소리가 텅 비어가던 로비에 음산하게 울려 퍼졌다. 쓰러진 그의 몸에서는 희미하게 두려움과 혼돈의 영적 잔상이 피어올랐다.
호연은 쓰러진 간호사를 힐끗 보고는 씨익 웃었다. 그리고 뒤에 서 있는 누나를 돌아보며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그의 얼굴에는 어딘가 만족스러우면서도 장난기 가득한 미소가 걸려 있었다. 미나의 눈은 휘둥그레졌다. 호연이의 능력이 이렇게까지 발전한 것에 경이로움과 충격이 뒤섞였다. 동시에 자신을 위해 거침없이 나서는 어린 동생에게서 느껴지는 든든한 마음에 가슴이 뭉클했다. 입가에는 저절로 미소가 걸렸고, 자신도 모르게 두 손을 마주 부딪히며 '잘했다'는 듯 박수를 쳤다. 박수 소리가 텅 빈 로비에 경쾌하게 울렸다. 미나는 호연을 보며 '우리 막내가 이렇게 컸단 말이야?' 하는 눈빛으로 경외감을 드러냈다.
그때였다. 텅 비어있던 로비 저편 복도에서 아까 비명을 지르며 도망쳤던 두 명의 남자 간호사가 다시 나타났다. 그들의 얼굴에는 공포와 함께 알 수 없는 오만함이 뒤섞여 있었다. 아마도 호연이 저기 쓰러져 있는 남자를 해치우고 나니 자신들을 위협하던 왕 구슬 사탕이 더 이상 날아다니지 않는 것을 보고는 안심을 한 모양이었다. 그들은 승리를 확신한 듯 서로에게 눈짓하며 비장하게 다가왔다.
"이런 애송이들한테 당할 줄 알고? 감히 우리를 속여? 이놈의 자식들이!"
그들의 눈빛에는 이제껏 숨겨왔던 노골적인 경멸과 함께, 어린 남매를 손쉽게 제압할 수 있다는 오만이 가득했다. 둘은 씩씩거리며 덮치려는 기세로 돌진했다.
그 순간, 호연은 바닥에 굴러떨어져 있던 왕 구슬 사탕 두 개를 쳐다보았다. 그의 황금빛 눈동자가 구슬 사탕에 닿자마자, 마치 텔레파시라도 보낸 듯 왕 구슬 사탕들은 찌릿하게 떨리기 시작했다. 호연은 그대로 손으로 자신의 눈높이로 들어 올리는 시늉을 했다. 그러자 두 개의 왕 구슬 사탕은 미동 없이 허공에 떠올랐고, 강력한 염동력에 의해 아까처럼 맹렬한 속도로 회전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내 호연은 마치 자신이 집어 던지듯 오른손과 왼손을 빠르고 절도 있게 휘둘렀다. 그의 손끝에서 뻗어 나가는 보이지 않는 힘이 구슬 사탕들을 달려오는 남자 둘을 향해 발사했다.
"따! 딱!"
다시 한번 로비에 경쾌하고 맑은, 그러나 섬뜩한 소리가 연속해서 울려 퍼졌다. 이번에도 호연의 정확도는 완벽했다. 달려오던 남자 둘은 미처 상황을 파악하기도 전에 이마와 턱에 거의 동시에 충격을 받았다. 그들의 움직임은 찰나에 멈추었고, 의식의 끈이 끊어진 듯 그대로 뒤로 고개를 젖히며 힘없이 기절해 버렸다. 그들의 몸뚱이 또한 둔탁한 소리와 함께 바닥에 엎어졌다. 로비에는 세 명의 건장한 남자 간호사가 정신을 잃은 채 나동그라져 있었다. 호연은 여전히 빛나는 눈으로 구슬 사탕들을 제자리에 정지시켰다. 싸움은 그의 완벽하고 일방적인 승리였다. 그의 얼굴에는 승자의 여유로운 미소가 희미하게 걸렸다.
"자, 이제 누가 눈속임이라고 할까?"
호연은 미나를 보며 어깨를 으쓱했다. 미나는 더 이상 박수를 칠 기운도 없을 정도로 놀라움에 입을 다물지 못했다. 호연의 능력이 예상했던 것 이상으로, 상상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강하게 성장해 있었다. 그녀의 눈은 동생에 대한 자부심과 함께, 앞으로 이 미스터리를 파헤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라는 확신으로 빛났다.
남자들을 정리하고 나니, 미나가 기다렸다는 듯이 엘리베이터 앞으로 전력으로 뛰어갔다. 굳게 닫힌 엘리베이터 문 앞에서 그녀는 손바닥으로 여러 번 버튼을 재촉하듯이 눌렀다. 쾅, 쾅, 쾅! 빨리 열리라는 무언의 압박이었다. 그녀의 심장이 터질 듯 두근거렸다. '드디어, 드디어 이 지옥 같은 비밀이 세상에 드러나는 거야!' 미나는 병원에 들어서기 전 아빠에게 장난처럼 '여기 장기 밀매하는 것 같다'고 했던 신고가 떠올랐다. 아무리 경찰서에 아빠 친구가 있다고 해도, 고작 중학생의 말을 쉽게 믿어줄 리 없다는 불안감이 한편에 있었지만, 지금 로비에서 벌어진 일은 그 모든 것을 증명하는 확실한 증거가 되었다.
멀리서부터 점차 선명해지는 경찰차의 싸이렌 소리가 음침한 정신병원 건물로 다가오고 있었다. 이 모든 사건의 시작과 동시에 거대한 진실이 드러날 것임을 알리는 서곡과도 같았다. 미나의 얼굴에는 이제 혼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대신, 팽배한 안도감과 더불어 복합적인 희망, 그리고 거대한 그림자를 걷어내는 데 일조했다는 어린아이답지 않은 뿌듯함이 교차했다. 엘리베이터 문이 '띵' 소리와 함께 열리자, 미나는 망설임 없이 발걸음을 옮겼다. 이제는 그 진실을 정면으로 마주할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