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부: 얽힌 사슬, 어둠의 심연으로

8. 찾아간 안식처, 진실을 알릴 수 있을까?

by 끄적쟁이

8. 찾아간 안식처, 진실을 알릴 수 있을까?


고속버스 안, 미나와 호연은 서로에게 기대어 간신히 숨을 고르고 있었다. 민성에게서

"무학산으로 가라"는 말을 듣고 난 후, 두 아이는 아빠의 마지막 경고를 가슴에 새겼다.

‘사람들 틈 속으로 숨어서 이동해! 절대로 잡히면 안 된다!’ 터미널로 향하는 발걸음 내내 혹시라도 뒤를 쫓는 시선이 있을까 끊임없이 주위를 살폈다. 귓가에는 아직도 검은 사내들이 쫓아오던 거친 발소리와 아빠의 절규가 생생하게 울리는 듯했다. 겨우 고속버스에 몸을 싣고 가장 구석진 자리에 앉자마자, 극심한 긴장과 밀려오는 피로가 한꺼번에 온몸을 덮쳤다. 엔진의 묵직한 진동음은 고요한 자장가가 되어주었고, 이내 두 아이는 낯선 좌석에 기댄 채 곯아떨어졌다.


밤의 장막이 완전히 드리우고 나서야 버스는 강원도의 한 버스터미널에 도착했다. 어둠이 짙게 깔린 낯선 도시에 발을 내딛자, 순간 아늑했던 버스 안의 온기가 그리워졌다. 피곤하고 초췌한 몸을 이끌고 버스에서 내린 미나와 호연은 터미널 밖에 대기하던 택시에 망설임 없이 올라탔다.

"무학산 산자락 입구요."

미나의 조심스러운 목적지 언급에 택시 기사님은 백미러 너머로 걱정스러운 눈빛을 보냈다.

"아가야들, 이 밤에 산에 오르다 가는 큰일 난다? 어른이랑 같이 가는 거니?"

기사님의 따뜻하지만 끈질긴 걱정에 미나는 괜찮다고 얼버무리며 서둘러 대화를 끊었다. 지금 그들의 머릿속에는 무학산 자락 깊숙이 자리한 만신 할머니 댁이 유일한 안식처이자, 모든 혼란을 잠재워 줄 마지막 희망이었다. 기사님의 마지막 염려와 미안한 시선을 뒤로하고, 깊은 산 입구에 내린 두 아이는 이제 달빛마저 희미한 칠흑 같은 어둠 속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달빛 하나만이 간신히 길을 비추는 깊은 산속. 도시의 불빛은 이미 저 멀리 아득하게 사라져 보이지 않았다. 미나와 호연은 불안한 마음으로 발밑을 더듬으며 한 걸음씩 나아갔다. '무학산은 수도 없이 오르락내리락해서 눈 감고도 갈 수 있지!'라며 늘 호언장담했던 곳이었지만, 그건 너무도 안일하고 얕은 생각이었다. 밤의 산은 낮과는 전혀 다른, 거대하고 낯선 얼굴을 하고 있었다. 빽빽하게 우거진 고목들은 하늘의 달빛조차 집어삼킨 듯 온통 칠흑 같은 어둠에 잠겼고, 방향 감각마저 흐릿해졌다. 밟히는 낙엽의 바스락거리는 소리 하나하나가 신경을 긁었고, 멀리서 들려오는 산짐승들의 불분명한 울음소리, 귀뚜라미의 끊이지 않는 울음소리까지, 모든 자연의 소리가 증폭되어 두려움으로 다가왔다. 미나는 처음 느껴보는 고요하면서도 뼈아픈 공포가 피부 속 깊이 생생하게 전해지는 것을 느꼈다. 심장이 불안하게 쿵쾅거렸다.


호연은 잔뜩 겁이 난 얼굴이었다. 어둠 속에서 희미하게 빛나는 미나의 얼굴을 올려다보며, 애써 담담한 척 농담을 건넸다.

"누나! 아까 나 멋있었지? 쇠구슬로 그 아저씨들 제압한 거! 이 정도면 나도 거의 특수부대 아니냐? 아빠랑 나랑 비슷하다고 봐도 되지 않아?"

작은 주먹을 불끈 쥐고 어깨를 으쓱하며 으스대는 모습은 영락없는 어린아이였다. 무서움에 잔뜩 긴장해 얼어붙은 미나를 안심시키려는 호연이 나름의 노력이었다. 그의 말대로, 방금 전 호연의 활약은 놀라울 정도였다. 쇠구슬 하나를 허공에 띄워 상대의 머리를 맞추고, 수십 개의 쇠구슬을 산탄처럼 날려 적을 제압했으며, 거대한 쇠구슬 덩어리를 만들어 명치에 박아 숨통을 끊는 모습은 단순한 아이의 능력을 넘어선 수준이었다. 분명, 그의 염동력은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정교하고 강력하게 발전해 있었다. 하지만 이 모든 일은 겨우 초등학생에 불과한 호연에게 너무나도 가혹한 경험이었다.


사실 호연은 나이에 비해 훨씬 더 속이 깊은 아이였다. 엄마 품에 안겨 제대로 어리광을 부릴 나이에, 엄마는 갑작스레 하늘로 떠나버렸기 때문이었다. 채 지워지지 않는 아픔 속에서 호연의 마음은 남들보다 일찍 단단해졌다. 누나가 불안해하면 자신까지 흔들릴까 봐, 그는 항상 괜찮은 척, 강한 척해야 했다. 반면 미나는 첫째 딸이라는 이유로 부모님의 응석을 한 몸에 받으며 자란 탓인지, 여전히 칭얼대고 고집 센 철부지 중학생이었다. 어린 시절의 아픔이 호연을 작은 어른으로 만들었고, 응석받이 환경이 미나를 현실에 묶어둔 셈이었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두 아이는 오직 서로에게만 의지할 수 있었다.


호연의 실없는 농담에 미나의 굳게 다물렸던 입가에 겨우 희미한 미소가 어렸다. 그제야 미나는 정신을 차렸다. 그동안 자신은 누나로서 호연을 제대로 돌보지 못했고, 오히려 늘 보살핌을 받는 입장이었다는 것을. 아빠가 장산범을 처리한 이후부터 점점 오감도 발달하고 힘과 속도가 예전과 다르게 느껴지는 것을 감지했다. 처음에는 단순한 직감이나 과도한 집중력 때문이라고 생각했지만, 이젠 확신할 수 있었다. 아빠의 몸속에서 뭔가 비범한 힘이 깨어나고 있다는 것을. 자신들이 겪었던 초자연적인 경험, 장군신과 접신하여 얻게 된 새로운 감각, 그리고 호연이 발전시킨 염동력. 이 모든 것을 감당해야 하는 순간순간마다 자신이 얼마나 약하고 어리석었는지 깨달았다. 검은 사내들에게 쫓기면서도 자신들을 탈출시킨 아빠의 필사적인 모습, 그리고 방금 전 호연이 작은 몸으로 검은 사내들을 제압했던 용감한 모습을 떠올리자, 미나의 마음속 깊은 곳에서 미안함과 고마움이 뒤섞인 먹먹함이 밀려왔다. 미나는 말없이 호연에게 다가가 와락 끌어안았다. 그녀의 작은 몸이 흐느낌으로 떨렸다.

"호연아, 고마워… 정말 고마워…."

나지막이 두 번이나 읊조린 '고맙다'는 말 끝이 흐려지며 미나의 어깨가 미약하게 들썩였다. 그녀는 소리 없는 흐느낌을 애써 참아내고 있었다. 미나의 뜨거운 눈물이 호연이의 옷깃을 적셨다.


호연은 자신보다 머리 하나는 더 큰 누나의 품에 안겨있었다. 작은 어깨에 느껴지는 누나의 떨림에 호연은 그제야 미나의 두려움을 가늠할 수 있었다. 그는 누나의 울음소리가 닿지 않도록 품에 더욱 깊숙이 파고들었다. 그 순간, 그는 어릴 적 따뜻했던 엄마의 품이 그리웠을지도 모른다. 엄마 품처럼 아늑하고 위로를 주는 누나의 품에 안겨 안심하는 듯, 호연 또한 그런 엄마의 온기를 느끼고 싶었는지 모른다. 호연은 말없이 미나의 등 뒤를 두 팔로 꼭 안아주었다. 깊은 산속, 고요한 어둠 속에서 두 남매는 서로의 체온과 온기로 외로움과 공포를 달래고 있었다. 그들의 작은 온기가 어둠 속에서 희망의 불꽃처럼 일렁였다.


부스럭, 부스럭.


가까이서 들려오는 낙엽 밟는 소리에 두 아이는 동시에 고개를 들었다. 서로의 눈을 마주 본 그들의 심장은 다시 불안하게 쿵쾅거렸다. 맹수가 나타난 건 아닐까? 아니면 혹시 검은 사내들이 여기까지 쫓아온 것일까? 호연은 반사적으로 주머니에 손을 넣어 쇠구슬 몇 개를 꺼내 염동력으로 손바닥 위에 띄웠다. 달빛이 흐릿하게 비추는 숲 사이로 누군가의 희미한 형체가 어렴풋이 보였다. 작은 키에 익숙한 실루엣, 그리고 강인한 기운. 그것은 바로…!


"할머니!"

두 아이는 동시에 크게 미소 지으며 어둠 속으로 달려갔다. 마치 명절에 고대하던 손주, 손녀를 맞이하는 선녀처럼, 작은 체구의 여인이 그들을 따뜻하게 맞아주었다. 평소의 무뚝뚝함과는 달리 활짝 웃는 얼굴로 안긴 미나와 호연의 등을 토닥이는 그녀는 바로 만신 할머니였다. 깊게 파인 주름이 세월의 흔적을 말해주지만, 그녀의 눈빛은 밤하늘의 별처럼 깊고 신비로웠다. 체구는 작지만 마음만은 태산 같은 할머니는 인자한 미소를 지으며 익숙한 인사말을 건넸다.

"내 새끼들, 잘 왔구나."


환희의 순간도 잠시, 만신 할머니의 시선은 칭얼대는 미나의 얼굴로 향했다. 빤히 미나의 얼굴을 보던 할머니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이년이 얼굴이 옷걸이야? 뭘 그리 주렁주렁 달고 있어?"

만신 할머니가 가리킨 곳은 미나의 입술과 눈밑, 그리고 귀에 달려 있는 피어싱들이었다. 할머니의 직설적인 표현에 미나는 발끈하며 칭얼거렸다.

"할머니, 요즘은 다 이렇게 꾸며요! 아빠도 보고 아무 말 안 했단 말이에요!"

하지만 만신 할머니는 그런 미나를 이해 못 하겠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짧고 굵은 한마디를 내뱉었다.

"미친년…."

욕설 섞인 표현이었지만, 그 속에는 손녀에 대한 깊은 애정과 함께, 격변하는 세상을 이해하려는 노파의 고집이 담겨 있었다. 할머니의 투박한 말속에서 두 아이는 비로소 긴장을 풀고 편안함을 느꼈다.


만신 할머니의 초가집 안방. 불을 지펴 따뜻하게 데워진 아랫목에 나란히 앉은 두 아이는 지난밤부터 겪었던 모든 일들을 털어놓기 시작했다. 아빠가 장산범을 처리한 이후, 어느 순간부터 오감이 예전보다 훨씬 예민해지고 힘과 속도가 빨라지는 등 몸의 이상한 변화를 겪고 있다는 이야기부터 시작했다.

"할머니, 아빠가 밤에는 자꾸 꿈속에서 검은 아지랑이 속에 붉은 눈을 한 악귀랑 싸운다고 해요. 점점 그 힘이 아빠를 잠식하는 것 같아서 너무 무서워요."

미나가 울먹였다. 호연은 자신의 능력에 대한 이야기를 덧붙였다.

"할머니, 저도 예전보다 훨씬 강해졌어요! 이제 쇠구슬도 여러 개 동시에 움직이고, 더 큰 덩어리도 만들 수 있어요! 방금도 검은 옷 입은 아저씨 두 명을 제가 쇠구슬로 다 제압하고 왔다고요!"

미나는 자신의 경험도 자세히 설명했다.

"저는 할머니 말씀대로 장군신 할아버지와 다시 접신했어요. 이번엔 더 생생하게 보이고, 아빠를 괴롭히는 그… 검은 아지랑이 속에 붉은 눈… 그게 뭔지도 보였어요. 뭔가 엄청난 어둠의 존재였어요. 그리고 아빠가 어제 저랑 호연이를 버스 태워 보내고 검은 사내들이랑 싸울 때… 저도 모르게 뭔가를 느꼈어요. 아빠의 힘이 인간이 아니었어요. 훨씬 강해진 것 같아요!"


두 아이의 이야기를 듣던 만신 할머니의 표정은 시종일관 침착했다. 하지만 '검은 아지랑이 속 붉은 눈'이라는 미나의 언급에 할머니의 눈썹이 순간 미세하게 꿈틀거렸다. 평소 같으면 길게 설교라도 했을 법한 초자연적인 이야기에도 할머니는 그저 가끔 고개를 끄덕이거나 혀를 찰뿐, 그 악귀의 존재에 대해서는 아는 듯하면서도 섣불리 언급하지 않았다. 마치 오래된 비밀을 함부로 꺼내지 않으려는 듯, 입을 굳게 다물었다. 아이들이 겪은 변화와 민성의 각성이 할머니의 오랜 예견과 닿아있는 듯한 침묵이었다. 할머니의 깊고 형언할 수 없는 눈빛에서 굳은 결의와 함께, 미지의 거대한 그림자에 대한 깊은 우려가 스쳐 지나갔다. 아이들은 할머니의 평소와 다른 분위기에 자신들의 이야기가 중요한 무엇인가와 연결되어 있음을 어렴풋이 짐작할 뿐이었다.


"배는 안 고프냐?"

이야기가 끝날 무렵, 할머니는 조용히 따뜻한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그 한마디에 마치 굶주린 강아지처럼 미나와 호연은 모든 긴장을 풀고 진짜 손주, 손녀 마냥 애교 섞인 투정을 부렸다.

"할머니! 밥 빨리 주세요! 배고파 죽겠어요! 할머니 음식 제일 맛있는 거 알죠?!"

할머니는 그런 아이들의 모습에 푸근하게 웃으며 부엌으로 향했다. 낡았지만 정겨운 부엌에서는 구수한 된장찌개 냄새와 노릇하게 구워지는 고등어 냄새가 흘러나왔다. 배부르게 밥을 먹고 나자, 따뜻한 아랫목의 온기와 그동안의 긴장이 풀린 탓에 두 아이는 스르륵 잠이 쏟아져 꾸벅꾸벅 졸기 시작했다. 평화로운 풍경이었다. 그 모습을 물끄러미 지켜보던 만신 할머니는 조용히 요를 깔고는, 잠든 아이들을 살살 굴려 옮긴 후 폭신한 이불을 덮어주었다. 평온하게 잠든 아이들의 얼굴을 한참 쓰다듬던 할머니는 조용히 문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이내 마당 한편에서 고요히 앉아 있던 귀견들을 향해 손을 뻗었다.


"모여라."


어둠 속에 동화되어 있던 덩치 큰 귀견들이 마치 잘 훈련된 군견처럼 일제히 할머니 발치로 소리 없이 모여들었다. 만신 할머니는 한 손으로는 아이들이 잠든 안방 문을 슬며시 닫고, 다른 한 손으로는 숲 속 깊은 곳을 가리켰다. 그녀의 눈빛은 밤의 어둠보다도 깊었다. 마치 지시를 내리듯 그녀의 손짓에 귀견들은 단 하나의 흐트러짐 없이 소리 없이 숲 속으로 흩어졌다. 누군가가 무학산으로 접근하고 있는지 경계를 서라는 명령인 듯했다. 그렇게, 무학산의 밤은 고요와 신비, 그리고 알 수 없는 위협 속에 더욱 깊어져 갔다.


한편, 민성의 차는 운전석 쪽 백미러가 사라지고, 조수석 유리창은 깨져 찬 바람이 얼굴을 거세게 때리는 상태로 밤의 도로를 다시 맹렬하게 달리고 있었다. 피가 엉겨 붙은 코트 자락이 바람에 펄럭였지만, 민성은 아랑곳하지 않고 묵묵히 운전대를 잡았다. 그의 얼굴은 여전히 전투의 여운과 피 냄새의 잔향으로 팽팽하게 굳어 있었다. 이성을 잃고 폭주했던 자신에게 아직까지도 섬뜩한 공포감이 밀려왔다. 인간의 영역을 넘어선 듯한 그 힘. 그 힘은 과연 축복일까, 저주일까?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졌지만, 답은 나오지 않았다.


조수석 바닥에 떨어져 있던 휴대폰을 집어 든 민성은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어두운 계기판 불빛 아래, 전화번호부를 스크롤하던 그의 손가락은 잠시 멈칫했다. 옛 동료들의 이름도 보였지만, 지금 이 상황에서 그들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것은 그들을 위험에 빠뜨리는 일임을 알았다. 이 모든 비극의 근원을 알고 나면, 누구도 선우 그룹의 거대한 그림자에서 벗어날 수 없을 터였다. 민성은 결국 한 기자의 이름을 찾아 눌렀다.

"야! 김기자."

짜증이 섞인 듯한, 하지만 그 속에는 절박함이 스며든 목소리로 짧게 상대를 부른 그는, 이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좋은 작품 하나 만들자. 일단 자세한 건 만나서 이야기할 테니, 이 하드디스크 내용 확인할 수 있게 노트북이랑 이것저것 준비해 와."

그는 상대의 대답을 들을 새도 없이 전화를 끊었다. 망설일 시간은 없었다. 민성의 옆에서 내내 벌벌 떨던 조태오가 용기를 내어 조심스럽게 물었다.

"어, 어디로 가는 겁니까, 형사님…?"

민성은 대답 없이 핸들을 꽉 쥐고 중얼거렸다. 그 누구에게도 향하는 말이 아닌, 오직 자신에게 던지는 질문이었다.

"나도 모르겠다. 갈 때까지 가보자."

그리고는, 복잡하고 혼란스러운 자신의 심경을 대변하듯 액셀을 더욱 깊게 밟았다. 망설임 없는 가속 페달이 바닥까지 푹 꽂혔다.


수십 분을 더 달렸을까. 낡고 훼손된 민성의 차는 새벽의 고요가 짙게 깔린 대형 마트의 야외 주차장으로 들어섰다. 텅 비다시피 한 주차장 한편에, 누군가를 기다리는 듯한 한 남자가 노트북 가방을 든 채 서 있었다. 민성과 통화했던 김기자인 듯했다. 김기자의 얼굴에는 약간의 흥분과 호기심이 뒤섞여 있었다. 민성은 김기자의 옆에 천천히 차를 세웠고, 부서진 조수석 문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타라는 손짓을 보냈다. 김기자는 눈치를 보며 재빠르게 조수석에 앉았다. 깨진 유리창 사이로 찬 바람이 거세게 불어왔지만, 김기자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대체 무슨 작품이라는 겁니까, 형사님? 갑자기 이러시면… 제가 지금 다른 큰 기사 준비 중인데… 잠도 못 자고 불려 왔단 말입니다!"

그는 약간 신난 듯한 말투로 속사포처럼 말을 쏟아냈지만, 민성의 표정은 여전히 무거웠다. 전투의 흔적이 역력한 그의 얼굴은 마치 방금 지옥에서라도 돌아온 사람 같았다.

"일단 조용히 하고 이거 영상이나 옮겨놔."

민성은 품속에서 꺼낸 하드디스크 하나를 김기자에게 건네주었다. 차 안을 가득 채우는 알 수 없는 긴장감에 김기자의 얼굴에는 물음표가 가득했지만, 민성의 싸늘하고 지친 분위기에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하고 재빨리 노트북을 펼쳤다. 능숙한 손놀림으로 외부 하드디스크를 노트북에 연결했다.


민성은 다시 뒤를 돌아 조태오 직원을 똑바로 쳐다보며 물었다. 그의 눈빛은 흔들림 없었다. 그의 목소리에는 단호함이 깃들어 있었다.

"이 CCTV, 확실하지? 영상이 확실해야 해. 단 하나라도 조작의 흔적, 편집의 의심이 있다면… 이 모든 건 물거품이 될 수 있어."

조태오는 잔뜩 주눅 든 목소리로 답했다. 그의 몸은 아직까지도 공포에 떨고 있었다.

"네, 형사님. 확실합니다. 제가 직접 설치하고 관리했던 거라서… 절대로 조작 불가능합니다. 각도, 화질, 상황까지 제일 명확하게 모든 걸 설명해 줄 영상입니다… 컨테이너 내부 구조까지 완벽하게 찍혔습니다."

김기자는 그제야 무슨 일인가 싶어 흥미로운 표정으로 노트북 화면에 시선을 고정했다. 그의 얼굴에는 오랜만에 낚은 대어의 냄새를 맡은 듯한 직업적인 흥분감이 감돌았다.


노트북 화면에는 민성과 아까 싸웠던 검은색 정장을 입은 사내들의 모습이 선명하게 담겨 있었다. 그리고 그들은 사람들을 커다란 컨테이너 안으로 무자비하게 밀어 넣고 있었다. 단순히 물건을 운반하는 컨테이너가 아니었다. 컨테이너 내부에는 기본적인 소파, 담요, 정수기 등이 갖춰져 있었고, 마치 잠시 휴식을 취할 수 있는 공간처럼 교묘하게 꾸며져 있었다. 하지만 쇠창살처럼 가로막힌 출입문과 감금된 사람들의 절망적인 눈빛은 그곳이 결코 휴식처가 아님을 증명했다.


영상을 보던 김기자의 얼굴은 경악과 분노로 물들었다. 그의 손에 쥐여 있던 펜이 바닥으로 떨어지는 것도 인지하지 못할 정도였다.

"형사님, 이게… 이게 뭡니까? 사람을 왜… 왜 짐 옮기는 컨테이너에 가둬요?! 이거… 밀항? 인신매매? 대체… 대체 무슨 일이에요?!"

민성은 김기자에게 지난 몇 달간 자신을 괴롭혔던, 그리고 현재 그가 모든 것을 걸고 파헤치려 하는 진실을 이야기했다. 선우 그룹이 운영하는 선우 정신병원을 이용하여 무고한 사람들을 납치하고, 이 컨테이너를 통해 어딘가로 공급하고 있던 잔혹한 현실. 그리고 이 거대한 비리에 윗선에서 막대한 압력이 가해지고 있어 제대로 된 조사를 진행할 수 없었다는 비참한 현실까지. 그의 목소리에는 분노와 좌절, 그리고 진실을 밝히지 못하는 무력감이 섞여 있었다.


"김기자, 만약 내가 이 하드디스크를 증거로 들고 본서로 돌아가면 어떻게 될 것 같나? 아마 이 사건은 '사건 이송'이라는 이름으로 다른 조사팀으로 인계될 거고, 곧이어 '은폐'라는 이름 아래 영원히 묻혀 버릴 거야. 선우 그룹은 그만큼 거대한 괴물이야. 그 괴물 앞에서 내가 혼자 할 수 있는 건 없어. 이 나라에서 이 거대한 악에 맞설 수 있는 건, 자네가 가진 펜의 힘밖에 없어."

민성은 김기자에게 간곡히 부탁했다. 그의 눈빛은 간절했다.

"그러니, 내가 자네에게 전화할 때, 망설이지 말고 이 모든 것을 언론에 터뜨려 줘. 국민들이 알아야 해. 이 끔찍한 진실을…."

그는 김기자의 눈을 깊이 들여다보며 경고의 말을 덧붙였다.

"하지만, 이 내용을 가지고 장난치려 한다면… 선우 그룹은 너와 네 가족은 물론, 그 누구라도 용서치 않을 거야. 자네는 아까 본 검은 정장의 사내들에게 목숨을 부지할 수 없을 걸세. 매우 위험한 일이야. 심지어 나도 지금 목숨을 걸고 있어. 그래도… 할 수 있겠나? 자네 가족까지 위험해질 수 있는 일이야."


김기자는 잠시 동안 심각하게 고민하는 듯했다. 그의 얼굴에는 정의감과 두려움, 그리고 기자의 직업윤리가 뒤섞여 복잡한 감정이 스쳐 지나갔다. 노트북 화면에 떠 있는 컨테이너 안 사람들의 절망적인 모습, 그리고 민성의 굳은 눈빛이 그의 마음에 깊이 파고들었다. 가족의 안전이냐, 거대한 진실을 밝히는 정의냐. 갈등의 시간은 짧았다. 이내 김기자는 굳은 표정으로 민성을 마주 보았다. 그의 눈빛에서는 어떤 확신이 느껴졌다. "못 먹어도 고! 형사님. 대한민국 언론에 이런 진실이 묻힐 수는 없습니다. 제 목숨을 걸고 이 진실을 세상에 밝히겠습니다!" 김기자의 비장한 대답에 민성은 희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얼굴에 긴장감이 조금 풀리는 듯했다.


민성은 김기자를 안심시킨 후, 조태오 직원을 돌아보았다. 조태오는 아직도 몸을 떨며 눈치를 보고 있었다. "조태오 씨, 이제 자수하고 구치소에서 보호받으십시오."

조태오의 얼굴에는 갈등과 두려움이 교차했다. 죄를 지은 건 맞았지만, 이 상황에서 경찰서에 간다고 과연 안전할까 하는 의문이 들었을 것이다. 선우 그룹의 그림자가 너무나 거대하고 막강했기에, 공권력조차 그들을 보호할 수 없을 것이라는 공포감이 그의 전신을 휘감고 있었다.

"조태오 씨가 했던 일, 작은 죄책감이라도 남아있지 않습니까?

아까 그 컨테이너 안의 사람들을 더는 만들면 안 되지 않겠습니까? 자수해야만, 조금이라도 속죄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CCTV 영상에 담긴 진실은 조태오 씨를 살릴 유일한 동아줄이 될 겁니다. 당신이 이 사건의 핵심 증인이 되는 겁니다. 경찰이 당신을 철저히 보호할 수밖에 없을 겁니다.”


민성은 형사로서의 노하우를 발휘해 조태오를 끈질기게 설득하기 시작했다. 범죄를 저지른 자의 심리를 파고들어 가장 연약한 지점을 건드렸다. 긴 설득 끝에 조태오의 눈빛에서 미세한 흔들림이 포착되었다. 마침내 그의 고개가 힘없이 끄덕여졌다.

"야... 알겠습니다. 그러죠."

차가 다시 움직였다. 조태오를 태운 민성의 차는 고요한 밤거리를 가로질러 경찰서로 향했다. 김기자는 그의 노트북에 담긴 진실을 세상에 터뜨릴 준비를 하고 있었다. 이제 민성은 잃을 것이 없었다. 가족을 지키기 위해, 그리고 거대한 악에 맞서기 위해 그의 모든 것을 걸 참이었다. 밤의 도시 위로 거대한 폭풍 전야가 드리워지고 있었다.

일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