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부: 얽힌 사슬, 어둠의 심연으로

9. 악마 속삭인다.

by 끄적쟁이

9. 악마가 속삭인다.


새벽녘, 고통스러운 침묵이 흐르던 경찰서 형사과에는 마치 먹구름이 들이닥친 듯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았다. 민성은 조태오 직원의 축 늘어진 어깨를 이끌고 삐걱거리는 문을 열고 들어섰다. 녀석의 핼쑥한 얼굴에는 잠 대신 공포와 체념이 덕지덕지 붙어 있었다. 형광등 불빛 아래 드러난 조태오의 마른 몸은 금방이라도 부서질 듯 위태로워 보였다.


"이 자식, 그동안 어디서 뭘 하다 온 거야! 연락은 왜 안 받아, 어! 당장 보고 올려!"


거친 호통과 함께 김반장이 불도저처럼 달려와 민성의 멱살을 잡듯 팔뚝을 움켜쥐었다. 그의 눈에는 걱정보다 분노와 초조함이 앞서 있었다. 사건 현장에서 사라져 버린 민성 때문에 마음고생이 심했던 모양이었다. 하지만 민성은 억센 김반장의 손아귀를 풀어내고 조용히 그를 향해 고개를 저었다. 그의 눈빛은 지쳤지만, 그 안에 도사린 강철 같은 의지는 흔들림 없었다.


"반장님, 잠시만 조용히 좀 하세요. 제가 빈손으로 온 줄 아십니까?"


민성의 목소리에는 단호함이 깃들어 있었다. 그는 힘겹게 서 있는 조태오의 어깨를 감싸 안으며 앞으로 내세웠다.


"여기, 증거 하고… 증인을 직접 모셔왔으니까요."


김반장의 험악했던 얼굴에 순간 의아함이 서렸다. 그는 콧방귀를 뀌듯 코웃음을 치며 조태오를 위아래로 훑었다. 꾀죄죄한 옷차림에 풀 죽은 얼굴. 경찰서에 끌려온 여느 피의자와 다를 바 없는 모습에 김반장의 의심은 더욱 깊어졌다.


"이 자식은 또 뭐야? 똑바로 말 안 하면 가만 안 둬."


민성은 묵묵히 조태오를 이끌고 제자리로 향했다. 삐걱거리는 의자에 조태오를 앉히자, 그는 낡은 책상 위 먼지 쌓인 서류들 위로 시선을 떨궜다. 마치 온 세상의 무게를 짊어진 듯 그의 어깨는 한없이 가라앉아 있었다. 민성은 조용히 스마트폰의 녹음 기능을 켜고, 믹스커피 두 잔을 내밀었다. 뜨거운 종이컵을 움켜쥔 조태오의 손이 미세하게 떨렸다.


"괜찮습니다. 당신은 안전할 겁니다. 이제 당신이 겪은 일을, 알고 있는 진실을 그대로 말씀해 주십시오."


민성의 차분한 목소리가 조태오의 불안한 마음을 조금씩 어루만졌다. 그는 한참을 망설이다 겨우 입을 열었다. 그의 목소리는 처음에는 극심한 공포로 떨렸지만, 이내 억울함과 체념이 뒤섞인 듯 차분해졌다.


조태오는 자신이 늪에 빠진 듯한 무기력증과 우울증에 시달렸다고 했다. 매일매일이 잿빛으로 물든 채, 세상은 흑백 스크린처럼 의미 없게 느껴졌다고. 병원을 전전했지만, 해결책이라고는 복용량만 늘어가는 알약뿐이었다. 그렇게 삶의 마지막 끈을 놓으려던 순간, 그는 우연히 유튜브에서 '선우 정신병원' 원장의 영상을 보게 되었다고 했다.


"다른 의사들은 늘 뻔한 소리뿐이었어요. 간단한 해결법, 그리고 결국 자기 병원 광고로 이어지는… 그런데 그 원장은 달랐습니다."


조태오의 눈빛에 잠시 과거의 그림자가 스쳤다.


"화려한 간판도, 현란한 광고도 없었습니다. 그저 허름한 진료실 같은 곳에서, 사람의 내면을 깊이 들여다보는 통찰력 있는 말들을 했어요. '현대 사회에서 당신이 겪는 모든 무기력은 결코 개인의 나약함이 아니다', '진정한 치유는 마음의 상처를 들여다보는 것에서 시작된다'… 그런 말들이요. 마치 제 마음을 꿰뚫어 보는 듯했습니다. 그 사람은 제게 단순히 약을 처방하는 의사가 아니라, 저 자신을 찾아가는 여정의 길잡이 같았어요."


원장의 영상들은 자극적이지 않았지만, 대신 사람의 근원적인 아픔을 어루만졌다. 각자의 환경과 사연이 다르기에 치료법 또한 달라야 한다며, 삶을 대하는 태도와 자신을 사랑하는 방법에 대한 깊은 성찰을 요구했다. 그 진솔함에 조태오는 절박한 희망을 걸었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선우 정신병원을 찾아갔고, 반년쯤 원장과의 상담을 이어가며 굳건한 신뢰를 쌓았다고 했다. 그는 원장이 단순히 증상을 치료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영혼'을 보살펴주는 진정한 멘토라고 믿었다.


하지만 그 믿음은 한낮의 신기루에 불과했다. 조태오가 도박으로 인해 생긴 막대한 빚더미에 앉아 있었다는 사실은, 원장과의 깊은 상담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드러났다. 그리고 원장은, 그 틈을 파고들었다.


"원장님은 제 아픔을 다 이해해 주셨어요… 제게 방법이 있다면서, 같이 해나가자고… 말씀하셨습니다."


조태오의 목소리에 배신감과 자책이 뒤섞였다. 가장 힘들고 나약했던 순간, 원장은 그에게 악마의 속삭임을 건넸다.


"'환자들을 더 좋은 치료와 취업으로 보내기 위해 협조해 달라.'… 처음엔 저도 의아했죠. '왜 정상적인 방법으로 하지 않느냐'라고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원장은 비웃듯이 말했습니다."


조태오는 원장의 표정을 그대로 재현하듯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괜찮습니다. 당신은 안전할 겁니다. 이제 당신이 겪은 일을, 알고 있는 진실을 그대로 말씀해 주십시오."


민성의 차분한 목소리가 조태오의 불안한 마음을 조금씩 어루만졌다. 그는 한참을 망설이다 겨우 입을 열었다. 그의 목소리는 처음에는 극심한 공포로 떨렸지만, 이내 억울함과 체념이 뒤섞인 듯 차분해졌다.


조태오는 자신이 늪에 빠진 듯한 무기력증과 우울증에 시달렸다고 했다. 매일매일이 잿빛으로 물든 채, 세상은 흑백 스크린처럼 의미 없게 느껴졌다고. 병원을 전전했지만, 해결책이라고는 복용량만 늘어가는 알약뿐이었다. 그렇게 삶의 마지막 끈을 놓으려던 순간, 그는 우연히 유튜브에서 '선우 정신병원' 원장의 영상을 보게 되었다고 했다.


"다른 의사들은 늘 뻔한 소리뿐이었어요. 간단한 해결법, 그리고 결국 자기 병원 광고로 이어지는… 그런데 그 원장은 달랐습니다."


조태오의 눈빛에 잠시 과거의 그림자가 스쳤다.


"화려한 간판도, 현란한 광고도 없었습니다. 그저 허름한 진료실 같은 곳에서, 사람의 내면을 깊이 들여다보는 통찰력 있는 말들을 했어요. '현대 사회에서 당신이 겪는 모든 무기력은 결코 개인의 나약함이 아니다', '진정한 치유는 마음의 상처를 들여다보는 것에서 시작된다'… 그런 말들이요. 마치 제 마음을 꿰뚫어 보는 듯했습니다. 그 사람은 제게 단순히 약을 처방하는 의사가 아니라, 저 자신을 찾아가는 여정의 길잡이 같았어요."


원장의 영상들은 자극적이지 않았지만, 대신 사람의 근원적인 아픔을 어루만졌다. 각자의 환경과 사연이 다르기에 치료법 또한 달라야 한다며, 삶을 대하는 태도와 자신을 사랑하는 방법에 대한 깊은 성찰을 요구했다. 그 진솔함에 조태오는 절박한 희망을 걸었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선우 정신병원을 찾아갔고, 반년쯤 원장과의 상담을 이어가며 굳건한 신뢰를 쌓았다고 했다. 그는 원장이 단순히 증상을 치료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영혼'을 보살펴주는 진정한 멘토라고 믿었다.


하지만 그 믿음은 한낮의 신기루에 불과했다. 조태오가 도박으로 인해 생긴 막대한 빚더미에 앉아 있었다는 사실은, 원장과의 깊은 상담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드러났다. 그리고 원장은, 그 틈을 파고들었다.


"원장님은 제 아픔을 다 이해해 주셨어요… 제게 방법이 있다면서, 같이 해나가자고… 말씀하셨습니다."


조태오의 목소리에 배신감과 자책이 뒤섞였다. 가장 힘들고 나약했던 순간, 원장은 그에게 악마의 속삭임을 건넸다.


"'환자들을 더 좋은 치료와 취업으로 보내기 위해 협조해 달라.'… 처음엔 저도 의아했죠. '왜 정상적인 방법으로 하지 않느냐'라고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원장은 비웃듯이 말했습니다."


조태오는 원장의 표정을 그대로 재현하듯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괴물이라는 단어를 내뱉자 조태오는 온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숨을 헐떡이는 그의 얼굴은 창백하게 질려 있었다. 그는 그 괴물들을 보는 순간, 자신 또한 더 이상 안전하지 않다는 것을 직감했다고 했다. 악마의 게임에 발을 들인 대가였다.


민성은 조태오의 이야기를 듣는 내내 주먹을 꽉 쥐고 있었다. '선우 정신병원'을 넘어, 모든 것이 '선우 그룹'에 의해 치밀하게 계획되고 실행된 거대한 판이라는 그림이 머릿속에 선명하게 그려졌다. 절망에 빠진 이들을 유튜브로 유인하고, 그들의 약한 마음을 파고들어 치유와 일자리를 미끼로 삼아 자신들의 추악한 사업에 이용하다니. 마치 거대한 거미줄처럼 사회 곳곳에 마수를 뻗친 그들의 악랄함에 민성은 분노가 치밀었다.


'악마는 사람의 마음이 약해질 때 찾아온다고 했던가.' 민성은 그들의 방식에 소름 끼쳐했다. 마음의 병을 고쳐주는 동시에 일자리까지 준다니, 얼마나 쉽게 사람들을 부릴 수 있었을까. 죄책감 없는 그들의 논리에 몸서리쳐졌다. 민성은 문득 선우 그룹 이사장의 이름을 떠올렸다.


"혹시… 선우 그룹 이사장을 만난 적은 있습니까?"


조태오는 고개를 저었다. "아뇨… 모릅니다. 저는 그저… 시키는 대로 했을 뿐입니다. 제발… 살려주십시오, 형사님…."


민성은 그의 눈빛을 통해 조태오가 선우 그룹의 깊은 실체까지는 알지 못하는, 그저 이 거대한 사슬의 가장 하층부에 놓인 '피라미'에 불과하다는 것을 확인했다. 이 정도 증거만으로는 병원 원장의 자백 이면에 이사장의 지시가 있었다는 것을 입증하기는 역부족이었다. 병원장이 모든 죄를 뒤집어쓰고 '꼬리 자르기'를 당할 상황이었다. 민성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가슴속에서부터 답답함이 치밀어 올랐다.


"조태오 씨, 당신은 안전할 겁니다. 제가 지켜줄 겁니다. 지금 말한 사실대로만 진술하세요. 원장이 지시한 대로 했을 뿐이라고요."


민성은 그의 어깨를 두드리며 안심시켰다. 이 순간, 조태오를 보호하는 것이 진실을 파헤치는 첫걸음이 될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그가 추가 증언을 이어나가려는데, 갑자기 경찰서 안이 술렁이기 시작했다. 날카로운 구두 굽 소리가 타일 바닥을 울리며 다가왔다.


깔끔한 정장 차림의 사람들이 우르르 들어섰고, 그들은 하나같이 냉정하고 싸늘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 무리 중 가장 키가 크고 덩치가 좋은 한 남자가 민성 일행을 향해 거침없이 걸어왔다. 그의 차가운 시선은 조태오에게 잠시 머물렀다가, 이내 민성을 똑바로 노려보았다. 그리고는 입가에 비릿한 미소를 띠우며 차갑게 입을 열었다.


"이제부터… 선우 정신병원 관련 조사는… 저희가 합니다."


자신이 맡은 사건 수사를 가로채가는, 그의 말에 민성은 주먹을 꽉 쥐었다. '이놈들, 어지간히도 빠르게 움직이는구먼.' 그는 참담한 심정을 감추려 애쓰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분명 경찰 내부에 스파이가 있거나, 최소한 그들의 움직임을 보고하는 고위층 인사가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번개처럼 스쳐 지나갔다. 속에서 천불이 끓어올랐지만, 지금 당장 무언가를 할 수는 없었다. 그는 통화하는 척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내 김기자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의 목소리는 차분했지만, 귓가에 들리는 수화기 너머의 김기자는 민성의 떨리는 숨소리만으로도 심상치 않은 일이 벌어졌음을 직감했을 것이다.


"김기자, 지금 당장 특종 준비해. 선우 정신병원 관련해서 기가 막힌 이야기가 터질 거야. 최대한 자극적이고, 크게 터트려. 네가 이 자식들, 어떻게 나오나 보자고."


그 시각, 선우 그룹 대표실. 최고급 가죽 소파에 앉은 선우 그룹 대표는 손에 들린 리모컨으로 대형 TV 화면을 응시하고 있었다. 뉴스 채널에서는 긴급 속보가 뜨겁게 보도되고 있었다.


[속보] 선우 그룹 계열 '선우 정신병원', 장기 적출 및 인신매매 혐의로 원장 긴급 체포


아나운서의 날카로운 목소리가 텅 빈 대표실을 울렸다. 체포 장면이 담긴 CCTV 영상이 잠시 화면에 비쳤고, 이내 화면은 뉴스 스튜디오로 전환되었다. 아나운서는 흥분된 목소리로 원장의 단독 범행이라는 점을 끊임없이 강조했다. 선우 그룹과는 무관한 일이며, 오직 원장의 개인적인 주식과 코인 투자로 인한 재정적 어려움이 범행 동기였다는 내용이 마치 각본처럼 흘러나왔다. 사라진 사람들에 대해서는 더욱 면밀히 조사할 것이라는 경찰청의 입장이 대변되었고, 이로 인해 선우 그룹의 이미지에는 상당한 타격이 예상된다는 분석과 함께 주가 하락도 예측된다는 이야기가 덧붙여졌다.


뉴스 화면의 한쪽 구석에는 병원 원장의 얼굴이 마치 흉악한 범죄자인 양 크게 확대되어 있었다. 그의 얼굴은 고통과 체념, 그리고 이해할 수 없는 비웃음이 뒤섞여 있었다.


경찰서 앞, 주차된 차 안에서 민성은 김기자와 함께 휴대폰으로 그 뉴스를 보고 있었다. 김기자의 얼굴에는 경악과 흥분, 그리고 혼란이 교차했다.


"형사님, 이건… 이건 완전히…! 단독 범행으로 몰아가는 건… 너무 뻔한 거 아닙니까? 기자회견이라도 해야 하는 거 아닙니까?"


김기자의 격양된 목소리에도 민성은 의외로 차분했다. 오히려 입가에 쓴웃음을 지으며 허탈한 듯 말했다.


"이 정도면… 넌 걱정할 것 없겠다."


김기자는 민성의 말뜻을 이해하지 못하고 되물었다. 그의 얼굴에는 온갖 의문이 가득했다.


"아니, 그러면 더 뭔가 배후가 있다는 말입니까? 대체 무슨 이야기예요? 병원 원장이 독박을 쓴다는 말이에요?"


민성은 피곤한 눈빛으로 흐릿한 차창 밖을 응시했다. 그의 심증은 확고했지만, 이렇다 할 물증이 없었다. 그는 낮은 목소리로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이런 식으로… 꼬리 자르기를 한다? 아주 깨끗하게. 단정하게. 마치 모든 계획이 차질 없이 진행된 것처럼 말이지…."


민성의 머릿속은 복잡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분명 다른 루트가 있을 것이라는 강한 예감이 들었다. 단순한 개인 범죄가 아닌, 거대한 조직이 움직인 흔적이 너무나 명백했다. 이들의 완벽한 꼬리 자르기 방식은 오히려 더 큰 배후를 의심하게 만들었다.


같은 시각, 선우 그룹 대표실.


선우 그룹 대표는 뉴스 화면이 꺼지자, 마치 세상의 모든 소음을 차단하듯 무거운 리모컨으로 TV 전원을 꺼버렸다. 화면이 암전 되자, 갑작스레 찾아온 침묵 속에서 공기가 더욱 무거워지는 듯했다. 최고급 샴페인 잔을 든 손영훈, 선우 정신병원 원장은 대표를 마주하고 앉아 있었다. 그의 얼굴에는 여전히 아까 뉴스에서 보였던 그 미소가 희미하게 걸려 있었다. 체념일까, 혹은 비웃음일까.


"영훈아…."


대표의 목소리에는 친근함과 동시에 미묘한 감정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었다. 그 호칭에는 오랜 세월을 함께 해 온 유대감과, 동시에 헤아릴 수 없는 복잡한 감정들이 실려 있었다.


"우리… 참 힘들게 여기까지 왔구나. 처음 우리가 만났을 때 기억나지?"


대표는 손영훈의 눈을 응시했다. 그의 시선은 단순한 질문이 아니라, 그들의 관계에 대한 모든 것을 꿰뚫어 보는 듯했다. 손영훈, 즉 영훈은 샴페인 잔을 든 채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대표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의 얼굴에는 오랜 고뇌와 체념, 그리고 숨겨진 열망이 뒤섞여 있었다.


"그럼… 기억하지. 재혁아. 시간이… 정말 많이 흘렀네."


영훈은 상대방의 이름을 나지막이 불렀다. '재혁'. 선우 그룹 대표의 이름이었다. 두 사람은 마치 친구처럼 서로를 대했다. 50대 초반으로 보이는 두 남자의 얼굴에는 동년배의 세월이 깊게 새겨져 있었다. 사회적 지위와 역할을 넘어, 그들 사이에는 말로는 형언할 수 없는 깊고 어두운 연결고리가 존재하고 있음을 암시하는 듯했다. 영훈의 희미한 미소는 점점 더 깊어졌다.


그들의 눈빛이 허공에서 교차하는 순간, 흐릿한 어둠 속에서 두 사람의 젊었던 시절 얼굴이 현재의 얼굴 위에 아련하게 겹쳐지기 시작했다. 거칠고 순수했던 젊은 날의 모습, 그리고 지금의 냉정하고 계산적인 얼굴이 뒤섞이며 시공간을 초월하는 듯한 기묘한 감각을 불러일으켰다. 그들의 이야기는 과연 어디서부터 시작된 것일까? 그리고 그들이 걸어온 길은 얼마나 많은 희생과 비밀로 얼룩져 있을까? 두 사람은 아득한 과거의 회상 속으로, 자신들만의 은밀한 시간 속으로 빠져들었다. 독자의 상상력을 자극하며, 다음 이야기에 대한 강렬한 여운을 남긴 채.

일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