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성장하는 염동력, 풀려나는 본능
민성은 백미러 너머로 그림자처럼 달라붙은 검은색 SUV 차량을 응시했다. 밤의 장막이 평택의 도시를 감싸기 시작했지만, 거울 속 그들의 모습은 희미한 가로등 불빛 아래 더욱 또렷하게 각인되었다. 짧은 스포츠머리, 바짝 깎은 턱선 아래 굳게 다문 입술, 그리고 매서운 독기마저 느껴지는 날카로운 눈빛. 망설일 틈조차 없었다. 그들은 단순한 추격자가 아니었다. 사냥개처럼 한번 물면 놓지 않을 작정으로 달려드는 포식자들의 기운이 등줄기를 타고 올라왔다.
민성은 액셀을 깊숙이 밟았다. 낡은 엔진이 고통스러운 비명을 지르며 RPM 게이지를 빠르게 치솟게 했다. 낡은 승용차는 거친 숨을 몰아쉬듯 아스팔트 위를 맹렬히 질주하기 시작했고, 눈앞에 나타나는 차량들을 거침없이 추월했다. 몸이 심하게 흔들릴 정도의 급격한 가속에 뒷좌석에 앉은 세 사람의 몸은 좌우로 정신없이 흔들거렸다.
"아빠!" 미나의 비명에 불안감이 가득했다.
"으악!" 호연이의 짧은 탄성이 이어졌다.
불안과 함께 민성의 뇌리에는 미나의 경고가 스쳤다. '아빠의 능력은 어쩌면 그 악귀가 심어놓은 미끼일 수도 있대요.' 지금 몸을 감싸는 이 폭발적인 힘, 위험을 감지할수록 더욱 또렷해지는 감각들이 정말 악귀의 덫이란 말인가. 아이들의 불안한 외침에도 불구하고 민성은 기어를 한 단 더 내리고 속도를 올렸다. 이대로 잡힐 수는 없었다.
맹렬한 추격전의 시작이었다. 민성의 차가 시야에서 멀어질세라, 검은색 SUV 차량도 덩달아 엔진음을 포효하며 속도를 올려 바싹 추격해 왔다. 강철이 강철을 쫓는 듯, 도로 위는 일촉즉발의 긴장감으로 가득 찼다. 민성의 이마에는 식은땀이 흘렀지만, 그의 눈은 오직 앞으로, 그리고 백미러 속 추격자의 움직임에 고정되어 있었다. 그의 머릿속은 수십 개의 경우의 수를 계산하며 탈출 경로를 탐색했다. 섣부른 판단은 아이들뿐 아니라 뒷좌석의 조태오까지 위험에 빠뜨릴 수 있었다.
"그 편집했다던 영상, 어디 있지?"
민성의 단호한 목소리가 차내에 울렸다. 뒷좌석 가운데에 앉아 잔뜩 움츠리고 있던 조태오가 바들바들 떨리는 손으로 상의 안주머니를 뒤져 USB 하나를 꺼냈다. 그의 얼굴에는 공포와 함께 체념이 서려 있었다.
"미나에게 건네줘!"
조태오는 눈치를 보며 망설이다가, 이내 미나에게 USB를 넘겼다. 미나의 손에 USB가 쥐어지는 것을 확인하자마자, 민성은 핸들을 꺾어 차를 시내 방향으로 냅다 돌렸다. 복잡한 도시의 불빛이 가까워질수록 그의 눈빛은 더욱 날카로워졌다. 시내가 주는 혼란스러움만이 이 위기를 벗어날 유일한 탈출구였다.
민성은 빌딩 숲이 빽빽한 이면 도로로 접어들었다. 차선을 바꾸는 다른 차량의 경적 소리, 밤늦도록 활기 넘치는 상점들의 불빛, 그리고 수많은 인파 속으로 낡은 차가 쏜살같이 파고들었다. 뒤따라오던 SUV가 거대한 몸집으로 도로 위를 미끄러지듯 따라붙기 직전, 민성은 핸들을 급하게 꺾어 건물을 끼고 급우회전하며 좁은 골목길 어귀에 차를 세웠다. 급정거에 몸이 앞으로 쏠렸지만, 아이들을 향한 민성의 목소리는 단호했다. "미나, 호연! 내려! 여기서 대중교통 이용하고 사람들 틈 속으로 숨어서 이동해! 절대로 잡히면 안 된다! 이 USB 잘 간직해!" 뒤에서 미행하던 차량이 막 모습을 드러내려는 찰나, 민성은 아이들의 등 떠밀며 다시 액셀을 밟아 골목 어귀를 벗어났다. 그의 마지막 말은 바람에 흩어져 아이들의 귀에 닿았다.
미나와 호연은 차가 채 멈추기도 전에 몸을 던지듯 차에서 뛰어내렸다. 그리고 어둠이 깔린 도시의 골목을 가로질러 활기 넘치는 상점가 방향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북적이는 인파 속으로 사라지기 위해 두 아이는 있는 힘껏 다리를 놀렸다. 호연이의 작은 숨소리가 헐떡였다.
"누나! 어디로 가는 거야?!"
"일단 뛰어!"
미나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달렸지만, 호연은 문득 뒤가 궁금해졌다. 위험을 감지하는 특유의 직감 때문이었을까? 짧은 다리로 달리는 와중에도 뒤를 돌아본 호연의 눈이 화들짝 커졌다. 아까 자신들을 미행하던 SUV 차량에서 검은 정장을 입은 사내 두 명이 튀어나와 맹렬한 속도로 쫓아오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들의 보폭은 아이들의 두 배가 넘었다.
"누나! 뛰어! 저기 또 있어!"
호연은 본능적으로 미나를 앞질러 달리기 시작했다. 그의 작은 심장은 쿵쾅거렸지만, 뇌는 이미 전방의 장애물과 뒤쫓아오는 거리를 계산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내 뒤따르던 미나가 너무 멀어졌다는 생각에 '아차' 싶어 다시 미나에게로 달려갔다. 그는 미나의 손을 낚아채며 잡았다.
"이리 가자!"
미나의 목소리에는 이제 숨길 수 없는 다급함이 묻어 있었다. 둘은 사람들이 드문 좁은 골목 사이로 꺾어 들어가 더욱 맹렬히 달렸다. 쓰레기통이 즐비한 뒷골목의 음습한 공기가 두 아이의 작은 폐를 가득 채웠다. 그러나 어린아이들의 달리기 속도는 냉혹한 추격자들을 따돌리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불과 몇 초 만에, 골목길 앞뒤로 검은 사내 두 명이 거대한 벽처럼 나타나 길을 막아섰다. 사냥감과 포식자, 더 이상 도망칠 곳은 없었다.
미나는 극한의 긴장으로 온몸이 뻣뻣하게 굳어갔다. 머릿속으로 아빠가 이전에 검은 사내들과 싸웠던 상황이 주마등처럼 스쳤다. 하지만 호연은 달랐다. 그의 작은 눈은 침착하게 골목길 주변의 벽과 쓰레기통, 그리고 사내들의 움직임을 훑었다. 그의 머릿속에서는 이미 막다른 골목이라는 현실 대신 '막혔다면 뚫고 가는 수밖에'라는 기발한 해법이 자리 잡고 있었다.
정면에 서 있던 검은 사내가 비웃듯이 '이리 오라'는 손짓을 하는 순간, 호연은 주저하지 않고 주머니에서 쇠구슬 하나를 꺼냈다. 그리고 염동력으로 쇠구슬을 쏘아 올려 검은 사내의 얼굴을 향해 정확히 날렸다.
퍽!
작지만 강렬한 금속음이 골목길에 울렸다. 쇠구슬은 정확히 녀석의 콧날을 강타했고, 충격으로 인해 검은 사내의 고개가 뒤로 젖혀졌다. 코에서 피가 터져 나오는 듯했지만, 녀석은 쓰러지지 않고 비틀거릴 뿐이었다. 호연은 목표를 맞춘 것을 확인하자마자, 뒤로 돌며 미나에게 소리쳤다.
"누나! 숙여!"
호연의 외침과 동시에 뒤에 있던 검은 사내가 짐승처럼 미나를 향해 달려들었다. 호연은 재빠르게 양 주머니에서 쇠구슬을 한 움큼 꺼내 들었다. 손에 쥐어진 수십 개의 쇠구슬이 그의 의지 아래 공중으로 떠오르자마자, 마치 산탄총처럼 검은 사내의 몸통으로 맹렬히 발사되었다.
화차자작!
금속이 고속으로 날아가는 소리, 그리고 검은 정장 위로 쇠구슬이 빗발처럼 박히는 소리가 섬뜩하게 뒤섞였다.
하지만 거리가 너무 가까워 파괴력이 분산된 듯했다. 양손으로 얼굴을 보호하듯 '가드' 자세를 취한 검은 사내는 등 뒤의 벽으로 세게 밀려났을 뿐,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 듯 끈질기게 버텼다. 녀석은 벽에 박힌 채 밀려나는 동안에도 눈을 번뜩이며 호연을 노려보았다.
"젠장, 작아서 안 아파하는 것 같아서, 좀 큰 놈으로 때려야 할 것 같아~!"
호연은 살짝 혀를 내밀며 개구쟁이 같은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그의 눈은 초고도의 집중 상태였다. 그는 지체 없이 양손을 휘저으며 공기를 끌어모으듯 허공에서 원을 그렸다. 그러자 골목 바닥에 흩어져 있던 쇠구슬들이 마치 강력한 자석에 이끌린 듯 하나둘씩 모여들었다. 공중에서 뭉쳐진 수십 개의 쇠구슬은 점차 탁구공만 한 덩어리로 묵직하게 변해갔다. 그 덩어리 주변에는 호연의 집중된 정신력이 만들어내는 듯한 미세한 공기 압력이 느껴졌다.
호연은 뭉쳐진 쇠구슬 덩어리를 그대로 뒤로 날려, 방금 전 쇠구슬에 맞아 비틀거리다 정신 차리려 일어서던 첫 번째 사내의 머리를 향해 정통으로 던졌다.
퍽!
이번에는 아까와는 차원이 다른 둔탁한 소리가 났다. 수십 개의 쇠구슬이 뭉쳐진 강철 덩어리는 방탄모를 쓴 듯한 녀석의 단단한 머리를 향해 정확히 날아갔고, 충격파는 그의 뇌를 뒤흔들었다.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하던 검은 사내는 그대로 바닥에 풀썩 쓰러져 축 늘어졌다. 미동조차 없었다.
호연은 다시 몸을 돌려 가드 자세로 버티고 있던 다른 검은 사내를 바라보았다. 그의 입가에는 다시 한번 특유의 자신감 넘치는 미소가 번졌다.
"이것도 막아보시지?"
호연의 말과 함께, 자석처럼 뭉쳐있던 두 번째 쇠구슬 덩어리가 마치 총알처럼 빠른 속도로 날아갔다. 그 속도는 육안으로 따라가기 힘들 정도로 빨랐고, 피할 틈도 없이 검은 사내의 복부를 강타했다. 쇠구슬 덩어리가 명치에 박히는 순간, 녀석은 입을 크게 벌리고 마치 물고기가 물 밖으로 튀어나온 듯 숨을 제대로 쉬지 못하며 고통스러워했다. 온몸의 산소가 일시에 고갈된 듯, 그는 컥! 꺽! 소리만을 낼 뿐이었다. 두 번째 사내도 그렇게 바닥에 무릎을 꿇고 쓰러져 움직이지 못했다.
그 모습을 보던 미나는 호연의 염동력이 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강해지고 정교해졌다는 생각에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토끼처럼 크게 뜨인 그녀의 눈에는 동생을 향한 기특함과 경외감이 가득했다. "누나, 괜찮아?" 호연은 고개만 들고 움츠려 있던 미나에게 다가가 손을 내밀었다. 미나는 그 손을 잡고 일어나며, 한숨 돌릴 새도 없이 호연을 이끌었다. 둘은 다시 시내의 복잡한 인파 속으로 서둘러 숨어들었고, 미나는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내 들었다. 떨리는 손으로 아빠에게 전화를 걸었다.
한편, 민성은 집요하게 뒤쫓는 검은 SUV 차량을 떼어내기 위해 필사적으로 운전하고 있었다. 굽이진 자동차 전용도로를 맹렬한 속도로 내달리는 동안에도, 백미러 속 추격자들은 마치 거머리처럼 달라붙어 그를 놓아주지 않았다. 도시는 거대한 사냥터가 되어 그들을 옥죄어 들어왔다. 그 순간, 전화기가 요란하게 울렸다. 미나였다.
"아빠! 우리 쫓아오던 사내 둘은 호연이가 처리했어! 우리는 이제 어디로 가야 해? 집도 분명 노출됐을 테고, 경찰서 또한 안전하지 못할 것 같아…."
미나의 말에 민성은 순간 안도했지만, 이내 다시 심장이 철렁했다. 자신들의 집은 분명 노출되었을 테고, 경찰서 또한 안전하지 못하다는 것을 직감했다. 이미 윗선에 손 이사장의 입김이 닿아 있었다. 민성은 망설임 없이 단호하게 답했다.
"할머니 집으로 가! 무학산으로! 거기가 제일 안전해. 할머니께도 조심하라고 전하고."
전화가 끊어지기도 전, 그때였다. 뒤를 쫓아오던 검은 SUV 차량이 갑자기 오른쪽 옆 차선에서 달려들어 민성의 차량 운전석 뒷문을 맹렬하게 들이받았다. 콰앙! 엄청난 굉음과 함께 민성의 낡은 승용차는 균형을 잃고 그대로 왼쪽 가드레일에 부딪혔다. 철컹이는 쇠붙이 소음이 밤의 도로를 가득 채웠다. 들이받았던 SUV 차량은 그 기세를 몰아 속도를 더욱 내어 민성 차량의 옆구리로 비집고 들어와 앞을 막아섰다. 결국 민성의 차량 앞을 막아서며 도로 한가운데 꼼짝없이 갇히게 만들었다. 덫에 걸린 짐승처럼 사방이 막힌 형국이었다.
민성은 후진 기어를 넣으려 뒤를 돌아보았지만, 거울 속으로 보이는 자동차 전용도로 위를 맹렬히 달리는 다른 차량들의 헤드라이트 불빛에 이내 포기했다. 지금 후진하여 빠져나가려 하다가는 멈추지 않고 달려오는 뒤 차량과 부딪혀 더 큰 연쇄 추돌 사고로 이어질 것이 분명했다. 수많은 무고한 인명이 다칠 수도 있었다. 민성은 뒷좌석에 앉아 벌벌 떨고 있는 조태오 직원을 향해 짧지만 살벌한 어조로 경고했다.
"조용히 차 안에 얌전히 있어."
그리고는, 마치 운명에 맞서 싸우듯 굳건한 표정으로 차 문을 열고 도로 위로 나섰다. 싸움을 피할 수 없는 순간이었다.
민성이 차에서 내리자마자, 검은 SUV 차량에서 내린 두 명의 건장한 검은 사내들이 기다렸다는 듯 짐승처럼 으르렁거리며 달려들기 시작했다. 첫 번째 사내가 거친 발걸음으로 돌진해 왔다. 민성은 상대의 움직임을 눈으로 좇는 것이 아니라, 그의 증폭된 오감으로 공기의 흐름과 발소리, 그리고 피부에 와닿는 미세한 압력 변화를 읽어냈다. 마치 시간이 느려진 듯한 착각 속에서, 민성은 상대방의 공격 패턴을 미리 읽고 더 빠르게 움직였다. 그의 몸은 이성적인 판단을 뛰어넘어 본능적으로 반응했다. 민성은 마치 미끄러지듯 옆으로 비켜서며 상대의 빈틈을 파고들었다. 그의 손바닥이 엄청난 속도로 녀석의 턱을 올려쳤다.
퍼억!
둔탁한 소리와 함께 녀석의 고개가 뒤로 격렬하게 젖혀졌다. 목뼈가 꺾일 것 같은 충격에 몸의 균형을 잃고 비틀거렸다. 첫 번째 사내의 충격을 확인하며, 민성은 본능적으로 왼쪽으로 몸을 돌렸다. 뒤따라오던 다른 사내가 마치 기계처럼 주먹을 휘두르기 시작했지만, 민성의 눈에는 그의 움직임이 왠지 모르게 느리고 둔하게 보였다. 민성은 여유롭게 상대의 주먹을 피하며, 그의 시선은 상대의 움직임 사이의 미세한 틈을 놓치지 않았다.
그리고 상대의 틈이 생긴 그 순간, 민성의 주먹이 녀석의 입술과 콧등을 향해 번개처럼 연이어 두 번 날아갔다.
빠!
녀석의 입술은 찢어지고 콧등은 주저앉는 소름 끼치는 소리와 함께, 피가 튀어 올랐다. 피를 흘리며 뒤로 주춤거리는 녀석에게 다시 공격하려 할 때, 아까 턱을 맞았던 첫 번째 사내가 기척도 없이 옆구리로 달려들어 민성을 거칠게 끌어안았다. 민성은 균형을 잃고 두 사내와 함께 아스팔트 바닥에서 뒹굴거리게 되었다.
그 순간, 안면을 피 터지게 맞았던 두 번째 사내가 마치 좀비처럼 다시 일어서더니, 품속에서 날카로운 칼날이 번뜩이는 긴 사시미 칼을 꺼냈다. 번뜩이는 칼날은 밤하늘의 가로등 불빛을 반사하며 섬뜩하게 빛났다. 칼을 든 사내는 민성과 뒹굴고 있는 동료가 찔리든 말든 아랑곳하지 않고, 마구잡이로 민성을 향해 칼을 찔러대기 시작했다. 그의 얼굴에는 오직 '민성을 죽여야 한다'는 기계적인 살의만이 서려 있을 뿐, 동료에 대한 일말의 동료애나 자비심 같은 것은 찾아볼 수 없었다.
민성은 팔과 허벅지가 연이어 날카로운 칼날에 찔렸다. 차가운 칼날이 피부를 찢고 근육 속으로 파고드는 극심한 고통이 온몸을 강타했다. 뜨겁고 끈적한 피가 옷 위로 번져 나왔다. '동료를 신경 쓰지 않아?!' 민성은 경악했다. 하지만 그 생각은 곧이어 목을 노리고 찔러 오는 칼날에 의해 끊어졌다. 그는 간발의 차로 머리를 옆으로 돌려 피하며, 동시에 몸을 격렬하게 비틀었다. 칼날은 그의 목을 비켜갔지만, 그 와중에도 오른쪽 허벅지 안쪽 깊숙이 칼이 박혔다. 그는 비틀거리며 겨우 몸을 굴려 아스팔트 바닥에서 일어섰다.
일어서자마자 팔과 허벅지에서 피가 솟구쳐 나오기 시작했다. 칼에 깊게 찔렸는지, 흥건한 피가 낡은 코트 아래로 빠르게 흘러내려 아스팔트 바닥에 붉은 흔적을 남겼다. 민성과 함께 뒹굴다 칼에 찔렸던 첫 번째 사내는 과다 출혈로 인한 쇼크 때문인지, 바닥에서 미약하게 쿰틀거릴 뿐 움직이지 못했다. 칼을 든 검은 사내는 마치 다음 공격을 계산하듯 민성과 대치하며 천천히 걸어왔다.
그 순간이었다. 민성의 코끝을 강렬한 피 냄새가 자극했다. 자신의 몸에서 솟구치는 피, 그리고 바닥에 흥건한 사내의 피가 어우러져 비릿하고 역겨운 향기를 풍겼다. 이성으로 억누르려 했던 어떤 거대한 힘이 몸속 깊은 곳에서부터 꿈틀거리는 것이 느껴졌다. 심장이 마치 전장에서 울리는 거대한 북소리처럼 귀에 들릴 정도로 강하고 빠르게, 미친 듯이 박동했다. 그 진동이 온몸의 세포 하나하나를 깨우는 듯했다. 몸의 통증은 점점 희미해지고, 대신 뜨거운 전율이 혈관을 타고 퍼져나갔다. 흥분해서인지, 아니면 다른 어떤 이유에서인지, 점차 몸에 주체할 수 없을 정도의 힘이 넘쳐나는 것이 느껴졌다. 손끝에서 발끝까지, 온몸의 근육이 경직되면서도 유연하게 반응할 준비를 마쳤다.
민성의 얼굴은 더 이상 평소의 인간적인 모습이 아니었다. 그의 눈동자는 밤의 어둠 속에서도 형형하게 빛나는, 인간의 범주를 넘어선 어떤 비원(非元)의 존재가 깨어난 듯 맹렬함으로 이글거렸다. 눈빛은 주변의 모든 것을 집어삼킬 듯이 이글거렸고, 굳게 다물린 입술 아래로 송곳니가 비죽 튀어나올 것 같은 맹렬함이 느껴졌다. 턱선은 더욱 날카롭게 부각되었고, 피부 위로 핏줄이 도드라지며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아득한 옛 시대를 지배했던 원초적 본능이 그의 육체를 잠식한 듯했다.
칼을 든 검은 사내는 민성의 급작스러운 변화에 본능적인 공포를 느낀 듯, 걸음을 멈추고 주춤거렸다. 그의 눈에 비친 민성의 모습은 더 이상 평범한 인간이 아니었다. 그 강렬한 분위기에 압도당한 검은 사내가 한순간 움찔한 그 찰나, 민성이 움직였다.
마치 밤의 그림자처럼 순식간에 사라졌다가 나타나는 압도적인 속도였다. 검은 사내가 눈치챌 새도 없이, 민성의 손바닥이 그의 얼굴을 강타했다. 퍽! 충격과 함께 검은 사내의 뒤통수는 거친 아스팔트 바닥에 처박혔다. 뼈와 살이 으스러지는 듯한 **'수박 깨지는 소리'**가 섬뜩하게 울려 퍼졌다. 녀석의 몸이 그대로 축 늘어졌다.
민성은 쓰러진 녀석의 멱살을 잡고 거친 힘으로 들어 올렸다. 그리고는 그대로 몸을 돌려 육중한 가드레일에 내던졌다. 콰앙! 강철 가드레일이 크게 휘청거릴 정도로 엄청난 충격음이 났다. 녀석의 몸이 바닥에 쓰러지기도 전에 민성은 이미 그곳에 다가가 있었다. 그는 몸이 바닥에 쓰러지기도 전에 녀석을 다시 발로 걷어찼다. 너무나 압도적으로 빠른 속도와 상상을 초월하는 힘이었다. 검은 사내는 가드레일에 마치 쑤셔 박힌 듯한 모습으로 고꾸라졌다. 더 이상 미동도 없었다.
민성의 차 안에 남아있던 CCTV 담당 조태오 직원은 이 모든 광경을 얼어붙은 채 지켜보고 있었다. 그는 자신의 눈을 비비며 꿈을 꾸고 있는 건 아닌지 확인했다. 민성의 모습은 감히 사람이 상상할 수 있는 범위의 존재가 아니었다. 아득한 옛 시간에서 튀어나온 듯한 원초적인 힘. 조태오는 숨조차 제대로 쉬지 못하며 바닥에 늘어진 세 사내, 그리고 거친 숨을 몰아쉬는 민성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그의 심장은 터질 듯이 울렸고, 손에 땀을 쥐며 공포에 질려 떨었다. 그는 직감했다. 자신은 지금, 인간의 영역을 넘어선 존재와 마주하고 있음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