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부: 얽힌 사슬, 어둠의 심연으로

5. 잊혀진 과거, 깨어난 그림자

by 끄적쟁이

5. 잊혀진 과거, 깨어난 그림자


강성민 형사는 손정길 이사장이 경찰서에 이리도 순순히 와주었다는 사실에 내심 놀라고 있었다. 거대 기업 선우그룹의 이사장이 변호사도 없이 홀로 올 것이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예상대로 그는 날카로운 눈매의 중년 변호사를 대동하고 나타났고, 조사실에 들어서는 내내 짙은 색 양복 차림의 여유로운 태도로 강성민 형사를 뚫어지라 쳐다볼 뿐이었다. 그의 눈빛은 흡사 맹수처럼 형형했고, 짐짓 모든 것을 꿰뚫어 보는 듯한 오만함마저 엿보였다.


민성은 김영준 원장의 충격적인 진술을 바탕으로, 손 이사장에게 사람들을 불법적으로 공급하라는 지시를 내렸는지, 그리고 새벽 부두에서 포획된 검은 정장의 사내들은 대체 누구인지 끈질기게 물었다. 그러나 손 이사장은 시종일관 모든 혐의를 부인했다. 마치 대본을 외운 듯, 그의 변호사는 짜증스럽게 끼어들었다.

"증거도 없이 이렇게 조사를 강행하는 것은 명백한 위법입니다. 체포 영장도 없이 지금 무얼 하자는 겁니까? 제 의뢰인은 바쁜 사람입니다!"

변호사의 목소리가 조사실 벽을 때리며 날카롭게 울렸다. 김영준 원장의 자백만으로는 손 이사장을 당장 구속할 수는 없었다. 증거 불충분이라는 현실의 벽은, 견고한 권력의 그림자처럼 민성의 앞을 가로막고 있었다.


분노가 치밀어 오르는 민성의 눈빛을 간파한 듯, 손 이사장은 갑자기 손을 들어 변호사를 제지했다.

"그만하시오."

그의 목소리는 나지막했지만, 그 안에는 주변의 소음을 집어삼키는 듯한 차갑고 단호한 위압감이 서려 있었다. 변호사는 즉시 입을 다물었다. 손 이사장의 묘한 권위에 민성의 눈썹이 저도 모르게 꿈틀거렸다. 민성은 이 남자가 심상치 않음을 온몸으로 느끼고 있었다.


손 이사장은 테이블 건너편에 앉은 민성을 꿰뚫어 보듯 응시하며 차분하게 입을 열었다. 그의 시선은 흡사 먹잇감을 탐색하는 사냥꾼과 같았다.

"안 와도 되는데 왜 직접 찾아왔는지 궁금하실 겁니다, 강민성 형사님."

그는 민성의 어깨에 붙은 명찰을 힐긋 보고는 비릿하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

"저는… 당신이 궁금했습니다. 그리고 당신의 기개가 참으로 용맹하더군요. 쥐뿔도 없는 상황에서 이렇게 대담하게 조사를 해오다니."


민성의 얼굴에는 어이없다는 표정이 번졌지만, 그의 심장은 경고음을 울렸다. 그 순간, 민성은 직감했다. '이 놈이 맞다. 이놈이 이 모든 사건의 핵심이다. 그리고 지금 그는 나를 간 보러 온 거야. 도대체 나에게, 그리고 우리 아이들에게 뭘 알고 싶어서 온 거지?' 민성의 형사 직감은 틀리지 않았다. 손 이사장은 김영준 같은 단순한 꼬리가 아니었다. 그는 거미줄처럼 복잡하게 얽힌 조직의 중심에 서 있는, 차가운 심장의 지휘자임이 분명했다.


잠시 서로를 쳐다보고 있던 둘 사이에 팽팽한 침묵이 흘렀다. 그 침묵은 마치 언제 터질지 모르는 폭탄처럼 위태로웠다. 그 폭탄의 도화선에 불을 붙인 것은 다름 아닌 김 반장이었다. 그는 민성의 어깨를 툭 치며 말했다. "손 이사장님, 오늘은 이쯤에서 돌아가 주십시오. 추가 증거를 확보하여 다시 소환하겠습니다."

그의 목소리에는 손 이사장을 더 이상 붙잡고 있을 수 없는 현실적인 제약이 묻어 있었다.


민성은 김 반장을 돌아보며 불만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의 눈은 '지금 저놈을 놓치면 안 된다'라고 소리치는 듯했지만, 김 반장은 고개를 설레설레 저으며 손가락으로 천장을 가리켰다. '조용히 해, 윗선에서 압력이 들어왔어.' 김 반장의 눈빛이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선우그룹은 작은 제약 회사로 시작하여 주식 상장 후 무섭게 성장한 거대 기업이었다. 병원까지 설립하고 인수하며 세력을 확장했고, 심지어 '사회 환원'이라는 미명 하에 장애인 학교, 복지 재단 등에 막대한 지원을 아끼지 않는 '모범 기업'으로 언론에 포장되어 있었다. 그런 곳을 쑤시고 다니는 것에 압박이 오지 않을 수가 없었다. 혹여, 그 그룹의 뒤를 봐주는 거대한 윗선이 있다 해도 결정적인 증거가 없는 한, 경찰 조직은 섣불리 손을 쓸 수 없었다. 거대한 권력의 그림자가 그들 위에 드리워져 있었다.


손 이사장은 의자에서 천천히 일어나 조사실 문을 향해 걸어갔다. 문고리를 잡으려던 순간, 그는 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돌려 민성을 향해 나지막하게 말을 던졌다. 그의 입술은 비틀린 조소처럼 얄팍하게 움직였다.

"참, 그 꼬마 도사와 어린 무녀는 안 보이는데… 어디 있습니까? 가까이 있는 것 같긴 한데 말입니다…."

민성의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그의 얼굴에는 당혹감과 함께 맹렬한 분노가 치밀었다. 손 이사장은 분명 자신의 아이들에 대해, 그것도 정확히 미나와 호연의 특별한 능력을 꿰뚫고 있었다. 그의 얼굴은 차가운 미소로 일그러져 있었다.

"조심하십시오, 강민성 형사님. 당신이 지키려는 것이 무엇이든, 제가 아는 것보다 훨씬 복잡하고 위험한 세상에 발을 들인 것이니 말입니다."

손 이사장은 섬뜩한 경고를 남기며 조사실 문을 열고 사라졌다. 그의 발소리는 차갑게 식은 복도에 텅 비게 울렸다. 마치 민성의 마음에 남은 공허함처럼.


[동시에, 옆 건물 2층 강력반 대기실]


미나와 호연은 강력반 건물 옆 2층 대기실 창문 너머로 손 이사장의 뒷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김 반장이 민성을 달래느라 정신없는 틈을 타 민성과 손 이사장이 대화하는 모습을 멀리서나마 보고 있던 참이었다. 혹여 들킬세라 고개를 숙여 조심스럽게 상황을 살피는 두 아이의 표정에는 잔뜩 긴장감이 서려 있었다.


미나의 영적인 시야는 손 이사장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그가 조사실 의자에 앉아 민성과 마주하는 순간, 그의 모습은 끔찍하게 변모했다. 평범한 중년 남자의 멀끔한 양복 위로, 등 전체를 뒤덮은 거대한 검은 기운이 마치 맹독의 아지랑이처럼 끈적하게 피어오르고 있었다. 그것은 김영준 원장에게서 느껴졌던 희미한 악한 기운과는 비교할 수 없는, 지독하고 압도적인 악의 밀도였다. 미나는 순간, 새벽 부두에서 본 검은 사내들의 목 뒤에 새겨진 문신에서 이글거리던 기운이 손 이사장의 등 뒤에서 뿜어져 나오는 검은 아지랑이와 겹쳐 보이는 것을 느꼈다. '같은 기운… 같은 느낌이야… 심연의 악취와 같아….' 미나의 직감은 맹렬히 경고했다.


그리고 그 검은 아지랑이 한가운데, 놀랍게도 붉은 눈동자가 마치 어둠 속에서 번개처럼 번쩍이듯 나타났다. 핏빛처럼 붉은 홍채, 그 가운데 자리한 검은 눈동자는 섬뜩하게 빛나며 이리저리 무언가를 찾는 듯 꿈틀거렸다. 마치 손 이사장 내면에 또 다른 존재가 자리하고 있는 것처럼, 혹은 그 존재가 손 이사장을 통해 미나의 존재를 탐색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 붉은 눈동자가 순간 미나가 있는 2층 창문 쪽을 향하는 듯한 착각에, 미나는 전신에 소름이 돋았다. 등골을 타고 오르는 서늘함에 그녀의 심장이 발아래로 곤두박질치는 듯했다.


"젠장…!"

미나는 본능적으로 재빠르게 몸을 숙이며 호연이를 끌어내렸다. 그녀의 손은 호연의 팔을 강하게 움켜쥐었다. 손끝이 차갑게 식어 있었다.


영문도 모르는 호연은 엉덩방아를 찧으며 짜증 섞인 목소리로 물었다.

"누나! 왜 그래! 갑자기 왜 이러는데!"

그러나 미나의 창백하게 질린 얼굴과, 충격으로 크게 뜨인 눈을 보자 호연은 순간 입을 다물었다. 호연은 더 이상 묻지 않고, 조용히 누나 옆에서 기다렸다. 미나의 상태가 심상치 않음을 직감했기 때문이었다. 그녀의 심장이 격렬하게 뛰는 소리가 자신의 심장 소리처럼 들렸다.


미나는 손 이사장의 시선이 닿았던 방향을 피하듯 벽에 바짝 몸을 붙인 채, 가쁘게 숨을 몰아쉬었다. 그리고 천천히 눈을 감고 손을 모았다.

"장군님… 부디… 저에게 힘을…."

녀는 거의 애원하듯이 낮은 목소리로 읊조렸다. 장군신에게 접신을 시도하는 모습이었다.


잠시 동안 미나의 몸이 미세하게 부르르 떨리기 시작했다. 그녀의 손발은 차가워졌고, 피부에는 닭살이 돋았다. 그녀의 눈꺼풀이 파르르 움직이더니, 이내 동공이 희미하게 위로 뒤집혔다. 그리고 다시 뜨였을 때, 그 눈동자에는 더 이상 미나의 불안함이 아닌, 깊고 오래된 존재의 무게와 위엄이 담겨 있었다. 그녀는 가끔씩 자신의 등 뒤를 돌아보며 허공에 대고 대화를 하는 모습을 보였다. 마치 바로 뒤에 장군신이 강림하여 함께 이야기를 나누는 것처럼.


호연은 누나의 기이한 모습에 눈이 휘둥그레졌다. '드디어 누나가 혼잣말을….'이라는 생각이 그의 머리를 스쳤지만, 이내 퍼뜩 정신을 차렸다. '아하! 장군신이 오셨나?' 그는 미나의 시선이 가는 허공 뒤쪽에 다가가 손을 뻗어 마치 공기 속의 무언가를 만지듯 이리저리 휘저었다.

"장군님! 거기 계세요? 제가 보이세요? 저도 한번 만져봐도 돼요?"

호연의 순진한 장난기 어린 행동이었다.

미나의 입술이 비틀리듯 열리고, 그 안에서 장군신의 쩌렁쩌렁한 목소리가 울렸다. 미나의 여린 목에서 나오는 소리라고는 믿기 어려울 만큼 굵고 위엄 있었다.

"이놈, 호연! 쓸데없는 장난치지 마라! 지금 중차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지 않느냐!"


호연은 장군님의 핀잔에 움찔하며 즉시 손을 거두고 누나 옆에 얌전히 앉았다. 그는 누나의 몸을 빌린 장군신과 대화의 내용을 한 마디도 놓치지 않으려는 듯 귀 기울여 듣기 시작했다. 장군신은 미나의 몸을 통해 손 이사장에게서 감지된 기운, 그 '악귀'의 정체와 특징에 대해 설명하기 시작했다.


"임진년(1592년), 왜 나라가 조선을 침략했던 그 시절에도 이 늙은 장군신은 저런 종류의 악귀를 마주한 적이 있었다. 그 시절, 왜군들은 수많은 영매사와 주술사들을 함께 대동하여 조선을 침략했지. 그 왜인 주술사들이 조종하던 이형(異形)의 병사들… 그들은 인간의 형상을 하고 있었으나, 고통을 모르고 오직 명령에만 움직이는, 살덩이로 만들어진 살인 병기들이었다. 그들의 눈은 이미 죽은 것이나 마찬가지였지."

장군신의 목소리는 아득한 과거의 전장을 생생하게 묘사하는 듯했다. 민성이 아까 들것에 실려가던 사내들에게서 느꼈던 '영혼이 빠진 인형 껍데기'라는 말이 겹쳐지는 순간이었다.


장군신은 말을 잇는 중간중간 미나의 몸을 통해 깊은숨을 쉬는 듯, 가슴팍을 움켜쥐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마치 그 과거의 경험이 다시금 전신을 스치는 듯했다.

"하나 저 악귀… 그 시절에도 다른 악귀들과는 다른 이질적인 존재였다. 특이하게 사람의 육신을 직접 조종하기보다, 그 정신을 세뇌시키고 환각에 빠뜨려 조종하는 데 특화된 아주 고약한 놈이었다. 육체의 고통으로는 감히 범접할 수 없는, 영혼 자체를 침범하여 본연의 의지를 비틀고 잠식하는 잔혹한 재주를 지녔었지. 그때 보았던 악귀가 다시 나타난 것인가? 아아, 어찌 한탄스럽지 아니한가!"

한 편의 짧은 드라마처럼 강렬했던 전쟁의 순간들이 미나의 머릿속에 섬광처럼 펼쳐졌다. 인간의 피와 영혼을 바쳐 오직 그들의 주인에게 충성하는 악마 같은 병사들. 그들은 육체가 살아 있는 채로, 자신의 모든 의지를 빼앗긴 채 죽어갔다. 바로 그 악귀가 다시 깨어나 현대 사회를 유린하고 있었다.


장군신은 쩌렁쩌렁 울리는 목소리로, 미나의 내면에 생생한 과거의 영상들을 투영하는 듯했다. 미나는 전쟁의 참상과 세뇌된 인간 병사들의 공허한 눈빛, 그리고 그 모든 것을 낄낄대며 조종하는 어둠의 그림자를 보았다. 정신이 통제된 병사들이 동료를 스스럼없이 베고, 주저 없이 적에게 돌진하는 끔찍한 광경. 육체의 상처보다 정신의 붕괴가 더 끔찍하다는 것을 미나는 비전을 통해 생생히 경험했다.


장군신은 마지막 경고를 남겼다.

"이 늙은 장군신 자신도 인간을 통해 힘을 발휘하는 것이기에, 나의 그릇인 인간의 육체의 고통은 참아낼 수 있지만, 영혼을 뒤흔드는 정신적 공격과 교묘한 환각 때문에 고생했던 기억이 생생하구나. 육체의 고통은 참아낼 수 있지만, 영혼을 뒤흔드는 정신적 공격은… 실로 고통스러운 것이었다. 그 마수는 인간의 가장 깊은 곳을 파고들지. 네 아비 또한, 이미 그 기운에 어느 정도 잠식당했을지도 모른다. 조심해라, 아이야. 저 악귀는 단순한 육체의 살인이 아닌, 영혼의 살인을 꿈꾸는 놈이다."

장군신의 목소리에는 아득한 고통과 함께, 저 악귀에 대한 깊은 경계심과 동시에 인간적인 연민이 묻어 있었다.


그 대화가 끝나갈 무렵, 미나의 몸은 다시 한번 크게 부르르 떨리더니 눈꺼풀이 스르르 내려왔다. 장군신은 그녀의 육체에서 빠져나간 듯, 미나는 고통에 찬 신음소리를 내며 온몸을 휘청거렸다. 호연은 미나가 완전히 정신을 차리도록 부축하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누나… 장군님이… 뭐라고 하셨어? 아빠도 잠식당했다고?"

미나는 거친 호흡을 가다듬으며, 방금 전 겪은 생생한 악몽 같은 비전과 장군신의 경고를 애써 떠올리려 했다.


그들이 다시 고개를 들어 창밖을 보았을 때, 이미 손 이사장은 경찰서 건물을 떠나 멀리 사라진 후였다. 다만 민성이 여전히 화난 표정으로 김 반장에게 무언가를 격렬하게 따지고 있는 모습만이 보였다. 김 반장은 곤란한 표정으로 민성을 필사적으로 달래고 있었다. 손 이사장은 단순히 자신들의 능력을 알고 있을 뿐 아니라, 그들과 싸워봤던 오래된 존재를 몸 안에 품고 있다는 것. 이 모든 것이 점점 더 거대한 미스터리로 얽혀 들어가는 순간이었다. 민성 가족의 발걸음은 이제 더 깊은 심연으로 향하고 있었다.

일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