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부: 얽힌 사슬, 어둠의 심연으로

14. 첫 접전, 무학산 (初接戰, 舞鶴山)

by 끄적쟁이

14. 첫 접전, 무학산 (初接戰, 舞鶴山)


무학산 정상 부근의 깎아지른 절벽, 마치 하늘의 손이 빚어낸 거대한 요새와도 같은 돌무더기 위에서 세 그림자가 고요히 밤의 일부가 되어 있었다. 강민성, 그리고 그의 두 아이, 미나와 호연. 그들 위로는 칠흑 같은 밤하늘이 무한히 펼쳐져 있었고, 손에 잡힐 듯 가까이 떠오른 차가운 달은 은빛 비늘처럼 빛을 쏟아냈다. 그 달빛은 아래로 난 좁고 가파른 오솔길을 희미하게 비추고 있었다. 밤바람은 으스스한 속삭임을 토해내며 바위틈을 헤집고 지나갔고, 깊은 계곡 아래에서는 짙은 밤안개가 느릿느릿 꿈틀거렸다. 공기 중에는 풀 내음과 흙 내음이 뒤섞여 있었지만, 그 모든 자연의 소리 속에서도 세 사람의 귀에는 오직 긴장감의 날카로운 침묵만이 맴돌았다. 민성의 심장은 낮게 고동쳤고, 미나와 호연의 작은 어깨는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몇 분인지, 몇 시간인지 가늠조차 할 수 없는 정적의 시간이었다. 고요가 팽팽한 활시위처럼 늘어져 끊어질 듯 이어질 때였다. 바위틈에 숨어 아래쪽을 주시하던 미나의 온몸이 순간적으로 경직되었다. 무릎을 감싼 한복 치마 사이로 손이 파고들어 작은 주먹을 꽉 쥐었다.


"아빠… 곧 나타날 거예요."


나지막하게 읊조리는 미나의 목소리에는 파동이 실려 있었다. 마치 산 자체가 그녀의 입을 빌려 속삭이는 듯했다. 그녀의 미간에는 어린아이답지 않은 깊은 주름이 잡혔고, 맑고 깨끗해야 할 무학산의 기운에 어딘가 부정적이고 혐오스러운 기운이 나타났음을 감지하고 있었다. 그것은 단순한 사람들의 기척이 아니었다. 인간의 몸을 가진 존재에게서 나올 수 없는, 섬뜩한 악의 기운이었다.


미나는 눈살을 찌푸리며 한마디를 더 덧붙였다.


"그림자들뿐만이 아니에요. 훨씬 더 악한 기운이… 아! 그 악귀의 기운…!"


미나의 머릿속에 검은 아지랑이 속에서 번뜩이는 붉은 눈의 이미지가 섬광처럼 나타났다. 심장 저 깊은 곳까지 스며드는 듯한 냉기로 인해 그녀의 몸은 부르르 떨렸다. 그녀의 영적인 감각은 이미 그들의 존재가 평범한 인간을 초월한, 차가운 생명체임을 외치고 있었다. 공포가 그녀를 휘감았지만, 그녀는 민성을 바라보았다.

옆에 있던 호연은 미나의 그런 모습이 의아했다. 어딘가를 응시하며 긴장하는 민성의 모습과 함께 미나가 눈을 감고 미간을 찌푸리는 모습에 궁금증이 증폭했다.


"어디? 어디?"


호연은 몸을 일으켜 세우고는 고사리 같은 손으로 이마에 손을 얹어 까치발을 들고 아래를 살폈다. 하지만 아직 그림자들은 보일 턱이 없었다. 그의 시야에는 그저 짙은 밤안개와 칠흑 같은 어둠, 그리고 무심한 바위들만이 존재할 뿐이었다.


민성은 미나의 말을 듣고 눈을 감았다. 더 이상 아이들에게 불안을 주지 않기 위해 애썼다. 미나의 영적인 감각이 자신보다 먼저 알아차렸다는 것에 묘한 자긍심과 함께 날카로운 경계심이 동시에 솟아올랐다. 그는 조용히 청각과 시각을 넘어 모든 감각을 확장하며 아래쪽 숲에 집중했다. 열댓 명은 족히 넘어 보이는 발자국 소리, 억지로 감추려 해도 미약하게 새어 나오는 짐승 같은 기운. 방향은… 그들이 매복한 오솔길을 향해 올라오고 있었다! 민성은 자신의 생각대로 정확히 움직여 주는 그림자들을 시야에 나타나기를 기다렸다.


곧이어, 밤안개 사이로 흐릿했던 실루엣들이 점점 선명해지며 그들의 시야에 모습을 드러냈다. 민성은 호연에게 눈짓을 보냈다. 그의 눈은 불타는 숯처럼 이글거렸다. 호연은 아빠의 신호를 포착하자마자 주머니에서 쇠구슬 하나를 꺼내 손바닥 위 허공에 띄웠다. 쇠구슬은 그의 염동력에 의해 제자리에서 빠르게 회전하며 속도를 올리고 있었다. ‘쉬이 이잉-’ 쇠구슬 주변의 공기가 비명을 지르는 듯했다.


그 그림자 무리는 마치 정교하게 훈련된 특수부대 같았다. 칠흑 같은 검은색 전투복에 머리부터 얼굴까지 모두 가리는 복면과 마스크. 2열 종대로 빈틈없이 대형을 이뤄 오솔길을 오르고 있었다. 그들은 완벽한 살육 기계처럼 보였다. 그 무리 중 가운데 한 사람만이 마스크를 쓰고 있지 않았다. 턱에는 마이크를, 귀에는 이어폰을 단 채 무전으로 지시를 내리는 듯했다. 바로 그였다. 선우 정신병원 이사장! 어둠 속에서도 그의 섬뜩한 미소가 민성의 눈에 정확히 포착되었다. 이 모든 사태의 원흉, 그가 직접 발걸음 한 것이었다.


민성은 호연에게 이사장을 정확히 가리키며, 손가락을 까딱거리는 공격 신호를 보냈다. 이사장을 직접 노려라. 호연의 작은 손이 마치 활시위를 당기듯 뒤로 움츠려졌다가, 모든 에너지를 응축하듯 앞으로 던지듯 뿌렸다. '파슉!' 회전하던 쇠구슬이 밤공기를 찢으며 총알 같은 속도로 쏘아져 나갔다. 마치 어둠 속의 한 줄기 빛처럼 이사장을 향해 맹렬하게 날아갔다.


"깡!?"


예상치 못한 찢어지는 쇳소리. '퍽!' 하는 살을 뚫는 소리가 아니라, 무언가에 부딪힌 금속성의 '깡!' 소리에 민성과 호연은 동시에 눈을 마주했다. 호연의 얼굴에는 놀라움과 동시에 당혹감이 스쳤다. 그는 곧바로 이사장을 바라보았다. 이사장을 보호하며 불쑥 나타난 것은 또 다른 그림자였다. 그 그림자는 평범한 방패가 아닌, 경찰들이 시위 진압 시 사용하는 것 같은 커다란 강철 방패를 들고 있었다. 방패는 호연의 쇠구슬을 정확히 막아냈다.


"이런…!"


민성의 입에서 짧은 실소가 터져 나왔다. 뼈아픈 깨달음이었다. 그들은 이미 호연의 능력을 정확히 알고 있었고, 그에 대한 대비책까지 세워 온 것이었다. 처음부터 계획이 틀어졌다. 이사장을 일격에 제압하고 혼란을 야기하려던 전략이 실패한 것이다. 무리 사냥에서 우두머리 제압이 우선이라는 것은 기본적인 상식인데.


민성은 잠시 고개를 숙이고 그림자들의 움직임을 관찰했다. 날아온 쇠구슬의 방향은 짐작하는 듯했지만, 그들의 정확한 위치는 아직 파악하지 못한 듯했다. 민성은 자신들 또한 이들에게 '미지의 능력'을 가진 존재라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아니, 놈들도 보통이 아니야. 총알처럼 날아오는 쇠구슬을 어떻게 저렇게….' 호연은 자신의 공격을 막아내는 그림자의 모습에 입을 쩍 벌린 채 놀라고 있었다. 두려움이 어린 눈빛이었다. 민성은 아이에게 두려움이 엄습하기 전에 움직여야 한다고 생각했다.


"호연아. 두 번째 작전이다."


그 말을 마치고, 민성은 망설임 없이 바위틈에서 튀어나와 숲 속으로 몸을 날렸다. 발소리 하나 없이 나무들 사이로 그림자처럼 뛰어내렸다. 그리고 조용히, 그리고 빠르게 그림자 무리의 후미를 향해 접근하기 시작했다. 그의 얼굴에는 푸른 안광이 깃들었고, 짐승처럼 으르렁거리는 소리가 그의 가슴속에서 낮게 울렸다. 핏줄이 불거진 손에는 긴장감과 야수성이 뒤섞여 있었다. 그는 이제 싸울 준비가 되어 있었다.


어두운 숲 속에서도 민성의 눈은 한낮과 다를 바 없었다. 어둠은 그에게 더 이상 장애물이 아닌, 오히려 완벽한 은신처이자 무기였다. 그는 그림자들의 손전등 불빛을 피하며 숨죽이고 인기척 없이 다가갔다. 발소리조차 내지 않았다. 그의 모든 감각은 날카롭게 곤두섰고, 그림자들의 미세한 숨소리마저 그의 귀에 파고들었다. 이내 바로 제일 뒤, 후미에 다다랐다. 민성의 앞에 두 명의 그림자가 경계 태세를 갖춘 채 서 있었다.


"크아악!"


민성의 입에서 짐승의 포효 같은 소리가 터져 나왔다. 동시에 그는 그림자 한 명의 머리를 두 손으로 움켜쥐고 그대로 들어 올려 뒤편의 나무로 던져버렸다. '콰드득!' 하는 섬뜩한 소리와 함께 그림자는 거대한 나무에 부딪히며 나뒹굴었다. 다른 한 명이 놀라 뒤돌아보는 순간, '퍼억!' 민성의 주먹이 그의 얼굴을 강타했다. 그림자는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공중에 뜬 채 힘없이 날아가 대열을 완전히 망가뜨렸다.


그림자들의 대열이 순간적으로 흐트러진 틈을 타 민성에게 던져졌던 그림자가 나무에 부딪혀 고통스러운 비명을 질렀다.


"크헉…!"


그의 목소리가 끝나기 무섭게 어디선가 '쉭!' 하는 쇳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퍽!' 하는 둔탁한 소리와 함께 그의 머리에서 검붉은 피가 흘러내렸다. 호연이 날린 쇠구슬이었다. 호연의 쇠구슬은 그림자들의 두꺼운 복장도 뚫고 치명상을 입혔다.


두 번째 작전은 바로 이것이었다. 어둠 속에서 민성이 파고들어 그림자들의 대형을 흐트러뜨리는 것. 그리고 민성이 각개 격파한 그림자들을 호연이 쇠구슬로 정확히 마무리하는 것. 호연은 민성이 던진 그림자의 머리를 맞춘 후, 그 그림자가 기절했는지 움직임이 없자 내심 기뻤다. 혹여 자신의 위치가 들켜버릴까 봐 두려워했지만, 일단 성공했다는 사실에 안도했다. 멀리서 민성이 짐승처럼 그림자들과 싸우는 모습이 보였다. 그의 등 뒤에는 미나 누나가 있었다. 그는 다시 쇠구슬을 띄웠다.


두 명을 순식간에 정리한 민성은 그림자들의 중앙으로 파고들었다. 강철 방패를 들고 달려드는 놈들의 발치에 낮게 깔아차자, 방패를 든 채로 두 명이 겹쳐져 뒤로 밀려났다. 그들이 중심을 잃는 순간, 다른 그림자가 민성을 향해 무엇인가를 찔러 들어왔다. 번개 같은 속도로 손목을 낚아챈 민성은 그대로 팔을 비틀었다. '뿌드득!' 팔꿈치가 꺾이며 덜렁거렸고, 들려 있던 무기가 '쨍그랑!' 소리를 내며 땅에 떨어졌다.


그것은 칼이 아닌, 번쩍이는 전기 충격 봉이 었다. '나이프를 들고 덤빌 줄 알았는데… 이놈들, 살상이 목적이 아니었어!' 민성은 상황이 생각보다 복잡함을 깨달았다. 그림자들은 잠시 주춤하며, 방패로 단단한 벽을 만들었다. 그 순간, 민성의 시야에 방패 뒤쪽에서 그림자들이 허리춤에서 꺼내는 섬광이 포착되었다. 테이저 건! 그들의 목표는 자신을 죽이는 것이 아니라, 생포하려는 것이 분명했다. '무슨 꿍꿍이지?'


방패로 벽을 만든 그림자들은 천천히 민성을 에워싸려고 했다. 하지만 민성은 더 이상 그들에게 시간을 주지 않았다. 그는 짐승처럼 그대로 돌진하여 방패 벽을 주먹으로 가격하기 시작했다. '쾅! 쾅! 쾅!' 육중한 소리가 밤의 산속을 울렸다. 방패 벽에 미세한 틈이 생기는 순간을 놓치지 않고, 민성은 주먹을 꽂아 넣었다. '퍼억!' 하는 뼈와 살이 으스러지는 소리와 함께 방패 뒤에 있던 그림자가 그대로 쓰러졌다. 그의 모든 힘을 담은 공격에 그림자들이 휘청거렸다.


하지만 민성은 혼자서 수많은 그림자를 상대하기엔 점차 지쳐가기 시작했다. 그의 숨소리는 더욱 거칠어졌고, 움직임도 미세하게 느려졌다. 그때, '퍼퍼퍼퍽!' 소리와 함께 민성을 포위하던 그림자들이 차례로 쓰러졌다. 호연이 민성을 돕기 위해 달려온 것이었다. 그의 작은 손바닥 위에서 쇠구슬들이 마치 회오리처럼 회전하고 있었다. 몇몇의 그림자들이 쓰러진 동료들을 뒤로하고 호연에게 달려갔다. 하지만 호연은 두려움 속에서도 흔들림이 없었다. 그는 두 손을 가슴 쪽으로 모았다가 오른 다리를 뒤로 빼며 잔뜩 움츠렸다. 그리고 달려오는 그림자들을 향해 두 손을 뻗었다.


"파바바바박!!!"


산탄총이 퍼지듯 수많은 쇠구슬이 밤하늘을 가르며 날아갔다. 그림자들은 마치 벌집이 된 것처럼 몸 곳곳에 쇠구슬이 박히며 쓰러졌다. 비록 옷과 두꺼운 피부는 뚫었지만, 깊숙한 상처를 입지는 않은 듯 비틀거리며 멈춰 섰다. 그 틈을 타 민성이 자신의 앞에 있던 그림자들을 해치웠다. 정확하고 빠른 장타로 턱을 부수고, 맹렬한 발차기로는 방어하는 팔을 그대로 부러뜨렸다. 그래도 그림자들은 고통을 모르는 듯 다시 달려들었지만, 점차 자신들의 몸 여기저기가 부서져 가고 있었다. 마치 뼈와 살이 없어진 좀비처럼.


그들의 모습은 이미 '부서진 좀비' 그 자체였지만, 끈질기게 다시 달려들려 했다. 호연도 어느새 민성의 등 뒤에 바싹 붙어 서서 아빠를 돕기 위해 쇠구슬을 띄우고 있었다. 호연의 손 위에 떠 있는 쇠구슬들은 제자리에서 빠르게 회전하며, 마치 주인의 명령을 기다리는 작은 폭풍처럼 보였다. 민성의 모습은 피 맛을 본 야수 같았다. 그의 푸른 안광은 더욱 섬뜩하게 빛났고, 양손과 전투복 여기저기에는 그림자들의 검붉은 피가 흥건하게 묻어 있었다.


그 순간, 민성의 시야에 그림자들의 뒤편에서 이사장이 비웃는 듯한 미소를 지으며 자신을 응시하는 모습이 포착되었다. 순간적으로 민성의 이성은 끊어질 듯했다. 그는 이내 그림자들의 무리를 뛰어넘어 이사장 앞에 섰다.


"내, 네놈이 올 줄 알았다."

이사장의 입술이 마치 뱀처럼 길게 늘어지며 섬뜩한 미소를 지었다. 그의 얼굴은 일순간 악귀(惡鬼)의 그것으로 변모했다. 번뜩이는 붉은 기운이 그의 얼굴을 스쳤고, 그의 이마 중앙, 눈썹 사이의 피부가 거미줄처럼 가느다랗게 갈라졌다. 그 갈라진 틈 사이로 피처럼 붉은 눈동자(붉은 안광)가 서서히 모습을 드러냈다. 지옥의 불꽃처럼 이글거리는 그 붉은 눈동자는 보는 것만으로도 영혼을 얼어붙게 했다. 이사장의 몸 주변으로는 칠흑 같은 검은 아지랑이 기운이 마치 살아있는 생명체처럼 꿈틀거리며 피어올랐다. 그의 등 뒤로 드리워진 그림자까지 검은 안광을 번득였다. 숨 막히는 압도적인 존재감, 순수한 악의 현신이었다.


민성은 흠칫 놀랬다. 그의 심장이 얼어붙는 듯했지만, 그의 몸은 본능적으로 반응했다.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그의 손이 이사장의 목을 움켜쥐려는 순간,




"정신이… 끊어졌다."


눈앞의 모든 풍경이 순식간에 암전 되었다. 어라? 여기는…? 희미하게 시야가 밝아오자 코를 찌르는 소독약 냄새와 함께 차가운 금속성 소음이 들려왔다. 민성은 어리둥절했다. 코로나 시절 사용하던 익숙한 마스크가 그의 얼굴에 씌워져 있었다. '내가 왜 이곳에 있지…?' 혼란스러운 생각에 빠져 있을 찰나, 눈앞의 침대 위에는 그의 아내가 누워 있었다. 창백한 얼굴이었지만, 남편 앞에서 아픔을 내색하지 않으려는 듯 미소를 지었다.


"미안해요… 당신 곁에 오래 있어 주지 못해서… 미안해요…."


그녀는 연신 '미안하다'는 말을 반복했다. 아내의 차가운 손이 민성의 손을 붙잡았다. 찢어질 듯한 가슴의 아픔, 무너져 내리는 세상의 끝. 민성의 눈에서 뜨거운 것이 울컥 솟아올랐다. 그의 사랑하는 아내였다. 죽음을 맞이하기 직전, 그녀는 마지막 순간까지 남편을 위로하고 있었다. 그녀의 눈가에 흐르는 물방울은 살아생전 그녀의 아름다운 미소를 그대로 머금고 있었다. 이별의 고통과 그녀를 지켜주지 못했다는 자괴감이 그의 심장을 짓눌렀다.


"악! 으… 악!"


끔찍한 고통과 함께 민성은 현실로 돌아왔다. 그의 몸이 격렬하게 경련했다. 그림자들이 그에게 테이저 건을 쏜 것이었다. 수십 발의 테이저건이 그의 몸 곳곳에 박히고, 신경을 마비시키는 고통이 온몸을 갈가리 찢는 듯했다. 그들은 민성이 쓰러질 때까지 쏘고 또 쏘아댔다. 고통에 몸부림치며 몸을 움츠려 들자, 이번에는 번쩍이는 전기 충격 봉이 그의 살갗에 닿았다. '지이잉! 으악!' 피부가 타들어 가는 듯한 고통이 전신을 꿰뚫고 근육을 비틀었다. 정신이 혼미해지는 와중에도 그의 짐승 같은 이성은 본능적인 생존 욕구를 외치고 있었다.


이사장의 발소리가 점차 가까워졌다. 쩌벅, 쩌벅. 그의 차가운 목소리가 민성의 귓가에 파고들었다.


"자네는… 그렇게 쉽게 죽어선 안 돼. 우리 그룹의 큰 재산이 될지도 모르니."


그의 목소리에는 차가운 조롱과 탐욕이 뒤섞여 있었다.


이사장은 민성을 비웃는 듯 내려다보더니, 품속에서 작은 주사기를 꺼내어 민성의 목덜미에 주사를 놓았다. 약물이 혈관을 타고 순식간에 퍼져나가는 것을 민성은 느낄 수 있었다. 그의 몸속으로 새로운 독극물이 침투하는 섬뜩한 감각. 하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 마지막 남은 힘을 쥐어짜며 그림자들에게서 벗어나려 발버둥 쳤지만, 몸은 이미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그들이 발버둥 치는 민성을 향해 다시 테이저 건을 쏘아댔고, 이내 민성은 의식을 잃고 기절해 버렸다. 그의 눈꺼풀이 닫히는 순간, 이사장의 섬뜩한 미소와 검붉은 안광이 그의 마지막 시야에 각인되었다.


그 모습을 멀리서 지켜보고 있던 호연. 그의 눈에는 이미 분노의 불꽃이 이글거렸다.


"아빠…! 아빠 아아아!"


호연의 절규가 밤의 산을 갈랐다. 그는 아빠가 쓰러지는 모습을 보자마자 그 자리에서 폭발하고 말았다. 당황함과 동시에 끓어오르는 순수한 분노가 그의 이성을 마비시켰다. "너희들이… 너희들이 감히… 으흑!" 그의 작은 몸이 분노로 부들부들 떨렸다. 그의 주위, 땅에 박혀 있던 돌과 부러진 나뭇가지들이 순식간에 공중으로 떠올랐다. 마치 거대한 힘에 의해 뽑혀 나오는 듯했다. 그리고 그 조각들은 호연을 중심으로 격렬하게 회전하며 작은 회오리를 만들기 시작했다. 공기는 차갑게 비명을 지르는 듯했다.


"으아아아악!"


호연의 입에서 짐승 같은 포효가 터져 나왔다. 그 회오리는 호연을 향해 달려들던 그림자들을 맹렬하게 쳐냈다. 회오리와 부딪힌 그림자들의 전투복이 갈기갈기 찢겨나갔고, 살갗이 찢어져 뼈가 보이고 피가 튀었다. 그들은 마치 인형처럼 이리저리 던져지며 나뒹굴었다. 어떤 그림자는 회오리의 강력한 힘에 의해 뼈가 부러지는 소리와 함께 나무에 처박혔고, 어떤 그림자는 절벽 아래로 힘없이 떨어져 내렸다. 호연의 분노는 걷잡을 수 없이 커졌고, 그의 회오리는 이사장을 향해 점점 전진해 갔다. 그의 얼굴에는 눈물이 범벅이 되어 있었지만, 그의 눈빛은 붉은색으로 이글거렸고, 뿜어져 나오는 힘은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압도적이었다. 어린아이의 몸에서 뿜어져 나온다고는 믿기 힘든, 초현실적인 분노의 폭주였다. 온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초록색 염동력의 섬광이 밤의 숲을 비추었다.




"엄마…?"


그때였다. 호연의 붉게 타오르던 눈빛 속에서 모든 것이 멈춰버렸다. 폭주하던 회오리가 거짓말처럼 잦아들었다. 눈에서 뜨거운 것이 흘러내렸지만, 그것이 분노의 눈물인지, 아니면 그리움의 눈물인지 알 수 없었다. '엄마?' 호연은 순간적으로 자신의 손을 바라보았다. '왜 이렇게 작지…?' 그의 의식은 혼미했다. 바로 눈앞에는 죽은 엄마의 얼굴이 환한 미소를 지으며 서 있었다. '이상한 건 상관없어… 내 사랑하는 엄마가 바로 앞에 있어….'


호연은 무엇에 홀린 듯 회오리를 멈추고, 눈동자를 뒤집은 채 그 자리에 우두커니 섰다. 그의 몸이 분노가 사라진 허탈감에 부들부들 떨렸다.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달려들던 그림자들이 전기 충격 봉을 들고 호연에게 돌진했다. 그림자들이 호연에게 다다랐을 때였다.


"챙!-"


맑고 청아한 금속음이 밤의 산속에 울려 퍼졌다. 마치 하늘에서 떨어지는 유리구슬이 깨지는 듯한 소리였다. 거대한 검 하나가 호연의 바로 앞에 날아와 깊숙이 박혔다. 검은 달빛을 받아 하얀색으로 빛났고, 그 주변의 밤공기가 미세하게 흔들렸다.


"이놈들이! 뭘 하는 짓들인 게냐!"


미나의 중성적이고 강렬한 외침이 산 전체를 울렸다. 그 목소리는 차가운 새벽 공기를 꿰뚫고 모든 생명의 숨통을 얼어붙게 하는 듯했다. 그리고 그 검을 향해 천천히 걸어오는 미나의 모습. 그녀는 짙은 남색 한복을 입고 있었다. 하지만 그 한복 위로 희미하고 투명한 빛을 머금은 하얀 기운이 마치 옷처럼 그녀를 감싸고 있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장군신의 기운이었다. 빛바랜 하얀색 무복을 입은 장군신의 형상이 미나의 등 뒤에 서 있는 듯 선명했다. 그녀의 두 눈은 이제 평범한 소녀의 것이 아니었다. 태곳적 장군신의 불꽃이 이글거리는 듯, 순수한 영광과 냉혹한 분노가 뒤섞인 금빛 안광이 빛나고 있었다. 밤바람에 한복 자락이 격렬하게 휘날리며 그녀의 강림을 알렸다.


순간, 호연 앞에 박혀 있던 검에서 강력한 하얀색 기운이 뿜어져 나왔다. 그 빛이 주변의 그림자들에게 닿자마자, 그들의 검은 전투복이 마치 불꽃에 닿은 것처럼 검게 타들어 갔다. 살 타는 듯한 악취와 함께 비명을 지른 그림자들은 경악하며 뒤로 물러섰다. 감히 장군신의 영역에 발을 들인 대가였다. 그들의 몸이 검은 재로 변하며 사라지는 섬뜩한 광경은 다른 그림자들에게 잊을 수 없는 공포를 심어주었다.


미나가 자신이 던진 검을 뽑아 들었다. 그녀의 손에 들린 검은 하얀빛을 내뿜었고, 미나의 눈빛부터가 이전의 어린 소녀와는 확연히 달랐다. 차분하면서도 압도적인 위엄이 서려 있었고, 장군신의 기운이 온전히 그녀의 몸에서 뿜어져 나왔다. 그녀는 그저 앞에 서 있는 것만으로도 상대방을 움츠러들게 하는 절대적인 존재감을 내뿜고 있었다.


"이제… 그만 두시지요."


미나의 목소리는 여전히 차분했지만, 그 안에는 거대한 힘과 서늘한 경고가 담겨 있었다. 어둠 속의 무학산은, 이제 장군신의 대변인으로 각성한 어린 무녀의 강림으로 인해 완전히 다른 국면을 맞이하게 되었다.

일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