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의 무게를 진짜 몸으로 느꼈던 여름밤.

by 끄적쟁이

아내와 나는 아주 잘 맞는 취미 한 가지가 있었다. 그건 바로 술을 좋아한다는 것. 술을 많이 마시는 것보다는 번화가에서 분위기 좋은 선술집이나 색다른 인테리어로 만들어진 술집을 찾아다니곤 했었다.


아이들이 태어나고 독박 육아에 지쳐 있던 아내에게 내가 해줄 수 있는 스트레스 해소법은 술을 즐기기 좋은 곳을 데리고 가는 것이었다. 그때는 주간, 야간, 교대 근무였기에 더욱더 육아를 도와주기 힘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때가 우리 딸이 4살 아장아장 한참 걸음마에 재미 들렸을 때 그리고 우리 아들은 애기띠에 품고 다닐 때였다.

다음날 휴일이고 해서 조금 늦었지만 선선한 여름밤공기가 아직 젊은 우리 부부를 가만히 두질 않았다. 아내는 내가 퇴근할 때를 기다리고 있었고, 퇴근 후 바로 픽업해서 새로 생긴 번화가로 향했다. 적당한 곳에 주차를 하고 화려한 조명 가득한 거리에서 아내는 미소를 지었고 4살짜리 우리 딸은 눈이 희둥그레 졌다. 내 가슴팍에 안겨있는 아들은 이리저리 고개를 돌리며 시끄러운 사람들 소리에 놀란 듯했다.


그렇게 그 특유의 거리에서는 각종 음식 냄새와 사람들의 즐거운 웃음소리, 그리고 너무 일찍 취해서 언성이 높아져서 싸울 듯 떠드는 대학생들. 그 거리를 산책하듯 조금 눈으로 즐기며 걸었다. 그러다 아내가 맘에 드는 곳에서 1차를 마셨다. 사실 어떤 술집이었는지 기억은 안 난다. 왜냐면 그다음 이동한 장소에서 진짜 난감한 일이 벌어졌기에..


아무튼 2차로 이동한 곳은 1.2층으로 나누어져 있었는데 2층은 다락처럼 신발을 벗고 앉아서 마실 수 있는 선술집이었다. 다행히 2층 구석에 자리가 있었고 그곳에서 아내가 좋아하는 조개류 탕과 볶음 안주 하나 그리고 딸아이를 위한 콘치즈를 시켰던 걸로 기억한다.


분위기도 좋고 술도 잘 넘어가고 아내의 고맙다는 말과 기뻐하는 표정을 보니 퇴근의 피로가 날아가면서, 아내에게 작은 선물을 해준 듯 나 자신이 뿌듯했다. 그렇게 1병을 비워갈 때쯤 갑자기 아내가 기절하듯 술이 취해버렸다. 아마도. 밖에서 안주 먹을 생각에 빈속에 마시다 보니 그런 듯하다.


아무리 깨워도 일어날 생각은 없고, 일어날 때까지 기다릴 수도 없는 상황. 아이들도 이제 자야 할 시간이 아니던가. 별다른 방법은 없었다. 우리 가족 모두 내가 챙겨야 하는 수밖에, 2층에 자리 잡았던 우리 가족.

아내를 둘러업고, 한 손에는 딸아이 손을 잡고, 가슴팍에 아들 녀석 애기띠로 안은 상태로 2층에서 내려왔다. 사람들의 수많은 시선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내가 작은 호빗족이기에 그 광경은 아마 일개미가 자기보다 큰 돌을 옮기는 듯해 보였을 테니.


계산대로 가서 여자 아르바이트생의 도움으로 애기 가방에서 지갑을 꺼내 계산을 하고 문을 나섰다. 차까지의 거리는 생각도 하기 싫었지만, 어쩌겠는가 나의 등에 아내, 손에는 딸, 가슴에는 아들을 품고 이 악물고 차를 향해 걸어갔다. 주위에서 아주 신기한 광경을 보듯 사람들이 쳐다보았지만, 그런 건 신경도 쓰이지 않았다. 나도 술을 마셨기에 중심 잡고 걸어가는 데에만 집중했다. 힘겹게 걸어가고 있다가 고개를 돌려 아들과 딸을 바라보았는데,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나만 믿고, 꼭 잡고 있는 이 고사리 같은 손과 가슴속에서 쌔근쌔근 자고 있는 아들, 그리고 내 등에서 아무것도 모른 체 업혀 있는 아내. ‘이게 진짜 가장의 무게 구나, 아주 몸으로 확인을 시켜 주는 하루 구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날의 추억은 두고두고 나의 술안주 거리가 되었다. 물론 아내는 그런 적 없다고 말하며 버텼었지만, 지금은 부쩍 커버린 두 초등학생을 데리고 곱창을 먹으러 가면 나는 소주, 아이들은 음료. 그렇게 한잔 먹을 때면 생각이 난다. 가장의 무게를, 진짜 몸으로 느끼게 해 준 그 여름날 밤의 추억이..



한여름 밤의 몸으로 느꼈던 가장의 무게가 아직도 기억이 생생하다. 힘들었던 그때지만, 다시 아내가 돌아온다면 업어주고 싶다. 내 팔이 끊어질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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