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단벌 신사가 되었다.

엄빠가 돼버린 후 어느샌가 홀아비처럼 보이는 단벌 신사가 되어버렸다.

by 끄적쟁이

오랜만의 주말에 약속이 잡혔다. 엄빠인 나에게는 집, 회사만 반복하던 일상에서의 주말 약속은 약간의 설렘을 안겨준다. 이제 뒤늦게 결혼을 하게 된 친구의 결혼식 이벤트 부탁과 함께 청첩장을 나눠주며 저녁을 한턱 산다고 한다. 오호~ 오랜만에 친구들 만날 생각에 벌써부터 기분이 좋았다.


그래도 오랜만에 만나고 늦은 시간까지 돌아다니며 술 마실 것이 분명하기에 옷차림에 좀 신경 써야겠다는 생각에 옷장을 열었다. 그리고는 실망 가득한 표정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요즘은 안 입는 유행 지난 옷들과 딱 봐도 오래된 듯 한 옷들 뿐이었다. ‘ 아내 없이 외벌이지만 잘 벌고, 잘 입고, 잘 지내고 있다.’라고 보이고 싶었는데 이거 홀아비구나 라는 생각이 들 뿐인 옷이다.


머.. 내가 패션 감각이 별로인 것도 맞지만, 아이들의 옷에만 신경 쓰다 보니 나에게 신경을 못쓴 것 같았다. 남들 보는 시선에 엄마 없어서 ‘저렇게 꼬질꼬질하게 다니네..‘라고 보일까 봐 아이들 옷은 항상 신경을 쓰는 편이었는데, 막상 나 자신에게는 신경을 쓰지 않고 있었다. 아무리 제조업 종사자라 작업복이 있다 한들, 완전 출퇴근 할 때 입을 수 있는 옷들 뿐이라니.


이런 생각에 잠겨 있을 때쯤, 오랜 친구들인데 겉모습이 중요한가? 어차피 솔직히 내 사정 다 아는데 멀 그런 것들이 필요할까란 생각으로 마무리하고 대충 옷을 골라놨다. 그리고 소파에 잠시 앉아서 아내가 떠난 후 나에게 옷을 사준 적이 있었나? 하는 생각을 해보았다.


없다. 돌아보니 외투 봄 잠바 한 개뿐이 없다. 러닝화를 바꿀 때 되어서 산 러닝화 한 개. 이게 전부였다. “ 나는...?? 내 삶 속에 아이들만을 위한 것들 뿐인가..? 그럼 내 삶은? 인생은?” 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외출복을 고르는 일에서 갑자기 나의 삶에 대한 생각까지 이어지고 있었다. 나의 고질병인 쓸데없이 또 생각 많이 하기를 시작하고 있었다. 자기 자신을 괴롭히는 생각...


엄빠로서 자식들만 생각하다 보니 나 자신을 돌보지 못한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그건 너무나 잘못된 것, 그런 말이 있지 않은가? “자기 자신을 사랑할 줄 모르면 남을 사랑할 줄도 모른다.” 맞다. 나부터 챙겨야 했던 것이다. 아이들 옷차림새에 다른 사람의 시선을 신경 쓰이면서 나의 모습은 신경 쓰지 못한 것이다. 잠시 얼굴이 화끈거리면서 ’ 이거 홀아비 티 팍팍 내면서 살고 있었구먼..‘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이번에 연차, 월차 안 써서 나오는 목돈으로는 나를 위해서 쓰기로 마음먹었다. 나도 아직은 솔직히 39살, 젊다면 젊은 나이가 아닌가..


엄빠라고 무조건 아이들만을 위해 살다 보면 나 자신을 잃어 가는 것 같다. 가끔씩은 나 자신을 위한 시간도 보내고, 옷도 선물해 주고, 맛난 것도 사 먹으며 사랑해줘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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