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마가 언제까지 계속될지 모르는 날씨다. 창밖을 쳐다보니 아침부터 비가 너무 많이 와서 출근길이 걱정이 되었다. 와이퍼로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록 쏟아지는 걸 보니, 오늘 점심식사 시간에 식당 안 TV뉴스에서는 인명피해 사례가 많이 보도될 것 같다는 예상을 했다.
나는 철강회사에 다니는 15년 경력의 생산직 사원이다. 즉, 공돌이라는 말이다. 그래서 출근을 하면 탈의실에 들려서 나의 락커에서 작업복으로 갈아입고 현장으로 향한다. 주차를 하고 보니, 여기저기서 반바지에 크록스를 신고 뛰어서 들어가는 사원들이 보인다. 그 모습을 보고 내가 입사하고 나서 처음 장마철이 다가왔을 무렵에 있었던 일이 생각났다. 지금은 부장님, 그 시절은 과장님.
주차를 하고 탈의실로 향하는데 옆에서 누군가 쳐다보는 시선을 느꼈다. 우산을 쓰고 있었기에 잠시 높게 들어 고개를 돌려 보니, 관리직 부장님이 계셨다. 고개를 까딱 거리며 인사를 하고 빠르게 스쳐 지나가려고 하는데 뒤에서 말을 걸어왔다.
"민수 씨, 비가 너무 많이 오죠?"
"그러게요. 천장에 구멍이 난 것 같네요."
나는 관리자들의 형식적인 인사 멘트에 약간 유머스럽게 웃으며 대답했다. 그런 나의 말에 과장님은 같이 미소 지었다. 그리고는 앞을 바라보며 말을 이어갔다. 분명 얼굴을 바라보지 않고, 시선을 피하면서 시작하는 대화는 분명 좋지 않은 말을 할 것이라고 직감했다.
지금 분명 비가 엄청나게 오고 있고, 지금 장마 기간이다. 그런데 이런 말을 한다고? 지금? 같이 우산을 쓰고도 비를 맞으며 출근하는데? 내가 영업부서도 아니고, 다른 사무실 직원도 아닌데? 나 현장직이야. 작업복으로 갈아입는다고! 머릿속에서 아주 짧은 1초의 순간에 많은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입사한 지 얼마 되지도 않은 나는 말대꾸로 대화가 길어지기를 원치 않았다.
"그런가요? 신발이 젖어 버리면, 너무 불편해서요. 하하. 신경 쓰겠습니다."
하고는 당신의 이야기를 알아는 들었는데, 나도 불편한 부분이 있다는 것을 알아다오라고 하는 모호한 대답을 하고는 뛰어서 탈의실로 향했던 기억이 있다.
10년이 지난 지금은 어떠한가? 다들 크록스를 신고 반바지에 편하게 출근을 하고 있지 않은가? 뭐가 문제야. 실용성을 더욱 생각해야지. 그래, 이게 맞는 거지. 하면서 차에서 내리며 우산을 폈다. 그리고 출근하는 사람들의 뒷모습에서 크록스를 신고 출근하는 부장님의 뒷모습을 보았다. 비록, 바지는 무릎까지 접으셨지만 말이다. 손에는 따로 사무실과 현장을 다닐 때 신을 깨끗한 안전화가 들려있었다. 그 모습을 보고 피식 웃음이 나왔다. 그럼 그렇지. 자기도 사람인데.
1997년에 DJ DOC의 노래에는 이런 가사가 있었다.
"청바지 입고서 회사에 가도 깔끔하기만 하면 괜찮을 텐데
여름 교복이 반바지 라면 깔끔하고 시원해 괜찮을 텐데."
이때는 변할 수 없을 줄 알았지만, 지금은? 가사처럼 변했다. 저기 앞에 가는 부장님도 나도 말이다. 이제는 겉으로 보이는 형식적인 멋스러움과 격식보다는 실용성을 더욱 중요시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변하지 않을 것 같던 시대의 사람들도, 변화를 인정하며 받아들이며 그 흐름을 따라서 살아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