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집 빈그릇과 인생

by 코리아코알라

"엄마, 뭐하러 그렇게 깨끗이 씻어요? 어차피 더러운 통에 다시 집어넣지 않아요?"


중국집 빈 그릇을 열심히 씻고 있던 날 보며 둘째가 한 말이다.


중국 음식을 시켜먹은 날은 반드시 깨끗이 그릇을 씻어서, 짧은 메모와 때로는 쿠키나 말린 과일 몇 조각이라도 내놓곤 한다. 늘 그걸 보아온 아이는 그게 익숙할 법도 한데, 갑자기 그 이유가 궁금했던 가 보았다.



젊었을 때는 잘 몰랐던 것이 나이가 들면서 보이고, 깨닫게 되는 게 있다.

인생에서 내 맘대로 되는 것도, 나 혼자 잘나서 되는 것도 하나도 없다는 거다.

인생사 모든 게 다 얽히고 설켜있고, 모든 이들이 한쪽으로 혹은 다른 쪽으로 연결되어져 있는 것 같더라.


"당신의 꿈을 가져라. 꿈을 위해서 미친 듯이 노력하고, (요즘은 노력도 모자라 '노오력'이란다지) 열정이 식지 않도록 쉬지 않고 달린다면 당신은 무엇이든 이룰 수 있다..."


정말?


나는 이런 말들을 들으면 이젠 가슴이 좀 아프다.

자신의 '소중한' 꿈만을 위해서 주위를 다 희생시키고 달리는 사람들을 가끔 보았기 때문이다.

성공한 뒤, 그에게만 비치는 스포트라이트가 얼마나 왜곡된 포장의 일부인 줄 과거에는 생각하지 못했다.


사람은 매 순간 선택을 하며 산다. 내 삶과 내 소중한 이들의 삶 사이에서.

내가 한 선택은 다시 사회에서, 다른 사람들에 의해, 운명에 의해 선택되어진다.

나는 그 결과에, 또다시 다른 선택을 한다. '내 삶과 내 소중한 이들의 삶 사이에서'.

그리고 또 다시 선택되어지고...


"오토바이에 실린 빈 그릇 통에 어차피 이 그릇을 던져 넣을지는 모르지만, 적어도 내 집 앞에서 아래 세워둔 오토바이까지 내려가는 동안에는 깨끗한 그릇을 기분 좋게 들고 갈 수 있지 않을까? 그리고, 내 메모와 작은 간식을 보며 어쩌면 잠시 동안 오늘 하루 기분 나빴던 일을 잊을 수도 있지 않을까? 그리고, 있잖아, 내가 이만큼 살면서 느낀 건데, 인생은 참 모르는 거라는 생각이 들더라고... 내가 살다가, 어쩌다 짜장면을 배달하게 될 지도 누가 알아? (정말이다, 모른다...) 그때 누군가가 그릇을 깨끗이 씻어서, 감사 메모와 초콜릿 한 조각이라도 함께 둔다면... 내겐 힘이 될 거 같거든. 그래서, 엄마는 깨끗이 이 그릇들을 안 씻을 수가 없단다."


그날따라 아무리 찾아도 집안에 간식 부스러기 하나 안 보였다.

어쩔 수 없이 포스트잇에 짧게 메모만 남겨 붙이곤, 미안한 마음으로 살며시 문밖에 빈그릇을 두었다.


맛있게 잘 먹었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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