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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코리아코알라 May 15. 2016

'참는 미덕'은 교양있게 던져버려!

90년대 초 1월 말,

호주관광청 주최 대학별 영어 스피치 대회에서 각각 1등을 한, 나름 내로라하는 4인의 다른 대학(원)생들과 함께 상으로 2주간 호주 여행을 한 적이 있었다. 이 상의 패키지에는 모든 이동 항공료, 숙박, 가이드, 전 일정 식사가 포함되어져 있었다. 


그런데 셋째 날쯤 되었을 때, 한 끼의 식사권에 문제가 생겼다. 식사를 제공받기로 한 식당에 갔는데 사전 얘기가 안 되어있었던 거다. 점심도 아니고 저녁도 아닌 아침식사였으니, 나는 뭐 그 정도는 내 돈으로 사 먹을 수도 있고, 우유 한 잔 마시고 건너뛸 수도 있는 사소한 문제라 생각했다. 


그런데, 우리 중에서도 호주에서 6개월간 (기간이 6개월에서 가까스로 1주일인가 모자라 스피치 참가자격을 받게 되었는데 우린 모두 그게 불공평하다고 여겼다.) 어학연수를 밟은 적이 있다던 K대학도 아니고, 동대학원 경제학과의 B가 어딘가에 전화를 걸었다. 


그리곤, 아주 유창하게 들리는 영어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했다. B는 그날 식사권 처리와 관련하여 불만을 토로하며 빨리 해결해 달라고 불평을 제기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당시 호주에 가 본 적도, 호주인을 본 적도, 호주 영어를 들어 본 적도 없었던 나는 2주일간의 호주 여행을 아주 힘들어하고 있었다. 영어를 잘해서 뽑힌 내가 영어를 못한다고 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공항 픽업에서부터 못 알아듣게 생겨먹은 호주어는 알아듣는 시늉도 할 수 없고, 알아듣지 못하니 말도 할 수 없는 노릇이었다. 도착한 날부터 나는 거의 매일 '아주 과묵한 성격이군요.'라는 말을 들었지만, 그게 사실이 아니란 걸 증명할 길도 부인할 방법도 없는 상태였다. 그런 내게, 아주 미끄러지듯 유창한 말로 쏼라쏼라쏼라하며 관광청의 누군가와 한참을 얘기하던 B가 그렇게 훌륭해 보이고 멋있어 보였다. 


하지만, 한편으론 '속 좁게 뭐 그런 걸 가지고 관광청에 전화까지 해서 귀찮게 구냐'는 생각이 든 것도 사실이었다. 


"오빠, 근데 뭐 굳이 그렇게까지 해야 할 필요가 있었어? 별 대수롭지도 않은 문젠데."


"어, 그래? 너는 그렇게 생각할지 모르지만, 나중에 그 사람들이 이런 실수가 있었다는 걸 알게 되고 우리가 아무런 불평도 하지 않았다는 것도 동시에 알게 된다면, 그땐 문제가 좀 달라지지. 똑같이 문제가 있는데 어떤 유럽인은 사사건건 다 불평하고, 어떤 한국인은 전혀 불평을 하지 않는다면 바쁜 그들이 신경 쓸 사람은 누굴까? 그리고 적당히 무시할 사람은?... 그래, 그렇게 되는 거야. 진상처럼 나쁜 고객이 되는 것도 지양해야 하지만, 무조건 참고 넘어가는 것도 원치 않게 무시를 당하게 되는 요인이 되지."

자신의 불평제기에 대한 설명도 정말 K대학원 경제학도답게 너무 일목요연하게 잘 해줘서, 내가 반박할 거리가 단박에 없어졌다. 



그때의 에피소드를 20년이 넘은 지금도 나는 생생히 기억하고 있는데, 아마도 내게 그런 식의 사고는 처음이어서, 신선하면서도 큰 충격이었기 때문인 듯하다. 당시 나는 20년 평생을 '참는 게 미덕이다.', '정말 잘도 참는구나.', '넌 참 착하구나, 불평도 안 하고...'를 늘 들으며 자랐다. 즉, 내겐 착한 사람은 불평을 잘 하지 않으며, '무조건 참는 것은 미덕이다'라는 것이 머리와 가슴속 깊이 꾹꾹 눌러 박혀있었던 거였다. 


한참 후에, 호주에 10년을 살면서 그때 B의 말이 정말 얼마나 맞는 말이었는지를 절감하게 되었다. 경제학도여서가 아니라, 어쩌면 호주에서 미리 살아봤기에 터득하게 된 논리였겠다 싶었다. 친절할 땐 친절해야 하지만, 자신의 당연한 권리를 찾기 위해선 '적절한 수준의 교양 있는 불평'은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을 말이다. 여기서 중요한 건, '적절한'과 '교양 있는'이다. 나의 권리를 되찾기 위해 필요한 딱 '적절한' 만큼의 불평을 소리 지르지 않고 욕을 섞지 않으며 '교양 있게' 하는 것을 말한다. 


진상처럼 세련되지 못하게 무조건 막무가내로 불평하라는 게 절대 아니란 말이다. 진상 부려 억지로 요구한 추가의 감자칩엔 반드시 요리사나 서빙하는 사람의 '구강 타액'도 역시 추가로 올 가능성이 농후하니 미리 각오를 하고 있던지. 


언젠가 호주의 워킹홀리데이에 대한 실상을 영상으로 접한 적이 있는데, 같은 상황에서도 유럽인들은 꼬박꼬박 불평을 다 하고 따지고 드는 통에 그곳 농장에서 밀린 임금을 어쩔 수 없이 주거나, 아니면 아예 유럽인들을 받기를 꺼려하기도 한다는 것이었다. 반면 한국인들은 언어도 시원치 않는데, 게다 참는 미덕까지 갖추었으니 완전 봉이 되는 거였다. 임금을 늦게 줘도, 적게 줘도, 일을 더 시켜도... 한국인은 그냥 참고 견디는 거였다, 그놈의 영어공부를 위하여... 


결국, 워홀 중간 계약자 (농장주보다 실은 계약을 성사시키는 중간 계약자들이 더 악질이며 비리가 많다고 한다. 슬픈 건 그들은 또 다른 아시아인들인 경우가 많다는 거다. 빈대가 벼룩을 등쳐먹는 꼴이다.)들에게 한국인은 이용해 먹기 좋은 먹잇감이 되고 타깃이 되어, 어쩌다 걸려든 이들은 끝까지 참는 미덕을 발휘하다 결국에는 더 이상 참을 수 없어 '이놈의 더럽고 추접고 치사한 구역질 나는 땅'을 떠나며 욕을 바가지로, 아니 물대포로 멈추지 않고 곳곳에 쏴대기 시작한다.


호주에 가는 여행객들, 워홀러들, 이민자들이여 

호주를 떠나며 물독으로 불평을 해봐야 그대들에게 돌아오는 득은 전무할 것이다. 

부디, 불평 거리가 있거든 호주에서, 그 자리에서, 교양 있게 적절한 불평을 하면 좋을 것이다. 

그러지 못한다면, 나쁜 호주인이 아니라 불평을 할 줄 모르는 그대 자신만을 탓할 수 있을 것이다. 

나쁜 사람과 불평 거리는 호주뿐만이 아니라 세계 어디를 가든 지천으로 널렸으니까. 


덧붙이는 글.

K대학원의 B가 호주 영어를 잘 알아들었던 것은 그가 호주에서 6개월간 어학연수를 받았기 때문만이 아니었다. 그는 호주 어학연수를 가기 전, 이미 토플 고득점을 받았고, 어휘가 풍부했으며, 독해도 잘하는 영어공부를 잘하는 학생이었다. 6개월간의 호주유학으로 그의 듣기는 정점에 이르게 되었고, 따라서 말문까지 트게 해 준 거였다. 다시 말하면, 영어를 못하던 그가 그냥 호주에 잠시 갔다 왔기 때문에 영어를 잘하게 된 게 아니라는 중요한 사실이다. 한국에서 기초를 탄탄히 쌓고 유학이나 연수를 가면 그만큼 결과는 배가될 것이다. 

호주 영어 관련 자료는 http://koreakoala.com을 방문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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