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 온 지 얼마나 지났을까?
나는 여전히 호주에서 하던 대로 아이들의 옷이 작아지면 그걸 다 빨아서 정리해서 필요할 법한 사람들에게 나누어주곤 했다. 물론, 이러이러한 옷이 있는데 드릴까 하고 물었고, 달라하면 주었다. 어차피 우리에겐 더 이상 필요 없었으므로.
그리고 또 2~3년이 흐르고 어떤 건너 건너 아는 분이 지인 분과 함께 우리 집에 들러 담소를 나눴던 적이 있다. 이런저런 얘기 끝에 "... 아니, 요즘 누가 남의 옷을 받아 입어요? 찝찝하게... 그리고 중고가구도 좀 그렇지 않아요?..."
나는 한동안 너무 큰 충격에 대화에 잠시 끼지 못하고 옛 필름들을 돌려보았다.
내가 호주에 살 때 아이들 옷이 참으로도 비쌌다. 다행히도 나는 외동아들이 있는 친구의 깨끗한 유명 메이커 옷들을 다수 받아 입혔고, 내 아이 둘을 거치고도 여전히 새 옷 같았던 옷들은 (물론, 내 입장에서 입을만한 새 옷이었다!) 다시 정리해서 한국에 있는 가까운 지인에게 물어보지도 않고 거금 100불 이상씩의 우편료를 들여서 정기적으로 부치곤 했다. 내 나름 '호의'를 베푼 거였다.
멜번에 사는 중국인 친구가 가끔 캔버라에 왔을 때, 나는 우리 집에 머물러도 좋다고 했었고 한 번은 그 친구가 일주일 가량 머물었던 적이 있었다. 당연히 친구가 있는 동안 평소보다 지출은 많았지만 그 정도는 베풀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 친구가 자신의 집으로 떠나고 문자가 왔다. 화장실 유리창과 두루마리 화장지 쌓아둔 사이를 보라고. 바로 뛰어가 찾아보니 300불이 꽂혀있었다. 그 친구는 나에게 '호의'를 베푼 거였다.
내 아이가 지인댁을 방문했을 때, 내 아이의 생일이 되었을 때 사람들은 각각의 아이들에게 5만 원씩 쥐어주기도 했고, 200불씩 식사비를 내주기도 했다. 그들은 모두 나 (혹은 내 아이들) 에게 상당한 '호의'를 베풀었던 것이었다.
내가 나름 거금을 들여서 한국으로 보낸 옷들이 거의 다 입혀지지 않는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전해 들었을 때의 그 허망함이란... 아무도 부탁하지 않았지만 '호의'라 생각해 보냈던 나의 선행이라면 선행이었을 '착한'행동이 누군가에게는 기분 나쁜 일이 수도 있었겠다는 걸 그제서야 깨쳤다. 마음이 아팠지만, 필요 없다고 더는 부치지 말라는 얘기를 안 해준 그 지인을 원망할 수도 없었다. 나의 '호의'를 거절하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의 용기가 필요했을 것이므로.
친구가 우리 집에 일주일 정도 머물면 나는 당연히 식사도 대접하고 선물도 사주고, 많이 베풀어 주고 싶었다. 그런데, 화장실 한켠에서 돈 300불을 들고 '다음에 돈 많이 벌어 여유가 많이 생길 때까지는 마음만 받겠다'는 메모를 읽으며 느꼈던 그 씁쓸함이란. 나의 '호의'가 다른 이의 또 다른 '호의'에 의해 깨지고 상처받았던 순간이었다.
내 아이가 귀엽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10만 원을 받았을 때, 나는 호주에 돌아가자마자 호주 기념품을 이것저것 사서 한국에 서둘러 보냈다. 이유 없이 뭔가, 특히 금전을 받기에는 부담이 되었기 때문이었다. 생일 식사비조로 200불을 받았을 때도, 감사하다는 생각에 앞서 '이걸 어떻게 되돌려 갚을 수 있을까'하는 부담감이 앞섰다.
요즘 나는 누군가에게 호의를 베풀기에 앞서 그것이 합당한가, 상대가 부담스러워하지 않을까, 상대가 알아차리지는 않을까 여러 가지를 생각하게 된다. 나의 얄팍한 '호의'가 누군가의 깊숙한 '상처'로 남기를 바라지 않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