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 한국에 다시 돌아왔을 때, 나는 여전히 호주의 호칭법에 익숙해 있었다. 누구나 '자신'의 이름으로 스스로를 소개하는.
아이들을 초등학교에 전학시키고는 학부모들과의 교류를 시작해야겠다고 생각은 했지만, 도무지 어울릴 방법이 막막하던 차에 마침 한 학부모가 말을 걸어와 주었다.
"안녕하세요?"
"아, 네 안녕하세요?"
"준오 어머니시죠?"
"아, 네~"
"저는 같은 반 예진이 엄마예요."
"아, 그러시군요. 저는 OOO입니다. 성함이 어떻게 되시나요?"
상황이 좀 어색하게 된 것 바로 그때였다.
"아, 제 이름요??...... 전 김윤희라고 해요. 그런데... 보통은 다들 예진이 엄마라고 부르죠;;;"
"아 네. 저는 김윤희 님이라고 불러도 될까요?"
(다시 좀 뻘쭘한 상황) "아,... 네...."
지금 돌이켜보면, 내가 참 많은 사람들을 불편하게 했다는 생각이 들어 미안해진다.
이제 한국어 속어를 못 알아들어서 어정쩡하게 서 있지 않아도 될 만큼 한국에 적응이 된 나는 더 이상 괜하게 엄마들을 불편하게 하는 질문 따위는 하지 않는다. 어차피 나와 어느 정도 개인적인 관계를 맺고 싶은 의향이 없는 사람은 별로 자신의 이름으로 불리는 걸 편하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한국식 호칭에 어느 정도 적응이 되어갈 무렵, 이 '이름 없는 엄마'들은 행복할까? 생각하며 그 순간 옆에 있던 성희 맘에게 물었다.
"성희 맘은 다시 선택의 기회가 주어진다면 또다시 같은 삶을 살겠어요?"
그러자 1초의 주저도 없이 돌아온 답은
"내가 미쳤어요?! 이 짓을 다시 하게?? 난 다시 태어남 절대로! 결혼도 안 하고 애도 안 낳을 거예요."
"아니, 왜요? 안 행복해서요?"
"아니, 그게 아니라......... 너무 힘들어서요. 아내로, 엄마로 사는 거...."
그 답을 들으며 가슴이 아려왔다. 그녀의 삶의 주체는 과연 누구였을까?
언젠가 여성 고용에 대한 소책자에서 "여성이여, 명함을 가져라!"는 문구를 본 적이 있다.
하지만, 실로 가장 어려운 것은 '자신이 스스로에게 아이 이름 외의 타이틀을 붙이는 게 괜찮다'는 생각을 하는 그 자체가 아닐까?
같은 말을 조금 다르게 나는, "엄마들이여, 이름을 가져라!"라고 하고 싶다.
안녕하세요?
저는 김윤희입니다, 예진이의 엄마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