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코리아코알라 Oct 31. 2017

이중언어 교육의 두 얼굴

중국계 호주인 친구 집에 놀러 갔던 날이었다. 


집에 들어서자 내 아이와 같은 유치원을 다녔던 1학년 꼬마 아이가 "Hello"하고 나를 맞이한다. 아이는 내가 혼자 왔음을 알고는 조금 실망한 눈치였지만 곧 예의 바르게 안으로 들어가 하던 걸 계속한다. 


나는 어찌어찌하다 얘기가 길어졌고, 어쩌다 일찍 들어온 그녀의 남편과 함께 저녁을 먹고 가게 되었다. 

커다란 식탁에는 그녀의 남편, 그녀, 그녀의 아들이 앉았고, 그녀의 맞은편에 내가 자리하고 있었다. 


남편: Help yourself, Eunjung.

나: Oh, thank you....

그녀: Try some of this.... Would you like some wine?

나: No, thanks. Gotta drive.

그녀가 아들에게: Nicholas, #$%@%&*#@!~#$%^&* (내가 알아들을 수 없는 중국어)

다시 나에게: Your boys are not very picky, are they? 

나: I guess I can't say they are. 

아들이 아빠를 쳐다보며: Daddy, do I have to eat these yucky vegerables?

남편 겸 아빠: I guess so, if your mum told you so. 

아들: (울상이 되어서) $%#@$$#%^&*^%$#@~@#$ 

엄마: $%&&%$##$%$^^%

아들: (거의 애원하듯이) $%^#$%^&*&^%$#%@#^&

엄마:(약간 짜증 난 듯이) ^&%***^%^##$%#@#@@#


저녁 시간 동안의 대화는 거의 이런 식으로 이어졌다. 이날 나는 처음으로 내가 늘 사람들에게 아무렇지 않게 얘기했었던 이중언어교육을 다른 각도에서 보게 되었는데, 정말... 충격적이었다.

———


이민자 김 모 씨: 아이들 이중언어교육을 하라는데 아 정말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나: 아빠는 영어로 얘기하시잖아요? 그럼, 아빠는 항상 영어, 엄마는 항상 한국어로 나누어서 반드시 그 언어로만 얘기하시면 돼요. 정말 간단하죠?

김: 그런데 아이가 제가 영어를 할 수 있는 걸 아니까 죽어도 한국어로 안 하려고 해요. 물 한잔 달라고 하는 것도 한국어로 안 하려고 30분을 뻐대고 울더라고요. 아이고, 애를 그렇게 울려가면서까지 내가 뭐하는 짓인가 싶기도 하고요. 

나: 아이들은 할 수 있는 만큼 최대한 본인이 더 편한 언어를 쓸려고 갖가지 방법을 다 동원해서 엄마 맘을 약하게 할 거예요. 그걸 견뎌내어야 해요. 

김: 그런데, 특히나 이중 교육을 하려면 애들이 헷갈리지 않도록 "항상", 그러니까 내가 어느 누구와 무슨 언어로 대화를 하고 있더라도 아이와는 내 모국어로 대화하라던데요... 그게... 다른 사람들이 신경이 자꾸 쓰이더라고요. 상대는 우리말을 알아듣지도 못하는데 나는 애랑 한국어로 얘기하면서 일일이 다 통역해서 '내가 방금 이러이러한 말을 했다.'고 할 수도 없고, 안 하자니 좀 찝찝하고... 그래서 그냥 영어로 하게 돼요. 

나: 안돼요! 그러면, 아이는 그 기회를 틈타서 다시 영어로 돌아가려고 할 거고 계속 더 힘들어질 거예요. '앞에 앉은 상대'가 누구든 항상! 아이와는 한국어로 대화하셔야 해요.


그러던 내가 그날은... 그 '앞에 앉은 상대'가 되어있었던 거였다. 사람들에게 일관성을 지켜 주위에 누가 있더라도 아이와는 항상 한국어를 쓰라고 했던 내가 중국인 친구의 집에서는 정말 뻘쭘한 경험을 하고 있었던 거였다. 내 앞의 누군가가 내가 알아듣지 못하는 말로 주거니 받거니 대화를 할 때, 나는 끼어들지도, 그렇다고 물어보지도 못하는 묘한 상황에 처하게 된 것이었다. 그런 상황을 매일 견뎌?야 하는 한국어를 모르는 그 집 아빠의 심정도 많이 이해가 되었다. 그러면서 왜 그 집 아빠가 친척들이 올 때만이라도 중국어를 쓰지 말라고 역정을 내며 말했는지도 진심 이해가 되었다. 


이중언어교육이 참 이론적으로는 쉽다. 엄마와 아빠가 각 다른 언어를 쓰는 경우 각각 한 언어씩 담당하여 100프로 그 언어만을 쓰면 된다. 혹시 둘 다 같은 언어를 써야 한다면 반드시 집에서는 한국어로 얘기한다. 상대가 다른 언어를 쓰는 사람이면 양해를 구하고 변함없이 모국어로 계속 대화한다. 


정말이지... 이론이 그렇다. 그렇게 쉽다! 

하지만, 내가 비로소 그 '상대'가 되어보고 나서야 그게 얼마나 유쾌하지 못하고 뻘쭘한 상황인지 알게 되었다. 그러나 그걸 알게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여전히 수많은 사람들을 수많은 상황에서 뻘쭘하고 조금은 불쾌하게 만들었다. 내 아이의 한국어 교육은 그만큼 중요했으므로. 


수년이 지난 지금 내 중국인 친구의 아이는 중국어와 영어에 능하고, 내 아이들은 한국어와 영어를 유창하게 할 수 있게 되었다. 독한 엄마들의 뻔뻔함 덕분이었다고 할까? 


이중언어를 교육하는 것은 정말 어렵다. 내가 말하는 이중언어교육이라는 것은 "엄마, 배고파. 밥 줘."따위의 '키친 코리안'을 말하는 게 아니다. 자신의 의견을 조리 있게 말할 수 있는 중상급 이상의 거의 불편함이 없는 한국어를 말한다. 이민 2세 한국 아이들이 한국어를 유창하게 하는 경우는 참 드물다. 처음에 부모들은 아이들이  한국어를 그렇게 쉽게 잃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고, 나중에는 이중언어를 제대로 교육할 만큼 그렇게 독하게 뻔뻔하기가 어렵다. 한국어를 거의 잃은 2세들은 커가면서 자신은 미국인/캐나다인/호주인/영국인...이라고 생각하여 한국어를 굳이 어렵게 배우려 하지 않는다. 그들이 성인이 된 후 어쩌다 자신의 뿌리는 한국이라는 걸 깨치고 한국어를 배우러 한국에 오는 경우도 혹 있기는 있지만... 어린 시절부터의 이중언어교육에 비교할 바가 될까 싶다.  


어떠한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이중언어교육은 단연코 보람되고 가치 있다.



매거진의 이전글 미라의 눈...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