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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코리아코알라 Jun 10. 2017

미라의 눈...알

호주 편

미라(Mira)는 술도 담배도 못하고 스포츠도 즐기지 않던 제이슨의 부인이다. 그녀는 중국계 호주인이었지만 중국어는 전혀 하지 못하고 러시아어를 유창하게 했다. 호주에서 아주 어릴 때부터 살아서, 겉만 노랗고 속은 완전 흰 '바나나'같았다. 늘 그녀의 외모를 보면서도, 영어를 잘하는 중국인이 아닌 러시아어를 엄청 잘하는 호주인 같다고 느꼈으니까.


바에 단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는 제이슨


너무나도 감수성이 풍부하고 부드러워 보였던, 영화에서나 존재할 것 같아보였던 제이슨은, 어느 날 미라에게서 특별한 '그들의 이야기'를 들은 후론 완전 나의 '심쿵'이 되었다.


1980년대 둘은 호주 국립대학의 커플이었다. 그들은 대학 1년 때부터 같은 교회를 다녔으며, 봉사 활동도 같이 했고, 정말 많이 사랑하던 사이였다. 늘씬한 키에 긴 생머리를 한 매력적인 동양계 호주인 미라, 188쯤 되는 키에 다니엘 헤니와 장동건을 섞어놓은 듯한 얼굴의 제이슨은 정말 환상의 커플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대학을 졸업하기 전 어느 날, 미라는 호주에서 장거리 운전을 하다 깜빡 졸았고 곧바로 큰 사고로 이어졌다. 너무나도 사고가 커서 살아난 게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녀는 자신의 팔과 다리에 난 흉터들을 아무렇지 않게 보여줬다. 한쪽 다리도 짧아서 걸을 때 조금 절었는데 그것도 그때 사고 때문이라고 했다. 설상가상으로 게다가 한쪽 눈까지 실명을 했다.


이러한 그녀를 초지일관 지켜보며 함께 해 주었던 건 바로 제이슨이었다. 너무나도 절망하고 있던 그녀를 옆에서 지켜보던 제이슨은, 그녀를 영원히 지켜주어야 할 것처럼 느껴서였을까, 그녀가 삶의 희망을 잃고 슬픔의 나락에 빠져 있을 때...'청혼'을 했다고 했다. 미라는 눈물을 흘리며 극구 거부했지만 끝내 제이슨의 결정을 바꾸지는 못했다.


아, 너무 멋진 얘기 아닌가? 소설이나 영화에서나 접할 수 있는 얘기가 실화라니. 너무나 큰 감동의 물결이 흘러오려는 찰나... 미라가 갑자기 자신의 눈. 알. 에 대해 얘기하기 시작했다.


그녀는 사고로 잃은 한쪽 눈에 의안을 가지고 있었다. 그녀의 의안은 항상 한 곳만을 바라보고 있었기에 나는 그녀가 바라보는 곳을 정확히 위치하기 위해서는 의안이 아닌 눈을 빨리 찾아야 했는데, 가끔은 그게 어느 쪽 눈인지 순간적으로 찾지 못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그녀에게 내가 먼저 의안에 대해서 얘기를 꺼내기는 참으로 어려웠는데 그날은 정말이지 불필요한 이상의 정보를 듣게 되었다. 그날까지 나는 그 어느 누구와도 의안에 관한 얘기를 하거나 들어 본 적이 없었기에 조금은 생소하고 어색했지만 내 안의 작은 호기심이 그녀의 말에 집중하게 했다.


자신이 한쪽 눈을 잃고 의안이 필요하게 되어 "의안 쇼핑"을 갔을 때 그게 생각했던 것보다 너무 비쌌다는 거였다. 그런데 그것도 무엇으로 만들어졌는지, 어떤 색인지 등등 까다로운 게 아주 많고, 저녁에 잘 때는 의안을 빼서 의안 보존액이 담긴 유리잔에 넣어둔다고 했다. 그러면서, 자신의 의안이 궁금하냐며 직접 꺼내서 보여줄까 하고 물었는데...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던 나는 거절하고 말았다. 물론, 후에 내가 일부러 그녀에게 의안을 보여달라고 하기는 좀 그랬으니 나는 평생 한 번 볼까 말까 한 기회를 놓치고 말았던 거다. 누가 말했던가, 기회는 준비된 자에게만 온다고....


그날 그녀의 얘기와 당당한 태도가 내 뇌리를 오랫동안 떠나지 않았던 이유는 내 아버지의 눈과 내 선배의 다리 때문이었다. 내 아버지는 군대에서 심한 구타로 한쪽 눈을 실명하였으나 외관상으로는 아무도 알지 못한다. 내 선배는 어릴 때 질병의 영향으로 한쪽 다리가 다른 쪽보다 약간 짧아서 늘 다리를 절었다. 내 아버지와 내 선배는 평생 자신의 눈과 다리가 콤플렉스였다. 내 아버지는 아주 친한 사람조차도 어쩔 수 없이 알게 되는 경우가 아니고서는 알리지 않았고, 내 선배는 취업을 앞둔 어느 해 다리에 아주 극심한 고통을 무릅쓰고 키를 키우는 수술을 했다. 수술 후 그는 여전히 조금 절었지만 자신은 후에 또 하면 된다고 했다.


내 아버지와 내 선배는 자신의 '의도치 않은' 사고와 질병의 결과마저도 마치 자신의 치부인 양 평생을 숨기거나 당당할 수 없었다. 남들의 시선이 유독 따갑고, 민감한 영향을 끼치는 한국 사회에 살고 있었기에.


미라는 장거리 운전을 하다 깜빡 존 것은 온전히 자신의 잘못이며, '자신의 탓'으로 일어난 사고로 잃게 된 한쪽 눈, 그리곤 대신 얻게 된 의안에 대한 이야기들을 얼굴에 난 뾰루지 정도로 얘기할 수 있었다. 남들의 시선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사회에서 살고 있었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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