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코리아코알라 Jan 05. 2019

중국인처럼 빨래 널기

|호주 편

그녀는 6개월 전 이 세상에 혼자 남겨지게 되었다. 

남편이 암에 걸려 병원에서 열심히 치료를 받으며 나날이 낫고 있다고 굳건히 믿었는데, 남편은 그녀를 끝까지 지켜주지 못했다. 그가  끝끝내 눈을 감았을 때 그녀는 이제 78세. 앞으로 살아갈 날이 20년도 더 남았다. 


그녀에게서 멀지 않은 곳에 린(Lynn)과 데이빗(David)이 살고 있었다. 그들은 중국에서 유학생으로 와서 어떻게든 호주에 자리 잡으려 노력하고 있었다. 말수가 적은 데이빗은 그녀의 집에서 저녁 식사를 하다가도 멈춰진 시계를 보면 벌떡 일어나 배터리를 갈아 끼워주곤 했다. 린은 케일이 몸에 좋다며 케일 씨를 정원에 심으라며 학교 행사에서 씨를 사서 갖다 줬다. 남편의 장례식에도 린과 데이빗은 그녀와 함께 목놓아 울어주었다. 그들은 중국에서 왔는데 너무나도 천사 같은 사람들이다, 그들이 없었으면 그녀가 어떻게 살았을지 또 어떻게 살아갈지 모르겠다고 그녀는 늘 입에 달고 살았다. 그렇게 그들은 그녀에게 고마운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홀로 크리스마스를 외로이 보내야 할 시어머니를 생각하며 그해가 저물기 일주일쯤 전 한국 사는 그녀의 아들과 한국인 며느리가 멀리서 날아왔다. 그녀의 한국 며느리는 시어머님께 책잡히지 않으려 쇼핑, 청소, 설거지, 요리, 빨래를 도맡아 했다. 그날은 시어머니가 잠시 외출하시자 얼른 빨래를 해서 널었다. 볕이 잘 들지 않는 뒷마당보다는 앞마당에 햇빛이 더 따스하게 비쳤다. 접혀 있던 빨랫줄을 펴서 빨래를 해가 잘 비치는 곳에 널었다. 


외출했다 돌아온 그녀는 경악했다. 외마디 비명을 내지르며 정말로 경악을 금치 못했다. 어떻게 빨래를 앞마당에 버젓이 마땅한 이유도 없이 널 수가 있느냐고 했다. 그 집은 이제 "중국인의 집"처럼 어글리하게 되었다고 슬퍼하고 화를 내었다. 앞마당의 빨랫줄은 비가 올 때 어쩔 수 없을 때만 비를 피해서 널 수 있게 한 곳이라고 하면서. 그제야 접혀있던 빨랫줄이 왜 그렇게 거미줄에 감겨있었던 지 며느리는 알 수 있었다. 


그녀가 말한 "중국인의 집"에는 린과 데이빗도 살고 있을까?

그렇게 친절하고 너무나도 가슴을 따뜻하게 해 주는 린과 데이빗도 그녀의 무의식에는 촌스러운 후진국 출신의 사람으로 살고 있는 걸 그녀만 모를까.


호주인의 차별은 이런 식이다. 

나에게 너무나도 잘해주지만, 자기도 모르는 잠재의식 속에 나는 여전히 차별의 대상인 것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호주의 택시기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