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31일 연말이 하루 남았다.
밖에 나갈 수는 없고, 누구를 만날 수도 없고, 그렇다고 아무것도 하지 않으려니 뭔가 섭섭하다.
인터넷에 뭔가 아이디어가 없을까 뒤적뒤적하다 한 곳에 눈길이 멈추었다. 진해만에서 자연산 회를 아침에 손질해서 당일 바로 고속버스로, 퀵서비스로 문 앞에까지 가져다주는 서비스다. 세상에, 이런 것이 있다니. 코로나 바이러스 이전 세상에서는 상상도 못 했던 것들을 이젠 이렇게 쉽게 집에 앉아 받아먹을 수도 있게 되었구나 싶었다.
바로 주문을 넣고 다음날이 되기를 기다리면서 후기를 읽어보던 중, "... 나이가 지긋하신 노인분께서 배달을 해 주셔서 깜짝 놀랐어요...."를 읽으면서도 아 그냥 그런가 보다 하고 넘어갔다. 서울은 그런가 보다 했던 것 같다.
그다음 날 저녁 5시가 조금 되기 전에 문자가 한통 왔다. "... 지하철 퀵배달 기사님이 상품을 들고 남부터미널을 출발했습니다......." 내가 사는 곳은 인천, 그중에서도 서울에서 가장 오기 불편하다면 불편한 곳인데 지하철을 타고 여기까지 배달을 오신단 말이야? 당연히 '인천' 터미널에서 누군가가 오토바이를 타고 휘리릭 왔다 갈 줄 알았는데 서울에서 인천 끝까지 회를 배달하러 지하철로 오다니??!!
그렇다면 당연히 최저임금도 보장받지 못하는 어떤 연세가 지긋한 분이 오시겠구나 생각이 들었다. 그리곤 그때부터 마음이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기사분이 와서 문 앞에 물건을 두고 그냥 간다는 문자를 받았으니 나와는 별로 마주치지 않아도 되겠지만, 아무리 그래도 마음이 쓰였다. 마음을 쓰지 않으려 잠시 노력했지만 더욱더 불편해졌다.
그래서, 작은 쇼핑백을 꺼냈다. 그리곤 무엇을 드릴 수 있나 부엌을 뒤졌으나 별 흥미로운 건 없었다. 에너지 바 한 개, 견과류 한 봉지, 그리고 샌드위치를 하나 만들까 하다 빵을 안 드실 수도 있고, 고민하다 설탕이 들지 않은 두유는 몸에 좋으니 한팩... 여전히 좀 허접하다. 그리고 또 무엇을 담을까... 뭔가 따뜻한 걸 담고 싶은데 서울에서 지하철로 오신다면 언제 도착할지 모르니 보온병에 넣어도 식을 수 있고... 커피를 넣자니 안 드실 수도 있고, 고민에 고민을 하다 카페인이 안 든 차를 도착하실 즈음의 30분 이내에 담아두기로 했다. 그렇게 모두 다 쇼핑백에 담고, 메모지에 감사하다는 말과 꼭 들고 가시라는 등 몇 마디를 써서 문에 걸어두려는데 왠지 1프로 부족한 거 같았다. 그래서 다시 집안으로 들고 들어와, 아, 이런 상황에서 팁을 드리는 게 맞나? 얼마를 드려야 하나? 혹시 받고 자존심이 상하시지는 않으실까... 여러 고민을 또 한차례. 결국 하얀 봉투에 만원을 넣었다. 그리고 덕분에 나는 멀리서 오는 맛있는 음식을 편히 먹게 되었으니 사소하지만 따뜻한 우동 한 그릇 사드시라고 썼다. 그렇게 약간은 설레면서 문에 쇼핑백을 걸어두었다. 문을 열지 않고, 나를 보지 않고, 그냥 들고 가시기만을 바라면서.
예상했던 시간보다 30분쯤 빨리 공동현관 벨이 울리고, 잠시 후 현관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급히 문을 열었더니 이미 배달을 문 앞에 두고, 엘리베이터를 기다리고 계셨다. 쇼핑백을 문에 그대로 걸어두신 채로. 메모를 손바닥만 한데 써서 쇼핑백에 붙이는 게 아니었다. 적어도 A4용지 두배만 한 크기로 문에 붙여두어야 했다는 후회가 뒤늦게 몰려왔다. 급하게 기사님께 그걸 직접 전해드리고 감사하다고 했다. 그것이 본인을 위한 것이었냐면서 얼떨결에 받아서 내려가셨다.
그리고 얼마 후... 감사하다는 문자가 왔다. (나도 답변을 드렸다)
그리고 또 잠시 후, 조금 더 긴 감사 문자와 새해인사도 왔다. (나도 연말, 새해 인사를 드렸다)
그리고 서울에 도착하셨을 것 같다고 생각될 즈음 또다시 문자가 왔다. "...마호병 사모님 잊지 않고 정말 정말 잘 쓰겠습니다..." (어떻게 답변을 드려야 할지 몰랐지만 그래도 다시 답변을 드렸다)
저녁을 드셨을까, 드시려고 하실까 할 때쯤 다시 장황한 문자가 왔다. "... 코로나로 너무너무 힘들었는데......로 그 힘들었던 마음이 싹 다 씻어졌습니다... 네, 힘내겠습니다... 이겨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번에도 답변을 드려야 하는데 눈물이 나왔다. 그리고, 그 문자를 볼 때마다 자꾸 눈물이 또 났다. 그래서 답변을 드린 후, 문자를 지웠다. 눈물이 자꾸 나서기도 했지만 그 문자를 보면서 내가 좋은 일을 했다고 생각하게 될까 봐 지운 것도 있다.)
누군가가 이렇게 말하는 걸 들었다. 자꾸 누구에게 뭘 주고 자신은 안 받으려고 하는 건 극도의 이기주의라고. 나는 그 말에 많은 부분 동의한다. 특히 나의 젊었을 때의 선행은 내가 "착한 사람"이었기에 "불쌍한 사람들"에게 베푼 선행이었다. 하지만 나이가 마흔이 넘고 내가 그런 약아빠진 무늬만 착한 사람이었다는 걸 깨닫고 참 많은 반성을 했다. 그리고 그 후로 나는 더 이상 돕지는 않기로 했다. 그냥 공감하고 나누고 함께하기로 했다. 내가 누구를 돕다니... 참 교만한 생각이었다.
2020년 12월의 마지막 날도 나는 참 따뜻했다. 함께 나누어서 행복했고, 힘듦을 공감하고 잠시의 시간을 누군가와 함께했기에 그랬다.
언젠가부터 한 해가 지나고 그다음 새해가 오는 것이 그렇게 특별하지는 않은 일이 되었다. 새해 문자를 받고, 신년인사를 듣는 것이 참으로 불필요하게 느껴진다. 어차피 매일이 새로이 시작되는 새날이니까. 새해가 아니어도, 새날에는 모두가 조금 더 따뜻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어린 시절 내가 어떤 삶을 살지 깨우쳐준 헨리에게 감사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