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적질이 괜찮은 그대들을 위하여

by 코리아코알라

브런치는 참 친절했다.

한 달쯤 전, 내 글을 마지막으로 읽은 지가 210일이 넘었다고 다시 글을 쓰라고 알려주기까지 했으니.


'거 참, 누가 내 글을 읽는다고 다시 글을 쓰라고 부추기는 걸까?' 하면서 브런치를 열었다.

거기엔 잊고 있었던 500명이 넘는 구독자분들이 계셨다. 그들은 왜 내 글을 구독하는 걸까? 내 글을 보면서 뭔가 위로를 받을까, 마음이 따뜻해질까? 정보를 얻어갈까? 이렇게 별 재미도 없는 아마추어의 글을 보면서... 하고 생각했다.


그리곤, 나는... 브런치를 닫았다.


그리고 일주일이 지났나? 시간이 조금 흘러 몇 주 전, 마지막 수업을 하는데 한 학생분이 나에게 정여울 작가님의 '끝까지 쓰는 용기'를 선물해 주셨다. 그리곤, 내가 쓰고 싶은 걸 꼭 끝까지 썼으면 좋겠다고 하셨다. 이런 게 필연적 우연일까.


울컥


십여 년 전 나는 내가 쓰고 싶은 게 아주 많다고 생각했다. 아니, 써야만 하는 게 너무나 많다고 생각해서 열심히 썼다. 그런데 수년이 흐른 뒤 여러 군데서 나는 남이 듣고 싶은 말을 내가 독단적으로 결정하는, 전혀 독자의 입장은 고려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고 들었다. 그랬다. 나는 들으면 좋을 거다, 들어야 된다라고 생각하면서 열심히 썼다. 그런데 내가 그렇게 고리타분한 꼰대였다는 걸 생각하면 지금도 얼굴이 화끈거린다. 그래서 그만뒀다. 글쓰기. 나는 글을 그만 써야겠다고 생각했다. 나는 어쩔 수 없는 꼰대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끝까지 쓰란다...

뭘 쓰지? 난 더 이상 할 말이 없는데...


그런데 정여울 작가님이 그런다. 내가 할 말이 없다고 말하면 그건 거짓말이라고. 그 문장을 읽으며 나는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책을 첫 장에서 멈췄다. 내가 실은 하고 싶은 말이 아직도 정말 많다는 걸 문득 기억했기 때문이다. 다만, 펜으로라도 더 이상은 절대 꼰대 짓은 하고 싶지 않았으므로 여전히 나는 글을 쓰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오늘, 브런치의 어떤 작가분이 내 글을 공유해도 되겠느냐고 물어오셨다. 그리고 나는 내가 썼던 수년 전의 그 글을 다시 읽어보게 되었다. 좋은 글은 아니었지만 많은 사람들이 의식하지 못하는 것에 대해 썼다 생각했다.


얼마 전 넷플리스에서 "Hidden Figures"라는 영화를 보았다. 잘 알려지지는 않았으나 지대한 공을 세웠던 NASA의 흑인 여성들에 관한 이야기였다. 거기서 그들의 직속 상사였던 한 백인 여성은 늘 감정이 절제된 것처럼 보였으며, 딱히 흑인들을 폄하하지도 않았지만 그들의 편이 되어주지도 않는 정말 "중립적인" 입장을 취하는 사람처럼 보이려 배우는 노력했다. 그러다 일이 계속 잘 풀리지 않았던 어떤 한 장면에서 백인 직속 상사가 부하직원이었던 흑인 여성에게 담담하게 이렇게 말한다.


"You know, Dorothy. Despite what you may think, I have nothing against y'all."

(있지, 도로시. 어떻게 생각할지는 모르지만, 나는 흑인 직원들에 대해 아무런 악감정도 가지고 있지 않아.")


그 말을 들은 도로시는 "웃으며" 이렇게 말하고 나간다.


"I know. I know you probably believe that."

(알아요. 아마도 그 말이 진심이라고 믿고 있으실 거라는 걸요.)


상사가 그 말에 충격을 받은 만큼 나도 함께 충격을 받았다.

오늘 저녁, 불현듯 그 장면이 떠오르며 나는 다시 글을 써야 할, 꼰대라고 불려도 어쩔 수 없이 다시 자판을 두드려야 할, 이유를 찾았다.


한국인은 아무도 자신이 인종차별주의자라고 믿지 않는다.

한국인은 아무도 자신이 무례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한국인은 아무도 자신이 상대를 밀쳐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적어도 대부분은 의도하고 그렇게 하지 않는다. 절대로!

그래서 나는 다시 쓰기로 했다.

의도치 않게 상대를 아프게 하고, 차별하고, 왕따 시키는 사람이 되고 싶지 않은 사람들을 위해서.


공자가 노자에게 "예란 무엇입니까?"하고 물었다고 한다.

그러자 노자는 "... 당신은 교만과 욕심을 버리고, 있어 보이는 얼굴빛과 모든 것을 자신의 뜻대로 하려는 마음을 버려야 합니다..." 했다고 한다.

그 말을 들은 공자는 노여워하기는 커녕 큰 깨달음을 얻었다고 한다.


나는 다시 글을 쓰기로 했다.

내가 의도치 않게 실수하는 것을 누군가는 알려주기를 '원하는' 소수의 사람들을 위해서.

내가 지적질을 해도 "니나 잘해라" 하지 않고, 공자처럼 자신을 돌아볼 줄 아는 극소수의 그대들을 위해서.


언제쯤의 내일, 나는 오늘보다 조금 덜 꼰대 같은 말과 글을 전할 수 있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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