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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코리아코알라 May 20. 2024

학원을 자꾸 바꾸는 엄마

예진이 엄마는 예진이 수학학원을 바꾸고 또 바꿨다. 


예진이는 사람들도 좋아하고 선생님들도 너무 좋아해서 어디를 가든 항상 잘 어울리고, 선생님들과도 친해졌으며, 새로운 친구들도 많이 만들었고, 다른 아이들도 두루두루 잘 이끌고 다녔다. 그런데 문제를 풀면 점수는 잘 나오지 않았다. 


예진이가 성적이 잘 나오지 않는 건 선생님들이 잘 못 가르쳐서일까, 학원에서 받는 그룹 수업이라 그런 걸까? 그럼 개인 수업에선 틀리지 않아야 하지 않는가? 


예진이는 문제를 풀 때 문제가 빡빡하게 많은 문제집은 보는 것 자체를 싫어했다. 문제가 듬성듬성 있으면 훨씬 편해했다. 종종 문제를 건너뛰고 풀거나 가끔 한 페이지를 통으로 건너뛰고 풀기도 했다. 


영단어 시험을 보면 얼마나 공부를 열심히 했던 상관없이 단어 스펠링을 백 프로 맞추지 못했다. 아주 공부를 열심히 한 주에는 거의 백 프로 맞았지만 "거의 백 프로"는 백 프로가 아니다. 예진이 엄마는 예진이가 정신 똑바로 안 차리고 집중을 하지 않는다고 했지만 나는 그 말이 아주 걱정되었다. 정말 예진이는 정신을 똑바로 "안"차리는 걸까, 집중해서 뭔가를 하는 게 그냥 너무 힘든 걸까? 


예진이는 배가 자주 아팠으며, 수업하다 자주 졸았고, 영어 읽기가 아주 빨랐다. 느리게 읽는 게 오히려 힘들 만큼. 감정이 예민해서 눈물을 자주 보였고, 수학 계산이든 영어든 어려운 게 아니라 자잘하고 쉬운 실수를 계속 반복하여 틀렸다. 깜빡하고 해야 할 일을 잊어버리는 경우가 종종 있었고, 손이나 몸을 가만히 있지 못했다. (*잘 알려지지 않은 ADHD의 특징 중 말을 아주 빨리 한다는 것도 있다)


하지만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할 때나 스포츠를 할 때는 너무 신나 하며 집중도 잘했다. 특히나 동물이나 사람들의 감정을 잘 헤아리고 그들을 잘 품어서 인간관계가 참 두루두루 넓고 둥글며 탁월했다


나는 아이들에게 라벨을 붙이는 걸 가급적 피하려고 한다. 물론 상황에 따라서는 얘기를 해 주는 것이 훨씬 더 큰 도움이 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쉽게 'ADHD', '난독증', '자폐스펙트럼'이라는 말을 하기보단 다른 방법으로도 충분히 알려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예진이가 언젠가는 잔실수를 하지 않고 고득점을 받을 수 있을 수도 있겠지만, 어쩌면.. 없을 수도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건 오롯이 예진이의 몫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예진이가 자신의 성향을 파악해서 바꾸고자 했을 때 그 변화는 일어날 것이며, 그제야 그 노력이 의미 있는 것일 테니까. 


ADHD가 있는 아이들의 20프로가 난독증이 있다면, 난독증이 있는 아이들의 50프로는 ADHD가 있다고 한다.


예진이에게도 "stealth dyslexia"라고 할까, 숨은 난독의 증상들을 좀 볼 수 있다. 대부분의 성인 난독증은 다른 사람이 알아차리지 못할 만큼 드러나지 않지만, 아이들 중에서도 표시가 거의 나지 않아서 난독증이란 걸 모를 때가 있는데 예진이의 경우가 그런 거 같다. 


예진이는 한글을 읽을 때 아무런 문제 없이 아주 잘 읽는다. 그런데 좀 더 어려운 영어도 대부분은 잘 읽지만 글이 작거나, 글간격이 좁으면 자주 한 줄씩 건너뛰고 읽거나, 제대로 읽지 않고 발음을 종종 틀리게 읽는다. 하지만 그보다 더 대표적으로는 단어를 기억해 내야 할 때 기억이 잘 나지 않는 단어인출에 어려움이 있다. 그리고 말로는 아주 잘 하지만 글로 읽은 것은 머릿속에 잘 남지 않고 증발해 버리는 경우들이 있는데 이는 작업기억이 약해서 그렇다. 


예진이에게 정말 난독증이 있다면 읽고 나서 단어가 증발해 버리는 것이 마술처럼 어느 날 그냥 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니 머리에 각인을 하듯이 복습하고 또 복습하고, 시험 직전에 반드시 다시 한번 더 봐서 기억을 되살려주는 작업이 필요할 것이다. 


어느 학원을 가건, 어느 선생님과 공부를 하건 계속해서 반복하고 또 반복하며 거의 머리에 새기듯이 공부해야 한다. 그러니 공부를 정말 잘하고 싶다면 그걸 받아들이고 남들보다 더 열심히 하면 될 것이고, 그 정도의 노력을 들일 가치가 없다면 다른 재능을 발굴해서 다른 길로 나가면 된다. 




우리나라에 예진이와 같은 아이는 차고도 넘친다. 그런데 이 아이들은 어떤 부모 밑에서, 어떤 지지와, 어떤 환경에서 자라는지에 따라 전혀 다른 삶을 살게 될 것이다. 


80~90년대에는 대학이 목표였고 메리트였겠지만, 이제는 창의성과 독특함이 무기다. 많은 거대 기업들은 이제 수익창출의 한계에 봉착했다. 구독료를 무한정 인상할 수도 없고, 구독자가 무한으로 계속 늘어날 것도 아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은 이 거대 기업들에게 지쳐가고 있다. 이제는 소수의 재능 있는 사람들이 이끄는 시대가 도래하고 있다. 그런데 부모의 세대는 아직도 학교 교육, 학교 성적을 맹신하고 있는 것 같다. 학교는 필요한 물건의 아주 좋은 부품을 만들어내기 딱 좋은 공장과 같은 방식이었다는 걸 알아차리면 좋겠다. 이 사회가 필요한 규격에 맞는 것은 고르고, 아니면 다 불량으로 치부했던 그런 방식. 


이런 성향의 아이는 안 될 것이니 아예 노력을 하지 말라는 것도 아니고, 대학이 중요하지 않으니 가지 말라는 것도 아니다. 그냥 대학을 삶의 여러 가지 길 중에 하나로 보았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거기에 목매달아서 부모와 아이의 삶이 불행하지 않았으면 할 따름이다. 대안을 열어놓고 노력하는 것과 반드시 "이것"이어야만 한다는 마인드는 천지차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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