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terature, Satori gen., ...

문학과 사토리 세대

by Korean Dream

지금은 'MZ 세대‘니, ’Zalpha 세대'니 말이 많지만 그보다 조금 더 이전에 ‘사토리 세대’라는 단어가 신문에 자주 등장했다. 당시 괜스레 이래저래 평가하는 듯한 말을 만들고 널리 알리는 사람들에게 약간의 불편함을 느끼기도 했던 것 같다.


고등학교 수능 공부를 하며 삼국시대나 고려 문학도 조선시대 문학도 다 좋은데 근대 이후가 되면 교과서나 수능 서적에 나오는 문학들이 어둡고 처절한 이야기들이 많았다. 발췌된 부분이 좋다거나 주제의식 관련 전체 내용이 궁금해서 소설 원문을 찾아보면 더한 내용이 소개되어 충격을 받은 적도 있었다. 때로는 발췌된 부분조차 당시 받아들이기에 다소 자극적으로 느껴질 때도 있었다.


특히, 조선시대 문학까지는 출제범위가 어느 정도 예측 가능한 것으로 알려지다 보니 고득점을 위해서는 다양한 근대 이후 문학을 조금이라도 더 접하려고 했는데 그 많은 이야기들이 너무도 어둡고 슬퍼서 문학 영역을 공부하다 보면 어쩔 땐 단순히 공부 이상으로 약간 피폐해지는 느낌을 받기도 했다.


당시 반 친구들 중에 책을 사고 또 읽기를 좋아하는 친구가 있어 다 같이 실제로 많이 읽었던 책은 일본 소설이었다. 그리 심각한 내용도 아니고 평범하게 살아가는 이야기인데 뭔가 독특함 한 스푼이 얹어져 있다든지, 아니면 아예 집중을 하게 만드는 미스터리 추리 소설이어서 적당히 몰입하며 책장을 술술 넘기고 이후에는 남는 게 있든 없든 잊어버리든 부담이 없는 책들이고 내용이었다. 그리고 한 작가의 책을 읽으면 그다음부터 그 작가가 낸 어느 책을 읽어도 비슷하게 재미있었고 그래서 다음 신작을 기다리게 만들었다.


초등학생 때 친구가 한다는 독후감 과외를 같이 받게 되면서 <강아지똥> 책을 처음 읽었을 때 삽화에 수박씨 같기도 검은깨 같기도 한 귀여운 눈망울을 보며 눈물을 글썽이기도 했지만 이후 본격적으로 수업이 시작되면서 나는 과외가 싫어졌다. 선생님은 이미 방향을 정해두고 어떻게 쓸 지 권유하시는 것처럼 느껴졌다. 당시 나는 읽는 것은 습관이 되어있었고, 느끼는 것은 부족하였으나 쓰는 것에 두려움은 없었다. 그러나 내 느낌이 부족하다고 하여 선생님의 느낌에 맞춰 원고지에 내 이름 아래 옮겨 적기는 싫었다. 그렇게 상을 받고 싶지도 않았다.


우리나라에서 또는 해외에서 상을 받았다 하는 한국 문학책을 내가 원해서, 또는 누군가의 권유에 따라 여러 권 읽다 보면 문학으로 상을 받기 위해 특별한 문법이 필요한 걸까? 생각이 들기도 했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어디에선가 쓸 마음이 ‘퐁퐁’ 샘솟지 않으면 쓰지 않는다고 하였다. 내가 또는 누군가가 무라카미 하루키는 아니지만 누구에게나 자유롭게 선택하여 읽고 자유롭게 쓸 권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당시 언론들이 ‘사토리 세대’를 비판적으로 다루던 내용이 떠오른다. 경제 상황 때문에 그렇느니, 왜 체념하는 듯 사냐느니... 그러나 이미 고등학생 때 일본 소설을 사서 읽고 있던 내 친구들은 일종의 누군가 잘했느니 잘못했느니 간접적으로 화두를 제시하고자 하는 듯했던 당시 사조에 먼저 지쳐 나가떨어졌던 것은 아닌가 생각이 들기도 한다.


조선시대 반상제 속에서도 ‘풍자’와 ‘해학’이 있었다던 우리 민족의 이야기는 힘든 시대 속에서 ’웃음‘도 ‘위트‘도 잊어갔던 것일까? 때로 우리는 어려운 상황 속에서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들을 보며 위로를 받기도 한다.


각종 TV 드라마 시놉시스를 보면 그런 주제의식을 갖고 쓰인 드라마들이 대부분이다. 나 또한 그런 드라마를 보고 울고 웃으며 힘든 시기를 버텨낸 적이 있다. 분명, 아무리 시대가, 상황이 힘들어도 그 속에서 희망을 갖고 삶을 끈질기게 살아낸 사람들이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어쩐지 내가 경험한 테두리 안에서는 그런 이야기를 접하기가 많이 어려웠다.


우리는 좀 더 솔직해질 필요가 있는 것은 아닐까? 분명 우리의 이야기임에도 다루지 못하는 부분을 드라마 <파친코>는 한국, 미국, 일본 등 다양한 무대를 통해 다루고 있다. 삶을 위해 버틴 사람을 비난하지도 칭찬하지도 않는다. 그저 보여줄 뿐이다.


흘러간 역사와 끈질긴 감정의 굴레가 너무도 버거워 어쩌면 이야기들을 그냥 보여주기조차 어렵게 된 것은 아닐까? 우리 이야기를 제삼자의 시선으로 보는 듯한 느낌이 편하게 된 것은 그 부담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기 때문은 아닐까?


나 역시도 기존의 교육이 알려준 우리 역사의 아픔에 대해서만 공감하려 했지. 우리 가족에 어떤 이야기가 있었는지 알게된 지 채 얼마가 되지 않았다. 초등학생 때부터 아픈 역사에 희생된 사람들의 이야기를 몇 편씩 읽었으나 정작 오히려 가깝기 때문에 또는 사는 게 바빠서 누구도 쉽게 이야기하지도 알려주지도 않았던 이야기에 적극적으로 관심을 갖기가 어려웠다.


당시 읽었던 이야기들은 시대와 상황과 집단의 권력에 어쩔 수밖에 없었던 개인의 이야기가 다수였다. 그러나 지금 내가 느끼는 상황과 감정이 크게 다를까? 스스로 묻게 된다.


가벼운 것을 cool하다고 여기고 그럴 것을 강요받기도 하지만 때로는 이에 대해 공공연하게 이야기를 꺼내기만 해도 punishment에 가깝게 서로를 ‘엄중‘하게 질책하는 모습을 보며 우리 모두 서로를 진짜 직면할 자신은 있는 걸까? 묻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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