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 감수성은 타고나는 것인가? 길러지는 것인가?
나는 실향민 3세로서 삶을 살아가고 있다. 대학생 때까지만 해도 그런 것에 대해서는 잘 생각해보지 못했다. 그저 우리는 가정환경이 어려운가 보다 생각하고만 살았다. 우리 가족의 뿌리와 정체성에 대해서 할아버지가 너무 명명백백하게 드러내놓고 사셨기 때문에, 그것도 어떻게 보면 대한민국 내에서 가장 보수적이라 불릴 수 있는 곳에서 그렇게 사셨다는 것이 지금 생각하면 의아하게 느껴지기는 하지만, 그럼에도 나를 이질적으로 대한다거나 드러나게 차별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래서 나는 실질적으로 내가 이질적이라는 것을 생각해 본 적 조차 없었다.
그러나 내가 이질적이라고 느끼기 시작한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실향민의 자손임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정계에서 목소리를 드러내놓기 시작하면서부터였다. 한국이 외교 무대에서 북한을 자주 주제로 내놓기 시작하면서부터 나는 내 정체성에 혼란이 오기 시작했다.
나는 실향민 3세이지만 우리 집은 북한에 대해 생각할 겨를조차 없이 대한민국에 적응하기 위해 그야말로 survive나 struggle의 단계를 거치고 있었다. 조선식의 생활양식으로부터 벗어나 산업화를 이룬 대한민국의 일원으로 거듭나기 위해 가족 구성원 모두가 피나는 노력을 하고 있었던 때였다.
1세대는 누구나 피나는 노력을 통해 정착을 위해 애썼고 2세대에서는 새로운 문화를 제대로 받아들이기 위해 애쓴 과정이라고 생각된다.
당연히 나는 3세대인 내가 대한민국의 당당한 일원으로서 꽃 피울 수 있는 시기가 오리라고 생각하고 열심히 살아가고 있었다. 그러나 사회가 바뀌고 있었다.
실향민과 가까운 스탠스를 보이면서도 광복에 기여한 가문 등을 내세우거나 대부분의 주제가 북한과 연결 지어졌다. 그러나 나는 우리 가문에 대해 그 정도까지 배운 적은 없었으며, 그리움은 간접적으로 표현되었지만 누구도 북한에 대해 그 정도로 이야기하는 사람들도 없었기 때문에 다소 이질적으로 느껴졌다.
그 때 나는 사회에서 내가 이질적이라는 느낌을 처음 느꼈다. 그들과 나는 대체 뭐가 다른 걸까?
결국 나는 나의 뿌리에 대해 궁금증을 가지게 되었고, 아버지와 어머니를 통해 이전과는 다르게 꽤 긴 시간을 통해 그 이야기들을 들을 수 있었다. 들은 이야기를 통해 몇 가지 단서를 잡아 서적들을 찾아보았다.
할아버지는 자본가로서 마음가짐을 갖고 계셨고, 외할아버지에게는 근면, 성실함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 이 뿌리를 찾는 작업을 한 후에 나는 한 가지 궁금증이 생겼다.
우리 세대에 이르러서 어릴 때부터 억압받는 것을 싫어하는 마음이 우리 모두에게 있었지만 그것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정도가 각각 달랐는데(내가 가장 둔했다.) 이것이 어느 정도 타고나는 게 있다고 봐야 하는지, 길러지는 게 있다고 봐야 하는지가 궁금했다.
그리고 나는 대체적으로 자라오면서 나에 대한 억압에 대해서 더 민감하게 반응했지만 어떤 사람은 남이 억압받는 상황에서 더 강렬하게 반응하기도 한다.
어떤 사람은 광복의 자유를 최고의 자유로 여기려 하고, 어떤 사람은 자유 민주주의의 자유를 자유로 여긴다.
도대체 왜 이런 일이 생기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