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ray zone, Contrast

명과 암, 그 사이 어딘가에서

by Korean Dream

중학교 미술 수행평가 시간에 소묘를 했다. 선생님께서 주시는 잡지 중 한 페이지를 택해 또는 직접 원하는 페이지를 가져와 그렸고 나는 벤츠 세단 광고 사진을 택했다. 구도나 원근감이 약해서 형태 잡는 데 시간이 좀 걸렸으나 그럭저럭 아웃라인을 잡은 후 Tombow 2B 연필과 4B 연필로 열심히 채워가기 시작하는데 동양화를 전공하신 것으로 알려진 미술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다.


“그림이 너무 흐리다.”


밝은 곳은 밝게, 어두운 곳은 어둡게 표현해야 하는데 아무리 연필이 지나가도 어두운 곳을 어둡게 표현하기 어려웠다. 사춘기 언저리에 내 마음 속에 비비드하고 진한 것들은 ’튄다‘, ’촌스럽다’는 부정적인 편견이 자리 잡기 시작했던 것 같다.


선생님께서 전에 지우개로 쓱 지나가면서 빛을 표현하는 스킬을 보여주셔서 그대로 해보았지만 어두운 걸 어둡게 표현할 용기가 없었던 내 그림은 지우개가 지나가도 그 흔적이 드러나기 어려웠다.


평가를 위해 반 친구들의 그림이 한 번에 전시되자 이런 특성이 더 명확하게 보였다. 명암이 제대로 표현되지 않고 대조도가 낮으니 엉성한 각각의 선들이 부각되어 다소 조잡하게 보이기도 했다.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gray zone에 있는 것이 미덕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gray zone도 자세히 살펴보면 꽤나 다양한 스펙트럼이 존재하고 있다. 그러나 명도 암도 없이는 gray zone도 없다. 다들 쉽게 gray zone을 택하곤 하지만 어쩌면 명도 암도 제대로 들여다볼 용기가 없어 gray zone을 택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어릴 때는 나의 그림에 솔직하게 꼭 한 마디 덧붙여주시던 미술 선생님이 내심 밉게 느껴지기도 했다. 스텐실을 할 때는 도안이 너무 복잡해 시간 분배를 잘못해 조색이나 그라데이션 표현이 단조로워졌는데, 열심히 하는 것은 좋으나 적절한 도안을 선택해 시간 내 잘 완성하는 것도 스킬이다라는 식의 말씀을 주셨다. 수업시간에 딱히 나를 지칭한 것은 아니지만 뭔가 나와 내 짝궁을 비유와 예시로 드는 듯 느껴지는 개별적 요소와 조화에 대한 이야기도 있었다.


지금 돌아보면 내가 똑같은 문제에서 계속 헤매온 시간들이 결국 당시 내 그림에 대한 미술 선생님의 평가와 다르지 않았구나 생각하게 된다.


명과 암도 그만큼의 역할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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