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결혼 생활을 하는 방법 1
결혼 생활이 몇 십 년 이어지면 서로 데면데면해지고, 안 좋은 모습이 더 많이 보이고, 서로의 행동이나 생각이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이 많아지고, 사랑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그냥 정으로 사는 것일까? 만약 그렇게 사는 것이라면 반평생의 삶이 너무 불행하지 않을까?
나는 30대에 결혼했고 이제 15년 정도 살았으니 인생 3분의 1이 결혼생활이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15년 동안 난 남편과 큰소리 낸 적도 없고, 남편에 대한 사랑이 줄어들지도 않았다. 주변 사람들은 내가 남편과 통화할 때면 애교가 넘친다고 하고, 남편 친구들은 나와 통화를 끝낸 남편에게 마누라랑 그런 목소리로 통화하느냐고 의아해 한단다.
영화 <포레스트 검프>에서 인생은 초콜릿 상자와 같다고 했다. 무엇을 집을 지 알 수 없지만 초콜릿을 하나씩 꺼내는 것이 인생이라고 했다. 난 결혼생활도 상자 속의 초콜릿 같다고 생각한다. 꺼내기 전까지는 전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난 아주 달콤한 초콜릿을 꺼냈다고 생각한다.
내가 즐겨보는 프로그램은 <달라졌어요.>이다. 이 프로그램은 SBS의 문제아를 대상으로 하는 <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 문제 있는 반려견을 대상으로 하는 <세상에 나쁜 개는 없다>와 더불어 인간 관계의 어려움, 특히 부부 사이의 문제점, 모자 사이, 부녀 사이, 고부 사이 등의 문제를 다룬다. 여러 편을 보면서 문제가 있는 부부의 원인은 대부분 상대방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기 때문이었다. 물론 각 부부 사이의 문제점은 다 다르다. 그런데 그 프로그램에서 부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먼저 하는 일은 배우자의 원가족이나 성장 과정에서 겪은 어떤 상처를 드러내는 것이다. 너무 알뜰한 아버지 밑에서 자란 아들도 역시 그렇게 짠돌이 남편이 되어서 아내를 괴롭히기도 한다. 엄마의 살뜰한 보삼핌을 받지 못해 자존감이 낮은 경우 그 자존감을 느끼기 위해 인터넷 쇼핑에 거의 중독된 아내도 나왔다. 성장과정에서 아버지로부터 받은 억압이나 낮아진 자존감을 알게 된 배우자는 그 아픔을 알고, 도닥여주면서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찾게 된다. 이렇듯 상대방이 거쳐 온 시간, 함께 하지 않은 그 시간에 대한 이해가 있으면 갈등은 의외로 쉽게 해결될 수도 있다. 그런데 그보다 중요한 것은 배우자나 가족의 모습을 바꾸려고 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봐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남편은 나의 성격을 이해해 준다. 나는 집 밖에 나가는 걸 안 좋아한다. 요즘말로 ‘집순이’이다. 여행도 안 좋아한다. 오죽하면 해외여행을 하려면 꼭 필요한 ‘여권’도 없다. 지금은 여권을 만들 생각도 없다. 서울에서 살 때인 결혼 초기에 남편은 그런 말을 자주 했다. 대부분은 아내가 남편한테 어디 나가자고 하면 남편이 귀찮다고 하는데 우리집은 그 반대라고 말이다. 그런데 남편은 나에게 ‘왜 나가는 것을 좋아하지 않느냐고, 자기는 이해할 수 없다’는 그런 말을 한 적이 없다. 그저 ‘밖에 나가는 걸 좋아하지 않는 나’로 봐 줄 뿐이다. 혹여 남편이 나가게 될 경우엔 함께 나갈 것인지 나에게 물어보고 내가 싫다고 하면 남편 혼자 외출을 하곤 했다. 오죽하면 내가 가끔 지인들과 늦게 들어가거나 노래방이라도 갈 거라고 하면 쌍수를 들어 환영하면서 잘 놀고 들어오라고 했다.
남편은 내가 좋아하는 것을 인정해 준다. 나는 인형을 좋아한다. 특히 목각 인형을 좋아하며 이국적인 인형을 좋아한다. 그래서 외국 학생들이 선물을 주고 싶다고, 무슨 선물이 좋으냐고 물으면 인형을 이야기하곤 했다. 남편은 가끔 해외에 나가곤 한다. 그럴 때면 나를 생각해 꼭 목각 인형을 사 가지고 온다. 같이 간 사람들이 인형을 고르는 남편을 의아한 눈으로 보지만 남편은 아랑곳하지 않고 나에게 줄 인형과 아이들에게 줄 선물을 골라 온다. 남편은 절대로 이 나이에 인형이나 좋아한다고 나무라지 않는다. 내가 남편의 취미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하지 않듯이 남편도 나의 호불호에 대해 말하지 않는다. 있는 그대로 인정해 줄 뿐이다.
남편은 나의 글을 인정해 준다. 남편은 내가 여기저기에서 쓴 글을 꼭 읽는다. 그리고 읽은 후에는 잘 썼다는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정말로 읽은 것이냐고 물어보면 글의 내용도 말해 준다. 한번은 남편 친구에게 ‘밥을 짓다’라는 글을 보여 준 적이 있는데 그 친구의 반응은 내 글이 뜬 구름 잡는다고 했다. 그런 거 알아서 뭐에 쓰냐는 반응이었다. 그 말을 들은 후에 난 더 이상 내 글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는다. 억지로 내 글을 읽게 하는 것도 그 사람의 생각을 존중하지 않는 것이기 때문이다.
15년의 결혼 생활을 통해 내가 느낀 것은 상대방을 이해하고, 있는 그대로 봐 주고, 그 모습 그대로 인정해 줄 때 행복하고 서로 존중받는다는 것이다.
난 아이들에게도 이렇게 하려고 노력한다. 내가 그런 대접을 받아봤고, 그것이 얼마나 좋고 중요한 것인지 알기 때문이다. 감정을 이해하고 생각을 존중해 주는 것이 가장 좋은 인성교육이지 참교육이 아닐까 생각한다. 나중에 아이들이 고등학생이 되면 혹시 공부를 강하게 시키지 않은 나 자신을 스스로 책망할지도 모른다. 그때가 되어서야 아이들이 공부 때문에 힘들어하는 모습에 미안해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 생각으로는 아이들이 읽고 싶어 하는 책을 읽게 하고, 아이들이 원하는 일을 하면서 살았으면 하는 마음이다. 자기가 갖고 있는 그릇의 크기만큼, 자기가 갖고 있는 그릇의 모양대로 꿈꾸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