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집 등원하는 길. 딸내미는 잔뜩 저기압이었다. 평소에는 엘리베이터에서 만나는 이웃들에게 인사도 잘하고, 어린이집에 도착하는 내내 장난도 치고 하는데 오늘은 심각했다. 분명히 아침에 일어나서 아침식사를 하는 동안에는 기분이 좋았는데.
이유를 물어보니 패딩 점퍼의 지퍼가 끝까지 올라가지 않는 게 속상하다고 했다. 추운 날씨 탓에 패딩 점퍼 속에도 여러 겹 투툼한 옷을 껴입은 덕분이다.
"해솔아, 지퍼가 끝까지 안 올라가는 게 해솔이의 하루 기분을 다 망칠 만큼 큰 일이니?"
주차장에서 어린이집까지 차로 5분 거리. 최근 나의 음악 플레이리스트에 새로 추가된 마돈나의 노래 'Frozen' 한 곡을 채 끝까지 듣지 못할 시간 동안 설교가 이어졌다. '스트레스를 받으면 네 건강에 해롭다', '사소한 일에 신경 쓰는 것은 어리석다' 등등. 아마 딸내미에게는 아빠에게 설교를 듣는 5분 남짓한 시간이 50분처럼 느껴졌을 테다. 그리고 아침부터 왜 속이 상한지 이유도 가물가물 했을 테고. 지퍼 때문인지, 아니면 사소한 일에 득달같이 반응해서 자기가 열을 더 올리는 아빠 때문인지. 사실 자기의 예민한 성격은 아빠 때문이란 걸 딸내미는 알고 있을까?
아이의 모습을 보다가 문득 내가 싫어하는 나의 모습을 발견했을 때 나도 모르게 열을 올리는 경우가 많다. 아이에게 잔뜩 설교를 늘어놓지만, 실상 그 설교는 내가 들어야 할 설교. 내가 그러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아쉬움, 앞으로 그러지 말아야겠다는 스스로에 대한 다짐을 교묘하게 포장한 것에 불과하다. 괜히 딸내미에게 불똥이 튄 것뿐이다. 심히 반성한다.
딸아, 일상 속에서 사소한 일 하나하나에 감정을 소모하는 일이 얼마나 힘든지 몸소 겪어왔고, 아직도 현재 진행형인 사람으로서 너는 부디 작은 일에 감정 상하는 일 없이 인생을 멀리 내다보고 하루하루의 과정을 즐겼으면 하는 게 아빠의 작은 바람이란다.
아직 모르는 것 투성이이지만, 인생은 장기투자라는 마음으로 살아가야 할 것 같다. 하루하루의 주가의 등락에 일희일비하지 않고 올바른 방향에 대한 확신, 그리고 스스로의 노력에 대한 신뢰를 자양분 삼아 미래에 대한 불안감 속에서도 일상의 행복을 누릴 수 있는. 이런 심오한 이야기를 딸내미에게 멋지게 들려주고 싶은데, 중요한 이야기는 쏙 빼놓고 잔소리만 늘어놓고 있는 아빠는 아직도 배워야 할 것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다.
나중에 딸내미가 크면, 아빠와 도란도란 심오한 인생에 대한 대화를 나눌 수 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