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랑 안 씻을 거예요. 엄마랑 씻고 싶어요"
하루 육아 일정의 마지막 고비인 목욕 시간. 아들내미는 엄마의 손길로 목욕을 마쳤고, 이제 딸내미 목욕시키기만 남았는데 아빠와 목욕하지 않겠다며 버텼다. 아빠와 씻기 싫은 이유가 비엔나소시지처럼 줄줄이 입에서 쏟아져 나왔다. 아빠는 장난을 많이 친다. 자꾸 이상한 노래를 흥얼거린다 등등. 그냥 동생이 엄마랑 씻는 게 부러워 엄마랑 씻고 싶다고 이야기하면 될걸 꼭 여린 아빠의 마음을 살살 긁는다.
우여곡절 끝에 딸내미를 씻겼다. 씻는 동안 마음에 안 드는 게 얼마나 많은지 머리를 감을 때도, 타올로 비누칠을 할 때도, 비누 거품을 걷어낼 때도, 그리고 머리를 말릴 때도 어찌나 툴툴대는지. 마치 오늘 오후 국사봉 산책을 할 때 만난 쇠딱따구리가 신나게 쪼던 나무가 된 것 같았다.
아빠가 정신 차릴 틈도 없이 몰아치던 딸은 옷을 갈아입기가 무섭게 책을 들고 내 곁에 찰싹 붙었다. 동화책 '백조의 호수', 그리고 '그리스 로마 신화'를 불쑥 내밀었다. 읽어 달라는 얘기다. 아까 아빠와 씻지 않겠다며 동네가 떠나가라 징징거리던 딸내미는 어디 갔는지. 이야기 두 편을 다 듣고, 아빠의 다리 마사지, 숙면을 위한 자장가와 토닥토닥 서비스까지 다 받고 꿈나라 여행을 떠났다. 아, 아빠의 숙면 코스가 고마웠다며 꼭 페르세우스 이야기를 들려줘야 한다고 해서 딸내미 옆에서 틈틈이 코도 골고 졸면서 들은 페르세우스 이야기는 선물이다. 언제는 싫다더니.
가끔은 서운한 말과 행동으로 아빠의 마음을 살살 긁을 때가 있지만, 아빠랑 캠핑 가는 것, 아빠 출장 갈 때 따라가는 것, 아빠랑 국사봉 가는 것, 아빠랑 도서관 가는 것 등등 아빠랑 함께 해서 좋다는 게 많은 딸내미랑 함께 하는 시간이 참 즐겁고 소중하다. 아이 둘 얼른 키워서 아내와 함께 오붓하게 캠핑 다니고, 놀러 다니고 싶다는 희망사항은 여전하다만 가끔은 시간이 멈춰 이 어린 변덕쟁이와 함께 보내는 시간이 영원히 지속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막상 시간이 멈추면, 다시 시간을 흐르게 해 달라고 열과 성을 다해 천지신명님, 부처님, 하느님, 제우스신님 등등 소원을 들어주실 법한 분들께 기도할 것이 분명하지만...)